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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평점 :
2010년 제31회 일본 SF 대상을 수상한 소설 <펭귄 하이웨이>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유정천 가족> 등 교토를 배경으로 하는 독특한 세계관을 표현한 일본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의 새로운 판타지 소설로 인상적이다. 이 책은 이례적으로 교토가 아닌 이름 없는 교외의 주택가를 배경으로 삼아, 호기심 많은 소년이 정체불명의 펭귄 떼와 짝사랑 누나를 통해 세계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인 초등학교 4학년생 아오야마는 어제의 자신보다 훌륭해지기 위해 매일같이 연구에 매진하는 진지한 소년이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돌연 펭귄이 떼거리로 나타나고, 곧이어 증발하는 기이한 사건이 벌어진다. 아오야마는 우연히 '펭귄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목격하고, 치과 누나로부터 이 수수께끼를 해결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펭귄 하이웨이' 연구에 착수한다. 그런데 체스 판에서 박쥐가 피어오르고, 우산에서 망고가 열리고, 흰긴수염고래가 수로를 헤엄치고, 숲속에서 '바다'가 발견되는 등 사건이 꼬리를 물면서 평화롭던 마을은 판타지가 가득한 세계로 변한다.
"나는 침대 속에서 내가 이제 막 여울에서 태어난 생명체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사십억 년이나 먼 옛날에 바위 해변의 작은 물웅덩이에서 첫 생명이 홀로 태어나 물속을 흔들흔들 떠다녔다. 방금 태어난 생명은 아주 작았고, 그것이 크면서 점점 복잡해졌다. 어떤 생물은 멸종했고, 또 어떤 생물은 번영해서 지금 같은 세계가 되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인 초등학생 '아오야마'와 '우치다'가 죽음과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난 살아 있는 동안 여러 사건을 만날 거고, 그때마다 죽을지 살지 알 수 없어. 어떤 순간이든 그 어느 한쪽이겠지? 그때마다 세계는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뉘게 돼. 그래서 난, 나라는 존재는 언제나 반드시 이쪽의 내가 아직 살아 있는 세계에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다른 한쪽 세계에 있는 너는 죽은 거잖아? 그쪽 세계에 내가 있는 거라면, 난 우치다는 죽었다고 생각할 거야."
"너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난 반드시 살아 있어. 가지가 갈라질 때마다 난 이쪽의 사는 쪽으로, 계속 사는 쪽으로 나아갈 거야."
"어떻게 단언할 수 있어?"
"이 사실을 생각하는 나 자신은 반드시 살아 있으니까. 내가 죽어버린 쪽의 세계에서는 이런 걸 생각할 수 없어. 이미 세계는 끝난 거니까."
"하지만......"
"너의 세계에서는 나는 죽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네가 내가 죽는 걸 밖에서 봤기 때문이야.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니야. 난 이쪽 세계에 있어....... 알겠니?"
이 책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곳에도 세계의 끝은 존재하며 그것은 슬픈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인간을 성장하게 한다.
"나는 예전에 누나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면서 왜 누나의 얼굴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걸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여기에 있는 걸까. 왜 여기에 있는 나만이 여기에 있는 누나만을 특별히 생각하는 걸까. 왜 누나의 얼굴이며 뺨을 괴는 방식이며, 빛나는 머릿결이며, 내쉬는 한숨을 계속해서 보고 싶어지는 걸까. 태고의 바다에서 생명이 태어나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시간이 걸려서 인류가 나타나고, 그러고 나서 내가 태어났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가설을 세우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이론을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만이, 내가 진정으로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이 책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아오야마'가 누나를 그리워하며 세계의 끝으로 통하는 길은 펭귄 하이웨이라고 이야기하는 글이 인상적이다. 펭귄 떼와 짝사랑 누나를 만나면서 아오야마는 '탐험한 장소와 사람들, 눈으로 본 것들, 스스로 생각한 모든 것들'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하는 경험을 한 것이 아닐까?
"나는 세계의 끝을 향해 매우 따르게 달려갈 작정이다. 사람들이 도저히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빨리. 세계의 끝으로 통하는 길은 펭귄 하이웨이다. 그 길을 따라가면 다시 한 번 누나를 만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것은 가설이 아니다. 나의 신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