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다른 두 사람이 친구가 되는 건 가능할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서 두 사람은 맺어질 수 있다고 믿고, 그러기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그 우정이 오래가려면 전제가 있다.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기. 사랑이 깊으면 다름이 문제 되지 않는데 사랑이 얕을 때 두 친구는 고민이 깊어진다. 다르다는 사실이 큰 걸림돌이 된다.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 없어서 두 친구는 괴롭다. 한편으로 다른 전제가 더 있을 것 같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제는 다를 텐데 그림책 작가 윌리엄 스타이그는 뭐라고 생각했을까?  






민담이나 설화, 전설을 간단히 옛날이야기라고 치자. 이것들은 형식상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모두 상징적이고 비유적이란 점은 공통된 것 같다. 옛날이야기는 재미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지만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인간과 인간 삶의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린다. 생과 사라든가 선과 악,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 반드시 갖춰야 할 것, 삶이 향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것 같은 문제들이 가장 빠르고 간결한 지름길을 통해서 핵심으로 달려간다. 그림책도 옛날이야기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문학 장르로 보자면 시만큼이나 압축적이다. 꼭 필요한 얘기만 하고, 때로는 말을 삼켜서-시인 나태주의 표현-생략된 부분을 우리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 <아모스와 보리스>도 옛날이야기처럼 읽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를 지금부터 할 테니 그런 줄 알고 들어주세요, 하는 작가의 웃음이 담뿍 밴 첫 문장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옛날에 어떤 바다에 생쥐 한 마리가 살고 있었어. 그 생쥐의 이름은 아모스였지."


아모스는 육지에 사는 작디작은 생쥐인데 바다가 좋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냄새, 부서지는 파도 소리, 조약돌이 파도에 밀려 굴러가는 소리를 사랑했고, 바다 저 멀리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낮에는 배를 만들고 밤에는 배 타는 법을 공부해서 드디어 항해를 떠났다.  




아모스는 즐겁게 항해했다. 삶에 대한 사랑으로 아모스의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 검푸른 밤바다에서 발견하는 거대한 우주, 그 안의 작은 생명체로서의 자신, 만물과 하나가 되는 감동에 젖었다. 그러다가 아뿔싸!


"아모스는 온갖 생명체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취해서 데굴데굴 구르다가 갑판에서 떨어져 바다로 빠지고 말았어."


로우던트라고 이름까지 붙여준 배는 무정하게도 돛을 활짝 펴더니 아모스를 버리고 멀어졌고, 아모스는 망망대해에 혼자 외로이 남았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고 비가 오고 다시 날이 개었다. 아모스는 지치고 힘이 점점 빠져서 이제 죽는구나 생각했다. 시간이 오래 걸릴까? 그저 무섭기만 할까? 내 영혼은 하늘나라로 올라갈까? 하늘나라에는 다른 쥐들도 있을까? 아모스가 이렇게 끔찍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는데 물속에서 큰 머리통이 불쑥 치솟아 올랐다. 고래였다.  


"넌 무슨 물고기니? 너, 물고기 맞지!"

" 난 물고기가 아니야. 난 생쥐라고. 고등 동물인 포유류에 속하지."

"난 뭍에서 살아."

"아니 세상에! 바다에서 살긴 하지만 나도 포유류란다. 내 이름은 보리스야."


'귀찮지 않다면' 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아모스의 부탁에 보리스는 기꺼이 아모스를 등에 태워주었다. 집까지 가는 데는 일주일이 걸렸고, 두 포유류는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헤엄을 치며 나아갔는데, 그러는 동안 둘은 서로에게 깊이 감동하게 됐다. 보리스는 아모스의 가냘픔과 떨리는 듯한 섬세함, 가벼운 촉감, 작은 목소리, 보석처럼 빛나는 모습에 감동했고, 아모스는 보리스의 거대한 몸집과 위험, 힘, 의지, 굵은 목소리, 끝없는 친절에 감동했다.


이 과정이 둘을 가장 친한 친구로 만들어주었다. 보리스와 아모스는 서로의 생활과 꿈을 이야기하고 깊이 감춰두었던 비밀을 나누었다. 고래는 육지 생활을 신기해했고 아모스는 바닷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반했다. 해변에 도착했을 때 둘은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슬펐지만 서로를 영원한 친구라고 불렀다. 그리고 덧붙였다.


"난 절대로 널 잊지 않을 거야."


아모스가 보리스에게, 목숨을 구해줘서 늘 감사할 테고 도움이 필요할 때 기쁘게 도와줄 거라고 하자 보리스는 바다로 돌아가며 혼자 웃었다. "저렇게 작은 생쥐가 어떻게 나를 돕겠어?"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아모스는 마음이 아주 따뜻해, 난 아모스를 사랑해, 정말 보고 싶을 거야."   


우리가 예상하고 기대하듯, 이야기는 이 불가능한 일을 이루어지게 했다. 허리케인 때문에 해변으로 떠밀려온 고래 보리스를 아모스가 발견하고, 마음씨 고운 큰 코끼리 두 마리를 데려와 고래를 바다로 밀어 넣어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시 한번 아모스와 보리스는 헤어지게 되었다.




"거대한 고래의 두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지.
조그만 쥐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고.
아모스가 찍찍댔어. "안녕, 보리스!!"
보리스도 천둥처럼 소리를 질렀어. "안녕, 아모스!"
보리스는 파도 속으로 사라졌어.
아모스와 보리스는 서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하지만 서로를 절대로 잊지 않으리란 것도 알고 있었어."



이 그림책을 부러 찾아 읽었다. 친구가 무척 그리웠구나,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꼼꼼히 들여다보는 나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오랜 친구와 헤어져야 할 것 같아서, 관계를 더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동안 마음을 많이 앓았더랬다.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의 깨끗한 우정을 누리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 그건 상대의 잘못이라기보다 내가, 친구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복잡해지고 가치관이 뚜렷해지고 시간에 쫓기고 현실의 문제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일까? 이런저런 이유들을 더 떠올려보다가 문득 이러는 건 무익하고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정을 이어주는 것, 너무나 다른 두 친구가 서로 영원히 친구로 남아있을 수 있게 해주는 것에 대해 저 사람 좋은 윌리엄 스타이그는 진솔하게 답한다. "그건 잊지 않는 거야." 만날 순 없지만 잊지 않는 것이라고. 우리의 첫 만남과 우리가 나눴던 마음속 이야기들, 비밀들, 그리고 그럴 일이 생긴다면 꼭 도와주겠노라 약속하는 따뜻한 마음, 그 모든 걸 잊지 않는 거라고.


사람에게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에 대해 약간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동의했었다. 그러나 사람은 물건이 아니고, 유통기한이란 말을 사람에 붙이는 순간 사람은 숭고한 존재에서 물건으로 끌어내려진다. 유통기한 대신 쓸 수 있는 더 좋은 말은 없을까? 그건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풀어서 얘기해야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이렇게.


"우리가 영원히 친구로 남게 되면 좋겠다. 우린 영원히 친구가 될 수는 있지만, 함께 있을 순 없어. 너는 육지에서 살아야 하고, 나는 바다에서 살아야 하니까. 그래도 난 절대로 널 잊지 않을 거야."



우정이란 지금 이 순간의 관계만 가리키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어느 순간들, 그때의 그 바다, 그 밤과 그 낮의 일주일, 그때의 보리스와 아모스로, 그 순간과 그 순간 속에 놓였던 우리로 영원히 기억해 주는 일이 우정을 존재하게 한다. 내가 그렇게 기억할 때 친구는 영원한 친구가 된다. 마치 우리 내면에 순수한 아이가 언제나 살아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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