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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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폭발의 혼돈으로부터 이제 막 우리가 깨닫기 시작한 조화의 코스모스로 이어지기까지 우주가 밟아 온 진화의 과정은 물질과 에너지의 멋진 상호 변환이었다. … 우리 인류야말로 우주가 내놓은 가장 눈부신 변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이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나왔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알고자, 더불어 코스모스를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이다.” (60-61쪽)


코스모스 제1장은 이렇게 끝난다. 700쪽이 넘는 커다란 책을 언제 다 읽을까 싶었다. 그런데 저 구절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을 다시 읽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 따위 남루한 구절을 읊조리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삶의 의미를 짚어준다. 나 말고 누가 감히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느냐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칼 세이건이 말한 대로라면 나는 무척 위대한 사명을 띠고 이 땅에 나온 것이다.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임무라면 나도 하나 갖고 싶어진다.


과학을 다루는데 서정적이다. 객관적 사실을 말하지만 문학작품을 읽는 듯 마음이 일렁인다. 생전의 칼 세이건은 날카로우면서도 무척 낭만적인 사람이지 않았을까?


이 책은 ‘과학하기’가 무척 즐겁다고 알려준다. 과학으로 들여다보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가르쳐주는 여행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읽다보면 아래처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1. 재미있는 영화를 깊게 볼 수 있다.

“인터스텔라”를 재밌게 봤다. 하지만 보다가 너무 답답했다. 주인공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서 겪는 ‘4차원 장면’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화 보기 전에 이 책을 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3차원 공간을 4차원에서 보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무척 생생하고 친절하게 묘사해놓았는데 말이다.


얼마 전에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니 마법사들이 모든 방향으로 입체가 계속 생겨나며 이상하게 변형되는 공간에서 악당과 싸운다. 그냥 “인셉션에서 봤던 장면이네”라고 넘길 수도 있지만 이제는 “혹시 시간을 초월한 4차원을 묘사했나?”라고 짚어보게 된다. 그러다보니 허구일지언정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훨씬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보는 영화가 무엇을 바탕으로 상상한 장면을 담았는지를 생각하면서 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즐거움이다.



2. 일상을 더 재미있게 느낄 수 있다.


“빵-!”하고 시끄럽게 경적 울리며 지나쳐가는 자동차는 무척 짜증스럽다. 하지만 도플러 효과를 알고 나면 ‘차가 내게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날카로워지고 내게서 멀어질수록 소리가 길게 늘어지는군. 그런데 하늘의 별빛도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거구나’라고 신기해할 수 있다. 짜증이 설렘으로 바뀐다.


빛 편광분석으로 멀리 떨어진 천체의 구성 성분을 추정하는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조명 설치할 때나 사진 찍을 때 맞춰보는 색온도 같은 개념을 우주 관측에서도 활용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전파 역시 빛이며, 라디오 방송 전파에서 사용하는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는 지구가 태양보다도 강렬하게 빛난다는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다.


“망막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시야의 한가운데가 아니다. 그래서 눈길을 약간 비껴 주면, 희미한 별이나 물체가 더 잘 보이게 된다.” (180쪽)


이런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다. 군대에서 야간 사격할 때 해주는 말을 천문학자도 한다는 게 흥미롭다.



3. 재미있는 역사도 덤으로 알 수 있다.


미지의 영역이었던 고대 이집트 문명의 상형문자를 해석하는데 로제타석이 열쇠가 되었다. 그런데 “로제타석”은 잘못 붙여진 이름이다.


“로제타석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석판은 로제타가 아니라 ‘라시드의 돌’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이 석판이 발견된 곳이 나일 삼각주에 위치한 라시드라는 마을이고 ‘로제타’는 아랍 어에 무지했던 유럽인들이 라시드를 잘못 부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587쪽)


생명 진화는 수많은 사소한 우연들이 쌓인 결과다. 과거사건 중에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지구는 현재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인간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 라 페루스가 탐험대의 선원을 모집하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다. 그래서 똑똑하고 열성적인 젊은이들도 많이 탈락했다. 이 중에 코르시카 섬 출신의 젊은 포병 장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끼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사의 흥미로운 한 분기점이 아닐 수 없다. 라 페루스가 나폴레옹을 선발했더라면, 로제타석은 발견되지 않았을 수도 있으며, 그렇다면 샹폴리옹의 상형 문자 해독은 불가능했을 게고, 근‧현대사는 여러 면에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607쪽)


“코스모스”는 우주 진화를 다룬다. 그러다보니 아주 미미한 지분만 차지할 뿐이지만, 인간이 이룩한 역사 또한 비중 있게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과학자의 눈으로 본 역사는 역사가가 정리한 그것과는 색다르게 재미있다. 특히 고대 이오니아 자연철학이 이후의 고전 그리스 철학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학문이며, 그들을 소크라테스에 이르는 전 단계로 여길 것이 아니라 현대 과학과 같은 반열에 올려 생각해야 한다는 글쓴이 생각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4. 현대 학문을 쌓아올린 사람들을 잘 알게 된다. 갑자기 ‘열공’하고 싶어진다.


인류는 한 때 미신과 맹목적 신앙의 열정 속에 살았다. 지금 우리 눈으로 보면 그저 허무맹랑한 옛날이야기일지 몰라도 중세 사람들에게 천상에 사는 신과 천사들은 의심할 여지없는 현존하는 세계였다. 그런데 그 믿음에 의심을 품은 불순한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거침없이 손을 들고 나섰다. 그리고 비난과 억압을 온 몸으로 받아냈다.


아리스타르코스는 해와 달이 불타는 바위라고 주장했다가 고대 아테네인들에게 ‘신성 모독’ 죄목으로 탄압 받았다. 코페르니쿠스가 쓴 책은 19세기 중반까지 로마 가톨릭이 금서로 지정했고, 케플러는 달 표면에서 지구가 자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용으로 공상과학 소설을 썼다가 어머니를 마녀 사냥으로 잃을 뻔했다. 갈릴레오, 크리스티앙 하위헌스, 다윈 같은 사람들은 그저 유명한 학자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 손가락질에 분연히 맞설 줄 알았던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자기가 그렇다고 굳게 알고 있었던, 또는 그렇게 믿고 싶었던 세계 모습이 실제로는 잘못된 묘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미련 없이 오류를 버리고 진리와 진실을 마주했다. 끊임없이 검증하고 또 검증하는, 때때로 자기가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길고 험한 길을 외로움을 이기며 걸어갈 줄 알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고민과 삶, 싸움은 인생을 걸고 진리를 찾는 과정이었다. 지금 배우는 모든 학문은 그냥 그런 문자 조합이 아니라 누군가 인생을 걸고 투쟁한 흔적이다. 먼지 냄새나는 두꺼운 책 더미에서 누구보다도 낭만적이었던 어떤 사람들의 향기가 느껴진다. 갑자기 이런저런 것들을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진다.



5. ‘나’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본다.


“태양과 지구에 존재하는 원소들의 상당 부분이 별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므로 성분의 관점에서 볼 때, 우주는 하나의 물질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수많은 별들에서 발견되는 가장 흔한 원소들이 다름이 아닌 행성 지구에서의 생명 현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수소, 나트륨, 마그네슘, 철 등이라니! 물질 공동체의 신비함에 우리는 그저 놀라기만 할 뿐이다.” (64쪽)


“우리의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애플파이에 들어 있는 탄소 등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조리 별의 내부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 (458쪽)


내가 별에서 왔다니. 나 같은 사람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정말 ‘별에서 온 그대’였다니. 내가 곧 우주고, 당신이 곧 세계였다. 그렇다고 지금 바로 별처럼 환하게 잘생겨지며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냥 티끌 같은 허무한 존재만은 아니었다는 점에 안심하게 된다. 나는 갑자기 세상에 뚝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별들이 오랜 세월 빚은 인과성의 산물이다.



6.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어본다.


때때로 짜증나는 사람이 있다. 생각이 맞지 않거나, 생면부지 사이인데 옆에서 갑자기 방귀뀌고 트림하거나.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같은 하늘 아래 왜 저런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지 깊이 슬퍼지는 경우도 있다.


“인간은 지구 이외의 다른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 지구에만 있다. 인간은 지구라고 불리는 이 자그마한 행성에서만 사는 존재이다. 우리는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 위기종이다. 우주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귀중하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나와 다른 생각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를 죽인다거나 미워해서야 되겠는가?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수천억 개나 되는 수많은 은하들 중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674-675쪽)


“우주에서 내려다본 지구에는 국경선이 없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쥐면 부서질 것만 같은 창백한 푸른 점일 뿐이다. 지구는 극단적 형태의 민족 우월주의, 우스꽝스러운 종교적 광신, 맹목적이고 유치한 국가주의 등이 발붙일 곳이 결코 아니다. 별들의 요새와 보루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작디작은 푸른 반점일 뿐이다. … 우주에는 생명이 전혀 서식한 적이 없는 세상이 있다. 우주적 재앙의 표적이 되어 새까맣게 타버린 불모의 세상들이 우주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우리는 행운아이다.” (632-633쪽)


이런 구절을 읽고 나니 시끄럽고 무례했던 어느 아저씨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괴롭히던, 또는 내가 혐오하는 누군가도, 넓은 우주에 딱 한 명씩 밖에 없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누군가를 함부로 미워하지 말아야겠다고 조심스레 다짐해본다. 한 명 한 명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 인생은 한 번이고, 그렇게 지나가는 삶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덧없이 흘려보내기에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사람이 사람을 혐오하고,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탐욕스러운 자들을 그냥 방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함부로 전쟁을 이야기하고, 함부로 평화를 위협하려는 움직임을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7. 겸손해진다.


“별들의 일생에 비한다면 사람의 일생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단 하루의 무상한 삶을 영위하는 하루살이들의 눈에는, 우리 인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겹게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한심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한편 별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주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지극히 단단한 규산염과 철로 만들어진 작은 공 모양의 땅덩어리에서 10억 분의 1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매우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429쪽)


거대한 우주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내가 안달복달해왔던 것들이 왠지 덧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걱정하는 일들이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 인생이지만, 내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은 나에게만 중요할 뿐이고, 내가 안간힘을 쓰며 이룬 것들은 거대한 세상에서 점 하나로 표현하지도 못할 미미한 흔적을 남길 뿐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콧대가 조금은 꺾인 것 같다.



8. 위로받는다.


끝이 있는 삶이 슬펐다. 소중한 물건도, 풍경도, 인연도, 삶도 언젠가는 끝난다. 세상은 영원히 이어질 텐데 나만 문득 나타났다가 덧없이 사라진다는 숙명이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구는 50-60억년 뒤에 태양이 적색거성으로 부풀어 오를 때 뜨겁게 타오르며 삼켜질 것이다. 태양도 죽는다. 우주에 있는 모든 별들은 언젠가 생을 마친다. 우주 자체도 끝이 있다. 우주가 끝없이 팽창하든,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든, 마지막은 반드시 온다. 모든 것에 끝이 있다. 그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운명이다. 끝이 있기에 우주도, 별도, 별 중에 하나인 태양도, 지구도, 그리고 나도 지금을 오롯이 느끼며 살 수 있다. 이 순간이 무척 소중하다.


“우주 공간을 눈여겨보면 하나의 거푸집에서 찍어 낸 것처럼 모양이 아주 비슷한 은하들이 우주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은하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중력의 법칙과 각운동량 보존 법칙이 우주 어디에서든지 그대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중력 법칙과 각운동량 보존 법칙은 지상에서는 물체의 낙하 운동과 피겨스케이트 선수의 회전 묘기도 지배한다.” (486쪽)


상식이 통하지 않고 가치가 혼미해지는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믿고 살아야할지 몰라 막막해진다. 그런데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보편적 법칙이 있다고 한다. 그 법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 그래도 내가 원칙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다.



9. 책 읽고 싶어진다. 글 쓰고 싶어진다. 마법을 부리고 싶어진다.


책을 읽으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잠을 잘 수도 있고 놀러 다닐 수도 있는데 책을 왜 다들 읽는 것일까?


“생물학에는 반복설이라는 것이 있다. 이 가설은 모든 상황에 100퍼센트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생물의 발생 과정에 관해서는 비교적 잘 들어맞는다. 반복설의 핵심 내용은 개체 하나의 발생 과정이 해당 종이 겪어 온 진화의 전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나는 개개인의 지적 성숙 과정에서도 반복설이 성립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조상들이 해 온 사고의 과정들을 되풀이하면서 하나의 개인으로 성장해 간다.” (331쪽)


나는 책을 읽으며 압축적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내 앞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밝혀낸 것들을 책장을 넘기며 내 존재로 만드는 중이다. 사람은 진화해왔다.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이 그 증거다. 나도 진화하는 중이다. 독서는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시간이다.


“글쓰기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 글쓰기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놓았고, 먼 과거에 살던 시민과 오늘을 사는 우리를 하나가 되게 했다. 책은 인간으로 하여금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러므로 글쓰기를 통해서 우리 모두는 마법사가 된 것이다.” (558쪽)


책상 앞에서 키보드 두들기는 지금, 나는 마법을 부리고 있다. 갑자기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의기양양해진다. 어릴 때 어깨에 망토를 두른 기분이 이와 비슷할까?



10. 굉장히 멀리 여행 다녀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700쪽 책 한 권에 우주가 탄생하고 인간이 땅 위에 설 때 까지 과정이 오롯이 담겼다. 빛스펙트럼을 꼼꼼히 헤집어보며 금성의 구성성분이 무엇인지 살핀다. 전파로 쏘아올린, 인류가 보낸 편지 내용도 읽어본다. 바이킹 탐사선과 함께 화성에 날아가 생명을 찾는다. 보이저 우주선을 따라 목성과 토성을 지나 태양계 밖으로 날아간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장으로 돌아온다. 삶의 의미를 묻고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고민해본다.


몇 번을 거듭 읽고 책을 덮었다. 굉장히 멀리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여운이 남는다. 걱정하며 서문을 읽기 시작했다가 감동하며 뒤표지를 닫았다. 과학책인데 두꺼운 철학책 한 권을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좋아하는 드라마가 끝나면 마치 친한 친구와 헤어지는 것 같다. 이번에는 책을 덮으며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물론 다소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 최신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칼 세이건은 인간 두뇌의 신경망 조합이 담은 정보량이 지구에서 가장 큰 도서관의 장서량과 맞먹을 정도라고 표현했는데, 다른 책에서 다룬 뇌 과학 내용을 보니 두뇌가 품은 세계가 은하계보다 더 클 것이라고 나와 있다. 아마 1980년대 이후로 뇌의 비밀이 많이 밝혀진 모양이다. 그래도 옮긴이 역시 천문학자이다 보니, 천문학 부분은 최신 내용을 각주로 꼼꼼하게 달아놓았다.


최신 과학을 교과서 보듯이 충실하게 습득하고 싶다면 다른 책을 읽어보는 게 좋다. 사실 정상적으로 고등학교를 나왔다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정도의 내용이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자마자 까맣게 잊어버린, 그런데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은 과학 이야기에 관심 있다면 이 책이 잘 어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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