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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1 - 미조의 시대
이서수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21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1>은 2021년 한국문학을 빛낸 최고의 단편소설을 엄선한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들을 수록한 책이다. 올해로 22회를 맞는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대상인 이서수 작가의 <미조의 시대>를 포함하여 우수상 수상작품인 김경욱 작가의 <타인의 삶>, 김멜라 작가의 <나뭇잎이 마르고>, 박솔뫼 작가의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거야>, 은희경 작가의 <아가씨 유정도 하지>, 최진영 작가의 <차고 뜨거운> 뿐만 아니라 대상 수상작가 자선작인 <나의 방광 나의 지구>, 기수상작가 자선작 <얼굴을 비울 때까지>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1>의 대상 수상작인 이서수 작가의 <미조의 시대>와 문화평론가 정홍수의 평론도 실려있어 눈길을 끈다. 문화평론가 정홍수는 "2020년대에 '시대착오적'으로, 그러나 더없이 진실되고 감동적으로 회귀한 '노동소설'이 이렇게 여러 겹의 '수기' 형식을 띠는 것은 어떤 면에서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서수의 <미조의 시대>는 소설의 리얼리티에서 반세기 전 구로공단의 시간을 품고 껴안는 것만큼이나, 목소리의 다성성을 구현하고 있는 소설의 화법과 스타일에서도 야심적이고 창의적이다. 출구 없는 현실의 틈새에서 찾아낸 각별한 언어의 충실성은 이 신예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를 한껏 기대하게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밖에도 제22회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수상작 중 최진영 작가의 <차고 뜨거운>이라는 단편소설이 눈길을 끌었다. 오랜 상상의 힘으로 우월함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타인을 이용하는 아빠의 존재를 13살에 지워버린 주인공은 어른이 되어 태양이라는 이름의 아이를 낳는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자식을 무시하면서 엄마의 자리를 견고하게 다지는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했던 엄마에게 흡수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다짐을 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과거의 부모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여성이 스스로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어 깊은 여운이 남는다.
"아빠는 밥솥이 어디에 있는지, 자기 속옷이 어느 서랍에 있는지도 몰랐다. 형광등 하나 갈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세탁기 사용법은 알까? 옷을 빨아서 말려야 한다는 것, 쌀을 씻어서 밥솥에 넣어 취사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것, 식사 후 그릇은 씻어야 한다는 것, 먼지는 쓸고 닦아야 하며 식재료는 시장에서 사 와 냉장고에 채워 넣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사람. 가족의 생일은 외우지 못하지만 통장의 잔고는 십 원 단위까지 외우는 사람. 우리 집에서 아빠는 나이가 가장 많았다. 그런데도 어린아이처럼 보호받는 존재였다. 사고를 치고 행패를 부려도 아직 미성숙한 사람이므로 가족의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존재. 아빠는 자기가 누군가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 없을 것이다. 나는 오랜 상상의 힘으로 아빠를 없애버렸다."
"나는 잘못될 생각부터 하기는 싫어. 나는 복직할 거고 태양이는 잘 클 거야. 물론 아프겠지. 다치겠지. 속상하겠지. 가끔 후회하겠지. 애 아빠하고 나는 싸우기도 할 거고 태양이는 울겠지. 그러면 서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화해할 거야. 중요한 일은 같이 고민하고 약속을 지킬 거야. 특별한 날에는 외식도 하고 여행도 갈 거야. 나는 그렇게 살 거야. 엄마."
"내가 어떤 아이였든 무슨 상관인가.
걸음걸이마저 닮아버린 두 사람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할 테고 나는 이제 누구의 기억에도 엉겨 붇지 않을 것이다. 지금을 생각할 것이다. 고개를 들어 태양을 찾았다. 구름이 빠르게 태양을 가리며 지상에 잠시 그림자를 만들었다. 곧 눈이 부셨다. 우리 중 누구도 아빠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몰랐으며 관심도 없었다. 아빠를 추억하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아직까지는."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