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파수꾼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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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파수꾼>은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는 45세의 도로시와 그녀의 차에 치인 아름다운 청년 루이스의 기묘한 동거를 그린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장편소설이다. 애인도 있고 성공도 이룬 40대 여성 앞에 나타나 존재감을 흔드는 청년의 이야기가 여느 사강 소설과는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는 45세의 도로시와 그녀의 연인인 영화사 대표 40세의 폴. 둘이 함께 탄 차에 어느 날 한 젊은 청년이 LSD에 취해 뛰어들게 되고, 이 청년이 도로시의 집에서 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교통사고의 대가로 도로시는 청년 루이스를 보살필 의무를 지지만 점점 의무를 지나 미묘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도로시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하는데, 알고 보니 루이스가 도로시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셋이나 살해하고 자살이나 사고로 위장했던 것이다. 루이스는 도로시 주선으로 영화배우로 성공하여 부자가 되지만 결혼한 폴과 도로시에게 애원하여 그들과 함께 살게 된다.

"내 이름은 도로시 시모어다. 마흔다섯 살이고, 이목구비에는 피로의 흔적이 약간 엿보인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그렇게 되는 것을 전혀 막아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시나리오 작가다. 웬만큼 성공도 했다. 그리고 아직 남자들에게 인기도 많다. 어떻게 보면 내 쪽에서 남자들을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할리우드를 창피스럽게 한 문제 인물에 속한다. 스물다섯살에 어느 지적인 영화에 출연하여 여배우로서 전격적인 성공을 거머쥐었고, 스물다섯 살 반에 그렇게 번 돈을 탕진하고자 한 좌파 화가와 함께 유럽으로 떠났으며, 스물일곱 살에는 몇몇 소송 건에 휘말린 빈털터리의 이름 없는 여자가 되어 고향인 할리우드로 돌아왔다. 내게 지불 능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느 단계에서 소송을 취하했고, 나를 시나리오 작가로 써먹기로 결정했다."

"삶은 때로 내게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냉혹한 것으로 여겨졌고, 어떤 사랑들은 실제로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마흔다섯 살이 되어 여기에, 내 정원 안에,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앉아 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채로."

<마음의 파수꾼>에서 루이스는 사랑과 세상에 대해 관조적인 시선을 가졌지만, 자신을 순수한 선의로 대하는 도로시로 인해 그녀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루이스는 도로시를 알기 전에 가진 게 아무것도 없이 외로웠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지만 도로시를 만난 이후 도로시라는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알게된 사랑의 대상을 보호하기 위한 명분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루이스가 죽인 세 사람은 모두 연약하고, 잔혹하고, 탐욕스럽고, 삶에 환멸을 느낀 인물들이었다. 도로시를 괴롭히는 사람을 살해하여 제거하는 루이스의 행동은 한쪽으로만 흐르며 극단으로 치닫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신이 베푼 친절이 순수한 선의에서 나왔다는 걸 알았을 때, 난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당신이 나를 어리게 생각한다는 것, 당신이 폴 브레트를 좋아하고 나를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난 당신을 보호해줄 수 있어요. 그뿐이에요."

이 소설의 후반부에서 도로시가 자신을 죽일 뻔한 청년 루이스의 사랑만큼 상냥한 사랑을 베풀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이 소설은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사랑의 기대와 그로 인한 고통, 그 이율배반의 아이러니를 그린다.

"내가 총애라는 살인자와 함께 느긋한 마음으로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그러나 이런 손쉬운 행복을 손에 넣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 행복은 사람을 속박한다. 행복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상심에서 빠져나오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우리는 최악의 근심거리 한가운데에서 헤엄치고, 몸부림치고, 스스로를 변호하고,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돌연 행복이 조약돌처럼 혹은 반짝이는 햇빛처럼 우리의 이마를 친다. 그러면 우리는 존재한다는 그 모든 기쁨을 마주한 채 당황하여 뒷걸음치는 것이다."

"원한다면 그렇게 해, 루이스...... 하지만 그러면 내가 괴로워져. 너도 알겠지만 난 언제나 삶을 사랑했어. 나는 태양을, 친구들을, 그리고 너 루이스를 무척이나 좋아했어......"

"나 없이 무엇을 할래, 루이스. 넌 다시 따분해질 거야...... 루이스, 내 사랑, 착하지, 나를 놓아줘."

"지금껏 살아오면서 몇몇 남자가 내 어깨 위에 쓰러져왔지만, 그 누구도 내게 측은한 마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 야만적이고 급작스러우며 남성적인 슬픔처럼 내게 엄숙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폴과 결혼한 도로시가 루이스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막느라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면서도 조금 감시를 하고 운만 따라준다면 루이스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잘 될것이라며 콧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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