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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밤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2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 지음, 김혜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러시아는 굳이 꾸며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여자들의 땅이다. 그들은 모두뛰어난 서술자고, 나는 그저 그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류드밀라 페트루스카야
작가는 자신을 다큐멘터리 작가라 생각하며 실제 삶의 가난한 미혼모, 거리의 아이, 알코올 중독자, 고독한 노인에 대해 가감없이 은유도 가림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뒤틀린 유머와 함께 펼쳐낸다.
<인생은 연극이다>의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는 연극하는 여자 샤샤, 모든 사람을 수집하고 자신이 인터뷰했던 온갖 부류와 자며 인생을 연구하던 그녀는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를 갖고 연극도 성공하고 전문극단에 자리잡지만 하찮은 일만 맡게되고 가정생활도 파국에 이르러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그녀에게 인생은 연극이 될수 없었던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스쳐지나가는 일처럼,(셰익스피어가 그랬듯) 연극처럼 대하면 됐으리라. 하지만 사샤는 왠지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가볍게 대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가 그녀로하여금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울지 않고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살면서 단 한 번만이라도 분명하게 대꾸해보라고, 이 상황을 끝내라고 무언가가 그녀를 떠밀었다.]
‘세얼굴‘에서 시원찮은 천재 료바는 천재를 낳기위해 자신의 학생이던 180센티의 16살 신입생 최우수 성적 표창자 엘비라와 강인하고 냉소적이며 가차없는 스파르타식 여인으로 키우겠다며 결혼하여 열달만에 대화를 하는 천재를 낳는다. 이후 그의 끊임없는 가스라이팅에도 엘비라의 성은 끄떡없다.
[머리 위 나뭇가지 사이로 별이 촘촘한 칸트의 하늘, 영원한 하늘과 영원한 문제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환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얼굴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어머니, 그다음엔 아들, 그리고 엘비라. ]
엄마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딸, 모녀 3대
무능하고 미숙하며 책임감없는 남자들을 뒤로하고 걱정과 고통은 여성의 몫임을 처절하게 서술하는 표제작 ‘시간은밤‘은 시를 쓰지않고는 가슴이 터져 죽을것 같았던 주인공 안나 사후 딸 알료나가 출판사에 보낸 원고의 내용으로 구성된다.
이 험하고 고단한 세상에서 나 하나도 어쩌지 못하면서 또다른 나를 세상에 내놓고 고뇌하는 세상의 많은 엄마들의 모습이 처참한 러시아 사회에서는 더 비참하게 음영을 드러낸다.
[어머니, 아, 이 얼마나 성스러운 단어인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은 아이에게, 아이는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면 아이들이 당신의 마음을 찢어놓을 것이고,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은 버려질 것이다.
아아아.]p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