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시계공 1
김탁환.정재승 지음, 김한민 그림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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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눈먼 시계공』

김탁환·정재승 글, 김한민 그림, 민음사, 2010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눈먼 시계공』은 로봇공학과 뇌과학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에서 벌어질 가상의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테크노스릴러 소설이다. 소설가 김탁환과 과학자인 정재승 KAIST 교수의 공동작업을 통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문학과 과학의 통섭을 시도해 화제를 모았다. 때는 2049년, 세계는 국가와 민족개념이 폐기된지 오래고 기계와 인간이 몸을 섞으며 새로운 진화를 꿈꾸는 시대다. 장소는 서울특별시, 유비쿼터스 기능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21세기형 메트로폴리탄으로 인간과 사이보그, 로봇이 공존한다. 기계는 좀더 인간 같아지고, 인간은 좀더 기계 같아진다. 자동차가 자동항법장치를 통해 알아서 운전을 하고, 사람몸의 상당부분은 기계로 대체되었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로봇과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은석범 검사가 팀장으로 있는 서울특별시 보안청 ‘스티머스 수사팀’은 스티머스라는 기계를 통해 전전두엽에 저장된 최근 10분의 단기기억을 복원해,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뇌에서 마지막 단기 기억을 영상으로 재생해 범인을 체포하는 특별 임무를 수행한다. 특별시 안에서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피해자의 뇌가 사라진다. 단기 기억 재생 장치의 존재를 아는 누군가의 소행으로 짐작되지만, 사건의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특수 수사대의 형사들도 하나하나 희생당한다. 같은시간, 과학과 자본의 욕망이 어우러져 지상 최강의 로봇을 가리는 로봇 격투기 대회인 ‘배틀원’은 점점 더 광분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한쪽에서는 자연 회귀주의자들의 테러와 투쟁이 격화된다. 무엇보다 로봇격투기라는 SF적 요소와 연쇄살인이라는 스릴러를 결합한 흥미로운 소재에, 기발하고 유쾌한 상상력이 보태져 지루할 틈이 없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숨가쁜 추격과 액션, 그 사이에 흐르는 로맨스와 세계 최강 격투 로봇들의 극적이고 생생한 한판 승부가 책읽기를 좀처럼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눈먼 시계공’이라는 소설의 제목은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같은 제목의 책에서 따왔다. 리처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이란 작품을 통해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명쾌하게 설명해냈다. 자연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보니 자연은 목적도 설계도 없는 자연 선택의 산물이고 그저 잘 짜여진 시계와 같더라는 이야기다. ‘신’이라는 초자연적 존재의 힘이 아닌 바로 ‘자연선택’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의 창조주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 책 『눈먼 시계공』은 여기서 조금 더 많이 나간다. 인류가 로봇공학과 사이버네틱스 그리고 정보기술 같은 기계문명을 통해 스스로를 진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로봇에게 인간의 지적 능력을 부여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로봇이 인간처럼 욕망하고 자의식을 가진 존재로 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를 가능하게 만들려는 사람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핵심인물 중 하나인 뇌 과학자 노민선 박사다. 독자들과 만난 한 강연회에서 저자들은 제목에 숨겨진 뜻이 있다고 말했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있는 로봇 ‘글라슈트’는 사실 유명한 수제 시계 이름이다. 소설 속에서 글라슈트를 만든 이가 노민선 박사다. 즉, 글라슈트를 만든 과학자가 ‘눈먼(어리석은) 시계공(로봇공학자)’이라는 것이 연상된다. ‘눈먼 시계공’은 로봇을 우승시키기 위해, 어머니의 복수를 하기 위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어리석은 로봇공학자 노민선을 뜻하기도 한다. 소설에 담긴 인류의 미래는 충격 그 자체다. 그렇다고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허황된 소설로 치부해버리고 지나칠 수가 없다. 테크노스릴러로 포장했지만 과학기술이 가져 올 미래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과 인간 생존 문제 등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21세기 들어 이미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유전학, 나노기술, 로봇공학이라는 심원한 혁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소설에서 재미 이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소설의 大尾는 에필로그인 ‘눈보라’다. 은석범 검사와 남앨리스 형사는 연쇄살인을 해결한 일등 공신이었지만 보안청을 사직할 수밖에 없었다. 노민선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스티머스 수사팀의 실체를 폭로한 석범에게는 기밀 누설죄가 적용되었고, 사고로 75%의 기계몸을 갖게 된 앨리스는 인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석범은 죽은 어머니의 뜻을 잇기 위해 특별시를 떠나 생태주의자들의 마을로 가기로 하고, 눈보라 마을로 사람들을 초청하는 안내문을 작성한다. “우리는 결코 우리끼리만 평화롭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눈보라 ‘속’에 있습니다. 깨어 움직이지 않으면 쓰러지고 맙니다.” 그때 방송국 PD인 왕고모 이윤정이 새 작품을 의논하자고 들이닥친다. 이를 피해 석범은 앨리스와 밖으로 뛰쳐나가는데 앨리스가 묻는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석범이 답했다. “눈보라 속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줄곧 들었는데, 특히 이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멋진 장면이 연출될 것 같아 마음이 설레기까지 한다.

매주 한차례씩 나가는 독서모임에서 최근에 읽은책이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n Near)』였다. 이 책의 저자인 미래학자이자 발명가인 레이 커즈와일 박사는 2030년쯤 유전공학, 나노공학, 로봇공학 등 과학기술의 발전속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는 급격한 변화의 시점인 ‘특이점’이 온다고 예언했다. 그때쯤이면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게 되며 인간이 자신의 기억을 기계에 이식해 정신적으로 불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처음에는 그의 주장이 무척 엉뚱하고 과격하게 들렸는데 이 소설을 읽다보니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2010년의 인류는 집단지성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고 정보기술의 발전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나가고 있는 중이다. 컴퓨터의 기능이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이 지속된다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컴퓨터의 출현은 결국 시간문제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가 특이점 이후를 ‘유토피아’로 부르지만, 특이점대를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시도로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 정신적 불멸을 추구하는 부류와 현재의 모습을 지키려는 부류로 인류가 나뉠 가능성도 있다.『눈먼 시계공』에서 그리는 미래사회의 모습도 결코 ‘유토피아’ 는 아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는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아마 인류가 맞이하게 되는 미래모습이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는지는 결국 우리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과연 인류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상상력은 어디까지 실현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미래의 인간은 그래서 더 행복할까.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의문이다. “가장 좋은 시간이었으면서도 가장 나쁜 시간이었다. 지혜로움의 시대였으면서도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두 도시이야기》에서 찰스디킨스가 한 말이다. 우리시대를 두고 그렇게 말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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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제국 록펠러 1 - 그 신화와 경멸의 두 얼굴
론 처노 지음, 안진환.박아람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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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록펠러, 그 신화와 편견을 벗긴다 

『부의 제국 록펠러 1,2』
론 처노 지음, 안진환・박아람 옮김, 21세기북스, 2010

아버지는 자신이 받아줄 테니 높은 의자에서 뛰어내리라고 아들을 부추기곤 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받아 안아줄 듯이 팔을 내밀고 있다가 내려버렸고, 아들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시 한 번 가르침을 상기시켰다. “기억하라고 했지. 어느 누구도 완전히 믿어서는 안 돼. 이 아빠마저도 말이야.” 아버지에게서 냉철함과 집념을 배운 이 아이가 바로 훗날 세계 최초의 억만장자이자 19세기 말 가장 큰 사업제국을 건설한 미국의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1839∼1937)다. 이 책은 미국의 시사평론가이자 최고의 금융 전문 저술가인 론 처노가 방대한 자료를 샅샅이 뒤져 록펠러의 98년에 걸친 일생을 치밀하게 추적하여 그의 민얼굴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특히 아버지와의 애증관계, 형제 간의 갈등처럼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록펠러가의 스캔들과 어두운 비밀들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록펠러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집요한 시선 앞에서 그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낸 적이 없었다. 저자는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격렬한 논란과 깊은 침묵에 싸여 은둔자로 살았던 록펠러의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며 그를 세상으로 이끌어 냈다. 은밀한 가족사에서부터 부에 대한 집착과 성공의 과정을 추적하여 그간 탐욕스럽고 냉철한 기업가로만 알려졌던 이미지를 완전히 뒤흔들어, 한 인간의 삶의 궤적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방탕한 허풍쟁이 약장수인 아버지와 신실하고 엄격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이중적인 심리상태를 겪으며 성장한 록펠러는 혼자 힘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막강한 독점기업인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제국을 건설했다. 1911년 연방정부에 의해 스탠더드 오일이 해체되어 수십 개의 회사로 분할될 때까지 30년 동안 미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며 엄청난 권력과 금력을 휘둘렀다. 스탠더드 오일이 단단한 독점체제를 유지하는 동안 등유 가격은 80% 이상 내려갔고 품질 혁신은 물론 산업 역시 비약적 발전을 이뤄 현대 기업의 모델이 됐을 정도다. 1890년대 록펠러가 사업 일선에서 물러났을 당시 미국인들의 평균 수입은 주당 10달러 이하였던데 비해 그의 평균 소득은 연간 1,000만 달러라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1893년에서 1901년 사이에 스탠더드 오일이 분배한 2억5,000만 달러가 넘는 배당금 중에서 4분의 1 이상이 그대로 그의 금고로 들어갔다. 록펠러는 남북전쟁 후 미국인들의 삶을 변화시킨 자본주의 혁명의 상징이며 미국 비즈니스 세계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기업을 설립하는 직관적인 1세대적 특징과 기업을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분석적인 2세대적 경영자의 특징을 모두 갖췄던 그의 경력은 20세기 경영자 자본주의를 예고하는 것이라 할 만하다. 그는 대규모 기업의 효율성을 명백하게 증명한 독점의 한 형태를 완성시켰고 새로운 법인 조직을 형성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의 길을 닦았다. 그는 검약과 자립, 피나는 노력, 지칠 줄 모르는 기업가정신 등의 덕목을 몸소 구현했으며 윤리성에 대해서는 뭐라 논하든, 경제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한결같이 그를 현대 기업의 선구자로 꼽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가격경쟁, 정경유착, 산업스파이, 노조탄압 등 부도덕한 일련의 행위로 인해 엄청난 비난의 화살이 그에게 쏟아졌다. 록펠러는 당대의 가장 거대한 반독점 소송을 피하기 위해 오랜세월 견고한 침묵과 무표정한 가면 뒤에 숨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세상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망자’라 조롱하기도 했다.

탐욕과 악의 화신으로 비춰진 냉혹한 석유재벌이 록펠러 모습의 전부는 아니다. 이 책 곳곳에는 록펠러집안 사람들이 사소한 액수의 돈조차도 따지고 계산하며 얼마나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태도를 유지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많다(특히 1권 454쪽, 601쪽). 그러한 습관은 단순히 인색함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돈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엄격한 침례교 사상을 바탕으로 절제와 검약을 신봉했으며 유례없는 통 큰 규모의 자선활동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그의 기부 행위를 그가 저지른 불법・탈법 행위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공격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기 위한 노력이거나 면죄부를 사는 행위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돈을 버는 일에서 돈을 최대한 현명하게 쓰는 일로 삶의 초점을 바꾼게 사실이다. ‘부자로 죽는 일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다’라는 카네기의 말에 공감했으며 ‘최대한 벌어 최대한 베푸는 것’을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으로 삼고 평생 이를 실천했다. 그는 인류가 불행의 원인을 깊게 파고들지 않고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나눠주는 것은 가장 창의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쓰는 일이라고 경계했다. 이를테면 거지들에게 돈을 주는 대신 거지들이 생겨난 원인을 제거하는 일에 더욱 몰두하는 식이다. 록펠러는 눈과 귀가 먼 16세의 헬렌 켈러에게 익명으로 도움을 제공했고 마크 트웨인 역시 그의 후원에 힘입어 왕성한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가 평생 기부한 액수는 5억3,000만 달러에 달했는데 록펠러 재단은 그중에서도 특히 의학, 의료 교육 및 공공보건에 관한 미국 최고의 후원단체가 되었다. 뇌척수막염이라는 전염병으로 인해 3천명에 달하는 뉴욕 시민이 죽어 갈 때 새로운 치료혈청을 개발해 무상으로 나누어 줌으로써 수천 명의 목숨을 구했다. 또 십이지장충 캠페인을 적극 후원해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을 질병에서 구하는 등 의료나 교육발전에 대한 그의 공적은 실로 대단하다. 그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엇갈리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이유는 그의 단점 하나하나가 나빴던 만큼 장점 하나하나가 더없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역사상 그처럼 모순적인 인물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신실한 록펠러와 비열한 동기로 가득찬 사업가 록펠러라는 두 얼굴을 대하다 보면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비평가협회상 수상과 타임 선정 ‘올해 최고의 책’ 등 잇달아 찬사를 받기도 한 이 책은 두권을 합쳐 물경 1,26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보니 읽기에 다소 버거울지 모르지만 일단 한번 책을 붙잡으면 놓기가 쉽지 않다. 산타클로스도, 스쿠루지도 아닌 (어쩌면 그 둘의 속성을 모두 갖고있는) 록펠러라는 매력적인 인물의 성장과정과 내면풍경을 실감나게 읽는 맛이 쏠쏠하다. 거기다 미국 산업 역사상 최대의 공적을 세운 거인의 어깨위에서 인물과 시대를 조망하며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 록펠러가 남긴 모순적인 유산에서 현대 자본주의가 배워야 할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은 최대의 성과가 될 것 같다. 읽을만한 전기・평전이 귀한 현실에서 사람을 통해 시대를 돌아보고 역사를 짚어보는 각별한 맛을 제공한다. 마침 록펠러 가문의 5대 손인 스티븐 록펠러 2세가 지난 10월 서울을 찾았다. 한국 록펠러재단을 설립하여 환경문제, 여성차별, 문화갈등 해결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록펠러를 알리기에 좋은 기회인 듯 싶다. -끝-
* 기획회의 283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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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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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있습니까?
 

『빅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밝은세상, 2010

 

Mr.벤!

오랜만에 스릴러라는 장르를 읽으며 당신을 만나는군요. 원래 추리나 스릴러물을 그다지 즐겨읽는 편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그냥 지나칠뻔 했습니다. 그런데 월가가 있는 뉴욕을 배경으로 단정한 슈트에 목에 걸린 카메라. 피묻은 손, 그리고 얼굴을 가린 야구모를 쓴 또 하나의 얼굴사진의 책 표지가 순간적으로 내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책을 중간쯤 읽고나서야 가려서 보이지 않는 얼굴이 원래 당신의 얼굴이고, 모자를 쓴 모습 역시 당신의 또다른 얼굴임을 알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앞날이 보장된 뉴욕 월가의 변호사 벤 브래드포드가 당신의 이름이었습니다. 베스라는 이름을 가진 미모의 아내와 귀여운 두 아이와 함께 중상류층이 모여 사는 교외 고급 주택에 살고 있었지요. 겉으로는 아무 부러울것이 없는 사람이지만 벤 당신은 조금도 즐거워 하지 않더군요. 당신의 오랜 소망은 사진가가 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동안 그가 느꼈던 희열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미국 상위 1퍼센트에 들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자금 압박과 이미 안락한 생활에 길들여진 스스로의 탓으로 변호사라는 안락한 생활에 파묻혀 그럭저럭 살고 있습니다. 인생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자택의 지하에 전용 암실을 만들고, 값비싼 최신 카메라 장비를 구입하곤 하지만 당신의 인생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지루한 삶을 버티지 못하던 당신은 아내의 예술적 욕구를 살필 겨를이 없었지요. 지리멸렬해진 일상에 권태를 느끼던 어느 날 아내가 이웃집에 사는 사진가 게리와 불륜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 당신은 게리네 집에 찾아가 말싸움을 벌이던 중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하고 맙니다.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변호사에서 일급살인을 저지른 범법자가 될 운명에 처한 당신은 요트사고를 위장해 사건을 은폐한 후 몬태나 주 마운틴폴스로 도망칩니다. 

Mr.게리!

당신은 변호사다운 영민함과 치밀함을 발휘하여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나지만 가정과 직장을 송두리째 빼앗긴 상태로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맙니다. 가짜 신분증으로 Mr.벤이 아닌 Mr.게리라는 다른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전전긍긍한 삶을 새로 시작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사진가의 재능을 싹틔우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도피의 길에서 무심코 찍은 인물 사진이 우연히 지역 신문에 게재되면서 일약 유명 사진가의 길로 들어서기 직전까지 갑니다. 이걸 그냥 뒤늦게 찾은 ‘행복’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댓가가 너무 큽니다. 다른 사람의 눈과 세상을 속이며 살아야 하는 엄청난 절망감과, '애덤'과 '조시' 두 아이에 대한 그리움에 하루에도 몇 번씩 이게 현실이 아니고 꿈이기를 간절히 빌어 봅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울적하고 비극적인 현실로 나타나 매스컴의 취재 요청이 쇄도하는 가운데 숨겨진 과거를 발각당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많은 독자들은 이 소설을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소설’ ‘끝나는 걸 두려워하며 읽는 소설’이라고 평합니다. 나 역시 기발한 착상, 간결한 문장,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 폭발적인 스피드, 계속되는 반전 때문에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마치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도망자’ 시리즈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무작정 숨고 달아나는 그런 도망자가 아닌, 멈춰서 돌아보고 한숨쉬는 안타까운 도망자입니다. 아마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당신과 함께 도망가고 당신과 함께 숨고 당신과 함께 한숨을 쉬었을 겁니다. 쉴 틈 없는 사건 전개로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으면서도 때때로 책을 덮고 싶은 막막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는 책을 읽는 내내 당신의 죄가 세상에 밝혀지지 말고 그냥 이대로 덮어 지기를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아마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좌절하는 모습이 당신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인 듯 합니다.

Mr.벤 또는 게리!

사람들이 당신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진정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던 당신의 모습이 현재와 다른 삶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갈망을 집약적으로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원래 살고 싶었던 삶을 사는 당신의 모습에서,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못한 채 일탈을 꿈꾸는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진짜 바라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겁니다. 이 소설이 조만간 프랑스에서 로맹 뒤리와 카트린 드뇌브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프랑스 판 소설 제목인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남자』가 그대로 영화 제목으로 쓰이게 되었다는 소식도 함께 들립니다. 나는 기꺼이 첫 상영 영화의 관객이 될 것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새로운 화두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림자를 붙잡느라 실체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책의 맨 앞장에 써 있는 이솝의 경구 말입니다. 주위사람들에게 당신의 이야기가 담긴, 아니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는 이 책을 사서 선물하며 책의 속표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잘 살고 있습니까?” -끝-(2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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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음모 - 부자 아빠 기요사키가 말하는
로버트 기요사키 지음, 윤영삼 옮김 / 흐름출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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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음모속에서 살아남기 

『부자아빠 기요사키가 말하는 부자들의 음모』

로버트 기요사키 지음, 윤영삼 옮김, 흐름출판, 2010
 
부동산이나 주식투자로 수십억, 수백억 원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귀가 솔깃해진다. 떠도는 소문과 남들 얘기만 믿다가 낭패를 당했거나, 우왕좌왕하다 번번히 막차를 타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던 사람이라면 부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럴때면 그동안 사서 읽었던 재테크 서적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처음에는『부자아빠 기요사키가 말하는 부자들의 음모』도 또 그저 그런 류의 재테크 책이려니 하고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비슷한 종류의 책만 10여권을 낸 저자의 이력을 아는데다 전작인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성공 투자 사례에 대한 미심쩍음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돈의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는 그의 주장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고,부자들의 음모에 대한 역사적 고찰 또한 흥미로웠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음모의 역사를 다룬다. 거대 갑부들이 돈 공급량을 조절하여 세계경제와 정치 시스템을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2부에서는 이러한 부자들의 음모 속에서 우리 돈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자들이 만든 부자들만의 게임에 더 이상 이용당하지 않고, 그들의 음모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제시한다. 이 책은 ‘부자 아빠 시리즈’ 중에서도 독자들과 온라인으로 상호교류하면서 쓴 첫 번째 책이다. 저자는 지난 2009년 1월 '부자들의 음모'라는 웹사이트(www.conspiracyoftherich.com)를 열고 원고를 쓰면서 온라인으로 독자들과 의견을 주고 받았다. 본문 중간 중간에 실려져 있는 인상적인 ‘독자 코멘트’와 ‘스페셜 보너스 Q&A’가 그 결과물이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라. 좋은 직장을 잡아 열심히 일하라. 버는 한도 내에서 아껴 쓰고 저축하라.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집을 사라." 부자들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말이다. 우리는 그동안 학교에서도 이렇게 배웠고 정부도 공공연하게 이런 말을 퍼뜨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런데 불변의 진리로 통하는 이 말은 사실 부자들이 자신들의 주머니를 더 많이 채우기 위한 속임수이며, 열심히 돈 벌어서 세금을 많이 내라고 부추기는 말에 불과하다. 부자들은 이미 오래 전에 '돈의 규칙'을 바꿨고 자기들끼리만 그 규칙을 공유해왔다. 그런데도 그들의 말만 믿고 따른다면 금융 노예로 전락하는건 시간문제다. 2007년 12월 시작된 미국의 경기침체가 3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 침체다. 집값은 4년새 반토막이 났고 팔아도 대출금을 못갚는 ‘깡통주택’(집값이 모기지 상환액에 미치지 못하는 주택)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번 경제위기때 지옥과 천당을 오가며 충격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여전히 안전벨트를 풀지 못할 상황이다. 더 이상 정부나 금융기관을 믿고 살 수 없는 시대다. 기요사키는 은행・정부・시장을 지배해 온 금융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결론을 내린다. “당신이 가난한 이유는 부자들의 음모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부자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다음에 제시하는 '돈의 새로운 8가지 법칙'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1. 돈은 지식이다 2. 빚을 이용하는 법을 배워라 3. 현금흐름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라 4. 힘든시기를 대비하라 5.지금 필요한 건 스피드 6. 돈의 언어를 배워라 7. 삶은 팀 경기다 8. 돈의 가치가 떨어질수록 자신의 돈을 찍어내는 법을 배워라

많은 사람들이 빚을 지는 것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좋은 빚도 있고 나쁜 빚도 있다. 좋은 빚과 나쁜 빚을 구분하는 것은 간단하다. 나쁜 빚은 우리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가지만, 좋은 빚은 우리 주머니에 돈을 넣어준다. 신용카드는 나쁜 빚이지만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건물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빌리는 것은 좋은 빚이다. 분산투자 역시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개념중에 하나다. 흔히들 금융설계사들이 분산투자를 하라고 하면서 중소기업 주식, 대기업 주식, 부동산투자신탁(리츠), 상상지수펀드(ETF), 채권펀드 등 다양한 뮤츄얼펀드에 투자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분산투자가 아니라 중복 구매일 뿐이다. 금융지식이 많은 투자자는 사업, 소득을 만들어 내는 투자 부동산, 종이자산, 상품자산 이 네 분야에 골고루 투자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분산투자다. 돈의 언어를 배우라는 대목 역시 귀담아 들어야겠다. 우리가 쓰는 말이 곧 우리를 대변한다.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말을 바꿔야 한다. "나는 절대 부자가 되지 못할 거야" "나는 돈에 관심이 없어" 이렇게 말하는 순간 들어오는 돈까지도 달아나는 법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실천하자. 어차피 말에는 돈이 들지 않는 법이니까. 

무엇보다도 저자는 또다시 불어오는 경제혼란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지금부터라도 대비하라고 말한다. 오늘날 세계경제를 뒤덮고 있는 세계금융위기를 미국 정부는 더 많은 돈을 찍어내 해결하려 하고 있다. 결국 세상에 돈은 갈수록 넘쳐나게 되고 인플레이션은 심화되어 마침내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올지 모른다. 미국에서 돈을 찍어내는 만큼, 미국에 수출하여 경제를 유지해나가는 우리나라도 그만큼 돈을 찍어내야 한다. 미국이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빠지면 한국도 똑같이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빠질 위험이 높다. 저자는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며 2007년 시작된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세계적인 공황의 전조라고 주장한다. 만약 공황이 온다면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발생하는 미국식 공황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발생하는 독일식 공황이 올거라고 우려한다. 독일식의 살인적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현금은 최소한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인플레이션에 따라 변동하는 가치에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하며 대표적인 투자 대상으로 금, 은, 원유 등을 꼽는다. 어찌되었건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자기만의 돈을 찍어내는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국제금융을 쥐락펴락하는 거대한 손들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경제의 흐름에 둔감한 우리의 무지이며,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대정부 시위가 아니라 경제공부다. '부자 아빠 시리즈’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 경제와 금융의 흐름을 읽는 지식, 즉 '금융 I.Q'를 높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혹시 기요사키의 책을 여러 권 읽은 독자라면 이 책의 내용이 지금까지의 책과 별반 다를바 없는 동어반복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를 위해 사업을 하고 돈을 어떻게 굴릴 것인지를 고민하라" "빚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워라" "현금흐름에 초점을 맞춰라" 등 '부자 아빠 시리즈'에서 그가 펼쳐온 일관된 주장은 다시 읽어도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마지막에 실린 한 재테크커뮤니티 회원들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먼저 원고를 읽고 작성한 '이 책을 먼저 읽고 나서'에서는 이러한 독자들의 반응이 잘 나타나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행동하는 자는 행동하지 않는 자를 이기는 법이다. 이 책을 읽고 분산투자의 정확한 의미와 현금흐름과 자산소득을 구분하는 방법을 터득해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는 등 행동변화를 일으킬 독자도 분명 생길 것이다. 필자도 당분간 책선물을 이 책으로 할 작정이다. 물론 정말 친한 사람들에게만 말이다. -끝-
* 기획회의 281 (2010.10) 기고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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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딕셔니어 미래를 계산하다 - 북핵 문제에서 지구 온난화까지, 게임이론이 보여주는 미래 설계도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미래를 미리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프리딕셔니어, 미래를 계산하다』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지음, 김병화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0 

미래가 꽤 궁금한 시대다. 2008년 전 세계를 혼란스럽게 했던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회복되던 세계경제의 기류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추운 겨울날 안경 쓰고 올라 탄 버스 안처럼 눈앞이 흐릿해지고 먹구름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앞을 내다보고 미래를 예측하고 싶은 욕구가 그 어느때 보다 강렬하다. 『프리딕셔니어, 미래를 계산한다』에서는 이러한 미래 예측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프리딕셔니어(Predictioneer)는 '미래를 예측하는 자'라는 뜻의 신조어다. 매일 살아가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세계에서 어떤 중대한 사건이 벌어질지 안다면 미리 대비할 수 있으니 큰 도움이 될 수 있는게 당연하다. 사업에 관한 일이건, 국가 안보 문제이건 정치・경제를 전망하는 일이건 모두 같다. 저자인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는 뉴욕대 정치학과 석좌교수이자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의 고등연구원으로, 미국 정부의 안보자문위원으로 활동중이며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아주 영향력이 큰 학자로 손꼽힌다. 미국 CIA와 국무부, 세계 500대 기업에 미래 사건을 예측해주는 컨설팅회사의 CEO이기도 한 그는 중동 문제, 이라크 사태, 엔론사 회계부정 사건 등 굵직한 국제적 사건들을 다수 예측한 ‘현대판 노스트라다무스’로도 유명하다. 지난 30년 동안 발전시켜 온 게임이론 모델을 통해 수많은 예측을 내놓았으며, 미국 CIA는 이 예측들이 “90퍼센트 이상의 정확도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는 게임이론이라는 최신의 수학모델을 바탕으로 현실의 사건을 분석해 가까운 미래를 예측한다. 게임이론이란 행위자들 간의 전략적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이론으로, 게임 참여자들 간의 선택과 판단이 일으키는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결과를 수학적으로 분석하여 미래를 예측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력한 도구다. 저자는 인간이란 자신에게 최선이라고 믿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매우 예측 가능한 존재이며, 어떤 일을 하든 자기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애쓰는 직관적인 게임이론가들 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믿는지 신중하게 생각해보면 그들의 행동을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사회는 거대한 체스게임과 같은 것이며, 컴퓨터의 체스 프로그램이 그러듯이 진로를 예측할 수도 있다. 사람들의 입장, 원하는 정도, 영향력 등을 정교하게 고려한다면 일반적인 패턴을 추출해낼 수 있고, 심지어 원하는 결과를 낳는 절묘한 해법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통찰이나 직관에 기반한 ‘예언(Prophecy)'이 아니라 정보와 자료에 근거한 ‘예측(Prediction)' 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이런 객관적인 힘의 흐름에 주목하고 그것을 계산해냄으로써 미래를 ‘예언'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이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북핵문제에 대한 해법이다. 저자는 남북한 당국자들의 현재 입장과 목표, 미국・중국・일본 정부가 처한 입장, 당사자들 간의 상호작용과 효과 등 을 모두 숫자로 환산하여 하나의 척도 위에 표시한다. 그리고 북한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하여 당사자들이 최대한 접근할 수 있는 합의점이 어디인지를 알아낸다. 그는 종잡을 수 없어 보이는 북한의 김정일조차도 ‘합리적 행위자’로 규정하며, 김정일 역시 자신의 카드를 매우 영악하게 사용하는 게임 플레이어라고 말한다. 김정일은 주변국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와 자신이 쓸 수 있는 핵무기라는 유일한 카드의 범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테지만 섣불리 그것을 사용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국제사회는 그에게 완전한 핵 폐기를 기대할 수는 없고, 오히려 체제 유지에 필요한 10억 달러 정도를 매년 지원해 관리해나가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마침 이 책을 읽는 중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보가 또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의 전격적인 중국방문 목적을 놓고 천안함 사태에 대한 대북제재 탈출구 모색, 북한의 수해 복구 지원, 아들 김정은의 3대 세습 추인 등 여러가지 관측이 나돌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보다 하루전인 8월 25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했고, 같은 시각 우다웨이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는 서울에 있었다. 북핵 문제를 다루는 부분을 보면 마음이 좀 복잡해지는게 사실이다. 저자가 미국인이고 미국 정부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기 때문에 현재 남북한에 대한 포괄적이고 역사적인 이해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싸고 흐르는 복잡다단하고 미묘한 기류는 ‘프리딕셔니어’의 말에 바짝 더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은 세계경제를 전망하는 책은 아니다. 대신 진화를 거듭한 게임이론을 통해 스파르타의 멸망 원인부터 지구 온난화 문제까지 '세상을 움직이는 패턴'을 읽어내고, 그것을 통해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는 법을 밝힌다. 이제까지 점성가의 수정구슬이나 전문가들의 애매모호한 발언에 기댈 수 밖에 없었던 영역이 새로운 패턴과학의 출현으로 획기적인 전기를 맞은 셈이다. ‘죄수의 딜레마’ ‘내시 균형’ 등 게임이론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해 이 책이 다소 버거운 독자라면 최정규 교수가 지은『이타적인 인간의 출현(2009년 개정증보판)』을 미리 읽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어느 지면에서 이 책만큼 게임이론을 쉽게 풀어쓴 책은 없다며 추천했던 게 기억난다.『프리딕셔니어, 미래를 계산하다』를 읽은 뒤 ‘미래예측자’의 눈을 갖게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생활에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는 계기로 삼기만 해도 다행스런 일이다. 혹시 아는가. 족집게 문어 스타 ‘파울(Paul)'처럼 오늘 점심값을 누가 낼지 척척 알아 맞히게 될는지. -끝-
  * 기획회의 280호 (2010.9) 기고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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