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블레이크, 마음을 말하면 세상이 나에게 온다




모래 한 알에서 세상을 보고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려면,

그대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한 시간 속에 영원을 담아라.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의 첫 구절



독일에서 활동한 화가 노은림(1946-2022)은 한 다큐멘터리에서 '영원'에 대해 매우 인상적인 얘기를 했다. 자신이 그날 눈으로 본 대상을 화폭에 옮기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리 그려도 그것을 제대로 그려낼 수 없어서 결국 그리기를 포기해야겠다고 느낄 때, 다시 말해서 완전히 절망할 때, 문득 손님이 온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진짜 그림이 그려진다. 화가는 그 신비한 손님을 '영원'이라고 불렀다.


윌리엄 블레이크(1957-1827)가 노래한 '영원'도 그런 종류일까? 신성하고 무한한 자유 같은 것, 시간이라기보다는 절대 공간 같은 것, 진리와 동의어처럼 보이나 개념적으로는 전혀 파악될 수 없는 것쯤으로 나는 그들이 말하는 영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막연히 짐작해 볼 뿐이다.


블레이크는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어릴 때부터 환상을 봤는데 이를테면 창문으로 하나님(기독교의 하나님)이 머리를 들이밀고, 농부들 사이에서 천사가 함께 걸어가며, 나무에 천사들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린 모습 등을 봤다고 한다. 블레이크가 본 환상들 중에는 구름 위에 사는 아이도 있었던 모양이다.   


거친 산골짝 아래로 피리를 불다가

즐거운 기쁨의 노래들을 부르다가,

구름 위에 있는 한 아이를 나는 보았습니다.

<순수의 노래> '서시' 첫 구절


재미있게도 현대의 그림책 작가 존 버닝햄도 같은 상상을 했는데, 작가가 블레이크를 몰랐을 것 같진 않아서 어쩌면 아래의 그림책도 블레이크의 시에서 연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꼭 그렇다는 법도 없는 것이, 존 버닝햄의 상상력은 놀라워서 굳이 환상을 보지 않아도 그는 하늘 위의 구름에서 언뜻 꼬맹이 하나가 뛰노는 모습을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을 사람 같다.  






블레이크는 여러 권의 시집을 자비로 제작했는데 그중에서  <순수의 노래>와 <경험의 노래>,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라는 연작 형식의 시화집이 있다. 이 시집들은 내용상 하나의 큰 줄거리를 이뤄서, 블레이크는 헤겔의 변증법을 적용해서 인간의 진화를 정반합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순수한 자연의 일부로 태어나지만 인간이 만들어내는 문명 세계는 타락했고, 대립된 이 두 세계를 조화롭게 극복해 낼 때 인간은 진화한다고 블레이크는 믿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의 타락은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갖고 태어난 인간의 모순에서 비롯한다. 그러니 인간이 발전하려면 자신의 결함을 극복해 내는 길밖에 없다. 인간의 무지와 폭력성과 악함은 진정한 천국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통과의례 같은 것으로 블레이크는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이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다.


과연 우리는 천국과 지옥을 결혼시킬 수 있을까? 어쩌면 블레이크는 그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여자와 결혼해서 아내에게 읽기와 쓰기, 그림 그리는 법까지 가르쳐 자신의 훌륭한 조수로 키워냈고, 두 사람은 마치 아담과 이브처럼 알몸으로 정원을 거닐었을 정도로 순수한 자연의 상태를 추구하며 살았다고 한다. 블레이크가 임종하는 자리에서 아내에게 했다는 말은 감동적이다.  


"케이트, 그대로 가만히 있어요. 나에게 당신은 언제나 천사였소. 당신의 초상화를 그려주리다."


블레이크가 죽고 아내는 다시 식모살이로 돌아가 남은 생을 살았다고 하니 그녀가 블레이크와 같이 했던 그 시간이 내 눈에는 천국 같다. 천국은 반드시 하늘 어딘가, 현실 바깥의 어딘가에 있는 건 아니리라. 블레이크의 아내에게 천국은 남편의 세상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천국과 지옥을 결혼시키는 일도 사람에 따라서는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블레이크의 시화집 그림은  아름답고 정성스러워서 나는 그의 시집을 그림책처럼 읽는다. (블레이크는 동판에 글자와 그림을 한 땀 한 땀 새겨 넣고, 여러 판으로 색을 겹쳐 찍는 다색 판화 기법을 사용해서 그림을 채색했다.) 그리고 거기에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더 그림책 같다.



<순수의 노래> 표지



고운 아가, 너의 얼굴에서

성스러운 형상이 보이는구나.

옛날에 고운 아기님, 너를 창조하신 분도

너처럼 누워서 나를 위해 울었단다.


그분이 자그마한 아기였을 때

나를 위해, 너를 위해, 모두를 위해 울었단다.

네가 부디 그분의 형상을, 너에게

미소하는 거룩한 얼굴을 만나기를-


너에게, 나에게, 모두에게 미소하는 분

옛날에 자그마한 아기가 되었던 그분을.

아기의 미소는 바로 그분의 미소란다

하늘과 땅을 평화롭게 하는 미소란다.

- <순수의 노래>, '자장가' 중에서


우리는 동심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만 사실 동심이 무얼 뜻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동심을 가리켜 순수한 마음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선한 마음이라고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마음을 동심이라는 말에 갖다 붙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런 마음들이 대체로 좋은 마음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온갖 좋은 가치를 동심이라는 말에 부여한다. 순수, 선량함, 기쁨, 사랑 같은 아주 좋은 가치들을. 다른 식으로 보자면, 폭력이나 질투, 분노, 원한, 적개심, 욕심 같은 부정적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상태를 동심이라고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어린이다움 혹은 어린이스러움에 우리가 부여하는 가치들을 우리 곁의 현실 아이들이 실제로 갖고 있고 마음껏 누리는지는 자신하기 어렵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많은 모순을 자기 내부에 품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의 미소와 울음에 대해 생존 전략이라는 살벌한 정의를 하는 학자들도 있다.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해석될 수 있고 그러니 동심이든 어린이든 어떤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보다 대체로 선량하고 단순하며 지혜로운 건 사실인 것 같다. 나는 현실에서 그렇게 경험했고, 그림책 속의 아이들은 모두 그렇다.


하지만 아이들이 무조건 행복한 건 아니다. 아이다움이나 아이 같은 마음, 동심, 아이스러움이 행복과 동의어일 수는 없어보인다. 블레이크의 시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선량하고 순수하지만 절대적 약자다. 거칠고 탐욕스러우며 자비심 없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아이들은 견뎌내는 길 밖에 다른 탈출구가 없다. 블레이크의 시에서 흑인 소년은 "우리 엄마가 남쪽의 야생에서 나를 낳았어 / 그래서 난 까매 / 하지만 오, 나의 영혼은 하얘 / 영국 아이는 천사처럼 하얗지 / 하지만 나는 마치 빛을 잃어버린 듯이 까맣지." 노래한다(<순수의 노래> 중 '어린 흑인 소년'). 굴뚝청소부 아이의 사정도 좋지 않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아빠는 아이를 팔아버려서 "그래서 여러분의 굴뚝을 청소하고, 검댕투성이로 자는 거예요." 아이는 순진하게 이야기한다(<순수의 노래> 중 '굴뚝-청소부'). 또 길을 잃은 아이도 있다.



길 잃은 어린 소년


"아버지, 아버지, 어디로 가는 거예요?

오, 그렇게 빨리 걷지 마세요!

말해줘요, 아버지, 당신의 어린 아들에게 말해줘요.

그러지 않으면 나는 길을 잃고 말 거예요."


밤은 어두웠고, 아버지는 거기에 없었습니다.

아이는 이슬에 젖었습니다.

늪은 깊었고, 아이는 울었습니다.

그리고 운무가 흩날렸습니다.

- <순수의 노래> 중에서



블레이크는 말했다. 종달새 한 마리가 날개를 다치면 천사 하나가 노래를 멈춘다고.('순수의 전조' 중에서) 블레이크가 말하는 종달새는 우리 곁의 아이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다. 버르장머리 없는 못된 아이들도 실은 날개를 다친 종달새인 셈이다. 블레이크는 우리를 그렇게 설득시킨다. 아이들을 종달새로 보라고 말이다.


어린이의 순수함은 위협받는다. 그건 어린이의 외부와 내부에서 동시에 온다. 불행한 부모, 사랑하는 이의 죽음, 나쁜 어른, 삭막한 학교, 질투하는 친구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욕망 같은 것들. 어린이들을 슬프게 만드는 요소는 너무나 많다. 그래서 블레이크는 <순수의 노래>에 이어서 쓴 <경험의 노래> 표지에 슬퍼하는 여인을 그렸다.   



<경험의 노래> 표지



어린이의 순수한 자연 상태는 오래가지 못하고 타락한 문명 세계로 아이는 진입하는데 블레이크는 그것을 호랑이에 비유한다.


한밤의 숲 속에서

밝게 불타는 호랑아, 호랑아,

어떤 불멸의 손 아니면 눈이

너의 무서운 균형을 빚을 수 있었을까?

- <경험의 노래> '호랑이'의 첫 구절


증오와 공포, 타락, 지옥은 다른 곳에서 오지 않고 우리 내부에서 기인한다. 두려운 공포를 품은 무자비라는 이름의 나무는 인간의 뇌 속에서 자란다고 블레이크는 노래한다(<경험의 노래> 중 '인간의 추상'). 이제 우리는 그리고 아이들은 그림책의 세계에 머물지 못한다. 그 세계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나 추방은 우리의 성장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블레이크식으로 생각하자면 그렇다. 마치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한 것이 그들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길은 우리가 진정한 천국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여정일 수 있다. 그래서 블레이크는 분노하는 호랑이가 가르치는 말보다 슬기롭다('지옥의 격언' 중에서)고 말한다. 인간 영혼이 모순되고 대립된 상태를 극복하고 마침내 둘이 조화를 이룰 때 천국(같은 마음)과 지옥(같은 마음)은 결혼하여 평화를 찾고 우리는 새로운 천국을 살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상반되는 것들이 없이는 어떤 진보도 없다. 끌림과 반발, 이성과 에너지, 사랑과 증오가 인간의 존재에 필요하다. 이 상반되는 것들에서 종교인들이 선과 악으로 부르는 것이 생겨난다. 선은 이성에 복종하는 수동적인 것들이다: 악은 에너지에서 솟구치는 능동적인 것들이다. 선은 천국이요, 악은 지옥이다.

- <천국과 지옥의 결혼> '서시' 중에서


사람들은 천국이 무료해서 오히려 지옥에서 다 같이 어울려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농담을 하곤 하는데 그건 말 그대로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 천국은 어쩌면 참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들이 노는 걸 보면 천국이 재미없을 리 만무하다. 블레이크가 말하는 인간의 타락을 '경험'하고 그것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천국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은 천국을 품고 태어났고 천국과 함께 태어난 존재라고 믿는다. 성장하면서 천국의 기억을 잃어가도 그것이 그립고 그래서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고 싶다면 우리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현대의 그림책 작가들은 블레이크처럼 영성적이지는 않지만 블레이크가 노래한 지고한 순수의 세계를 어린이들에게서 보아내는 예민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다. 에즈라 잭 키츠가 그려낸 천진한 아이는 천사 같고 아이가 노는 눈의 세계는 천국 같다. 아니, 아이가 놀고 있는 그 시간이 곧 천국이다. 그리고 이 아이를 보는 우리는 지극한 기쁨을 구체적으로 같이 느끼는 행운을 누린다.  






마리 홀 예츠는 어른 없이 혼자 숲 속에 들어간 아이 이야기를 상상했다.




아이는 혼자서 어두운 숲 속으로 들어가 '모험'이 아니라 '산책'을 한다. 아이는 제일 먼저 사자를 만나는데 잠이 깬 사자는 아이에게 묻는다. "머리 빗고,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아이는 목욕하는 아기코끼리와 잼을 먹고 있던 곰 두 마리, 캥거루 가족, 늙은 황새, 작은 원숭이, 토끼도 만난다.


아이는 나팔을 불고, 사자는 어흥하고, 코끼리는 부우 하고, 곰은 으르렁, 캥거루는 북을 칩니다. 황새는 부리를 맞부딪히며 딱딱거리고, 원숭이는 환성을 지르며 박수를 칩니다. 토끼는 조용, 합니다.



친구들과 숨바꼭질 놀이를 하다가 눈을 떠보니 친구들은 보이지 않고 아빠만 있는데 아빠가 누구한테 얘길 하고 있느냐고 아이에게 묻는다. 아이는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고 대답하면서 아빠에게 안겨 집으로 돌아가며 뒤를 돌아보고 외친다.


"안녕! 멀리 가지 마! 다시 산책하러 와서 너희들을 찾을게."


아이가 자연 만물과 합일된 상태는 오래가지 않지만 한때 아이였던 우리 모두는 본질적으로 이 애니미즘의 세계에 존재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게 아닐까 막연히 짐작한다. 그리고 동심이라는 걸 떠올릴 때 우리는 뭐라고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아련하면서도 미진하고 가슴 뻐근한 그리움, 소중한 걸 영영 잃어버린 듯한 깊은 상실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괴로워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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