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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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인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의 소설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는 이스라엘의 도시 네타니아에 위치한 작은 클럽에 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도발레'가 쉰일곱살 생일무대에 오르는 장면을 시작으로 유머와 비극이 공존하는 삶의 이야기를 건네는 작품이다이 책에서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은 이스라엘의 현실을 거침없는 언어와 풍자를 곁들여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하며 독자의 심장과 머리를 동시에 뒤흔든다.

 

생일은 당신들도 알다시피 영혼을 탐색하는 날이야, 적어도 영혼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이야. 그런데 우리끼리 얘기지만, 현재 나의 상태에서, 나는 영혼을 유지할 자원이 없어.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영혼은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정비해줄 것을 요구하잖아, 안 그래? 절대 끝나지를 않아! 매일, 하루종일, 영혼을 끌고 들어와 손을 봐줘야 해.”

 

스탠디업 코미디언 '도발레'는 자신의 어린 시절 친구였던 은퇴한 판사 '아비샤이'를 자신의 무대에 초대하고, '아비샤이'에게 "자신을 봐주고그것을 말해주는 것", 단 한 가지를 바랬다. 이 책에서 아비샤이도발레의 이야기를 듣는 청중이라는 관찰자 역할로 등장하여 도발레라는 인물이 공유한 삶의 파편들을 함께 기억하는 과정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전립선 암이라는 병이 든 도발레가 여읜 몸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의 비극적인 진실을 알리는 모습은 '아비샤이가 은퇴 후 삼 년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위로를 받았던 순간이었다. ’도발레'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스런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읽어내려가 줄 인물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윽고 숨죽여 킥킥대는 소리들. 그는 거대한 가구 안에 들어가 있는 꼬마처럼 보인다. 몇 사람이 큰 소리로 웃지 않으려고, 그의 눈길을 피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보인다. 마치 그가 혼자서 풀고 있는 어떤 복잡한 계산에 자기들도 얽혀들까봐 걱정하는 것처럼. 아마 그들도, 나처럼, 이미 원래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그 계산에, 사람 자체에 말려들었다고 느낄 것이다.” 

 

"나는 듣고 싶어네가 동의한다면아비샤이 바로 너 같은 사람한테서 듣고 싶어이런 일을 하도록 훈련받은 사람그러니까평생 사람들을 보고 순식간에 그 사람들을 읽어내고사람들 뿌리까지 쑥 내려가......"  

 

'도발레'는 어린 시절 남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아비샤이'에게 삶의 이야기라는 보물을 찾아준 친구였다하지만 현재 은퇴한 판사 '아비샤이'는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하던 시기가 오래된 인물이었다. '도발레'가 관객에게 그의 인생을 관통한 중요한 삶의 이야기를 말하는 모습을 보고처음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비샤이 "저 사람이 이야기를 하게 하시요!"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아비샤이'는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언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달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도발레'가 경험한 비극적인 과거 안에 자신도 함께 존재했음을 기억한다무대 위에 선 채로 삶을 고백하는 '도발레'의 모습은 '아비샤이'가 잊었던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그를 존재하게 만들어준다.

 

"그의 질문을 받다보니 나에게 진귀한 보물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인생 경험나의 삶이당시까지 여행그리고 아파트나 학교나 언어나 얼굴의 빈번한 변화로 이루어진 부담스러운 소용돌이로 견뎌왔던 그 삶이 사실은 엄청난 모험이었던 것이다.“

 

매번 헤어질 때마다 허공에서 맴도는 가능성이 있었지만 우리 둘 다 감히 그것을 입 밖에 소리 내어 말하지는 못했다. 마치 현실이 이 섬세하고 부서지기 쉬운 이야기를 다룰 방법을 알 거라고 아직 믿지 못하는 것처럼.”

 

아비샤이는 자신이 그를 오랜 시간 잊고 살았다는 것과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리는 것을 극구 피하다보면 과거의 거대한 부분이 천천히 무뎌지고 지워지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즉시 아이를 알아보았다. 아이들이 킬킬거리는 것으로 보아 내 얼굴에서 뭔가를 눈치챈 듯했다. 도발레는 아이들의 눈길을 따라 나를 보았다. 얼굴이 눈물로 축축했다. 그 만남은 우리의 깜냥을 넘어선 것이었으며,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대처 능력도 넘어선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네거티브필름이 되어버린 것 같았음에도, 둘이 완전히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그의 비명이 내 목구멍 안에 얼어붙어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외면하고, 걸어나갔다. 여전히 그 아이들이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도발레'에게는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뒤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지만 아들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도발레의 일상은 폭력으로 물들어갔고, 그는 폭력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물구나무를 서서 거꾸로 세상을 마주하며 걸었다.

 

그래, 아버지는 물구나무로 걷지 말라고 말했고, 그래서 그렇게 했어. 하지만 그때부터 생각하지 시작했어. 이제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나 자신을 구하지?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 내가 어떻게 해야 이런 직립성 때문에 죽지 않을 수 있느냐는 거야. 어떻게 살아 있을까? 그게 당시 내 마음이 움직이던 방식이야. 나는 늘 그런 불안이 있었지. 좋아, 아빠는 내가 다른 모든 사람처럼 걷는 걸 보고 싶다 이거지? 좋았어, 아빠가 원하는 대로 걸어주지. 늘 내 두 발로 서 있어주지, 착한 꼬마가 되어주지, 하지만 걸을 때 체스 규칙을 따르겠어, 알았어?”

 

도발레열 네 살에 군사캠프에 가게 되고, '장례식'에 가야 한다는 상관의 명령에 따라 운전병과 함께 트럭을 타고 고향으로 향하던 시간을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관객들에게 고백한다. '도발레'는 운전병과 함께 트럭에서 내리기까지의 시간은 인간의 삶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짐승 같아야 했던 순간들이라고 생각했다. '도발레'는 부모의 '장례식'에 조의를 표하러 가는 길이 아니라 '장례식'이라는 의식을 처단하는 주인공으로서 인간이 아닌짐승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죽음의 길목으로 향하는 중이었다운전병이 '도발레'에게 끊임없이 개그 이야기를 건넨 이유는 '도발레'가 저지르게 될 악행을 뿌리채 잊어버릴 수 있는 방어막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게 내 첫 장례식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나는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어디에서 그 사람이 갑자기 나타날지그 사람을 볼 수 있는 건지 아니면 뭔가에 덮여 있을지 알지 못했어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여기저기 서 있는 게 보였어무리마다 각기 다른 곳에나는 그 사람들이 뭘 기다리는지누가 책임자인지우리가 뭘해야 하는 건지 알지 못했어.” 

 

'도발레'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는 삶을 선택한 것은 '유머'라는 방어기제가 엄마를 죽음으로 이끈 홀로코스트의 가해자이가 피해자가 된 자신의 기억을 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역사라는 비극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홀로코스트'의 만행을 저지른 '도발레'의 곁을 지켜주지 못한 친구 '아비샤이'는 후회와 슬픔을 즉시하며 '도발레'가 건네는 이야기를 끝까지 관람한다. ‘도발레는 한 사람에게 일어난 일과 그 사람에게서 잘못되고 뒤틀린 것들 너머에 놓인 것을 판단하는 판사로 일했던 고유한 내적인 빛을 지닌 아비샤이에게 자신이 온몸으로 경험한 역사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끔찍한 일을 당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정의를 바라볼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고통스런 기억을 잊고 싶었던 도발레는 한 인간으로서의 엄마의 존재를 기억한다. ‘도발레가 삶이 건네는 모순과도 같은 감정인 웃음과 슬픔이 뒤섞인채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인간에게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로 엄마가 느껴지는 순간이 몇 번 있었어...... 그러니까단지 나의 엄마로서만이 아니라한 인간으로서여기 이 세상에 있었던 한 인간아빠는 엄마가 가고 난 뒤에도 거의 삼십 년을 버텼지알아마지막 몇 년은 내가 돌봐드렸어그래도 아빠는 집에서 죽었어내가 옆에 있을 때."

 

<말 한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코미디'로 풍자하며 고통스런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들을 전하는 작품이 아닐까? ‘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행위는 ''의 진실을 ''와 함께 공유하고 ‘ ‘의 삶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건네는 치유의 순간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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