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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카페 ㅣ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길모퉁이 카페>는 프랑스 문단의 작은 악마, 섬세한 심리 묘사의 대가, 스캔들 메이커 등 다양한 수식어를 지닌 작가 사랑이 '결별'을 테마로 쓴 단편소설 열아홉 편을 모은 책이다.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를 무대로 삼아, 슬픔과 고독에 빠진 인물들의 마음을 묘사하면서도, 작가 사강 특유의 건조하고 시니컬하고 때로는 유머스러운 문체를 유지한다. 이 책은 이별은 앞둔 남녀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 지금의 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작가 사강이 속해 있었던 사교계의 모습,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늙는다는 것에 대한 서글픔 등이 담긴 다양한 고독의 파편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 사강은 평범하고 사소하게 보이는 사건이 각 개인에게 끼치는 각양각색의 변화들을 다루며, 잔인한 현실 앞에서 절망하는 인물들을 바라보며, 생의 결정적 길모퉁이에 접어든 영혼들에게 위로 혹은 냉소를 건네고 있다.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떠나야 하는 불치병에 걸린 남자의 이야기 <누워 있는 남자>, 사랑하는 남자를 못 잊고 괴로워하던 저녁, 다른 남자에게서 위로를 얻으려는 여자의 이야기 <어느 저녁>,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하러 가는 여자의 이야기 <왼쪽 속눈썹> 등에는 이별을 앞둔, 혹은 이미 이별을 경험한 남녀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가 묘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기도 하는 호스트들의 70년대판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지골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는 가장의 이야기 <개 같은 밤>이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하늘>에서는 사간이 실제로 속해 있었던 사교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진실함이나 진지함과는 거리가 있는 구성원의 인간관계에 대해 작가가 느끼는 쓸씁함을 만나볼 수 있다.
<개 같은 밤>에서 가장인 지메네스트르는 도박으로 돈을 탕진한 후, 아내와 두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살 돈이 없어서 두려움을 느낀다. 12월 24일, 지메네스트르는 동물 보호소에서 눈이 선한 개를 골라 메도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줄에 묶어서 거리로 나선다. 눈이 잔뜩 묻은 누렇고 더러운 개를 바라보던 지메네스트르는 누군가 개를 쳐다봐준 게 한참 되었겠다는 생각을 하며 메도르의 갈색 눈에 풍덩 빠져버린다. 지메네스트르는 집으로 메도르를 데려가 가족들에게 선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지메네스트르는 메도르를 산책시키려고 성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성당 신자들은 메도로와 지메네스트르에게 돈을 쥐여주며 자비를 전한다. 그리고 지메네스트르는 자신이 신자들에게 받은 돈으로 가족들에게 선물에 해당하는 돈을 나눠 준다. <개 같은 밤>은 개에게 베풀었던 자비심이 전염되어 따뜻한 온기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흥미롭다.
"자비라는 것이 얼마나 전염성이 강한 것인지! 성당 오른쪽 출구로 나온 신자들은 거의 모두가 지메네스트르 씨와 메도르에게 돈을 쥐어주었다. 하얗게 눈을 맞고 입을 헤벌린 지메네스트로 씨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소용 없었다.
왼쪽 출구로 성당을 나선 지메네스트르 부인과 아이들은 집에 도착했다. 지메네스트르 씨도 뒤이어 집에 돌아와 오후에는 장난을 쳤던 것이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각자에게 선물에 해당하는 돈을 나워 주었다. 크리스마스이브 파티는 아주 즐거웠다. 지메네스트르 씨는 칠면조 요리를 배가 터지도록 먹은 메도르와 나란히 누웠고, 둘은 함게 편안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단편 <길모퉁이 카페>는 의사에게 3개월 시한부 폐암 선고를 받은 남자 마르크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인상적이다. 마르크는 죽음을 향해 가는 시간 속에서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것을 발견하고 '삶'을 마주하게 된다. 마르크가 달려간 것은 가족이나 운명이 아니라 길모퉁이 카페였다. 그는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큰일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 자신의 남은 삶을 파괴하도록 두기 보다는, 생을 마감하는 힘과 자기 자신에 대한 호의를 베풀었던 마르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바로 그때, 마르크는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진정한 용기를 발휘했다. 그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인도로 뛰쳐나가 대로와 행인들,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귀머거리에 장님이라도 된 양 길가에 잠시 머물렀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길모퉁이 카페로 향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의 주의를 끌지 않았지만 그의 기억 속에 영원히 새겨져 있는 카페였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