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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책 : 문학 편 1 - 르몽드, 뉴욕타임스 선정, 세기를 대표하는 100권의 책
디오니소스 지음 / 디페랑스 / 2022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기의 책 문학 편1>은 책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혹은 '책에게로의 시간'이 삶의 일부인 저자들의 협업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르몽드와 뉴욕타임스 선정 「세기의 책」 시리즈 중 첫 권이다. <세기의 책 문학 편1>에서 마음에 끌리는 페이지가 있다면 독자들은 직접 그 책을 읽어 보면 다양한 명서들을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처음 소개하는 책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언제 올지, 아니 올지 안 올지조차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은, 이런저런 기다림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낸다. 오지 않는 고도와 기다림을 포기하지 못하는 두 남자, 같은 듯 다르게 흘러가는 서로의 시간, 이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될 기다림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생각하게 한다. 이 책에서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글을 소개하며 "무엇을 기다리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아직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도래할 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믿음 자체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라 달래고 어르는, 곧 '감림'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때로 그 강림의 속성으로 하염없이 뒤로 물러나는, '언젠가는'이라는 순간에 대한 기다림."이라는 마지막 문장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고도가 누구인지, 뭘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는 건, 사실 우리가 삶의 목표나 의미를 명확히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일과 같지 않을까? 의미 있는 삶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고고와 디디가 자꾸만 지금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걸 잊듯, 그렇게 망각 속에서 한 시절을 보내곤 한다.
달리 생각해 보면, 어쩌면 고도는 거창한 삶의 이유나 가치보다 그저 한 오라기 실낱같은 희망일지도 모르겠고, 고단한 삶을 평안하게 만들 생의 마지막 순간일 수도 있겠다. 언젠가 고도가 드디어 약속 장소에 나타난다면, 흥미진진하고 신나는 새로운 삶의 한 장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때까지의 이야기가 종결되고 마는 건 아닐까?"
이 책에서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 대한 깊은 성찰을 만나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소개하는 <무기여 잘 있거라> 속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을 부러뜨리지만 많은 사람은 그 부러진 곳에서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세상은 부러지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만다. 아주 선량한 사람들이든, 아주 부드러운 사람들이든, 아주 용감한 사람들이든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고 공평하게 죽인다. 당신이 그 어디에 속하지 않는다 해도 이 세상은 당신 역시 틀림없이 죽이고 말겠지만, 특별히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마음 속 소용돌이를 일으키듯 이끌린다.
"헨리는 참전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사'에 관한 문제에는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을 일로 생각했다. 그러나 폭파 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다. 캐서린과의 사랑을 통해, 거대한 이념 이외의 모든 의미를 지워 버리는 전쟁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할 때쯤, 다시 비극으로 돌아서는 삶. 헨리는 신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는 신은 존재하는 것을까? 신의 가호가 과연 정말 우리와 함께하는 걸까? 의지할 것이 없다면,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은 아름다울 수 있으나, 아무것도 보장할 수도 보상할 수도 없다."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는 희망이 그려져 있지 않다. 그는 세월과 함께 어떤 깨달음 속에서 희망을 찾아낼 것일까? 혹은 환상으로라도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을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세월 속에서 전쟁의 기억이 흐려진 것인지 궁금해진다.
우울하고 허무했던 작품이지었지만 그래서 더욱 빛나던 찰나의 행복한 장면을 옮겨 둔다.
길고 텅 빈 복도, 문밖에 나란히 놓인 구두, 두꺼운 카펫이 깔린 바닥, 창밖에 내리는 비와 함께 호텔에서 보낸 그날 밤, 방 안은 밝고 즐겁고 쾌적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불을 끄니 보드라운 시트와 편안한 침대에 가슴이 두근거렸으며 마침내 내 집에 돌아온 듯한 느낌,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한밤중에 잠을 깨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 데도 가지 않고 곁에 그대로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서 사르트르의 <구토>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 인상적이다. 사르트르의 <구토>는 우리가 본질이라고 믿고 잇는 규정 이면에 자리한 실재, 기존의 믿음을 게워 낸 자리에 새로운 지평이 잉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사르트르는 결말 부분에 로캉탱의 구토를 멈추게 하는 매개로, <머지않은 어느 날>이라는 제목의 재즈곡을 등장시킨다. 이는 스스로를 구원하는 예술과 문학의 기능에 대한 사르트르의 대답이기도 하다."라는 글에 공감한다.
"언어 밖의 실재는, 태초에 '말씀'이 있기 전의 혼돈 그 자체다. 존재들은 그저 거기 있을 뿐, 어떤 의미와 목적을 지닌 채 거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나무'라고 부르지만, 정작 자신은 인간이 '나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의 의미와 목적으로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언어로 의미를 부여하며 이 존재를 인식하지만, 실상 존재 자체는 목적적이지 않다. 존재 자체는 모두 우연의 산물이라는 이 주제가 샤르트르의 무신론까지 이러지는 것이기도 하다.
언어적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 그곳에 펼쳐진 세계의 실재. 그러나 그런 실재에 우리는 익숙하지 않다. 언어가 규정하는 본질에서 벗어난 사물 그 자체의 세계는 우리에게 혼란이다. 현기증이 일어난다. 구토가 인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