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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8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대표작이자 저자의 세 번째 장편소설인 <태고의 시간들>은 20세기 폴란드의 역사를 관통하며 탄생부터 성장, 결혼, 출산, 노화,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인생 여정을 따라간다.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역사의 비극을 경험한 여성들이 가상의 마을 태고에서 벌어진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시간의 속박을 느끼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견디는 개, 죽음의 생이고, 부패의 생이며, 모든 죽은 것들의 생이자 시간을 느리게 흘러가도록 만드는 버섯균, 시간과 죽음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무의 시간을 통해 태고를 살아가는 인간의 시간과 다른 생을 살아가는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랄카라는 이름의 개는 단지 이곳에서 지금 이 순간을 견딜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고통 속에 시간을 묶어 놓고 과거 때문에 고통받고, 그 고통을 미래로 끌고 가기도 하며 절망을 창조한다. 동물들은 그 어떤 생각도 개입되지 않기 때문에 인간보다 더 순수한 감정을 지닌다. 뿐만 아니라 드문 경우에만 신을 체감하는 인간과는 달리 동물인 랄카는 유한한 시간의 속박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인지하며 세상에 대한 믿음을 내면에 품고 있다."
<태고의 시간들>에서 신이 창조한 천사는 게노베파의 딸 미시아의 탄생을 산파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인간은 세상으로부터, 사건으로부터 배움을 얻으며, 세상과 자기 자신에 관해 깨우치고, 사건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한계와 가능성을 가늠하고, 스스로에게 명분을 부여하지만 신이 창조한 천사는 오직 하나뿐민 감정인 연민을 가진채, 자기 자신을 통해서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지식을 깨우친다.
"천사는 마치 흐르는 물을 바라보듯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았다. 사건 자체에는 관심도 없었고, 흥미를 느끼지도 않았다. 어디서 비롯되었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시작과 끝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건들의 흐름을 보았다. 서로 유사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사건들, 시간상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한 사건들, 하나에서 또 하나로 이어지기도 하고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기도 한 사건들의 흐름 말이다. 그러나 이 또한 그에게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태고와 그 인근에 사는 냄새나고 더러운 사내들을 만난 크워스카는 태고 전체를, 이곳에 깃든 모든 고통과 희망을 제 것으로 소화해버린다. 하지만 크워스카는 자신이 낳은 아기가 생을 살아내지 못하는 광경을 목도하며 생명을 만들고 무로 사라지게 할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게노베파는 남편 미하우가 전쟁터에 나간 후에 유대인 청년 엘리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남편이 전쟁터에서 돌아오자 엘리가 미혼이며 유대인이자 예슈코틀레 출신이라는 이유로 엘리와의 관계에 선을 긋는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게노베파는 사랑했던 청년 엘리가 웅크린 채 죽어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그날부터 다시는 걷지 못한다.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광기에 사로잡힌 노파 플로렌티카의 여성으로서의 비극적인 삶을 보여주며 광기는 어느날 느닷없이 쌓여온 비극들이 합해져 특별한 이유로부터 벗어나 인간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노파 플로렌티카는 거리를 두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바라보는 고양이 개와 고양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깨우친다. 특히, 이 책에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가 술 취한 남자들에게 몸을 팔다가 숲속에서 홀로 아이를 낳고 치유와 예언의 능력을 갖게 된 크워스카가 광기에 사로잡힌 노파 플로렌티카라는 사회로부터 소외받은 여성들의 연대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광기란 어떤 대단하고 극적인 사건이나 감당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는다. 가령 실연을 당했다든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든지, 아니면 신의 얼굴을 보았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원인으로 인해 당사자가 미쳐가는 것이라 여긴다. 느닷없이 단번에, 어떤 특별한 이유로 인해 광기가 엄습하여 마치 올가미처럼 이성에 족쇄를 채우고 감정을 뒤흔들어놓는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블로렌틴카는 별다른 사유도 없이 광기에 사로잡혔고, 이유없이 미쳐버렸다. 한때 그녀에게도 광기의 원인이 될 만한 일들이 있었다. 술 취한 남편이 백강에서 익사했을 때, 아홉 자녀 중 일곱을 잃었을 때, 유산에 유산을 거듭했을 때, 유산하지 않은 아이를 지웠을 때, 두 번은 유산의 위헙으로부터 가까스로 아이를 지켰을 때, 헛간이 모조리 불탔을 때, 그녀에게 남은 두 아이가 그녀를 버리고 세상 어딘다고 사라졌을 때 말이다."
성에서 태어난 상속자 포피엘스키는 나는 어디에서 온 것이며, 뭔가를 안다는 건 무슨 의미이며, 인간은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세 가지 질문을 랍비에게 던지고 랍비는 마지막 질문인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요? 시간의 목적은 무엇일까요?"라는 물음으로 답한다. 포피엘스키는 라틴어로 '이그니스 파투스. 한 명의 게이머를 위한 유익한 게임'이라는 제목이 적힌 오래되고 기이한 책자 한 권을 선물받는다. 올가 토카르추크 작가는 ''이그니스 파투스. 한 명의 게이머를 위한 유익한 게임'이라는 책자의 이야기를 8단계로 보여주며 신과 인간의 통찰을 담아낸다.
"신에게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 신은 자신이 세상 속에 가두어 놓고, 시간의 굴레에 얽매여놓은 인간들처럼 죽어버리고 싶었다. 이따금 인간의 영혼은 만물을 꿰뚫어 보는 신의 시야에서 감쪽같이 벗어나서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그럴 때면 신의 갈망은 더욱 강렬해졌다. 자신 말고도 절대 불변의 질서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질서로 인해 변화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모형으로 결합된다는 사실을 신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조차 아우르는 그 질서 안에서 시간에 의해 흩어져버리는 순간적인 모든 것들이 마침내 시간의 너머에서 일제히, 그리고 영원히 존재하기 시작한다."
풍요를 허락한 숲에서 벗어나 태고 마을을 동경한 크워스카의 딸 루타는 기형의 모습을 한 미시아의 아들 이지도르를 발견하고 교감을 나눈다. 루타는 이지도르에게 모든 게 끝나는 태고의 경계를 보여주며 가장 두려운 것은 태고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의 눈에는 그저 모든 게 그런 것처럼 보였을 뿐이야. 여행을 떠나 이 경계에 다다르는 순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거지. 그들은 아마도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더 가면 키엘체나 러시아가 있을 거라는 꿈을 꾸고 있을 거야. 한번은 엄마가 화석처럼 굳어 있는 사람들을 내게 보여준 적도 있어. 그 사람들은 키엘체로 가는 길 위에 서 있었지. 눈을 뜬 채, 꿈쩍도 하지 않았어. 끔찍해 보였지. 다들 죽은 사람들 같았어.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깨어나서 꿈을 기억으로 받아들이고는 집으로 들어가는 거야. 전부 이런 식인 거지."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삶의 부조리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안내하여 흥미롭다. 신은 술 취한 남자들에게 몸을 팔다가 숲속에서 홀로 아이를 낳고 치유와 예언의 능력을 갖게 된 크워스카를 기적의 모유로 가득차게 하며 그 모유로 병을 고친 사람들을 전쟁에서 모두 죽게 만드는 삶의 역설을 전한다.
"시간을 초월한 신이 시간과 시간의 변형된 형태 속에 현존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땐, 변화하고 움직이고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고 흔들리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주시하면 된다. 예를 들어 넘실대는 수평선이나 태양의 광환, 지진, 대육의 융기, 해빙, 빙산의 이동, 바다로 흐르는 강물, 움트는 새싹, 산을 조각하는 바람, 엄마의 배 속에 있는 태아의 생장, 눈가의 주름, 무덤 속 시신의 부패, 포도주의 숙성, 비가 온 뒤에 돋아나는 버섯과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책에서 작가 올가 올가 토카르추크가 노파 플로렌틴카를 향해 총을 쏜 독일군 쿠르트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과 함께 태고의 마을에 남고 싶었던 소원을 죽음으로 이루어준 신의 모습을 보여주어 눈길을 끈다.
"집 안에서 낯익은 얼굴의 노파가 뛰어나와 살아 있는 개들을 도망치게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쿠르트는 보았다. 노파는 상처 입은 개들을 끌어안고서 허겁지겁 과수원으로 옮겼다. 그녀의 회색빛 앞치마가 피로 붉게 물들었다. 노파는 쿠르트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소리를 질렀다. 지휘관으로서 그는 이 어이없는 총격을 멈추게 해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쿠르트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세상의 종말을 목격하는 증인이며, 세상을 죄와 부패로부터 깨끗하게 만드는 사명을 수행하는 천사들 가운데 하나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뭔가를 끝내고 새롭게 시작하도록 해야만 했다. 끔찍한 일이지만, 그래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지금 이 세상은 죽음을 선고받았다. 그러니 무엇으로도 돌이킬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신은 보이지 않지만 하늘 아래 어딘가에 있다고 믿었던 이지도르는 러시아 장교 이반 무크타의 이야기를 통해 신이 없다고 상상한다. 이지도르는 인간은 고통과 절망을 경험할 뿐이며, 세상의 겉은 알록달록한 껍데기에 싸여 있지만, 모든 것을 몰락과 부패, 파멸 속으로 융합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과 단절되어 신에게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수도원으로 향한 이지도르는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막상 찾아내려 하면 그 어디에도 없으며, 사랑과 기쁨이 넘쳤지만 때로는 잔인하고 위협적이기도 하며, 창조하고, 파괴하고, 아니면 창조한 대상이 스스로를 파괴하도록 만드는, 예측 불가능한 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네가 방금 말한 그곳, 그러니까 하늘 아래에 아예 신이 없다고 상상해보렴. 돌보고 지켜주는 그 누구도 없이 이 세상은 그저 하나의 거대한 혼돈 그 자체이거나, 아니면 좀 더 나쁘게 가정해서 그저 자극이나 충동으로 작동하는 기계, 그러니까 망가진 볏짚 절단기와 같은 거라고 생각해보는 거야......"
루타는 독일군과 러시아군의 경계선인 볼라로 가는 길에서 그들에게 강간을 당한 채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엄마인 크워스카에게 발견된다. 그 후 루타는 미시아의 아들 우클레야와 결혼하고, 남편의 폭력 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감정을 맛보기 위해 태고 마을의 경계선에 도착한다.
"루타는 술 취한 사내의 육중한 몸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잠시 후 비고스가 든 냄비가 방문에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찢어진 입술에서 피가 흘렀지만, 루타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서서 드레스를 입어보았다."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20세기 폴란드의 비극의 역사를 살아온 인물들의 죽음의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주어 인상적이다. 게노베파는 전쟁으로 죽은 이들의 행렬을 바라보며 그들을 응시하는, 흉터가 가득한, 검고 끔찍한 신의 얼굴을 보았고, 미시아는 뇌졸증으로 죽음을 맞기 전 한 달 동안 미시아는 줄곧 세상의 저편을 보았다. 미시아의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고비마다 모습을 드러냈던 수호천사가 거기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움직일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다는 뜻이다. 삶이란 결국 움직임이니까. 죽임을 당한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은 몸이다. 그리고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들의 시작과 끝은 몸 안에 있다."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인생처럼 평범하지만, 그 속에는 어둠과 슬픔이 깃들어 있다고 가족들은 확신했다. 세상은 인간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숨을 수 있는 껍데기를 찾아내서, 그 안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버텨내는 것이다."
아버지 파베우의 뜻에 따라 양로원에 들어간 이지도르는 노년기가 되면 만물을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혜안이 트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죽은 사람도, 산 사람도, 그 누구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이지도르는 망각의 힘으로 남은 삶을 견디며 서서히 죽어가다, 마침내 영원히 사라져버린다.
"이지도르는 잊어버리는 법을 터득했다. 망각은 그에게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생각보다 훨씬 쉬웠다. 그저 하루 동안 숲과 강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어머니를, 밤색으로 물든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며 기뻐하던 미시아를 떠올리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집을, 네 개의 창문이 있는 다락방을 하루 동안 잊어버리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이튿날이 되면, 영상들이 점점 흐릿해지고 서서히 바래져갔다."
미시아의 남편 파베우는 상속자 포피엘스키처럼 부를 쥔 채로 태어난 사람들을 열망하며, 자신이 가진 욕망이라는 위대한 힘을 멈추지 않는 인간이 되어 갔지만 결국 그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시간에 가까워진 파베우 앞에 너무 늦게 나타난 딸 아델카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고,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했다.
<태고의 시간>을 읽으면서, 20세기라는 태고의 역사 속에서 허무와 삶의 부조리를 경험한 인간들의 죽음과 다시 그 죽음을 기다리며 현재를 살아가게 될 후손의 미래를 그려본다. 잡을 수 없고 끊임없이 변하는 시간의 흐름은 신을 닮았고 인간은 죽음으로 향하는 유한한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 하지만 올가 토카르추크 작가는 고통과 절망이 반복되는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인간은 자신을 창조한 신의 갈망조차 아우르는 시간의 너머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불변의 질서를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