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제국 록펠러 1 - 그 신화와 경멸의 두 얼굴
론 처노 지음, 안진환.박아람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두 얼굴의 록펠러, 그 신화와 편견을 벗긴다 

『부의 제국 록펠러 1,2』
론 처노 지음, 안진환・박아람 옮김, 21세기북스, 2010

아버지는 자신이 받아줄 테니 높은 의자에서 뛰어내리라고 아들을 부추기곤 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받아 안아줄 듯이 팔을 내밀고 있다가 내려버렸고, 아들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시 한 번 가르침을 상기시켰다. “기억하라고 했지. 어느 누구도 완전히 믿어서는 안 돼. 이 아빠마저도 말이야.” 아버지에게서 냉철함과 집념을 배운 이 아이가 바로 훗날 세계 최초의 억만장자이자 19세기 말 가장 큰 사업제국을 건설한 미국의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1839∼1937)다. 이 책은 미국의 시사평론가이자 최고의 금융 전문 저술가인 론 처노가 방대한 자료를 샅샅이 뒤져 록펠러의 98년에 걸친 일생을 치밀하게 추적하여 그의 민얼굴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특히 아버지와의 애증관계, 형제 간의 갈등처럼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록펠러가의 스캔들과 어두운 비밀들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록펠러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집요한 시선 앞에서 그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낸 적이 없었다. 저자는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격렬한 논란과 깊은 침묵에 싸여 은둔자로 살았던 록펠러의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며 그를 세상으로 이끌어 냈다. 은밀한 가족사에서부터 부에 대한 집착과 성공의 과정을 추적하여 그간 탐욕스럽고 냉철한 기업가로만 알려졌던 이미지를 완전히 뒤흔들어, 한 인간의 삶의 궤적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방탕한 허풍쟁이 약장수인 아버지와 신실하고 엄격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이중적인 심리상태를 겪으며 성장한 록펠러는 혼자 힘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막강한 독점기업인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제국을 건설했다. 1911년 연방정부에 의해 스탠더드 오일이 해체되어 수십 개의 회사로 분할될 때까지 30년 동안 미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며 엄청난 권력과 금력을 휘둘렀다. 스탠더드 오일이 단단한 독점체제를 유지하는 동안 등유 가격은 80% 이상 내려갔고 품질 혁신은 물론 산업 역시 비약적 발전을 이뤄 현대 기업의 모델이 됐을 정도다. 1890년대 록펠러가 사업 일선에서 물러났을 당시 미국인들의 평균 수입은 주당 10달러 이하였던데 비해 그의 평균 소득은 연간 1,000만 달러라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1893년에서 1901년 사이에 스탠더드 오일이 분배한 2억5,000만 달러가 넘는 배당금 중에서 4분의 1 이상이 그대로 그의 금고로 들어갔다. 록펠러는 남북전쟁 후 미국인들의 삶을 변화시킨 자본주의 혁명의 상징이며 미국 비즈니스 세계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기업을 설립하는 직관적인 1세대적 특징과 기업을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분석적인 2세대적 경영자의 특징을 모두 갖췄던 그의 경력은 20세기 경영자 자본주의를 예고하는 것이라 할 만하다. 그는 대규모 기업의 효율성을 명백하게 증명한 독점의 한 형태를 완성시켰고 새로운 법인 조직을 형성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의 길을 닦았다. 그는 검약과 자립, 피나는 노력, 지칠 줄 모르는 기업가정신 등의 덕목을 몸소 구현했으며 윤리성에 대해서는 뭐라 논하든, 경제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한결같이 그를 현대 기업의 선구자로 꼽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가격경쟁, 정경유착, 산업스파이, 노조탄압 등 부도덕한 일련의 행위로 인해 엄청난 비난의 화살이 그에게 쏟아졌다. 록펠러는 당대의 가장 거대한 반독점 소송을 피하기 위해 오랜세월 견고한 침묵과 무표정한 가면 뒤에 숨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세상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망자’라 조롱하기도 했다.

탐욕과 악의 화신으로 비춰진 냉혹한 석유재벌이 록펠러 모습의 전부는 아니다. 이 책 곳곳에는 록펠러집안 사람들이 사소한 액수의 돈조차도 따지고 계산하며 얼마나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태도를 유지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많다(특히 1권 454쪽, 601쪽). 그러한 습관은 단순히 인색함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돈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엄격한 침례교 사상을 바탕으로 절제와 검약을 신봉했으며 유례없는 통 큰 규모의 자선활동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그의 기부 행위를 그가 저지른 불법・탈법 행위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공격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기 위한 노력이거나 면죄부를 사는 행위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돈을 버는 일에서 돈을 최대한 현명하게 쓰는 일로 삶의 초점을 바꾼게 사실이다. ‘부자로 죽는 일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다’라는 카네기의 말에 공감했으며 ‘최대한 벌어 최대한 베푸는 것’을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으로 삼고 평생 이를 실천했다. 그는 인류가 불행의 원인을 깊게 파고들지 않고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나눠주는 것은 가장 창의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쓰는 일이라고 경계했다. 이를테면 거지들에게 돈을 주는 대신 거지들이 생겨난 원인을 제거하는 일에 더욱 몰두하는 식이다. 록펠러는 눈과 귀가 먼 16세의 헬렌 켈러에게 익명으로 도움을 제공했고 마크 트웨인 역시 그의 후원에 힘입어 왕성한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가 평생 기부한 액수는 5억3,000만 달러에 달했는데 록펠러 재단은 그중에서도 특히 의학, 의료 교육 및 공공보건에 관한 미국 최고의 후원단체가 되었다. 뇌척수막염이라는 전염병으로 인해 3천명에 달하는 뉴욕 시민이 죽어 갈 때 새로운 치료혈청을 개발해 무상으로 나누어 줌으로써 수천 명의 목숨을 구했다. 또 십이지장충 캠페인을 적극 후원해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을 질병에서 구하는 등 의료나 교육발전에 대한 그의 공적은 실로 대단하다. 그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엇갈리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이유는 그의 단점 하나하나가 나빴던 만큼 장점 하나하나가 더없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역사상 그처럼 모순적인 인물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신실한 록펠러와 비열한 동기로 가득찬 사업가 록펠러라는 두 얼굴을 대하다 보면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비평가협회상 수상과 타임 선정 ‘올해 최고의 책’ 등 잇달아 찬사를 받기도 한 이 책은 두권을 합쳐 물경 1,26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보니 읽기에 다소 버거울지 모르지만 일단 한번 책을 붙잡으면 놓기가 쉽지 않다. 산타클로스도, 스쿠루지도 아닌 (어쩌면 그 둘의 속성을 모두 갖고있는) 록펠러라는 매력적인 인물의 성장과정과 내면풍경을 실감나게 읽는 맛이 쏠쏠하다. 거기다 미국 산업 역사상 최대의 공적을 세운 거인의 어깨위에서 인물과 시대를 조망하며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 록펠러가 남긴 모순적인 유산에서 현대 자본주의가 배워야 할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은 최대의 성과가 될 것 같다. 읽을만한 전기・평전이 귀한 현실에서 사람을 통해 시대를 돌아보고 역사를 짚어보는 각별한 맛을 제공한다. 마침 록펠러 가문의 5대 손인 스티븐 록펠러 2세가 지난 10월 서울을 찾았다. 한국 록펠러재단을 설립하여 환경문제, 여성차별, 문화갈등 해결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록펠러를 알리기에 좋은 기회인 듯 싶다. -끝-
* 기획회의 283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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