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안에서 - 1%의 차이가 만드는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 프레임 안에서 1
데이비드 두쉬민 지음, 정지인 옮김 / 정보문화사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촬영한 사진을 보게 될 사람에게는 프레임 안의 세상이 존재하는 전부다. p28.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다.


내가 찍은 사진은 내겐 너무 익숙하다. 하지만 그 사진은 남들에게는 ‘처음 보는 사진’이다. 처음 보는 사진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느끼게 할까. 아니, 매력을 떠나서 어떻게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는 사진을 만들까.


사진을 찍어서 내보인다는 건 내가 본 세상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행위다. 사진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행위다.


내가 발견한 이 세계의 인상적인 한 조각을 그저 나 혼자 담아놓고 싶다면 아무렇게나 찍어도 된다. 나만 알아보면 되니까. 하지만 내가 발견한 그것을 남들도 알아보길 원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프레임 안에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지, 어떻게 내용을 담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내 생각을 남들에게도 전하고 싶다면 말을 조리 있게 요령껏 해야 하는 것처럼.


이 책은 그런 걸 잘 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딱딱할 수도 있는 내용을 말랑말랑하게 풀어쓴 재주가 좋다. 내용을 보지 않고 책에 실린 사진만 봐도 즐겁다. 글쓴이가 찍은 사진들은 그것만으로도 무척 탁월하니까.


카메라를 만지고 사진을 나오게 하는 기초부터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사진을 이렇게 저렇게 찍어보다가 ‘아. 내 사진은 왜 맨날 제자리지?’라고 느껴본 사람에게 어울리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에도 카메라와 렌즈를 다루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대개 이런 식이다. 어떻게 다뤄야 사진이 좀 더 의도한 바에 맞게 나오는지에 대한 팁들.







패닝을 할 때 자동초점을 사용하면, 해결되는 것보다 생기는 문제점이 더 많다. 나는 수동 초점 모드에서 피사체가 지나갈 지점에 대고 미리 렌즈의 초점을 맞춰놓고, 조리개를 잔뜩 조여 넓은 피사계 심도에 의지한다. p45.


렌즈의 선택을 “피사체가 얼마나 멀리 있지?”하는 단순한 문제로만 환원하는 것은 문제를 말도 안 되게 단순화시키는 일일 뿐 아니라, 사진의 외양에 미묘한 효과를 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일이기도 하다. p65.


망원렌즈는 깔끔하지만 광각렌즈는 산란하다. p70.







글쓴이가 거듭 강조하는 말이 있다. ‘비전’이다. 이 책은 그 비전을 찾는 방법부터 보편적인 호소력을 갖도록 틀을 짜고 표현하는 방법까지 두루 다룬다. 반드시 어떻게 하면 잘 된다는 말을 해주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걸 생각해보면 좋은지를 알려준다.







사진이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암시하고자 한다면 그 사진은 무언가에 관한 것이어야만 한다. p90.


성급하게 한 장소의 표면만 스쳐 지나면서 사진을 찍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물론 흔치 않은 일이지만 심오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둘러서 사진을 찍을 때는 대체로 엽서 사진과 같은 전형적이고 진부한 사진만 나온다. p184.


갈등이 없으면 이야기도 없다. 사진이 이야기다운 것을 포함하거나 암시하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갈등이 있어야 한다. p94.


그것은 미묘하게 해야 한다. 꼭 자유의 여신상을 넣어야겠다면, 숨어 있는 작은 디테일로 만들어 다른 디테일과 대조를 이룰 수 있게 할 방법을 찾아보라. 그런 사진은 “그래, 이게 바로 뉴욕이지”하고 말하지, “이봐요! 이건 뉴욕이야! 알아차리셨나? 뉴욕이라니까!”하고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 그것은 선택과 배제의 행위이며, 자신이 그 장소에서 한 경험을 가장 강렬하게 반영하는 요소들은 포함시키고, 무의미한 디테일은 제외하는 일이다. p199.







책 한권 읽는다고 금방 사진을 잘 찍게 되지는 않는다. 책을 제본이 떨어지도록 읽었지만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면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할지 여전히 막막하다. 차라리 아무 생각없이 찍었던 사진이 더 나아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책이란 건 그런 게 아닐까? 읽는다고 바로 그게 내 자신이 되지는 않지만, 책에 담긴 무언가를 나도 잘 해보고 싶은 욕심을 갖게 하는. 노력을 해보는 계기가 되고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돌아보는 글을 쓰며 나도 기대해본다. 언젠가 내 사진도 좋아지겠지? 언젠가 내가 하는 고민들이 동물적 감각이 되어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되겠지?







재현적 사진은 “베를린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해석적 사진은 한걸음 더 나아가 “베를린은 이랬습니다. 그리고 나는 베를린에 대해 이렇게 느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차이는 아내의 여권 사진과 약혼할 때 내가 아내를 찍은 사진의 차이와 같다. … 후자의 경우 아내에 대한 사랑과 성격에 대한 이해, 그리고 기술과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써서 그것을 표현하겠다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여권 사진은 “그녀는 이런 모습이다”라고 말한다. 남편이 찍은 사진은 “그녀는 나에게 이런 존재다. 이것이 내가 그녀에 대해 갖고 있는 느낌이다.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이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p166.







책에서 가장 깊게 와 닿은 구절이다. 재현적 사진과 해석적 사진의 차이. 특별한 사진은 피사체를 내 시각으로 해석한 사진이다. 그런 사진만이 탁월한 사진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사진을 잘 찍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궁극적 목표는 다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누군가를 특별하게 담은 사진을 탁월하게 남기는 것. 가장 보고 싶은 누군가를 뷰파인더로 바라볼 때 가장 또렷한 사진이 남는다. 지나간 시간의 나도 그랬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의 나도 그럴 것이고.


이 구절을 읽으며 글쓴이가 사진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가짐이 느껴졌다. 하나를 하더라도 마음을 담아서 할 것. 내 사진도 마음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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