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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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이었다. 본가에서 오래된 책 더미를 정리하다 반가운 책을 만났다. 2004년 생일날 대학 친구가 선물한 책이 나왔다. 안표지에는 손수 쓴 편지가 한 글자 한 글자 새겨져있다. 


“이 책은 ‘공부’하기 위한 책은 아니다만, 삶과 이념에 대해서는 고민하게 해줄 것 같다.”

“살고 있는지, 살아지고 있는지, 반성하자. 그리고 공부하자.”


왠지 그리운 기분이 들어 자취방으로 들고 왔다. 책을 펼쳐들고 한 장 한 장 넘긴다. 잔디밭에서 마시던 막걸리 냄새가 책장 사이에서 나는 것 같다. 학업 때문에 미국에 건너간 친구 얼굴이 떠오른다.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3쪽)


대학생 때 좌파가 되고 싶었다. 나도 해방, 너도 해방, 우리 모두 해방. 무엇보다 자기 해방. 해방이라는 말이 그렇게 좋았다. 그리고 저 구절이 참 멋스러웠다. 하지만 저게 마냥 멋지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낸다고? 그저 내 양심 하나 건사하는 일도 쉽지 않은 게 어른의 삶이었다.


좌파를 선망했지만 책을 게을리 읽었던. 좌파를 닮기에는 품성이 덜 자랐던. 건전하기에는 자기 성찰이 부족했던. 친구가 선물해준 이 책도 그 때는 그냥 띄엄띄엄 읽었다. 그러다 졸업하고, 군대 가고, 취직하다보니 정신없이 뭔가에 휩쓸려왔다. 띄엄띄엄 살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진보적으로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었다.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반성이 없는, 공부가 없는. 이제와 다시 이 책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참 아깝다. 그 때 이 책을 공들여 읽었다면 조금은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방향이라도 잘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B급 좌파”는 김규항이 98년부터 2001년 사이에 쓴 칼럼을 모은 책이다. 시대가 좀 지났지만 지금도 읽을 만한 책이다.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글쓴이는 시대를 앞서 사회를 분석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대학 울타리를 살짝만 벗어나도 “빨갱이”라는 말을 누구나 의심하지 않고 즐겨 썼다. 전체주의, 집단주의가 일상을 여전히 강력히 지배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은 여전히 힘이 있다.


“‘한국인들은 들쥐와 같다. 들쥐의 습성은 한 마리가 맨 앞에서 뛰면 덮어놓고 뒤따라가는 것이다.’ 위컴은 ‘망언’을 사과했지만 ‘들쥐들’은 18년 동안 덮어놓고 맨 앞에서 뛰는 놈만 따라다녀 왔다. 파시즘은 우리 안에 남아 있다.” (40쪽)


지금은 누구나 다 이렇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여전히 들쥐 같은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지금도 썰렁해진 광장에서 중국산 태극기를 흔들며 과거의 망령을 애처롭게 붙잡고 있다.



“어쭙잖은 말이지만 지식인이란 ‘내가 지향하는바’와 ‘실제의 나’ 사이에 숙명적인 거리를 갖고 사는 ‘삶의 코미디언’이다. 지식인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삶이란 그 숙명적인 거리를 어떻게든 줄이려 발악하는 것일 뿐.” (11쪽)


내가 지식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식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어영부영 한심하게 보내는 삶을 경계하는 위기감은 항상 갖고 있다. 배움을 줄만한 사람이 아니면서 누군가를 가르칠 수는 없는 일이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렇게 작고, 좁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잔뜩 겁만 많아져서 일단 나부터 먼저 ‘채우기’ 바쁘다. 나 하나 건사하기에도 숨 가쁜 인간이 되었다. 글쓴이는 스스로 ‘B급 좌파’라고 부른다. 나는 좌파마저도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양심을 잘 건사하는 건전한 우파가 되는 데 성공한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어중간하게 둥둥 떠다닐 뿐.



“세상의 절반이나 되는 여성들이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감수해야 하는 갖은 불공정함을 놓아둔 채 어떤 진보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성적 차별은 ‘사나이’로부터 나온다.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사내다운 사나이가 존재’하기 위해선 언제나 ‘여자다운 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나이’라는 말은 온갖 범죄, 온갖 악행, 온갖 불평등, 온갖 권위주의, 온갖 파시즘의 면죄부이기도 했다.” (83쪽)


대학생 때 자칭 ‘진보’라면서 우스꽝스러운 짓은 다 하고 다녔다. 사내다움을 내세우고, 사내다워지고 싶어 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듯 포장하려 했으나 실제로는 목소리만 크고 허세 가득했던.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다. 민망한 짓인 줄 알면서도 남자 아이들 가득한 교실을 휘어잡으려고 스스로 사내다운 교사로 포장한다.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은 갖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인식은 정밀하지 않다. 나는 여전히 “여성혐오”라는 단어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성차별 인식 시계는 아마도 10년 전 대학생 시절 그 언저리에 멈춰있는 것 같다. 제대로 찾아 공부한다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 그런데 무엇보다 실천이 안 된다. 스스로 좌파, 진보로 살아갈 자신을 잃어버린 결정적인 이유는 페미니즘을 보는 내 태도다.


학생 때 페미니즘을 접하긴 했지만 무척 불편해했다. 지금도 역시 불편하다. 아니, 차라리 겁내고 있다고 해야 정직할 것 같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페미니즘 글들을 보면 종종 지나치게 적대심을 강조하고 과격한 주장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곤 한다. ‘아니, 차라리 남자로 태어난 게 그냥 범죄라고 하지?’ 사실 이건 참 웃긴 태도다. 노동 문제, 현대사 문제로 토론할 때 ‘네 주장은 너무 과격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고 얼마나 답답해했던가!


페미니즘은 내게 숙제다. 여기서 그냥 뒤돌아선다면 나는 그냥저냥 반성 없이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을 테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적어도 대충 살지는 않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도 있겠지. 김규항 같은 이들은 이미 20년 전에 한국 평균 남성을 훌쩍 뛰어 넘어 시대를 앞서갔다. 좌파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싸움은 절대선인 사람들과 절대악인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자기 성찰이 가능한 사람들과 자기 성찰이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160쪽)


문제는 자기 성찰이다. 어떤 인연이 닿아 지금이라도 이 책을 다시 들여다봐서 참 다행이다. 지식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고민하게 한다. 콧잔등에 옛날 잔디 냄새가 잠시 스친다. 그 때의 나를 다시 불러낼 수 있을까?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다는 꿈을 꾸었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지금 와서 그런 거창한 꿈을 바로 가질 수는 없으니, 일단 나부터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바꾸는 일부터 시작하자. 이 책은 참 날카롭다. 20대의 나는 그 칼날에서 자유로웠다. 그러나 30대의 나는 이리저리 찔려서 많이 아프다. 날카로운 만큼 나와, 우리와, 이 사회를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요즘 쓴 글을 따로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이 시절 김규항은 글을 참 잘 썼다.


“사람들은 이제 오월 광주를 서서히 지워간다. 자상, 열상, 타박상, 골절, 총상, 그리고 자책감, 그리움 같은 광주의 ‘구체적 실감’이 사라진 사람들의 가슴 속엔 민주, 열사, 항쟁, 성지, 기념식 같은 ‘역사적 추상’만 남았다. … 이제 자상, 열상, 타박상, 골절, 총상, 그리고 자책감, 그리움 같은 오월의 ‘구체적 실감’은 휴일 오후의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나 어렴풋이 떠올려질 뿐이다. 이제 오월의 정신은 여전히 그 도살의 기억을 떨치지 못하는, 여전히 세상을 응급실로 파악하는 몇몇 어리석은 사람들의 썩어진 가슴 속에만 살아있다. 더러운 조선의 역사는 오늘도 장강처럼 흐르고, 사람들은 풍선 하나씩 손에 든 채 놀이동산과 패스트푸드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기자기한 목소리로 어린이날과 스승의 날을 읊조리며 그들의 오월을 사뿐히 통과한다.” (112쪽)


기억난다. 이 구절을 읽으며 눈시울이, 그리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마 그 다음 해였던가. 망월동 묘지 갔다가 왠지 너무 슬퍼져서 눈물 콧물 흩뿌리며 흐느꼈다. 기억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나는 현대사 수업시간에 지금까지 5.18을 얼마나 ‘알량하게’ 다뤄왔던가. 80년 5월 광주는 눈물 없이, 심장을 짜내는 고통 없이 그냥 흘려 넘겨서는 안 된다. 내가 학생 때 이 구절을 보고 배운 것. 그것을 앞으로 나의 학생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학생들을 망월동에 모두 데려갈 수는 없는 일이니, 어떻게 해야 그 날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줄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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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20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삶과 세상에 대한 공부를 안 하면 삼성동에 모여 죽치고 서있는 사람들처럼 됩니다.

돌아온탕아 2017-03-22 13:3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나이 먹는다고 공부를 멈추면 나이를 거꾸로 먹게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