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토끼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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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존 업다이크' 그 이름은 기대와 설레임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단숨에 읽어 내진 못햇다. 이유를 말하자면 작가의 문장, 특히 장소의 묘사를 서술하는 문장이

 

시각적 이미지로 쉽게 연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역자의 잘못이 아니라 순전히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낯설음 때문인 것 같다. 꼭 한번 영어 원서로 읽어 보고 싶은 이유중의 하나이다.

(물론 사전 뒤적이다 정서적 흐름이 문맥을 따라가지 못하고 헤메일께 뻔해 보이지만...)

 

이 책의 결말 부분 (P402)을 보면 '왜 나는 나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앞서 '왜 어떤 사람은 여기서 사는가?'

 

라는 공간적 제한성이 우선시 된다. 그러므로 주인공 래빗이 가출과 외도를 반복하는 궁극적인

 

원인은 자신의 좌절된 꿈 (농구선수)과 한심한 가정생활 (알콜중독자 아내)에 기인하지만 주인공 래빗의

 

심리적/정서적 혼돈은 실제적인 사건이나 경험보다는 오히려 장소에 대한 지나치리 만큼 세세한 묘사에

 

의해 표현되고 있다. 특히 가족들간의 불안한 유대 관계는 직접적인 대화나 사건에 의존하기 보다는 

 

공간이 가족 구성원들의 삶을 구속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 하고 싶다. 그리고 좀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만 누구나

 

한번 쯤은 길을 걷다가, 또는 운전을 하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 물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왜 그 장소, 그 시간 이어야만 했는지 설명할 수 없는 - 다른 길로 빠지고 싶은 일탈의 유혹을 느낄 때가 있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물론 대다수가 대수롭지 않게 포기하게 되지만 말이다.     

 

 

이 작품이 역자의 생각처럼 종교적 믿음이 빠져버린 미국 소도시, 중산층의 몰락과 동요, 불안에

 

대한 실존적 탐구에 대한 작가의 문학적 출발일 수 있다. 하지마 이 주제를 담아내기에 그의 문장은 너무

 

아름답다. (번역은 이점에 충실하다) 

 

다시 말해 업다이크의 심미적이고 유미적인 문장으로 인해 래빗의 행위는 비난의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태생적 약점에 대한 연민이며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해석 된다. 이는 신을 대변하는 목회자 에클스도

 

동의하는 관점이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인간의, 특히 자유에 대한 열망과 사회적 도덕/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꿈을 잃어 버린

 

젊은 세대에 대한 연민이며 사랑이다. 물론 래빗 (=해리)의 반복적인 무책임은 짜증 나는 일이지만 우리 마음 한

 

구석에 뜨금한 부분은 없는 지 한번 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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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 9.11 테러 10년과 달라진 이슬람 세계
이희수 지음 / 청아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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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 권의 소설 뒤에 만난 [이슬람]은 근래에 소득(?)은 커녕 실망 (나 자신에 대해서든 책에 관해서든 상관 없이)만

 

가졌던 인문학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일단 국내 학자 (이희수 교수)가 이슬람-아랍의 역사적 지식과 더불어 균형잡힌 지정학적/정치적 관점을 가지고 6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지루하지 않게 끌고 온 뚝심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의 주요 논점은 이슬람은 유대교-기독교와 같은 뿌리를 가지는 유일신 종교이며 현재의 아랍-이슬람 사화와 서구 

 

사회의 충돌이 이슬람과 기독교의 적대적인 종교적 차이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슬람이

 

기독교와 여러 역사적 / 종교적 신념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슬람이 서구 사회의 편견처럼 결코 폭력을 조장하거나 여성을 억합

 

하는 종교가 아님을 여러 장애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2001년 9/11 참사 이후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미국 주도로 행해진 이라크 침공, 아프카니스탄과의 전쟁으로

 

중동 지역에서의 반미 감정은 죄없는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테러로 중동지역에서 조차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생명을 오히려 연장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작가가 지적 하고 있듯이 1차 세계 대전 후

 

오스만-터키 제국의 패배와 함께 서구 열강이 아랍 세계와 유대인들에게 각각 아랍민족의 독립과 유대 국가 건설이라는

 

동시에 이루어 질 수 없는 이중적인 약속을 하면서 오늘 날 중동지역의 끊임없는 분쟁의 근원적 불씨를 제공했으며

 

유대국가 건설 이후, 미국의 일방적인 친 이스라엘 정책은 이 지역의 평화 정착을 방해하는 근복적인 원인이다.

 

   

이 책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관점과 이슬람에 대한 해박한 역사적/종교적 지식으로 가득하다.

 

물론 혹자는 이 책의 정치적 관점에 부정적인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일방적인 옳고 그름이 아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식이 공존과 생존의 열쇠임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기억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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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08-25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밤으로의 긴 여로 세계문학의 숲 10
유진 오닐 지음, 김훈 옮김 / 시공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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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희곡이 [밤으로의 긴 여로] 라는 점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물론 지문에서 설명하는 무대 장소와 등장 인물의 동선, 그리고 심리적 상태등이 처음에는

 

낯설어 독서 흐름에 방해가 되었으나 차차 익숙 해 지면서 희곡의 새로운 매력에 빠져 들게 되었다.

 

희곡의 특성 상 실제 무대에서 상연되는 연극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버릴 수 없으며 특히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 메리는 꼭 한번 실제 배우의 연기로 느껴 보고 싶다.  

 

흔히 각박한 현실에서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은 피붙이, 곧 가족이라는데 누구나 이론적으로 공감하지만

 

반대로 서로에게 치유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상처를 주는 것도 가족임은 경험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또 다른 현실이다.

 

메리는 남편인 타이론이 장남인 제이미를 항상 경멸하는 것 때문에 제이미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있지만

 

둘째 아들 유진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으로 제이미에 미움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타이론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가지고 있으나 지나친 타이론의 인색함에 깊은 상처와 원망을 표현하고,

 

몸이 약한 에드몬드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으나 에드몬드를 가지고 난 후에 산후 병치레로 모르핀 중독이 되었다고 생각하

 

여 막내 아들 에드몬드 역시 미워한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 역시 서로간의 복잡한 애증의 관계에서 예외가 아니다.

 

 

과거의 행복했던 한 줄기 희미한 기억에 기대어 살기에는 가족이라는 굴레가 끝이 없는 미로가 아닐까?

 

단순히 용서라는 단어로 그 미로에서 벗어 날 수 있을까? 

 

답은 없다. 하지만 방법은 2가지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가족과 지지고 볶으면서 답을 찾던지 아니면 가족을 잊어야 한다. 그것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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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이라가 주장하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2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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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페레이라는 주장한다'라는 말이 반복 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페레이라의 관점에서 사건을 서술하고 있음을 단독 적입적으로 밝히면서

 

그이 이야기를 작가가 대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이 책의 주요한 심리학적 관점은 카르도주 박사가 설명하고 있는 '정신의 연합체'

 

이론으로 참혹한 정치적 현실을 외면한 체 추억 (아내의 사진, 레몬에이드, 오믈렛으로 상징)

 

에만 침잠해 있는 주인공 페레이라가 독재정권에 맞서 저항하는 몬테이루 로시와 그의

 

여자 친구, 마지막으로 새로운 지배적 자아를 받아 들이라는 카르도루 박사의

 

가르침으로 점점 정치적 양심에 의해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일원론을 주장하는 카톨릭 (종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포루투칼과 비슷한 독재 정권의 역사적 경험을 공휴하고 있는 스페인 모두

 

독실한 카롤릭 국가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으로 가볍게 치부할 문제는 아님에 분명하다.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작급의 상황에서 우리 사회를 다시 한번 돌아 보게 하는 정치적 메시지가

 

간결하고 분명한 좋은 소설이며 이는 유려한 번역에 빚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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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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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모든 것이 밝혀졌다]를 읽은 지 한 참 지난 후에야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를 만날 수 있었다.

 

흔히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작품 세계는 사회/역사의 무자비한 폭력에 대한 인간의 연민과 슬픔을 작가 특유의

 

유머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풀어 내는 것으로 특징 지워진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가족 구성원의 부재 (부성의 부재: 할아

 

버지 또는 아버지)와 남견 진 자들의 부성에 대한 과거로의 회상과 진실을 찾고자 하는 과정이다.  

 

두 작품에서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과거로의 여정은 부정의 부재에 대한 작가의 집착을 나타내며 

 

이는 고통스러운 가족사에 그치지 않고 세계 2차 대전 (드레스텐 폭격 포함), 9/11 참사 등 인류사에 있어서 참혹했던

 

현대사와 만나게 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옮긴이의 지적 처럼 이 작품의 구성은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로 대표되는) 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모든 것이 밝혀졌다"). 뜬금 없는 소리지만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다시

 

읽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어난다,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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