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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우리는 가끔 아름다운 사랑을 떠올리는 책의 제목을 발견하고 경이로운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책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에서는 첫사랑과 낙원이라는 황홀한 제목이 부여하는 감정을 상기할 수 없을 정도로 독자의 상상을 깨부수며 뒤흔든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의 작가 린이한은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했고 2009년 대입자격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은 인물이다. 린이한은 세 번의 자살 지도 뒤에 2012년 대만정치대학 중문과에 다시 입학했지만 3년 후 또 다시 우울증이 악화되어 휴학했다. 2017년 2월 스물여섯 살의 나이로 발표한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지만 그로부터 두 달 뒤인 4월 27일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 작가의 부모는 주인공 팡쓰치가 열세 살부터 유명 문학 강사에게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설의 내용이 작가의 실제 이야기에 바탕했다고 밝혔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에 등장인물인 팡쓰치와 류이팅은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함께한 영혼의 쌍둥이이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이팅은 어느 날, 낯선 산 근처의 파출소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그곳으로 찾아간다. 그곳에는 정신 나간 표정으로 콧물과 침을 흘리는 쓰치가 있었다. 경찰은 산에서 쓰치를 발견했다고 했다. 소설은 쓰치의 일기를 통해 이팅이 지난 5년 동안을 재구성하면서 시작된다.
팡쓰치는 열 세 살이라는 나이에 문학 강사인 '리궈화'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아름다운 사춘기를 시작해야 할 나이에 팡쓰치는 '리궈화'로 인해 비뚤어진 사랑을 배운다. 리궈화는 팡쓰치의 몸 안에서 그녀를 조종하며 죄책감 없이 쾌락을 즐긴다. 팡쓰치는 자기 혼자서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영영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진실은 무엇이고, 거짓은 무엇일까? 진실과 거짓은 상대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세상에 절대적인 거짓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녀는 찢겼고 휘저어 뭉개졌으며 찔려 죽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녀도 선생님을 사랑한다면 그건 사랑이 된다. 그녀에게는 다른 미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과거 자신의 위조품이다. 애초에 진품이 없는 위조품. 분노의 오언절구는 영원히 늘여 쓸 수가 있다. 쓰고 또 쓰고 천 글자를 써도 끝나지 않는, 애절하고 장엄한 시가 될 수 있다."
"중학교 1학년 스스의 날 이후 그녀는 조금도 자라지 않았다. 리궈화가 자라지 못하게 그녀의 몸을 짓눌렀다. 인생에 대한 의욕, 삶에 대한 열정, 둥그렇게 뜨고 있던 커다란 눈, 아니면 그 무엇이든, 누군가 밑에서부터 그녀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와 모든 걸 비틀어놓았다."
소녀였던 팡쓰치에게 문학 선생님이라는 권력으로 시작된 리궈화의 달콤한 말과 성폭행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눈 뜨지 못하게 할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팡쓰치는 생존하기 위해 자신을 좋아해야 했고, 선생님을 사랑한다고 믿어야 했고, 다시는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에게 화가 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녀 자신에게 화가 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우울함은 거울이고, 분노는 창이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야 했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해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사나웠더라면 이토록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편인 첸이웨이에게 폭행을 당하며 살아가는 이웃집 언니 이원은 팡쓰치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는 것을 예감하지만, 팡쓰치를 구원하지 못한다. 이 책에서 괴물 같은 몸 속의 상처라는 같은 고민을 지닌 이원과 팡쓰치가 교감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리얼리즘에서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사랑스럽기 때문이고 누군가 죽는다면 그가 죽을 짓을 했기 때문이야. 악인이 있으면 작가는 그를 탑에 가두고 불을 질러서 뛰어내려 죽게 만들지. 그러나 현실은 달라. 인생은 그런 게 아니야. 나는 책에서 세상의 아픔과 불행을 배워지만, 현실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엄습할 때 책을 펼치고 논문을 써서 반박하지 못했어. 내 몸의 반쪽을 책 속에 끼운 채 안으로 파고들어 숨어버릴지 훌훌 도망쳐 나올지 갈피를 잡이 못했어. 나는 열여덟 살의 내가 싫어하던 어른이 된 것 같아. 하지만 너희는 늦지 않았어. 아직 기회가 있어. 또 너희는 나보다 지혜로워. 정말이야. 넌 아직 늦지 않았어."
팡쓰치는 잠을 자지 못하고, 악몽을 꾸며,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영혼을 나누었던 친구 팡쓰치와 이팅이였지만 둘의 인생은 다가설 수 없는 평행선처럼 다른 선로를 우회한다.
"쓰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자신의 피부와 점막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랐다. 머릿속 기억은 묻어버릴 수 있지만 몸의 기억은 그럴 수가 없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은 여전히 일자 두 개였다. 옆자리와 시험지를 바꾸어 채점했다. 이팅의 시험지에 계속 동그라미를 쳤다. 채점이 끝나고 돌려받은 쓰치의 시험지에도 모두 동그라미가 쳐 있었다. 똑같은 점수의 시험지, 하지만 두 시험지가 맞이한 인생은 완전히 달랐다."
리궈화는 팡쓰치를 열 세살의 시간 속에 버리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문학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치장하며 소녀들의 삶을 유린한 리궈화와 같은 어른들은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리궈화는 타이베이의 아파트 욕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내려다볼 때면 문득 팡쓰치가 떠오르곤 했다. 자신의 조심스럽지만 광적이고, 매력적이면서도 한껏 팽창된 자아가 통째로 쓰치 안으로 들어갔던 순간이 생각났다. 쓰치는 그에게 친친 휘감겨 유치한 단어들 속으로 내던져졌다. 그의 비밀, 그의 자아가 그녀의 입에서 나오지 못하고 그녀의 몸 안에 갇혀 있었다. 심지어 마지막까지도 그녀는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언어의 무게였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의 작가 린이한은 세상 그 어떤 팡쓰치든 소비되어버릴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작가 린이한이 고통스럽지만 매일 여덟 시간씩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팡쓰치에게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고통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단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외롭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정말로 쓰지 않을거에요.'라고 말했던 작가 린이한은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라는 소설을 완성했다. 린이한은 문학은 직접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고통을 공감하고 상처를 위로하며 영혼을 움직일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쓰치의 일기를 다 읽고 난 이팅은 예전의 이팅이 나이었다. 자기 영혼의 쌍둥이가 바로 아래층에서, 또 자기 옆에서 유린당하고 더럽혀지고 음식물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일기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달의 뒷면 같았다. 그녀는 이 세상의 곯아터진 상처가 이 세상 자체보다 크다는 걸 알았다."
이원은 이팅에게 세상 누구도 폭력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라고 말한다. 글의 힘은 폭력을 감내하는 것을 미덕으로 규정하지 않고, 분노를 표출하고 세상에 올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넌 아직 열여덟 살이야. 선택할 수 있어. 이 세상에 소녀를 강간하며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는 척 살 수 있어. 강간당한 소녀가 있다는 걸 모르는 척 살 수 있어. 쓰치라는 아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모르는 척 살 수 있어. 다른 누군가와 공갈젖꼭지와 피아노를 공유한 적 없고, 다른 누군가와 똑같은 취향과 생각을 가진 적이 없는 척 살 수 있어. 부르주아의 평화롭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어. 정신에 걸리는 암이 있다는 것도, 쇠 울타리 안에 정신암 말기 환자들을 모아둔 곳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척 살 수 있어. 이 세상에 마카롱과 핸드드립 커피, 수입산 문구만 있는 척 살 수 있어. 하지만 넌 쓰치가 경험했던 모든 고통을 겪고, 쓰치가 그 고통에 저항하기 위해 쥐어짜낸 모든 노력을 따라하 수도 있어. 너희가 태어나서 함께 지낸 시간들과 네가 쓰치의 일기에서 찾아낸 시간들을 모두 합쳐서 말이야. 넌 쓰치 대신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원에 다니고, 연애를 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해. 퇴학을 당할 수도 있고 이혼을 할 수도 있고 유산을 할 수도 있지. 하지만 쓰치는 그렇게 흔하디흔하고 시시하고 따분한 인생도 경험할 수가 없어. 알아듣겠니? 넌 쓰치의 생각, 감정, 느낌, 기억, 환상, 사랑, 미움, 공포, 방황, 불안, 따뜻한 정, 욕망을 모두 경험하고 기억해야 해. 쓰치의 고통을 단단히 끌어안으면 쓰치가 될 수 있어. 그런 다음에 쓰치를 대신에서 쓰치의 몫까지 사는 거야."
"고통스러운 경험은 말하기가 힘들다. 이 세상에 문학이 있어 다행이다"고 말했던 작가 린이한이 경험한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작가 자신의 오랜 고통의 시간을 읽어내려간 시간을 의미한 작품이었다.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통이 없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즐거운 낙원과 같은 첫사랑을 꿈꾸던 팡쓰치와 같은 소녀였던 작가 린이한이 세상 너머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하며 살아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