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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ㅣ 오늘의 젊은 문학 5
문지혁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2010년 단편소설 <체이서>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문을 열며 등장한 작가 문지혁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장편소설 <초급 한국어>로 정통문학의 문을 성공적으로 두드린 작가 문지혁은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에서 '‘SF 소설'과 '이민자 소설'의 경계에 놓인 다채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 이 책은 장르와 정통 서사 사이에 놓인 다리 같은 소설집을 통해 작가 문지혁의 확장된 세계를 경험할 수 있으며, 2016년부터 발표된 단편소설 여덟 편과 함께 문학평론가 이지은의 해설이 함께 실려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가, 독자에게 생소한 파문을 일으킨 장편소설 <초급 한국어> 이후, 문지혁의 소설은 자전적 세계관을 넓혀 이민자 소설의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다. 창작 노트에서 작가는 "경계에 선, 혹은 경계를 넘어서는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밝히며, '국적 없음'의 세계에서 발현하는 소설의 힘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 책의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평탄하지 않은 재난같은 삶을 만난다. 인공행성에 추락한 여객기의 유족(<다이버>), 책을 소지한 죄로 감옥에 끌려간 아버지를 둔 아들(<서재>), 전쟁이 났다는 엄마의 말에 화장실로 대피한 청소년(<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과 아들을 잃은 후 매일 호수에 동전을 던지는 천재 수학자(<폭수>), 딸을 잃고 홀로 크로아티아의 섬을 찾아가는 아버지(<아일랜드>), 아내와 부하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은 한인 사업가(<애틀랜틱 엔딩>), 논문도 소설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유학생(<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코로나 팬데믹에 마스크를 잊은 대학 강사(<어떤 선물>) 모두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흔들리며 덜컹거린다.
이 책에서 인공행성에 추락한 여객기의 유족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단편 소설 <다이빙>에서 가족을 잃고 혼자 남은 청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선택은 진짜 다이빙이라고 말하는 글이 눈길을 끈다. 작가 문지혁은 단편 <다이빙>에 대해서 1986년 물을 싫어했던 어린 시절의 잃어버린 사진 한 장,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2014년 세월호 참사라는 재난들을 어떻게 애도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한 것에서 이야기가 출발하였다고 말한다. 그들을 차가운 물속에서 구해낼 수 없다면 소설가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닮은 인물을 그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뿐이었다는 저자의 창작노트 속 글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속으로는 며칠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청년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장례를 대신 치러 주다가 그의 마음을 문득 스쳐간 어떤 생각에 대해서. 사랑하는 가족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면, 청년이 택한 방법이야말로 진짜 다이빙은 아닌가."
문지혁 작가의 단편 <서재>에는 책을 소지한 죄로 감옥에 끌려간 아버지를 둔 아들이 등장한다. 아버지로 인해 불행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아들은 불행은 언제나 패턴이 깨지는 순간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패턴을 벗어난 순간 행복이 사라진다는 불안으로 삶을 살아가는 아들은 아버지의 서재가 있던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할 상황에 놓인다. 결국 아들은 곧 태어날 생명을 기다리며 자신의 패턴을 깨고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낯선 존재에게 무엇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아들은 서재에서 종이인지 자신의 아버지의 뇌 조각인지 모를 책을 읽으며 자신의 아버지처럼 글을 쓰기 시작한다.
"불행은 언제나 패턴이 깨지는 순간 찾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패턴을 벗어난 차에 흥미를 느꼈다. 그 차는 마치 나를 알아보기라도 한 것처럼 점점 내 쪽으로 다가왔고, 끝내 집 압에 내려앉았다."
"아이를 갖기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도 받아야 하고, 지금의 집에서도 이사를 해야 했다. 지금은 둘이 번다지만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면 한 사람은 일을 슁야 할 것이고, 그동안은 정부보조금으로 생활해야 할 텐데 그러기에 우리의 등급은 너무 낮았다. 생물학적으로 임신이 가능한가의 문제를 별개로 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나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지금의 행복한 패턴을 깨고 싶지 않았다. 패턴이 깨지는 순간 찾아오는 건 불행히다. 나는 나를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이 세상에 더 이상의 생명을 초대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이, 우리의 아이. 생각의 바다 위에서 나는 곧 태어날 생명이 기다리는 해안가로 휩쓸려간다. 나의 패턴을 깨고 나를 아버지라고 부를 낯선 존재에게,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문지혁의 단편 <폭수>는 아들을 잃은 후 매일 호수에 동전을 던지는 천재 수학자 오교수를 인터뷰 하기 위해 찾아간 대학원생 강 선생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흥미롭다. 문지혁 작가는 만약 비과학적인 방식으로 과학의 특이점을 실험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내키지는 않지만 그를 인터뷰해야만 하는 대학원생이 있다면이라는 두 가지 질문을 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문과와 이과, 언어학과 수학, 학생과 교수,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
"그런데 어떤 계기로......다른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한테 정말 중요한 게 뭔가. 내가 정말로 궁금한 게 뭔가. 한번 그런 고민을 하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동안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연구가 뭔지도 모르면서, 더 이상은 남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연구를 못 하겠는 거지요. 이민 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시기가 있지 않습니다. 영어도 모국어도 못 하겠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 이제까지 내가 외국어만 말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까, 모국어로도 말을 못 하게 된 거예요."
"한참 동안 두 개의 커피 잔 사이에 고운 모래 같은 침묵이 흘렀다. 결혼도 하지 않은 나로서는 자식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무게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가 왜 호수에 동전을 던지기 시작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 또 다른 질문이 생겨났다. 그가 동전을 던지는 것은 수학자로서의 호기심 때문일까, 아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아니면 스스로 가진 죄책감 때문일까."
"테이블 쪽으로 몇 걸음 떼었을 때, 오 교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동전이 떨어진 수면 근처에서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하얀색 물보라가 수직으로 솟아올랐다. 이무기가 승천해서 용기 되는 광경이 이런걸까? 물은 마치 잠시 동안 중력을 벗어나기라고 한 것처럼 하늘 높이 솟구치다가, 빌딩의 세 배쯤 되는 어마어마한 높이에서 정점에 이르자 다시 비처럼 아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거센 바람과 물방울이 우리 쪽으로 훅 밀려왔다. 창틀이 심하게 흔들렸고 쿼터가 담긴 머그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오 교수와 나는 물벼락을 맞고 휘청거렸다."
문지혁 작가의 단편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논문도 소설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유학생의 이야기를 그렸다. 문지혁 작가는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에서도 자신의 장편소설 <초급 한국어>의 '나'와 '아야'가 등장한다고 이야기한다. 문지혁 작가는 "극동아시아에서 온 21세기의 유학생에서 18세기의 미국독립전쟁 유적지는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사고, 재난, 전쟁은 어떻게 일어나고 또 기억되는가?" 이 소설은 그런 질문에서 시작되었고, 하나의 장소 위에 서로 다른 역사, 서로 다른 사람, 서로 다른 이야기가 겹치는 것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것은 소설가의 의무이자 특권이라고 말한다.
"확률에 관해 생각한다. 이를테면 포트 리의 카페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걸어서 건널 확률. 그가 다시 포트 리로 돌아올 확률. 어떤 이름이 모음의 시작이거나 고통을 뜻하는 감탄사일 확률. 하나의 다리가 무너질 확률. 누군가 다리에서 몸을 던질 확률. 쓰나미가 덮친 마을에서 파도에 뜯긴 집이 언덕 위의 대피소 운동장에 도착할 확률. 헤어진 모자가 다시 만날 확률. 하나의 소설이 쓰일 확률. 그 소설이 완성되지 못하고 버려지거나 쓴 사람에게조차 영원히 잊힐 가능성의 수......"
"스페니시 버스가 뉴저지 쪽으로 사라지자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가방에는 며칠 전 인쇄한 817매짜리 소설 초고가 들어 있었고, 원래 나는 그걸 다리 위에서 강에 던져버릴 생각이었다. 몇 가지 이유로 그러지 못했는데 첫째 아야를 만났기 때문이고, 둘째 내가 아야에게 함께 가자고 했기 때문이고, 셋째 우리가 정말로 함께 다리를 건넜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비겁한 변명이라는 것을 스스로 모를 수는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소설을 던져버리지 않을 작정이었던 것이다. 내 무의식은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을 뿐. 나는 카프카의 <선고>를 읽고 성수대교로 달려갔다 해도 한강에 뛰어드는 대신 '생명의 전화'에 전화를 걸었을 사람이다."
이 책에서 끝부분에 실린 문지혁 작가의 창작노트의 글이 인상적이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은 모두 ‘재난’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인다. 나는 재난과 재난 이후의 삶에 관해, 상처와 폐허와 트라우마에 관해, 우리가 스러지고 다시 일어선 곳에 관해,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비록 두서없고 더듬거리고 때로는 말문이 막혀 한숨만 내뱉는다 하더라도."라는 문지혁 작가의 글은 인생에서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재난들을 자신 안에 가두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삶은 다시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