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1
이수정 외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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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은 네이버 오디오클립 문화 예술 분야 1위의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을 민음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방송에서 다 다루지 못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굵직한 범죄 사건 정보가 새로이 수록되었고 이수정 박사, 이다혜 기자, 그리고 방송 제작진들이 직접 밝힌 진행과 제작에 관한 방송 비화가 더해져 우리 사회의 약자 문제를 더욱 깊게 논의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범죄 영화를 분석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범죄 영화에 얼마나 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피해자로 소비되고 있는지, 지금 우리 주변의 소외된 사각지대가 어디인지를 주의 깊게 살피며 약자를 위해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을 함께 논의하게 만든다.

이 책은 '1장 왜 피해자가 집을 나가야 하는가-가장폭력, 2장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순응한다-비판 의식 결여, 3장 이 문제가 곧 내 문제일 수 있다는 연대 의식-성범죄, 4장 만만한 계급을 향해 화풀이하는 경향-계층 문제, 5장 결국 가장 중요한 의제 강간 연령-미성년자 보호'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여성이나 아동 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범죄 영화를 다루고 싶다며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에 참여한 이수정 박사의 이야기가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하는데 적합하다. 이 책은 가스등, 적과의 동침, 돌로레스 클레이번, 사바하, 컴플라이언스, 곡성, 미저리, 걸캅스, 살인의 추억, 기생충, 숨바꼭질, 조커, 범지 점프를 하다, 꿈의 제인이라는 영화와 믿을 수 없는 이야기, 팔려가는 소녀들라는 넷플릭스 프로그램에 대해 이수정 박사와 이다혜 기자가 영화의 이야기를 나누는 동시에 범죄를 흥미가 아닌 피해자인 약자의 관점에서 접근한 책으로 인상적이다.

이수정 박사는 타인의 심리를 조작해 지배력을 얻는 범죄인 가스라이팅을 소재로 한 영화 <가스등>에 관해 이야기하며 남녀 관계에서 어떤 의사를 결정할 때 그 결정이 내가 원하는 것이 맞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서 그 조작 대상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현상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이다. 그렇게 의심을 만든 자가 결국에는 그 대상에 대한 지배력을 얻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수정 박사는 선택의 순간에 혹시 상대의 의도대로 조종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묻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이수정 : 가스등 하나 내 마음대로 켤 수 없는 것, 남편에 의해 통제되고 순응하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나아가 결국 남편이 없으면 내 존재 자체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가부장제의 폐해입니다. 사소한 것이라고 정말 내가 이걸 해야 하는지, 원하는 것인지, 나의 복지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는 노력이 여자들에게 필요합니다."

이 책에서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사회 문화적 문제들을 다룬 영화 <걸캅스>에 관해 이수정 박사와 이다혜 기자라 이야기하는 글이 눈길을 끈다. 이수정 박사와 이다혜 기자는 성범죄에 관해 이야기할 때 피해자다움을 따지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관해 논의한다.

"이다혜 : 저는 성범죄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답답한 것 중 하나가 이른바 '그런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런'에는 '밤늦게 다닌' '술을 많이 마신' 등의 의미가 포함될 수 있겠죠. 범죄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입니다. 피해자가 불법 동영상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그렇게 됐느냐며 '왜'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왜 영상을 찍었느냐, 왜 그런 곳에 갔느냐, 왜 그 사람을 만났느냐는 식으로요. 피해자가 피해를 당할 만했다는 걸 입증하는 데 지나치게 공을 들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수정 : 결국은 재판에서도 '피해자다움'을 따지잖아요. 범죄 피해를 당하면 그 피해로 고통받으면서 피해자다워야 하는데, 당당하든가 울지 않는다든가 하면 피해자답지 않은 걸 보니 너의 책임도 일부 있는 것 아니냐, 가해자만 몰아붙이지 마라, 이런 논리로 빠져 버리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이수정 박사는 성범죄 피해자들의 남은 인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성범죄 피해자들이 변함없이 아침에 일어나고, 일을 하고, 저녁이면 쉬고, 그런 일상이 훨씬 중요하다는 이수정 박가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뿐만 아니라 이수정 박사는 여성들이 함께 생각하고, 공감대를 느끼고, 자매애를 형성하고, 상호 부조를 하여 옆에 있는 여성의 존재 자체가 부조가 된다면, 피해자들이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은 다양한 범죄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범죄의 피해자가 된 약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연대한다면 조금씩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전해주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이수정 :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돌아다니는 나의 화장실 영상이 발견되다 해서 내 인생이 그날로 멈추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용기를 갖고 무너지지 말고, 어떻게든 대응을 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어요. 얼마나 아름다울지 알 수 없는 미래의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범죄의 피해자라는 이유만으로 혼자서 위축되고, 사회를 등지고,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잖아요."

"저는 제가 여자가 아니었으면 이 바닥에서 이런 연구를 하며 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여자였기 때문에 피해자가 당한 고통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이 일을 깊게 해 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이십 년 후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당장은 쉽지 않고, 공포도 느끼고, 어려움도 있지만,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내 딸이 안전하게 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결심했던 것이 상당히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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