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클로이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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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녀, 클로이>는 <그녀, 클로이>는 <저스트 라이크 헤븐>, <영원을 위한 7일>, <행복한 프랑스 책방>, <자유의 아이들> 등을 쓴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르크 레비의 신작 소설이다. 이 책은 맨해튼 5번가 12번지 아파트 주민들과 9층 여자 클로이를 중심으로 다름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아낸 소설이다.

뉴욕 맨해튼 5번가 12번지, 붉은 벽돌로 된 9층 아파트에는 특별한 점이 하나 있다. 뉴욕 전체에 53대밖에 남아 있지 않은 수동식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 엘리베이터 작동을 담당하는 인도인 승무원 디팍은 입주민의 성향과 습관을 모조리 꿰뚫고 그들의 요구에 성실히 답하며 일한다. 종종 주민들은 그를 하인 부리듯 대하기도 하지만 단 두 사람, 휠체어를 탄 여성 클로이와 그녀의 아버지만은 예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야간조 승무원 동료가 계단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겪게 되고, 때마침 젊고 천재적인 인도의 청년 사업가로 네크워크 개발을 위해 미국에 온 산지는 고모부 디팍의 설득 끝에 야간 엘리베이터 일을 맡게 된다. 과거 충격적인 사건으로 장애를 갖게 된 클로이 앞에는 디팍의 가족과 산지를 만나면서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펼쳐진다.

이 책은 수동 엘리베이터 작동을 담당하는 인도인 승무원 디팍이 망각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어 흥미롭다. 특출한 크리켓 선수였던 디팍은 산악인이 기록을 재듯 엘리베이터를 운전하면서 난다데비산 높이의 3천 배 거리를 수직 이동하기로 결심하고 39년째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건물 주민들의 일상이 불편하지 않도록 정성을 기울인 디팍은 뱃사공처럼 주민들을 지켜주고 있었지만 자동화 엘리베이터로 교체하려는 고용주들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다.

"몇 년 후에도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직업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사라진 직업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본 적 있니? 그 직업에 종사하던 이들의 긍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그 근면한 삶을 누가 기억해줄까? 수세기 동안 도시를 밝혀준 가로 등지기를 예로 들어보자고. 그들은 해 질 녘부터 새벽까지 장대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녔어. 나는 그들이 가로등에 불을 밝히며 다닌 거리가 몇 킬로미터나 되었을지 궁금해. 한 직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난 뒤의 신성한 기록이잖아. 불꽃처럼 살다가 먼지가 되어 어둠 속 무덤으로 사그라지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존재했었다는 걸 아직까지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디오북 성우로 활동하는 클로이는 보스턴 마라톤 사고로 다리를 잃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살아가는 여성으로 자신의 장애에 대한 시선을 불편해하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클로이는 고모부인 디팍이 벌인 일에 연류된 인도인 남성 산지를 만나 사랑에 빠지며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뉴욕 맨해튼 5번가 12번지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완전히 수동으로만 작동하는 골동품이지만 이 건물 주민들에게 수동식 엘리베이터는 삶의 지혜가 깃든 흔적이자 추억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의 도움으로 디팍과 산지는 위기를 모면하고 디팍은 엘리베이터 자동화 설비 세트가 도착하고 설치될 때까지 근무할 수 있게 된다. 디팍과 디팍의 아내 랄리는 이스트할렘으로 떠나고, 디팍은 인도에서 자신의 숙원이었던 엘리베이터 등반을 완수했다. 이 책의 끝부분에 쓰인 일기의 내용은 작가 마르크 레비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닐까?

"네 왕고모부 디팍이 아침마다 말하듯이 우리는 모두 오르락내리락하는 인생을 살고 있어.

나는 의심의 여지없는 한 가지를 알았다. 최악이라고 보이는 것에 이르렀을 때, 인생은 숨기고 있던 경이로움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걸. 그 경이로움...... 네가 바로 그 증거란다.

이 일기는 너를 위해 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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