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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9.12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샘터 12월호에는 '이 여자가 사는 법' 코너에 그림을 통해 자아를 찾는 가수 솔비로 알려진 '권지안'에 관한 글이 실려 인상적이다. 권지안은 전 세계의 현대미술가 30명만 초청하는 미술제인 '뉘블랑쉬 파리'에 한국 작가 중 유일하게 초청받았으며 2012년 화가로 데뷔한 이래 네 번의 개인전을 열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져왔다.
"제가 펼치는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많은 분들이 큰 흥미를 가져주시는 것 같아 기뻐요. 나를 하나의 타이틀로만 정의내리지 말고 가수 솔비와 화가 권지안의 모습을 드러내자는 의도에서 셀프컬래버레이션이라는 저만의 작업 방식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거든요."
여성의 상처를 표현한 <레드>, <계급사회의 위선을 꼬집은 <블루>, 사랑에 대한 고찰을 담은 <바이올렛> 등 '컬러시리즈'라는 프로젝트명 아래 완성한 그녀의 작품들은 음악과 미술의 경계에서 탄생한 꽃들이었으며, 권지안은 기본적인 미술도구마저 생각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데 불필요한 요소라 여겨 팔레트와 붓을 사용하지 않고 손과 발, 옷에 물감을 묻혀 오로지 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파격적인 발상을 고안했다.
"붓을 들거나 팔레트에서 색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왜곡을 낳을 거라 생각했어요. 캔버스에서 물감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독특한 색을이 저의 색깔이고, 혼신을 다한 제 몸짓이 그대로 기록돼야 저만의 작품이 완성되죠. 진정성 있는 그림을 그리는 데 제가 갖고 있는 온도와 에너지만큼 이상적인 재료를 아직 찾지 못했어요."
권지안은 "그림을 공부하면서 생각해보니 자유, 고독, 사랑 등 작가들이 저마다 고민하는 삶의 키워드는 서로 비슷한데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더라고요.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죠. 그러고 나니까 저를 한 단어로 정의내릴 필요도, 누군가의 특정한 시선에 얽매일 필요도 없겠더라고요. 그러면서 제 자신을 사랑하게 됐어요."라고 말한다. 표현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할수록 독창적인 그림이 탄생하듯 저마다 삶의 방식을 폭넓게 탐구할 때 인생이란 예술품이 아름답게 완성되리라 믿는다는 권지안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샘터 12월호 '이달에 만난 사람' 코너에는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여명의 눈동자>를 비롯하여 50여 편의 작품을 써온 작가 김성종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김성종 작가는 국내 최초의 추리작가로 평가받는 김내성에 이어 50년 넘게 혈혈단신 한국 추리문학을 지켜오며 지금도 글 쓰는 일에 모든 열정을 쏟고 있다. 오직 쓰는 일이 삶의 전부인 작가 김성종, 글 쓰는 일로부터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는 그의 뜨거운 열정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몰두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돌아보면 참 열심히 써오긴 했어요. 오십 년 넘게 써온 글이 원고지로 따지면 10만 장이 넘습니다. 서른다섯 살 때 일제강점기부터 8.15 독립, 한국전쟁을 관통하는 대하소설 <여명의 눈동자>의 연재를 시작하기 전까지 소설로 밥 먹고 살 수 있으리란 건 기대도 못했는데 추리소설 작가가 나뿐이라 연재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고요. 돌이켜 보면 남들은 다 외면하는 추리소설을 고집했던 게 참 다행이었다 싶어요."
"자지가 좋아하는 분야가 있다면 의심하지 말고 인생을 건 승부를 걸어야 두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신념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에서 나옵니다. 주춤거리거나 회의가 느껴진다고 중간에 포기해버리면 그 다음 일엔 더 자신감이 없어지죠. 인생에는 신념으로 버텨내야 하는 일들이 있어요. 작가로 성공하려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틈날 때마다 써야 합니다. 삶이 또한 그런 겁니다. 지금은 외롭고 힘들겠지만 꿋꿋이 버티고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눈앞의 안개가 걷히는 날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