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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김연수의 소설은 어렵다. 이해가 안되기도하고 금방 잊어서 자꾸 앞페이지를 들추게된다. 그래서 짧다면 짧은 이 소설을 지지부진하게 잡고있었다 .
일곱 해의 마지막은 시인 백석의 ‘알려지지 않은’ 일곱 해의 삶(1957년~1963년)을 김연수 작가의 상상력으로 써내려간 픽션이란다. 전쟁 후 번역 일을 하며 살아가던 시인이 , 번번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원하는 시를 쓸수없는 시절인 칠 년 동안의 시간이 담겨있고 김연수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 “이것은 백석이 살아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백석시인에 대한 평전을 몇해전 재미없게 읽었었는데 그래도 이 글을 읽을때 퍼즐을 맞추듯 상기하는 재미는 좀 있었다.
다 읽었는데도 사실 뭘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는 좋았고 다시 읽으면 더더 좋을것임을 확신한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살아있으면서도 가슴가득 품은 시 한줄 펴지못하고 살았던 시인의 세월이 슬프다. 그 젊던 댄디보이 백석의 웃는 사진이 생각나 아쉽다.
"외로움을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하니까 그럴 수밖에. 외로워야 육친의 따스함을 아는 법인데, 이 사회는 늘 기쁘고 즐겁고 법찬 상태만 노래하라고 하지. 그게 아니면 분노하고 증오하고 저해야 하고, 어쨌든 늘 조증의 상태로 지내야만 하니 외로움이 문지 고독이 뭔지 알지 못하겠지. 요전번에는 종로의 한 화랑에서그림을 봤는데, 무슨 제철소인가 어딘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그려놓았더군. 그런데 육중한 철근을 멘 노동자들이 모두 웃고 영더라구.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 슬픔을 모르는 인간, 고독겨를이 없는 인간, 그게 바로 당이 원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인형인가봐. 그러니 나도 웃을 수밖에 - P30
"이건 마치 항상 기뻐하라고 윽박지르는 기둥서방 앞에 서 있는 억지춘향의 꼴이 아니겠나. 그렇게 억지로 조증의 상태를 만든다고 해서 개조가 이뤄질까? 인간의 실존이란 물과 같은 것이고, 그것은 흐름이라서 인연과 조건에 따라 때로는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며 때로는 호수와 폭포수가 되는 것인데, 그 모두를 하나로뭉뚱그려 늘 기뻐하라, 벅찬 인간이 되어라, 투쟁하라, 하면 그게가능할까?" - P31
기행은 대답을 망설였다. 당시에는 그와 만나기만 해도 사상을심받던 시절이었다. 마치 단 한 번의 접촉만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여기듯이. 그러는 동안에도 눈은 그의 머리 위에, 어깨 위에, 신발 위에 내려 쌓였다. 그는 그 거리에서 곧 지워질 것처럼보였다. - P70
그랬더니 무서운 생각이 들더군. 그때에도 보름이면 이세상은 달빛으로 가득차지 않겠나? 달이야 거기 사람이 있든 없든 찼다가 이지러지는 그 자연의 법칙을 반복하겠지. 그런 무심한것이 자연이라는 것도 모르고 인간들은 거기에 정을 둔단 말이지. 마치 해와 달이 자기 인생을 구원해주기라도 하듯이 말이야. 오있는 것,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사람이 누릴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다. 상하의 말처럼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볼 뿐 거기에호, 우리의 태양이시여, 영원한 달님이시여, 라고 찬양하면서, 하지만 해와 달은 그 누구의 인생도 구원하지 않아. 우리도 그런 자연을 닮아 노래는 들리는 대로 들으면 되고, 춤은 보이는 대로 보면 되는 거지, 좋으니 나쁘니 마음을 쏟았다 뺏었다 할 필요는 없었던 거야." 해와 달의 이야기를 할 때, 상허의 얼굴에서 잠시나마 표정이사라졌다. 기행은 그 무표정이 반가웠다. 잘 모를 때는 그 무표정이 까끈한 성격에서 기인한다고 여겼으나 상허가 조금 이상해지고 난 뒤부터는 그게 얼마나 인간적인 표정인지를 기행은 알게 됐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는 것, 어떤 시를 쓰지 않을 있느것, 무엇에대해서도 말하지 않을수있는것. 사람이 누릴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않을수 있는 힘이었다. - P85
번역했다. 불붙은 산하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지옥보다 더 나쁜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은 지옥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이었다. 그런 삶에도 탈출구가 있는 것일까? 생각에 잠긴 기행에게 벨라가 말했다. 그리고 이제 그 상을 더이상 스탈린상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소련연방상으로 이름을 바꿨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아무리 혹독한 시절이라도 언젠가는 끝이 납니다. 사전에서 ‘세상‘의뜻풀이는 이렇게 고쳐야 해요. 영원한 것은 없는 곳이라고."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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