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세트 - 전5권 펭귄클래식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완역본 5권을 완독했다.

무척 길어서 힘들었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전반적으로 너무 길어서, 읽으면서 활자로 고문 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당대 프랑스와 파리의 이모저모를 작가가 굉장히 긴 호흡의 글로 스케치한 것도 독서를 힘들게 했다. 소설 후반부에 장발장이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업고 하수도로 내려가는데, 갑자기 이야기 전개를 멈추고는 작가가 파리 하수도의 연원과 바람직한 하수 처리에 대한 자기 생각을 수십 쪽에 걸쳐 전개하는 대목에서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끝내 다 읽고 책을 덮은 순간 ‘국토종주‘ 같은 걸 끝낸 것과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거듭 생각하건대, 읽기를 참 잘한 것 같다. 안 읽었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영화 레미제라블을 너무 좋아하여 세 번을 봤는데, 나 같은 사람은 이 소설을 축약본 말고 완역본으로 꼭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2년에 나온 뮤지컬 영화도 참 잘 만들었지만, 2~3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안에 녹여내기 위해서 축약하고 잘라낸 부분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것을,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으리라. 영화는 소설을 5배속으로 휘리릭 빨리감기하여 훑어보는 느낌에 가깝달까? 아. 물론 영화와, 그 저본이 되는 뮤지컬은 두말할 필요 없이 훌륭한 작품들인 것은 맞다. 이렇게 방대한 소설을 그 짧은 시간에 느낄 감동을 다 느낄 수 있도록 요약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니까. 영화와 뮤지컬은 그 어려운 일을 성공해낸 결과물이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영화를 한 번 더 보겠다. 소설의 내용들이 가슴에 들어간 상태로 영화의 연출과, 특히 너무나 아름다운 뮤지컬 곡들을 보고 듣는다면 감동이 다섯 배가 될 것이니까.

영화에서 담지 못하고 잘라낸 나머지 80% 부분에도 여기저기에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장발장이 자기 대신에 억울하게 형살이를 하게 될 사람을 구하러 가기 전에, 그리고 달려가면서도 줄기차게 했던 고뇌(그를 구하면 내가 끌려가야 하기에)가 얼마나 깊고 쓰라린 것이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타고 가던 마차의 바퀴가 망가져서 ‘재판 시간‘에 못 닿을 것 같자 장발장이 ‘그래! 안타깝게 되었지만 나는 할 만큼 한 거야. 그럼 모든 것을 없던 일로 할까‘라며 달콤한 자기 위로에 빠지는, 그러다 결국 마음을 다잡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시 달려가던 장면은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모든 것이 다 행복하게 끝난 마당에 마리우스에게 자기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이 얼마나 어려운 시간이었으며 그걸 결정하기까지의 고뇌가 얼마나 길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사랑하는 코제트에게서 떠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쓸쓸하고 쓰라린 일이었는지를 실감하지 못하였을 것이며, 마지막에 장발장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이 얼마나 슬프면서도 위대했는지를 끝내 몰랐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기를 원하는가. 그러려면 어떻게 결정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질문에 매번 흔들리고 주저하게 되면서도 끝내 한결같이 정직하고 담대하게 마주하고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서도 끝내 이뤄냈을 때 사람을 얼마나 위대하게 만드는지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장발장이 떠나는 순간 마흔을 넘은 나도 같이 울었다. 장발장과 그밖에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읽으면서 사람을 읽었고, 나 스스로를 읽었던 것 같다.

또한 대혁명을 이뤄낸 프랑스 사람들의 모습과 나폴레옹 전쟁(특히 워털루 전투), 1830년 7월 혁명과 1832년 6월 봉기를 마치 눈앞에서 보듯 느낄 수 있었다. 1832년 6월 봉기에서 싸운 사람들의 모습을 영화에서도 잘 그려냈지만(특히 바리케이드 안에서 술잔을 나누면서 노래를 부르던 장면은 지금도 생각난다), 소설은 압도적인 분량과 필력으로 모든 것을 장구하게 그려냈다. 따로 있을 땐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람들이 함께 모이자 스스로 역사를 전진시키는 거대한 거인으로 변모하는 모습, 그들의 눈이 빛나는 광경, 봉기를 차갑게 외면하는 대중들과 처참하지만 장렬하게 무너지는 바리케이드의 풍경 등.

펭귄 본 번역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이 번역 마음에 들었다. 읽을만했다. 이 소설이 읽기 힘들었던 건 무지막지한 분량과 그걸 채우는 꼼꼼하고 세밀한 묘사 때문이었을 뿐. 그리고 각주가 무척 많은데, 역자가 꽤나 성실한 번역을 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빅토르 위고가 잘못 쓴 부분, 즉 사실 관계 오류들을 역자가 각주를 통해서 바로잡는 지점이 적지 않은데 그걸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물론 나는 다른 번역본은 읽어보지 않았지만(그리고 다시 찾아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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