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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는 다양한 사랑의 파국에 직면한 여성들의 섬세한 심시를 그린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단편소설집이자 제130회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2022년 리커버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12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 작가 특유의 세련되고 담담한 문체로 표현한 일상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에쿠니 가오리 작가는 잔잔하지만 날카롭게 마음을 파고드는 12개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 이별 그리고 상실에 대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 주며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이 책의 단편 '열대야'에서 주인공은 동성 연인인 아카미와 서로를 사랑해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는 지금의 순간을 이야기한다. 언젠가 헤어질지도 모르고 헤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항상 '지금'의 행복이라는 시간을 생각할 수 없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우리는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라고 아카미가 눈으로 말한다. 당당하고 반듯하게. 내가 기뻐하며 웃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눈빛을 따라 웃고 만다."
"인생은 위험한 거야. 거기에는 시간도 흐르고, 타인도 있어.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강아지도 있고 아이도 있고."
이 책의 단편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은 여행 내내 아들도 함께 왔으면 좋았을 거라는 말만 하는 시어머니를 보며 바람피웠던 애인과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어머니 시즈코는 나츠메가 사랑에 빠졌었다는 것을 모른채 며느리인 나츠메와 단둘이 여행을 한다. 바람을 피웠던 애인인 루이를 잃기 전에, 오래전에 남편을 잃어버리고 피상적인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나츠메가 시어머니와의 여행에서 루이에 대한 생각을 하는 모습에서 에코니 가오리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담담한 심리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혼자 사는 여자처럼 자유롭고, 결혼한 여자처럼 고독하다. 나츠메는 여행 가방에 짐을 꾸리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시즈코는 일흔네 살이다. 나츠메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어 그 나이의 여자를 모르니 비교할 일이 없지만, 아마도 시즈코는 일흔네 살이란 나이에 비하면 놀랍도록 젊어 보이고 강인한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단편 '그 어느 곳도 아닌 장소'는 현실의 수많은 문제들을 뒤로한 채 밝고 명랑한 밤의 술집의 분위기에 취한 모습을 보여 준다. 과거도 가족도 고향 따위도 갖고 있지 않다는 표정으로 술을 마시며, 이 순간 마주하고 있는 현실 속의 공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까라는 불가사의한 생각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 나가면 우리는 다시 각자의 장소로 돌아갈 것이다. 고양이와 아들과 화분과 씻어야 할 그릇과 어머니에게서 걸려오는 전화와 공과금 청구서와 청혼의 답을 듣지 못한 남자와 시리아에 있는 남자로부터의 연락과 그 외의 많은 것들이 기다리는 장소로. 하지만 그것들 모두가 먼 옛날 여행지에서의 사랑처럼, 멀기만 하고 허구처럼 느껴진다. 지금, 여기서는. 나는 이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 나를 맡긴다."
이 책의 단편 '울 준비는 되어 있다'은 변해 버린 애인을 사랑하면서도 증오하고, 그런 애인을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백배는 더 증오하는 마음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사랑을 한다면 더 강인한 여자가 되고 싶었던 여자가 어린 조카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희망을 담아낸 장면이 인상적이다.
"다카시도 나도 변했는데, 어느 쪽도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 둘 다 영원히, 사막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프링클러일 수 있다고, 쉬 믿었다."
"나는 다카시의 친절함을 저주하고 성실함을 저주하고 아름다움을 저주하고 특별함을 저주하고 약함과 강함을 저주했다. 그리고 다카시를 정말 사랑하는 나 자신의 약함과 강함을 그 백배는 저주했다. 저주하면서, 그러나 아직은 어린 나츠키가 언젠가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한다면, 더 강해 주기를 기도했다. 여행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한껏 사랑받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기를 기도했다."
"사람들이 만사에 대처하는 방식은 늘 이 세상에서 처음 있는 것이고 한 번뿐인 것이라서 놀랍도록 진지하고 극적입니다. 가령 슬픔을 통과할 때, 그 슬픔이 아무리 갑작스러운 것이라도 그 사람은 이미 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잃기 위해서는 소유가 필요하고, 적어도 거기에 분명하게 있었다는 의심 없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거기에 있었겠죠. 과거에 있었던 것과, 그 후에도 죽 있어야 하는 것들의 단편집이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울 준비는 되어 있다>의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말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