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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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사>는 다크 미스터리 작가 마리 유키코의 연작 단편집이며, '이사'라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할 법한 이야기를 통해 현실적인 공포를 실감나게 그려낸 작품으로 흥미롭다. 작가 마리 유키코는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가차 없이 그려내기에 읽고 나면 기분이 찜찜하고 불쾌해지는 미스터리인 '이야미스' 장르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문, 수납장, 책상, 상자, 벽, 끈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사라는 주제와 함께 어두운 인간의 심연과 공포, 고정관념에 허를 찌르는 결말의 선택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의 단편인 '수납장'의 주인공 가오리는 이사를 준비하던 중에 마땅치 않은 물건들을 처박아둔 수납장을 발견한다. 가오리는 수납장을 바라보며, 자신이 우유부단하게 문제들을 보류하며, 지금 이 순간 눈앞에서 문제를 감추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혼외자였던 나오코는 수납장에서 나온 유치원 때 그림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떠올리고, 이사할때마다 커지는 수납장이 엄마의 비밀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 엄마는 우유부단하다. 필요가 없는 물건을 사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에게 웃는 얼굴로 대하는 것도, 일을 경속하게 떠맡는 것도 전부 그 성격 탓이다. 내가 혼외자인 것도 분명. 그리고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이사를 되풀이한 것도 원인은 분명 그것이다."

이 책의 단편인 '상자'는 사내에서 따돌림을 당한 정직원 유미에가 소속 부서 자체의 이동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공포를 그린 작품이다. 파견직원들은 유미에를 괴롭히기 위해 개인용품이 등 상자를 빼앗고 노숙자에게 준다. 유미에의 정직원 동료인 쿄코는 숫자로 우세인 파견직원들의 비위를 거르스지 않으며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선을 넘지 않고, 유미에는 비극적인 사건을 경험하며 자신의 개인 상자 안에서 쿄코를 위해 준비한 콘서트 티켓을 전달할 수 없게 된다.

"중학생 때였다면 풋내 나는 정의감을 앞세워 '그래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드높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중고등학교 때 지독한 왕따를 당했다.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 결심했다. 앞으로는 무사안일주의로 살아가자고. 최대한 남과 알력이 생기지 않도록 내 한 몸만 잘 챙기자고. 이것이 쿄코 나름의 처세술이다.

그러니까 유미에, 너도 혼자 힘내서 네 나름대로 활로를 찾아내.

쿄코는 작은 수레를 빌려와서 골판지상자를 실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야. 지금 가져다줄게."

<이사>는 삶의 터전을 옮기며 버리고 채워지는 과정이 존재하는 '이사'라는 현실에서 만나는 공포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각 단편마다 등장하는 캐릭터인 사신 '아오시마'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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