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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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 했어도>는 함정임 작가의 에세이이다. 작가 함정임은 이 책의 글들은 바닷가 서재에서 불안과 공포, 체념과 덧없음을 떨치며 추모의 마음으로 애도 일기를 쓰듯 건져 올린 하찮지만 고유한 삶의 편린들이라고 말한다. 생각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아도 마음으로 아는 일이고, 누군가의 손에 내 마른 손을 얹는 일이고, 누군가를 품고, 순리대로 떠나보내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이 책은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과 영화 속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고통을 나누고 위로하는 작가 함정임의 따뜻한 글을 만나볼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올 때가 있었고, 내가 누군가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았다.
뜨거운 것이 목울대까지 맺혀 올라와 혀끝에 매달릴 때마다 썼다. 쓰는 수밖에 없었다. 내 눈에 비친 '세상 풍경'을 짧게도 썼고, 조금 길게도 썼다. 길게는 매주 썼고, 조금 숨 돌려 격주로 썼다."

이 책은 '당신의 여름은 괜찮습니까, 검은 숲길을 걸어 한참을, 내 마른 손으로 너의 작은 손을 잡고, 사랑에 관한 긴 이야기'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설과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전하는 글들이 인상적이다. 이 책은 소설과 소설가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으로 흥미롭다. 전쟁이나 보릿고개의 극빈, 육친의 죽음, 테러 등과 같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외부에서 주어진 불가항력적인 사건들인 원체험을 써내려가는 것은 자기 안에 웅크리고 있는 상처받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보듬어 안아주는 행위와 같다.

"소설은 자기 안에 억눌린 자아에 귀를 기울이고, 숨을 터주는 것부터 출발한다. 차마 보여주기 부끄럽지만, 드러내놓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과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소설 쓰기의 본질이 구원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원의 마음으로 세상을 향할 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민의 대상이 된다. 나의 원체험 쓰기로부터 세상의 아픔에 가닿을 수 있다. 소설이란 때로 연민과 애도, 추모의 형식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소설가라는 족속은 세상의 사라져가는 모든 것을 끝까지 사랑하는 인간."

"소설은, 세간에서 쉽게 말하듯, 한갓 지어낸,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도스토옙스키와 발자크가 평생을 바친바, 소설은 인간을 이해하는 척도이자 진실을 향한 지난한 길이다."

"작가란 기억 또는 추억을 파먹고 사는 족속들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소설의 팔할, 아니 그 이상이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고, 지금이 순간에도 그들은 기억을 좇는 추억의 추적자, 기억을 찾고 있는 추억의 탐험가로 살아간다. 작가들이야말로 기억의 전문가들인 셈이다. 그렇게 된 연유는, 유년기에 정상적으로 누리지 못한 것들, 잃어버린 것들, 예외적으로 겪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저자가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통해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을 소개하여 인상적이다. <애도 일기>는 문학, 용기, 어머니, 죽음, 고통, 진실 등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가 사망한 다음 날부터 2년 동안 불규칙적으로 종이 귀퉁이에 생각난 것들을 메모한 기록으로, 그가 교통사고로 죽기까지 지속했던 것이, 유작으로 출간된 것이다. 함정임 작가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날 때면 <애도 일기>를꺼내보며 나누는 생각들은 문학이 삶에 존재하는 이유를 절실하게 펼쳐놓는다. 

"문학, 그것은 내게 이런 것이다: 프루스트가 병에 대해서, 용기에 대해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자신의 무거운 마음에 대해서, 또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서 쓴 글들, 그리고 고통이 없이는, 진실에 숨이 막히지 않고는, 그 글들을 읽어낼 수 없다는 것." -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 

"나는 지난 몇 년간 이 <애도 일기>를 책상 한 켠에 올려두고 살아왔다. 몇 년 전 봄에 세상을 떠난 엄마가 생각날 때면, 이 책의 표면을 어루만지기도 했고, 그러다가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은 얼마나 아프고, 감사하고, 달콤한 것인가. 나에게 셰르부르가 각별했던 것은 바르트를 향한 나의 연민이 그와 그의 엄마, 나와 나의 육친들과 동질의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문학의 출발이점이자 종착지이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작가의 삶이 작품 이상의 신비와 역동성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으며, 프란츠 카프카와 알베르 카뮈, 그리고 로맹 가리 등이 대표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작가 '로맹 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안데스산맥 발치의 남태평양 연안의 해변과 혁명의 격류를 경험한 은둔자의 체류지로서의 페루라는 현실이 투영되어 있다고 말한다. 작가의 삶의 배경을 제대로 알고 소설을 따라갈 때 우리는 작가가 창조한 새로운 세계의 울림에 동참할 수 있다.

"작가의 작품은 작가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유전적 환경과 후천적으로 처한 역사, 사회, 지리적 환경의 산물이다. 전자는 작가의 기질과 감각에 관계되고, 후자는 작가의 시대적인 정신과 세계관에 관계된다.세상에 던져진 한 편의 작품은 작가의 삶과 문학사의 유기적인 작용성에 탄생한다. 작품이 놓이는 자리, 곧 작품을 둘러싼 시대와 공간적 정황을 파악하는 것이 만남의 진정한 척도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작품을 썼는지 독자가 곧이곧대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작가의 의도대로 작품이 읽힐 수도 있고, 독자의 체험과 상상력에 따라 작가의 의도를 벗어나 확장될 수도 있다. 그러나 프란츠 카프카나 알베르 카뮈, 로맹 가리 같은 몇몇 이민자 출신의 작품은 이러한 정황 파악 여부에 따라 공명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저자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에 관해 이야기하여 흥미롭다. 나혜석은 소설과 시, 칼럼, 평론 등 글쓰기를 동시에 수행한 여성이였으며, 그녀가 세 아이를 낳은 어머니였고, 당시 이미 아이의 이름에 부계와 모계의 성씨를 명기한 남녀 평등주의자였다.

"21세기에 나혜석의 선구적인 의식과 영역이 역동적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작가란 시대의 부침과 세월의 풍파 작용을 거슬러 예리하고 단단한 빛을 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난이 모레티 감독의 <나의 어머니>는 창작자에게 어머니란 존재는 무엇인가, 그리고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현실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안겨주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어머니와 죽음의 문제는 창작자에게 창작의 동력인 원체험의 영역이며, 창작자들은 원체험의 내용을 여러 시기에 걸쳐 여러 작품으로 풀어내거나 대표작의 질료로 삼으면서 세상과 소통을 꾀하고, 나아가 불멸을 꿈꾼다고 이야기한다.

"난니 모레티의 영화 <나의어머니>는 제목 그대로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를 떠나보낸 이야기를 영화화한것이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와 딸, 아들의 구도에서 감독이 아들의 역할을 맡아 연기하면서 삶과 죽음의 흐름을 잡아나간다. 세상 어떤 창작품도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자전 영화' 또는 '자전 소설'이라는 범주가 가능한데, 몇 가지 경우에서 그러하다. 외적인 요인으로 에디터의 요청이 있는 경우, 내적인 요인으로 생의 고비마다 작가 자신의 역사를 진솔하게 그리는 경우, 마지막으로 작가가 창작방법론으로 자전적인 내용과 형식에 초점을 두고 모든 작품을 창작하는 경우이다. 이때 자전적인 내용의 수위 조절은 작가의 의도와 기법에 따라 다르다. 작품을 읽고 작가가 처한 삶의 한 대목을 미루어 짐작할 만큼 정서적으로 현실을 그리는 경우와 여느 소설과 마찬가지로 능청스럽게 허구성을장치하는 경우이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 했어도>는 소설가 함정임의 글을 통해 문학이 전해주는 따뜻한 치유의 목소리를 만나볼 수 있는 에세이로 인상적이다. 함정임 작가는 다양한 소설가들의 작품을 이야기하며 문학이 우리에게 구원이 되며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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