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무원의 우울 - 오늘도 나는 상처받은 어린 나를 위로한다
정유라 지음 / 크루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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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공무원의 우울>은 28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는 8년 차 공무원이 쓴 에세이다. 이 책은 부모의 폭력 속에서 상처받은 마음이 다 자라지 못한 채 커 버린 저자가 어린 시절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글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기억이 형성되기 훨씬 전부터 저자의 아빠의 폭력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고, 저자의 엄마의 폭력은 저자를 향했다. 늘 폭력이 난무했던 집에서 시작된 저자의 우울은 지금도 진행중이며, 저자는 부모에게 당한 상처로 여러 차계 부모와 인연을 끊고 다시 인연을 이어나가는 등의 방황을 하면서도 아직 그들을 외사랑하고 있다. "하자 있는 인간입니다. 치유할 수 없는 하자죠.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깊은 흉터를 남깁니다. 흉터가 욱신거릴 때마다 저는 불안과 혼란에 빠집니다."라는 저자의 소개란은 가족이 남긴 상처로부터 고통 받는 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글로 눈길을 끈다.



저자는 2014년 1월부터 공무원으로 근무했고, 2019년 7월, 공무원이 된 지 6년 째 되던 해에 오래된 우울증과 함께 공황 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오래된 우울이라니. 얼마나 오래된 우울일까?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유 없이 서럽게 울었던 그때부터 우울증이었을까? 아니면 중학교 2학년 때 엄마도 동생도 버리고 집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그때부터였을까? 오래전부터 나 스스로도 우울증일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고, 의사 선생님도 공황 장애보다는 우울함이 더 문제라고 했기에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저자는 자신이 엄마의 우울을 먹고 자랐고,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엄마의 불행은 폭력적이고 변변치 않은 아빠를 만나 시작되었고, 자신과 남동생을 뜻대로 키워 남편의 부재를 채워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결국 엄마는 한번 시작된 불행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엄마는 잘못된 방식의 과도한 사랑으로 엄마의 뜻대로 커야 했고, 엄마의 뜻대로 해야 했다고 이야기한다. 엄마가 자식에게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는 행위는 자식에게 불안과 우울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와 감정을 공유했다. 엄마는 집안 경제 사정, 아빠의 무능력함, 남동생에 대한 걱정 그리고 엄마 인생의 한탄까지 모든 것을 나에게 이야기했다. 처음엔 나도 엄마밖에 몰랐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고, 엄마가 울면 나도 울었고, 엄마가 아빠를 욕하면 나도 아빠를 원망했다. 엄마가 화를 내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고, 엄마가 기쁘면 나도 기뻤다. 엄마의 감정은 곧 나의 감정이었고, 엄마의 생각은 곧 나의 생각이었다. 엄마는 항상 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했다고 하지만, 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저자는 8년차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자신이 겪었던 일화들을 소개한다. 부모의 영향으로 자신이 성장하면서 정신병자가 아닐지에 대해 늘 고민했다는 저자의 글이 예민한 마음의 감각을 건드린다. 뿐만 아니라 집을 떠나 가장 힘들었던 공시생 시절을 떠올리며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도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으로 남을까에 대한 질문을 남기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내가 정신병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정상인지,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상인지에 대해 늘 고민했다. 혹여나 별것 아닌 일로 내가 유난을 떠는 게 아닌 건지, 정말 엄마 말대로 다른 집 애들은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밝게만 자라는데 내가 유난인 건지 나는 언제나 헷갈렸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런 게 습관이 돼서 나는 좀 신중한 편이 되었는데, 그러나 보니 생각을 너무 많이 해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저자는 과거의 기억 조각 모음을 하면서 이상한 부분을 고치고 순서를 맞추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바다의 바위섬처럼 온몸으로 파도를 맞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러면서도 이 과정을 계속 하다 보면 과거의 자신을 보내줄 수 있을까 궁금했지만 확실해진 것 없었고,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었다고 고백하는 저자의 글은 가장 솔직한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점점 강해지는 자신을 희망한다는 저자의 마지막 글이 고통스럽지만 우울을 만들어낸 과거들을 직면하는 과정들이 삶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내 과거가 담긴 찢긴 일기장과 그 외 몇 권의 일기장은 안 보기로 결정했다. 그건 과거의 나라는 걸 받아들였다. 이제 현재의 나를 위해, 미래의 나를 위해 살아가 보기로 다짐했다. 언제 상처받은 어린 내가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른다. 또 언젠가 다시 자살 충동이 슬며시 올라올 수도 있다. 그래도 내 옆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믿음직한 연인이 있다. 이제야 주변에 날 사랑해 주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고 이제 그들에게 내가 응답할 차례다. 꾸준히 심리 상담 치료와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여느 보통 사람들처럼 사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 때까지 버텨보려 한다. 점점 강해지는 나를 희망한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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