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 가족만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한 당신을 위한 생존 심리학
유드 세메리아 지음, 이선민 옮김 / 생각의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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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는 가족 생각만 하면 숨이 막히고 꼼짝 못 하겠다는 이들을 위한 생존 심리학이다. 의존적인 가족에게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이자 프랑스의 유명 임상심리학자 겸 심리치료사인 저자 유드 세메리아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해 왔으며, 실제 상담을 통해 비슷한 문제를 가진 성인과 그들 가족의 증언을 수집하고 분석해 왔다. 이를 통해 얻은 의존적 성인과 가족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문제적 가족이 그렇게 된 원인부터 문제를 계속해서 일으키는 그들의 심리적 배경, 그들로 인해 다른 가족들이 겪게 되는 고통, 그리고 괴로움으로 점철된 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과 다양한 심리치료법까지 이 책에 담아냈다.

이 책은 '1장 가족이라면 그래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2장 그들은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3장 내 탓일지도 모른다고 믿었습니다, 4장 그런 책임감은 나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5장 아픔에 이름 붙이기: 의존을 진단하다, 6장 오래된 상처 속에 머물러 있다면, 7장 자꾸만 여기 아닌 어딘가를 찾고 있다면, 8장 나 혼자 아무리 잘해도 그는 제자리인 이유, 9장 숨 쉴 만큼의 거리를 만들려면, 10장 나도 그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11장 나부터 구했을 때 시작되는 변화'라는 11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의존적 괴롭힘의 근본적인 장치는 부모화와 가족의 충성심이라는 두 가지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한다. 40여 년 동안 가족심리치료에서 사용된 임상 개념인 가족에 대한 충성심은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일종의 암묵적 약속이 존재함을 말해준다. 가족에 대한 충성심으로 인해 가족을 위해 기꺼이 마음을 쓰고, 시련에 빠진 가족을 지지하며, 가족이 겪는 불안을 달래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심지어 경우에 따라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일까지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자녀가 부모를 보살피는 현상인 '부모화'라고 부르는 개념은 의존적 괴롭힘의 상황 속에서 가장 중심적인 작용을 하는 개념이다. 충성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 개념은 자녀가 스스로 자기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한 책임을 짊어지려는 작용을 가리킨다. 즉, 원래는 부모나 어른들이 맡아야 할 책임을 짊어지려 한다는 것으로, 결국 부모화된 자녀는 대체로 어쩔 수 없이 '자기 부모의 부모'가 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저자는 가족에게서의 독립을 거부하는, 정서적 의존이 심한 성인은 자신이 형편없고 쓸모없고 무의미한 인생을 사는 것 같은 느낌에 괴로울 때가 많기 때문에 정서적 의존의 대가는 매우 크다고 말한다. 누군가와의 정서적 의존관계는 결국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한 개인으로서의 모습을 보다 잘 숨기고,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에서 생겨나는 불안감을 보다 쉽게 쫓아내기 위해, 의존성이 심한 성인은 어떤 의견이나 욕구, 개인적인 계획을 지니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이야기한다.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정서적 의존이 심한 어른은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게다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든지 간에 또다시 새로운 문젯거리를 만들어낸다. 의존적 관계에 매달리는 가족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당신이 곁에 가까이 있는 것이지,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당신이 다시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의존적 어른은 갈등 상황 속에 상당히 장점이 있음을 직관적으로 안다고 말한다. 바로 갈등 상황이 그 안에서 대립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단히 붙들어 매우 준다는 점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인간의 불안과 심리적 고통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마주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는 실존주의 심리학에 대해 소개하여 눈길을 끈다. 실존주의 심리치료는 1960년대 펼쳐진 휴머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특히 인간이 자신이 가진 개별성을 깊이 성찰하여,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며, 인생을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둔 사상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현재 처한 상황이 아무리 비참하고 절망적으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건 적절히 대응할 수 있고, 성숙하게 자신의 삶의 이유를 찾아 뜻깊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발전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과 비존재, 실존적 고립, 삶의 무의미성, 자유와 책임이라는 네 자기 근본적인 문제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인간의 심리적 발달 및 기능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인간은 이러한 문제들이 불가피하게 야기하는 불안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고 애쓰고, 우리는 심리학에서 '방어기제'라 부르는 것을 작동시킨다. 저자는 의존적 성인이 자신이 느끼는 실존적 불안을 부정하기 위해 취하는 주요 행동 성향 네 가지는 성장 거부, 자기 제거, 행동 거부, 분리 거부라고 이야기한다.

"의존적 어른은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의 의존적 관계를 좇으며, 자신이 느끼는 실존적 불안감을 부정하려 합니다. 다시 말해 스스로 독립된 인격체가 되고, 타인에게서 분리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또한, 자신을 특별히 눈에 띄도록 만드는 모든 것을 거부합니다. 개인적인 '나'보다 집단적인 '우리'를 선호하지요. 자신의 존재가 '모호해지는' 느낌이 커질수록, 자신의 존재와 관련해 받아들여야만 하는 불안감이 줄어드니까요."

"성장 거부 : "성장하면 안 돼요" 어른다운 외양과 태도를 거부한 채, 유아기에서 이어진 습관과 태도를 고수하며,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고, 부모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한다. 또한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상황을 참기 어려워한다.

자기 제거 : "내 존재를 뚜렷이 드려내면 안 돼요." 어떻게든 타인에게 지배를 받으려 애쓰고, 매사에 한발 뒤로 물러나 있으려 하며, 자기를 폄하하는 행동을 취한다. 내면의 공허함과 우울감에 괴로워한다.

행동 거부 : "행동하면 안 돼요." 어떤 일을 스스로 결정해 행동에 옮기는 일을 회피하고, 자신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며, 모든 일을 뒤로 미루려는 경향이 있다. 특정한 사건이나 생각을 끊임없이 다시 떠올리는 정신적 반추장애를 겪으며, 자해 행위를 한다.

분리 거부 : "헤어지면 안 돼요." 정서적 욕구불만과 주체하기 힘든 시기심에 고통받고, 타인에게 거절하기를 힘들어하며, 무조건 다른 사람의 말을 따른다. 이별을 거부하고, 애정과 우정을 혼동하며, 성욕과 성적 성향의 불안정성으로 괴로워한다."

저자는 의존적 어른은 물론, 조력자로 지목된 사람에 대한 치료의 목적은 정서적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책임져야함을 받아들여, 의존적인 자기방어에서 벗어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저자는 실존주의 치료 과정이 일반적인 관념들을 다루거나 이해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반드시 치료를 받는 내인의 내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존주의 치료요법에 있어 변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용감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라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환자 스스로가 치료를 위한 마음 단련법 실행에 온전히 책임을 질 뿐만 아니라, 자기 존재의 나약함을 온전히 품어내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은 죽음과 비존재, 실존적 고립, 삶의 무의미성, 자유와 책임이라는 실존적인 문제들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겁니다."

저자는 성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부모의 말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장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을 줄 아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하려면, 먼저 부모의 권위와 보호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의존적 어른은 평소에는 현실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가 많지만 망상에 빠져 있을 때만큼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또 막상 실제로 멀리 여행을 떠나려고 하거나 장소를 옮겨도 어김없이 지속해 있는 그 자리에서 도저히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저자는 이처럼 도망치려는 태도는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전한다. 저나는 오스트리아 정신분석가로서 프로이트의 초기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오토 랑크가 언급한 "삶에 대한 두려움이란 고립된 상태로 스스로 삶을 이끌어야 한다는 두려움, 분리-개별화에 대한 두려움, 어떤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리킨다."라는 내용을 이야기한다. 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소멸, 개별성 상실, 모든 사람짐에 대한 두려움'을 가리킨다.

"자발적으로 뒤로 물러서려는 그들의 의지가 은연중에 삶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지요. 이들은 마치 자신이 그곳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려고 애쓰며, 어떻게 해서든지 현실에 참여하 모든 기회를 회피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 있다 보면 당연히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겠지요."

저자는 의존적 어른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인생의 목표를 무엇으로 잡아야 하는지를 모른다고 말한다. 매사에 의욕도 없고, 심지어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금방 싫증을 낸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앞서 나가는 반면, 자신의 인생은 제자리에서 헛돌고 지지부진하다는 느낌을 가진다.

"의존적 어른은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자리를 침범하게 됩니다. 의존적 어른은 자신은 영원한 '손님'으로 머물며 기다림과 규칙, 특히 타인의 의지에 순응해야 할 것만 같아 느낍니다. 자발성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의 타인과 직접적인 관계 맺기는 항상 동일한 모습으로 전개됩니다. 불안함, 우유부단함, 만일에 대비해 이야깃거리와 취할 제스처를 미리 준비하기, 일을 그르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상대방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 수치심을 느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바로 그것이지요."

저자는 실존적 관점에서 보면 감정의 해상도를 높이는 전문 프로그램을 통해, 환자가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하게 하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책임을 지도록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치료적 관점에서 바라본 감정입자도 혹은 해상도 개념의 유용함은 강한 자아의식을 키우는데 있다고 이야기한다. 감각적 해상도가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알고, 따라서 관계도 능숙하게 조절할 줄 안다. 자신의 감정을 생각하고 섬세하게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있으면, 삶의 여러 가지 긍정적인 상황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저자는 대부분의 의존적 어른들은 스스로를 항상 에너지가 낮고, 어떤 일을 자발적인 행동으로 옮기거나 새로운 일에 뛰어들지 못하는 피곤한 모습으로 그려낸다고 말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세상과 자아에 영향을 주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의존적 어른은 이미 성장을 거부하고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드러내기를 거부하는 사람이기에, 실존적 불안와 마주하면 자신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일들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삶이 '잠시 멈추도록' 애쓴다. 모든 결정을 회피하고, 해야 할 일을 무조건 뒤로 미루며, 자신의 모든 자율성에 찬물을 끼얹는다.

저자는 의존적 어른이 자신의 가족들과 맺는 불완전한 관계는 그 대상이 주변인 중 상대적으로 낯선 사람들로 옮겨지면 훨씬 더 불완전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고 말한다. 의존적 어른이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기 어려워한다면, 이는 자기 자신과도 피상적으로 불완전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의존적 어른이 자기 자신을 되찾게 하기 위서는 자신을 그저 타인의 연장선상에 놓인 비개성적 존재가 아니라,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자신만의 다양한 특징들을 떠올리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느끼고 원하는지를 살펴보게 해야 한다. 저자는 의존적 어른이 겪고 있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스스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자신의 두려움과 제대로 맞선다는 것은 '충분히 의식을 연 채로, 자신이 취약한 부분을 느끼고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형상 어느 정도의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명확하고도 두려운 사실을 직시한다는 것이며, 끝으로 이 세상에 모든 시련을 완벽하게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음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결정하고 선택하기, 아니라고 과감히 말하기, 자기 의견을 주장하기, 실수와 실패를 무릅쓰기 등이지요. 고립에 대한 두려움도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맞설 수 있습니다. 식당에서 혼자 점심 혹은 저녁 먹기, 혼자 영화관 가기와 같은 일들을 과감하게 시도해보는 것이지요. 평범하고 소소해 보이는 이러한 여러 훈련을 시도해보기만 해도 즉시 치료효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는 의존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해답과 해결책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책으로 인상적이다. 각자가 이 세상에 처한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언제든지 끊임없이 그 상황을 변화시키고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실존주의 심리학의 철학을 전하는 저자의 마지막 글은 삶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깊은 삶의 통찰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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