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때마다 나는 우울해진다 - 식욕 뒤에 감춰진 여성의 상처와 욕망
애니타 존스턴 지음, 노진선 옮김 / 심플라이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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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먹을 때마다 나는 우울해진다>는 섭식장애로 고통받는 여성은 물론 몸무게, 몸매, 외모에 초연할 수 없는 여성들이 그동안 자신을 옭아매온 문제의 핵심을 깨닫고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이 아닌 개성과 욕망에 충실한 '나'로 살도록 돕는 책이다. 이 책에는 임상심리학 박사이자 섭식장애 치료 전문가인 저자 애니타 존스턴이 지난 40년간 섭식장애 치료에 활용해온 세계 각국의 신화, 전설 동화가 담겨있다. 저자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에게 현상 이면에 감춰진 숨은 진실을 포착해내는 지혜와 통찰력을 전수한다.

"이 책은 자신의 섭식 장애를 과감히 다른 시각에서 봄으로써 비전과 힘을 되찾고 싶어 하는 여성들을 위한 것이다. 내가 치료에 활용했던 옛 신화와 전설, 동화도 실려 있는데, 여러 세대에 걸친 많은 여성이 이 이야기를 통해 내면의 진실을 발견했다.

과감히 잠재력을 떨치고 내면에 있는 현명한 존재의 말에 귀 기울이는 여성들에게, 진실을 소리 내어 말하고 이 세상이 치유되도록 힘쓰는 용감한 여성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저자는 여성들 사이에 급속도로 번지는 섭식 장애는 분명 우리 사회와 내면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불균형을 이룬 결과라고 말한다. 저자는 많은 여성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성성을 억압할 뿐 아니라 자기 내면의 여성성을 거부하면서 절망과 소회감을 경험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섭식 장애에서 벗어나려는 여성이 제일 먼저 거쳐야 하는 과정은 진정한 자아상을 재정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섭식 장애는 그 사람이 어딘가 고쳐야 할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증거가 아니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자신을 물론 주위 세상을 향해 나는 결함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전한다.

"섭식 장애에서 벗어나려면 그것이 한때는 내가 살아남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단순히 살아남는 것만이 아닌, 인생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나아가 더 큰 번영을 누리게 해주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이제는 생존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다. 풍요롭고 보람찬 인생을 사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저자는 음식, 몸무게,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사람은 섭식 장애를 핑계 삼아 자신이 고심하는 인생의 진짜 문제들을 외면한다고 말한다. 살찌는 게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그리고 살찐 몸과 씨름하는 것이 고통스러울수록 뚱뚱한 몸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가 구체화되고, 해답이 없어 보이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정의되는 듯하다. 저자는 섭식 장애에서 얻는 위안은 일시적이며, 감정적 스트레스를 아주 잠깐만 외면하게 해줄 뿐 스트레스 자체는 조금도 해소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음식에 매달리면 슬픔, 분노, 두려움을 잊을지는 몰라도 문제 자체를 해결하지는 못하며, 오히려 문제가 악화될 뿐이다.

"진짜 문제는 음식이 아니다. 음식은 연막에 불과하다. 영어에서는 이를 '레드 헤링(red herring)'이라고 한다.

레드 헤링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다른 대상으로 주의를 돌리는 장치를 말한다.(...)

섭식 장애의 경우에도 음식은 레드 헤링일 뿐이다. 그것은 섭식 장애에 시달리는 본인은 물론 걱정하는 가족과 친구, 심리어는 도움을 주려는 전문가까지 혼동하게 만든다. 섭식 태도에만 중점을 두면 진범은 누구인지 볼 수 없고, 환영에 사로잡혀 회복의 여정에서 벗어나 헤매게 된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굶기면 우리의 머릿 속에는 오로지 음식 생각밖에 없다.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면 폭식을 계획하고 구토할 시간과 장소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강박적으로 먹다 보면 음식, 음식, 음식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리하며 집과 학교, 직장, 대인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는 마술처럼 사라진다."

저자는 모든 중독 과정은 감정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상징하며, 더 나아가 인생 자체의 흐름까지 통제하려는 노력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중독에 빠지면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감정에도, 친구와 연인에게도 혹은 관심을 끄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과 함께하는 순간에도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다. 대신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칼로리를 섭취했는지 고민한다. 그렇게 현재에 있지 못하고, 의식을 미래로 밀어 넣으며 눈앞에서 펼쳐지는 인생을 놓쳐버린다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같은 중독이라고 해도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과 달리 섭식 장애는 일종의 '과정' 중독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먹는데 중독된 사람은 감정와 영혼의 허기를 느끼는 사람이다.

"섭식이나 다이어트에 중독된 여성들은 자기 몸을 두려워한다. 자기 몸을 사랑하지 않으며 방치하려고 애쓴다. 자신의 감정이 담겨 있는 곳이 바로 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과 접촉한다는 것은 감정과 접촉한다는 뜻이고, 이는 혼란스러우면서도 고통스럽다. 감정은 생각과 달리 쉽게 정리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행동과 달리 통제하기 불가능하다."

"섭식 장애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음식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 강박적으로 먹게 만드는 충동 이면에 존재하는 진짜 허기의 정체를 찾아내야 한다. 섭식 장애는 우리의 진정한 욕구와 간절한 바람을 단지 그것의 상징인 식탐으로 가려버린다. 먹는 데 중독되는 때야말로 우리가 진정 무엇에 허기를 느끼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진정한 허기가 상징적인 형태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어떤 음식을 끊어버리거나 먹지 못하도록 굶기만 해서는 상징 뒤에 숨은 진정한 의미를 배울 기회를 스스로에게서 박탈하는 셈이 된다."

저자는 섭식 장애에 시달리는 여성은 일반 사람들에 비해 감정을 더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몸을 불신하고, 몸의 가장 친밀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감정의 언어를 무시한다. 하지만 저자는 감정을 억누른 채 통제권을 잃을까 봐 노심초사하면 인생의 중심이 삶의 즐거움이 아닌 음식으로 이동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생명의 흐름처럼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아이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고, 먹는 데 매달리고, 굶고, 음식과 몸무계에 집착하고 혹은 갑자기 뚱뚱해진 기분이 드는 원인은 감정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는 데 있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아이들은 감정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는 데 훨씬 능숙하다. 자지러지게 웃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악을 쓰며 화내는 일이 아이들에게는 별로 어렵지 않다. 그들은 아직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불신하지 않으며, 남에게 잘 보이려는 데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다. 그들의 감정은 전혀 방해받지 않는다. 한참 슬퍼파고 화를 내다가도 어느새 금방 행복감에 젖어 깔깔거리는 일이 다반사이다."

"섭식 장애에서 벗어나려면 감정과 친근한 관계를 맺고, 판단이 아닌 호기심으로 감정에 반응하고, 감정이 주는 선물을 받아야 한다."

저자는 섭식 장애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아무리 강요할지라도, 내 목소리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 침묵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날 버리거나 가두는 사람들과는 단호히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말한다. 늘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에서 벗어나 부당하게 느껴지는 일에 거절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섭식 장애의 뿌리가 무력감이 아니라 힘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내 감정(특히 분노)이 지닌 힘에 대한 두려움, 내 지각이 지닌 힘에 대한 두려움(특히 내가 남들과 상황을 다르게 볼 때), 내 지성과 재능에 대한 두려움(특히 남들이 질투할 때), 내 성적 매력에 대한 두려움(이로 인해 남자들이 접급하고 그걸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를 때), 여자가 된다는 것이 지닌 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저자는 음식과 몸무게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생각과 감정, 욕망과 얽혀 있는 미궁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침내 자기 존재의 정중앙으로 빠져드는 길에 이른다고 말한다. 저자는 완전히 회복되려면 자기 존재의 깊은 곳으로 기꺼이 하강할 수 있는 의지, 어둠 속에 버려둔 자신의 어두운 측면들과 대면할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가장 깊고 어두운 부분으로 들어갈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동안 의절하려고 했던 고통과 괴로움을 만나게 된다. 가부장적인 우리 문화는 고통을 꾹 참고, 보이지 않도록 묻어두라고 요구한다. 가슴에 느껴지는 고통을 쏟아낼라치면 '자기 연민'에 빠져 있다는 이유로 재차 꾸지람을 듣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고통을 부인하고, 그저 모든 것이 '괜찮다'라고 말한다. 온전함을 향해 가는 이 여정에서 자신의 중심을 찾아가다 보면 가장 깊이 묻어둔 고통과 마주친다. 버림받고 소외당한 고통, 스스로가 초라하고 무능력하게 느껴지는 고통, 이루지 못한 꿈과 놓쳐버린 기회에 따른 고통, 신체적 또는 감정적 학대로 인한 고통,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또는 결혼에 실패해서 생긴 고통, 여성성을 존중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데서 오는 고통."

"결국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은 나 자신과 내 감정을 바라보고, 이해와 인정을 바라는 내 요구를 직시할 수 있는 능력, 즉 공감이다. 고통을 천천히 헤쳐나가며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자신의 고통과 '함께하는' 능력 덕분이다. 이런 공감에 힘입어 우리는 자신이나 남을 비난하지 않고 또한 자신의 상처를 부인하지 않고도 자신의 성장 과정과 섭식 장애 간의 연결 고리를 차악할 수 있다."

저자는 자기표현은 섭식 장애에서 해방되기 위해 여성들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고 말한다. 자기표현을 시작한 여성은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다루는 새로운 방법을 터득해나간다. 저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법을 배우면서 자신의 감정적 허기를 적절한 방법으로 규명하고 찾아내서 채워주며, 결과적으로 음식에만 매달리는 일이 적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히 직접적으로 표현할 때 그녀의 자긍심과 자신감은 올라간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중요하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자기 가치가 높아질수록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 굶거나 과식하는 경향도 당연히 줄어든다."

행복은 이상적인 몸무게를 정할 때처럼 마음먹고 성취해낼 수 있는 목표가 아니며, 자신에게 진실하고, 자기 삶의 여정을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나의 진정한 생각, 감정, 욕구를 찾아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만이 섭식 장애에서 벗어나 진짜 나의 삶을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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