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3
진 웹스터 지음, 김지혁 그림, 김양미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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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리커버 에디션 세 번째 책으로 순수했던 옛사랑을 추억하게 하는 명작 <키다리 아저씨>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고전의 매력을 살린 새로운 표지와 판형의 리커버 에디션으로 인상적이다. <키다리 아저씨> 리커버 에디션은 사랑스러운 표지와 사랑에 빠진 주디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긴 그림이 눈길을 끈다.

<키다리 아저씨>의 작가 '진 웹스터'는 출판사 사장이었던 아버지 찰스 루더 웹스터와 작가 마크 트웨인의 조카인 어머니 애니 웹스터의 딸로 유명하다. 작가 진 웹스터는 경제학 연구와 사회과의 공부를 위해 교도소와 소년원, 고아원을 견학하며 가난하게 버려진 아이들의 실태를 알게 되며, 그 무렵에 <키다리 아저씨>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18살 소녀 '제루샤'는 고아원에서 자신을 후원해주는 키가 큰 남성의 뒷모습을 보고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른다. 고아원 원장 리펫은 '제루샤'의 후원자인 '존 스미스'라는 가명의 남성이 '제루샤'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편지를 써서 보내달라는 당부였다.

'제루샤'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자신의 대학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편지로 남긴다. 답장 없는 일방적인 편지이지만 고아원에서 자라난 '제루샤'에게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내는 마음을 담은 편지였다.

"하지만 최소한 키는 평생 변하지 않겠죠! 그래서 전 평의원님을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어요. 언짢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건 그냥 저 혼자 부르는 애칭이니까요. 그러니까 리펫 원장님께는 비밀로 하기로 해요.
이제 잠시 뒤면 열 시를 알리는 시계 종이 울릴 거예요. 이곳 생활은 종소리로 나눠진답니다. 우리는 시계 종소리에 맞춰 밥도 먹고, 잠도 자고, 공부도 해요. 생동감이 넘쳐 나죠. 온종일 소방차를 끄는 말이 된 기분이라니까요. 종이 울리네요! 불을 꺼야 해요. 안녕히 주무세요.
규칙 한 번 잘 지키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이게 다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 생활한 덕분이랍니다."


글쓰기에 대한 소질이 있는 '제루샤'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자신의 고아원 생활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고아원 출신'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전한다.

"제가 지닌 독특한 예술적 재능은 장작을 쌓아 두는 창고 문에 분필로 리펫 원장님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발달했답니다.
제가 자란 고아원을 나쁘게 이야기한다고 언짢아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결정권은 아저씨한테 있으니, 제가 너무 건방지게 군다 싶으면 언제든 후원을 중단하셔도 괜찮아요. 예의 바른 말이 아닌 건 알지만, 저한테 예절을 기대하시면 안 돼요. 고아원은 어린 숙녀들을 위한 교양 학교가 아니니까요.
아저씨도 아시겠지만, 대학 생활에서 힘든 건 공부가 아니에요.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지요. 친구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발도 못 알아듣겠어요. 저만 모르는 이야기를 가지고 농담을 하는 것 같아요. 전 그들의 언어를 이해 못하는 이방인이에요. 비참한 기분이랍니다. 전 평생 이런 기분으로 살아왔어요.
고등학교 때는 여자아이들이 몰려들어서 절 구경한 적도 있어요. 제가 희한하고 색다른 존재라는 걸 다들 알았던 거죠. '존 그리어 고아원'이라는 글자가 제 얼굴에 쓰여 있는 기분이었어요. 때로는 동정심 많은 아이들 몇몇이 다가와 몇 마디 건네는 경우도 있었죠. 전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미웠지만, 동정 어린 눈으로 절 바라보는 아이들이 가장 미웠어요.
여기선 제가 고아원 출신이라는 걸 아무도 몰라요. 샐리 맥브라이드한테만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떤 친절한 노신사 분이 대학에 보내 ㅈ셨다고 털어놨어요. 거기까진 엄연한 사시이니까요. 아저씨한테 겁쟁이 취급받는 건 싫지만, 전 정말이지 다른 아이들과 같아지고 싶거든요. 그런데 '고아원 출신'이라는 끔찍한 사실이 엄청난 걸림돌이 되고 있어요. 제가 그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다면 저도 다른 아이들처럼 괜찮은 여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전 정말로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보거든요. 아저씨 생각은 어떠세요?
그렇거나 말거나 샐리 맥브라이드는 제가 좋대요."

'제루샤'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대학에 와서 자신이 모르던 작가의 작품들을 읽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저는 <마더 구스>나 <데이비드 코퍼필드>, <아이반호>, <신데렐라>, <푸른 수염>, <로빈슨 크루소>, <제인 에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어본 적도 없고, 루디야드 키플링의 시도 한 번 들어 보지 못했어요. 헨리 8세가 한 번 이상 결혼한 거며, 셸리가 시인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였다는 것과 에덴동산이 아름다운 신화일 뿐이라는 사실도 몰랐어요. R.L.S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약자라는 것도, 조지 엘리엇이 여자라는 사실도 몰랐고요. <모나리자>라는 그림도 본 적이 없고, 셜록 홈즈에 대해서도 전혀 못 들어 봤어요.
이제는 이런 것들을 모두 알고 다른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됐지만, 아직 제가 따라잡아야 할 게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되시죠? 뭐, 그래도 재미있어요!"

'제루샤'가 고아로서 자신의 근본을 모르는 삶을 상상하는 이야기들이 눈길을 끌었다. 고아원에서 힘든 시간들을 견디며 살았던 '제루샤'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는 장면들을 읽으며 애잔한 감정이 느껴진다.

"자신의 근본을 모른다는 건 정말이지 말도 못하게 찜찜한 일이지만, 흥미롭고 낭만적인 면도 있답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잖아요. 어쩜 전 미국인이 아닐지도 몰라요. 미국인이 아닌 사람도 많으니까요. 고대 로마인의 직계 후손이거나 바이킹의 딸인지도 모르고, 러시아에 유배된 사람의 자식이라 시베리아 감독에 갇혀 있어야 될 몸인지도 모르죠. 아니면 집시였을까요. 전 아무래도 집시가 아닐까 싶네요. 아직 발휘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제가 떠돌이 기질이 상당하거든요.
혹시 제 인생의 부끄러운 오점에 대해 알고 계세요? 쿠키를 훔쳐 먹었다는 이유로 벌을 받고는 고아원을 도망쳤던 사건 말이에요. 평의원이라면 누구나 읽어 볼 수 있는 기록부에 적혀 있어요. 아저씨라면 어땠겠어요? 배고픈 아홉 살짜리 어린애를 식품 저장실에 혼자 남겨 두고 쿠키 단지 옆에서 나이프를 닦으라고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 뒤 갑자기 들이닥쳤을 때 아이 입가에 과자 부스러기가 묻어 있는 게 어쩜 당연한 일 아닌가요? 그런데도 아이 팔을 홱 낚아채서는 따귀를 때리고, 다 같이 모인 식사 시간에 후식으로 나온 푸딩을 도둑질을 해서 못 먹게 하는 거라고 다른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면 어떤 아이라도 도망치고 싶지 않을까요?
전 6킬로미터 정도밖에 달아나지 못했어요. 붙잡혀서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가야 했지요. 그리고 일주일 동안 다른 아이들이 나가 노는 시간에 못된 강아지처럼 뒷마당 말뚝에 묶여 있어야 했답니다.
이런! 예배 시간 종이 울리네요. 예배가 끝난 뒤에는 위원회 모임이 있어요. 이번엔 진짜 재미있는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죄송해요.
안녕히 계세요." 

"존 그리어 고아원에는 먹을거리, 입을거리가 부족하지 않았어요. 씻을 물도 충분했고 지하실엔 난로도 있었죠. 하지만 끔찍하리만치 똑같은 게 하나 있어요. 말할 수 없이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생활 말이에요. 일요일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걸 빼면 재미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죠. 그마저도 아주 가끔이고요. 고아원 생활을 하면서 제가 겪은 큰 사건은 딱 하나, 장작 보관 창고에 불이 났던 일이었죠. 우리는 고아원 건물에 불이 옮겨붙을 경우를 대비해 밤중에 일어나 옷을 입어야 했어요. 하지만 불은 옮겨붙지 않았고 우리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끔은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길 기대하죠. 그건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이기도 해요. 하지만 전 리펫 원장님이 저를 불러 존 스미스 씨란 분이 대학에 보내 주려 한다는 말씀을 하시기 전까진 한 번도 그런 일을 겪어 보지 못했어요. 그것도 원장님이 하도 찔끔찔끔 알려 주시는 바람에 제대로 충격을 먹지도 못했다니까요.
아저씨, 제 생각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상상력이 아닐까 싶어요. 상상력이 있어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래야 친절한 마음과 연민과 이해심을 가지게 되니까요. 상상력은 어린 시절부터 길러 줘야 해요. 하지만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는 상상력의 싹이 조금만 보여도 당장 짓밟아 버려요. 오로지 의무감만을 강요하지요. 전 아이들이 그런 단어의 뜻은 몰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의무감이란 불쾌하고 혐오스런 단어예요. 아이들은 무슨 일이든 스스로가 좋아서 해야 한다고요.
제가 원장이 될 고아원을 보실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제가 밤마다 잠들기 전에 즐겨 하는 놀이인데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음식과 옷, 공부와 오락 거리, 그리고 처벌 규정까지도요. 아주 착한 아이들도 가끔은 말썽을 피우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그 아이들은 행복할 거예요. 얼마나 힘든 성장기를 보냈든 간에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이를 갖게 된다면, 아무리 불행해져도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는 아무 걱정 없이 자라게 할 거예요."

'제루샤'가 세상의 다양한 기회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 인상적이다. '키다리 아저씨'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들을 전달하는 '제루샤'의 모습이 흥미롭다. '제루샤'는 고아원 생활이라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경험이라는 과거가 있었기에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제루샤'는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자란 사람들에게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다.

"오래전에 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마칠 짬이 없었어요.
스티븐슨의 생각이 정말 멋지지 않나요?

세상은 수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으니
사람은 누구나 왕처럼 행복해야 한다.

정말 그래요.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고, 가볼 곳도 많으니 자신에게 찾아오는 기회를 붙잡기만 하면 되는 거죠. 비결은 바로 유연한 사고예요. 특히나 시골에는 즐길 거리가 아주 많거든요. 어디나 걸어 다닐 수 있고, 어떤 풍경도 감상할 수 있고, 어느 개울에서든 물장구를 칠 수 있어요. 세금 한 푼 안 내고 제 땅인 양 마음껏 즐길 수 있답니다!"

"정작 중요한 건 엄청난 즐거움보다는 작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자세합니다. 전 행복해지는 진짜 비결을 알아냈어요. 바로 현재를 사는 거예요. 과거에 얽매여 평생을 후회하며 산다거나 미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최대의 행복을 찾아내는 거죠. 순간순간을 즐기고, 즐기는 동안은 제가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인식하 거예요. 사람들은 대부분 인생을 산다기보다는 경주하고 있을 뿐이에요. 지평선 멀리에 있는 목표에 도달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죠. 한창 헉헉대며 달려가느라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 풍경엔 눈길 한번 못 주고 말이에요.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늙고 지쳤으며 목표에 도달하고 안 하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전 위대한 작가가 못 되더라도 길가에 앉아 작은 행복을 쌓아 올리기로 마음먹었어요. 저만큼 쑥쑥 성장하는 여류 철학자를 보신 적이 있나요?"

'제루샤'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저비 도련님에도 편지를 쓴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제가 요즘 뭘 하는지 아세요. 아저씨? 못 말린다고 생각하실 테지만, 책을 쓰고 있답니다.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에요. 저비 도련님과 편집자의 말이 옳았어요.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쓸 때 가장 설득력이 있는 법이죠. 그래서 이번엔 제가 아는 이야기를 쓰고 있답니다. 지겹도록 잘 아는 이야기요. 바로 존 그리어 고아원이랍니다! 이번엔 진짜 잘 될 것 같아요. 매일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을 그렸거든요. 이제 전 사실주의자랍니다. 낭만주의는 포기했어요. 하지만 앞으로 여러 가지 모험을 경험하게 되면 꼭 다시 낭만주의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이 책 끝부분에 '키다리 아저씨'가 '저비' 도련님이라는 반전이 밝혀지며 '제루샤'의 순수한 첫사랑의 인물이 드러나는 장면이 흥미롭다.

"어둠 속에서 정신을 차리는 동안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은 '키다리 아저씨를 만나러 간다!'였지요. 부엌에서 촛불을 켜고 아침을 먹은 뒤 마차로 시월의 찬란한 새벽길을 달려 역으로 갔어요. 가는 동안 해가 떠오르면서 습지의 단풍나무와 층층나무가 진홍색과 오렌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돌담과 옥수수밭은 하얗게 내린 서리로 반짝거렸어요. 맑고 쨍한 공기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죠. 전 무슨 일이 일어나리란 걸 알았어요.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철로가 '너는 키다리 아저씨를 만나게 될 거야.'라며 끊임없이 노래했어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죠. 아저씨가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강한 믿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어딘가에서 또 다른 남자가, 아저씨보다 더 다정한 한 남자가 절 만나고 싶어 하고 있으며, 왠지 이 여행이 끝나기 전에 그를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죠. 그리고 그 예감대로 된 거예요!"


"오늘 아침엔 콜린을 데리고 우리가 같이 갔던 곳들을 돌아다니며 당신이 했던 말이며 당신의 모습을 떠올렸답니다. 오늘은 숲이 청동색으로 빛나고 공기 중엔 서리 기운이 가득해요. 등산하기 딱 좋은 날씨네요. 당신이 여기 있어서 함께 언덕을 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랑하는 자비, 당신이 미치도록 그리워요. 하지만 이건 행복한 그리움이에요. 우린 곧 만날 테니까요. 이제 우리는 거짓 없이 진실로 하나가 됐으니까요. 제가 마침내 누군가의 사람이 되다니 이상하지 않으세요? 그래도 기분은 말할 수 없이 달콤해요.
앞으로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게 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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