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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강아지
케르스틴 에크만 지음, 함연진 옮김 / 열아홉 / 2021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길 잃은 강아지〉는 비록 알 수 없는 이유로 길을 잃고 홀로 된 강아지 한 마리가, 살고자 하는 스스로의 강렬한 의지와 따뜻한 손길을 통해 다시 누군가의 강아지로 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책은 <아들의 밤〉에 이어 열아홉 출판사가 최초로 발굴해 국내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북유럽 작가의 작품세계로, 유럽과 영미권의 독자들에게 〈Hunden〉이라는 원제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길 잃은 강아지>는 전 노벨문학상 선정위원이자 유럽이 사랑하는 스웨덴의 여류 작가 케르스틴 에크만이 그리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오늘 하루 길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따뜻한 이야기를 선물한다.

스웨덴의 한적한 숲속 마을을 배경으로, 잿빛 털을 가진 새끼 강아지가 주인과 외출하는 어미의 뒤를 쫓아 집을 나선다. 그러나 강아지는 곧 길을 잃고 정적만이 이어지는 호수로 이어지는 길고 하얀 눈길 위에 덩그러니 남게 된다. 아내는 강아지를 영영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금쯤이면 이미 얼어 죽었을 거라며 슬퍼하며 체념했다.
"아내는 새끼 강아지들 중 한 마리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짙은 잿빛 털을 가진 강아지였다.
두 사람은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온종일 새끼를 찾아헤맸다. 어미 개를 데리고 냄새를 쫓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도무지 눈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녁 무렵이 되자 눈은 폭설로 변해버렸다. 아내는 울면서 이제 잃어버린 강아지를 영영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금쯤이면 이미 얼어 죽어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튿날, 강아지가 잠이 깬 곳은 가문비나무 아래였다. 그는 타는 듯한 갈증과 추위, 그리고 배고픔으로 낑낑대며, 고르지 못한 숲길을 나아갔다. 털도 나지 않은 뱃가죽은 차가운 눈밭에 빠지기 일쑤였다. 숲속 동물들은 모든 틈새와 굴속에서, 둥지와 나무뿌리 아래서 추위를 피해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었다. 강아지는 은여우와 무스 떼를 만나기도 하고, 살아남기 위해 산토끼와 아기 새들을 사냥하고 안전한 은신처를 찾는 방법과 위험을 비켜 가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며 근육질의 성견으로 자라난다.
"그의 몸은 경계심과 기대감 사이에서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듯했다. 이윽고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도록 그를 몰고 간 것은 어떤 순전한 그리움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잘 보일 만큼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는 몸이 굳어 꼼짝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뱃속에서는 피가 얼어븥어 어지럼증마저 일었다. 몸의 털은 공포감에 젖어 빳빳이 섰다. 그는 달빛에 이글거리는 두 눈이 얼음 위에 비친 모습을 보았고, 그 속에 담긴 눈빛이 한없이 낯설고 적대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제야 그는 은여우의 냄새를 맡았다."
"강아지는 근육질의 성견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그의 내면에서도 무언가가 끊임없이 자라났다. 그것은 목적의식이였다. 입안에 피와 온기를 가득 채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한 번에 덮치는 일이었다. 이제 그의 몸은 거의 다 자라 단단했다. 무엇이든 타격할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그림자보다도 강했다."
강아지는 신뢰할 수 없는 적막과 냄새들 가운데서는 불안감을 느끼며, 그 무엇도 믿지 못하고 그저 정처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강아지가 두려움과 혼란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안도감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강아지를 몰아붙이며 달리게 하는 힘은 굶주림보다도 더 강력한 무엇이었다.
"그는 곧 길을 나서고 있었다. 다만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강아지 내면의 감각이 그가 먼 산 위의 작은 호수 위로 울려 퍼지는 소리보다도 더 강렬한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모든 날이 달리기에 유리하고 또 힘이 넘치는 날들은 아니었다. 강아지는 가끔 혼란에 빠지곤 했다. 자신이 사냥을 하는 건지, 아니면 바람 속에 실려 온 무언가를 쫓아가는 건지도 몰랐다. 목적 없이 뛰어다니는 나날이 대부분이었다."
어느 날, 낯선 사람들이 법석이며 호숫가 근처 오두막집에 자리를 잡는다. 왠지 모를 그리움과 호기심에 이끌려 강아지는 주변을 배회한다. 그리고 사나운 사냥개들과 싸우던 중에, 자신에게 눈을 맞추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한 사내를 만난다. 강아지는 왠지 익숙한 이 사내가 매일 배를 타고 와 먹이를 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날, 어디론가 가버린 개를 기다리며 서성이다 너를 구했단다."
"그는 한 사내의 강아지로 남아있었다. 그 사내와 부엌 싱크대 옆에 음식 그릇을 내려놓곤 하는 아내 외에는 아무도 그를 만질 수 없었다. 두 사람 모두는 그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고조되어 성난 목소리는 그를 어디론가 숨어버리게 할 것이고 오랫동안 다시 나타나지 않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동안 집을 나온 한 마리의 강아지가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여정을 지켜보며 그가 아무쪼록 따뜻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응원하게 된다. 결국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강아지가 다시 누군가를 믿게 되는 이야기가 길을 잃은 우리들에게 따스한 위안을 건낸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