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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과잉 사회 - 관계의 단절과 진실을 왜곡하는 초연결 시대의 역설
정인규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2년 5월
평점 :

<시선 과잉 사회>는 예일대 철학과,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 중인 1996년생 젊은 철학도인 저자 정인규가 '시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관계의 회복'을 말하는 인문 도서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소셜 미디어, 즉 인터넷에 만연해진 디지털 관계가 오히려 관계의 단절은 물론 진실을 왜곡하고 조종하는 문제를 아이콘택트, 시선을 통해 진단한다. 특히 돌연변이 시선, 관음, 조명 중독, 뜯어보기, 전문가의 시선 등 시선에 관련된 일상적인 개념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포스트모던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며 함축적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관계의 회복이다. 관계는 곧 아이콘택트를 통해 얻는 '우리'라는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는 마주할 때 서로를 책임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해법으로 자신이 안에서부터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이는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관계와 진실, 이 두 개념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두 개념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시선'이다. 저자는 '시선'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며, 나 한 사람의 시선에 대한 성찰이 곧 사회 전체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DNA가 인간의 신체 및 성향에 관한 각종 정보를 담고 있듯이 아이콘택트에 담긴 시선과 자유, 불안은 오늘날 사회에서 통용되는 관계의 개념으로 향하는 통로를 열어준다고 말한다. 아이콘택트는 인간관계의 비유를 넘어서 인간관계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시선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수적인 본질이다. 너와 나는 서로 알아보고, 돌아보고, 마주 봄으로써 우리가 된다. 그래서 시선과 시선의 접점은 공동체의 시작과 성장을 담고 있다. 아이콘택트에 대한 성찰은 곧 사회의 DNA에 대한 성찰이다."
저자는 소셜 미디어 유저는 잘 보이기 위해 말하고, 디지털 시선은 트렌디한 스피치를 좌우하는 시세로서 작용한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디지털 패션은 사람을 사물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제기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디지털 패션은 개인의 정체성을 박제해버리고, 나를 데이터로 인식하는 디지털 시선에 수긍하는 순간, 나는 타자에게 객체가 된다고 말한다.
"디지털의 자아는 내 육체보다 훨씬 비대하다. 몸에는 기껏해야 옷 몇 벌 걸치는 게 전부라면, 디지털 세계에서 나는 무수히 많은 양의 데이터로 나를 치장할 수 있다. 또, 디지털 세계에서는 무수히 많은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들의 시선은 나를 압도한다. 주식시장의 거래에 의해 주가가 결정되듯이, 디지털 시선에 의해 내가 누구인지 결정된다. 따라서 디지털 패션의 착용은 나에 대한 데이터만으로 나를 알아봐도 좋다는 동의를 함의한다. 기존의 사회계약론에 대한 동의는 정체성의 헌납을 의미한다. 자아는 디지털 패션에 용해된다."
저자는 훔쳐보기는 금지된 시선이라고 말한다. 금지된 기준을 세우는 것은 사회문화적 규범이 될 수도, 윤리 원칙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훔쳐보기는 감시의 의미를 지니며, 훔쳐보기의 대상이 훔쳐 보는 이에게 시선을 되돌려줄 수 없듯이, 감시 대상 또한 감시자를 바라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좋아요', 조회 수와 댓글 수는 쉽고 즉각적인 인정을 표시하며, 소셜 미디어의 유저들은 서로 훔쳐봄으로써 서로 쓰다듬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2인칭 관계의 불안과 책임을 회피해 스크린 뒤에서 서로 관음하고 관음당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의 신종 사회계약이라고 전한다.
"관음의 다른 이름은 훔쳐보기, 말 그대로 보는 대상의 무언가를 훔치는 시선이다. 성경에서 경고하는 음욕의 눈빛이나 악타이온의 훔쳐보기는 순결을 훔친다. 다른 종류의 훔쳐보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모든 훔쳐보기는 기본적으로 보는 대상의 프라이버시를 훔친다. 훔쳐보기를 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비밀을 지킬 권리, 타자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기회를 빼앗긴다."
"디지털 세계에서 눈과 손의 비유는 한 차원 더 뻗어나간다. 손이 닿은 곳에 흔적이 남듯이 디지털 시선도 흔적을 남긴다. 소셜 미디어의 시선은 '좋아요'와 조회 수로 기록되며, 인터넷 유저들의 눈이 훑고 같 유튜브 영상, 광고, 웹 주소는 알고리즘과 빅데이터에 저장된다. 시선은 여기저기 지문을 남기도 다닌다."
저자는 누구든지 노출을 통해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유튜브 드림의 그림자에는 적자생존이 아닌, 흥자생존, 즉 재미있는 사람의 생존이라는 새로운 경쟁 원칙이 가동된다고 말한다. 재미가 없는 유튜브 채널은 조회 수를 올릴 수 없고 조회 수가 없는 채널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존재가 존재감으로 대체되고 노출이 존재감을 구성하는 사회에서 보여지지 않음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조명은 생존의 필수 장비가 된다. 그래서 모두가 타인의 조명을 자신의 무대로 끌어오기 위해 악을 쓴다. 인기와 관심을 얻는 희열보다는 시야에서 지워지지 않으려는 절박함이 크게 작용한다. 각자의 분야에서 상당한 권위를 누리는 전문가들도 앞다투어 유튜브에 뛰어드는 이유다."
저자는 아이콘택트는 심심할 수 있을지언정 지루하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마찬가지로 나와 다른 타자와 교류할 때 나는 지루하지 않고 심심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때의 심심함은 머무름의 감정, 성장을 위한 예열 단계의 감정이며, 심심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더 넓게, 그리고 더 깊게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아이콘택트의 머무름을 되찾기 위해서 개인이 각자의 음지를 찾아나서야 하는 것처럼, 지루함을 심심함으로 바꾸기 위해서도 개인은 역시 그늘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이는 지루함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얻었던 동일자의 무리의 안락함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지루한 상태에서 심심한 상태로의 변화는 객체에서 주체로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흡수되어야 생존하는 존재'에서 '그들을 부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의 탈바꿈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