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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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중단편 수작중 하나로 회자되는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는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는 문장

하나만으로 세계 독자들을 사로 잡았다고들 한다.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제 술먹고 숙취가 있어서 그런지 이 소설이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나로서는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바틀비의 소극적 저항이 죽음을 가져오게 되는 정확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는 점이

이 소설의 다양한 해석의 미덕일 수 있지만, 글쎄....  나는 별 느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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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6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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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홉과의 첫 만남은 일상의 평범함 속에 내재 된 불안감을 애써 외면하려는 우리들의 자화상 같은 느낌이었다.

산울림 12집에 실려 있는 불안한 행복의 가사를 보면 나의 느낌을 공감해 주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예쁜 아내와 아담한 집과 새로 신발
창틀을 긁는 아침햇살 모르는 잠들어있는
아이의 포근한 이불
아침 부엌에서 들리는 수돗물 소리
나는 일어나 면도를 해야지 향긋한 비누냄새
앞치마를 두른 아내의 모습이 즐겁다
집이 어질러져 있어도 좋다
우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떨어져있는가를 알기 위하여
신문을 보아야 한다
앨범도 가끔 보아야 한다

나는 가난했었고
사진 눈동자는 불안해 보였지
어머니 아버지는 전란을 겪으셨고
나의 형은 젖이 모자라 죽었네
그렇게 불안하게 나는 나의 행복을 본다

 

어느 관리의 죽음

분량은 2장에 불과한 짧은 단편이지만 작가의 의도는 확실하다. 작가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사소한 재채기에 편집증적인 반응을 보이는 주인공 이반 드미뜨리치 체르뱌꼬프를 통하여 정작 가진 자들은 관심 조차 없는 사건에 지레 겁을 먹고 비굴해 지는 소시민의 초라한 모습을 과장적이지만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였음이다.   

 

애수

마부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의 억울함이나 고통을 호소 하고 싶었을까? 아닐 것이다. 마부는 그저 상실의 슬픔을 그 누군가

와 소통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부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공감해주는 대화 상대방은 처음부터 무리한 욕심이자

사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화가 불가능 하다면 넋두리 대상이라도 필요하다. 미치지 않으려면…..

 

어는 여인의 이야기

시골에서 사귄 사람은 시골에서만, 그것도 여름에만 매력적인 법이다이 소설에서 인상 깊은 한 문장만을 뽑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문장을 고를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아니 설명을 하려는 시도만큼 답은 점점 멀어져 가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련한 첫 사랑의 느낌은 내 기억 속에서만 아름답고 유효할 뿐이다.

 

자고 싶다

나는 자고 싶다. 아기는 계속 울어 댄다. 그래서 난 잘 수 없다.

 

유모가 잠을 못 자는 이유는 누구때문일까? 아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모는 아기를 목 졸라 죽인다. 매일 반복되는 고된 노동과 쌓여만 가는 피곤함에 갑자기 아기를 죽이고, 드디어 잠의 행복감에 젖어 드는 주인공의 모습은 섬뜩함과 동시에 깊은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이 단편을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소시민들이 가진 자들에게 착취를 당하면서도 정작 고통의 원인 제공자인 권력 집단에는 순응하면서 같은 처지의 소시민들끼리 서로 증오하고 대결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공포적 우화 (호러물?)로 읽었다.  

 

‘6호 병동  

주인공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정신과 의사이다. 병원에서 환자의 부당한 대우에 대한 그의 첫 번

째 반응은 자기 합리화이다. 

 

나는 해로운 일을 하면서, 나에게 속는 사람들로부터 봉급을 받는다. 나는 정직하지 못하다.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사회의 필요악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지방 관리들도 해로운 일을 하면서, 하는 일 없이 봉급을 받는다….. 그러니까, 내가 부정직한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 이 시대의 잘못이다…" (P86)

 

하지만 그의 양심적 지식인으로서의 본성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폭발하게 되고 갑작스러운 사건을 계기로 친구들

에게 정신병자로 취급되어 강제로 입원하게 된다. 주인공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정신 병원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지식인

이반 드미뜨리치를 만나게 되면서 이 세상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광인 취급을 받는 부조리한 사회임을 깨닫게 된다.

 

이외에도 농부들의 무지와 폭력을 경멸함에도 가난과 굴욕으로 점철된 그들의 삶에 대한 깊은 연민이 배여 있는 농부들’, 신분적, 계급적 차이로 인한 소통과 상호 이해의 부재의 씁쓸한 결과를 담담하게 그린 새로운 별장까지 그의 소설은 이념과 사상과 같은 거대 담론 보다는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사에서 숨겨진 인생의 진리를 찾으려는 문학적 도구이다. 역자의 말을 빌리자면 체홉의 소설은 거대한 일에 대한 겸손한 무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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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안톤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다 읽었다.

 

느낌이 뭐랄까? 역시 외국 단편소설은 번역으로 인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비유가 될 지 모르겠지만 짝사랑에게 용기를 내어 마음을 고백하면서 표정 하나, 몸짓 하나에서 그녀의 마음을 확인 하는 것과 친구를 통해서 고백을 하고 그녀의 반응을 전달 받는 것은 비교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역시 무리수였다. ㅠㅠ). 왜냐하면 단편은 처음부터 길이와 분량이라는 형식적 조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사소한 주위 환경이나 사물에 대한 묘사 하나에도 작가의 의도와 생각이 담겨져 있다. 다시말해 단편소설에서는 미묘한 단어 차이로 인해 소설의 톤이나 흐름이 완전히 달라 질 수 있기 때문에 번역으로 인한 어느 정도의 의미적 왜곡이나 손실은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의 느낌은 역자의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책을 읽는 속도와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좋은 번역이었다.   

 

책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따로 리뷰란에서 끄적 거리겠지만 이 책의 뒷 커버에 나열 된 이름만 들어도 억! 소리가 나는 위대한 작가들의 체홉에 대한 극찬은 사실 여부를 떠나 이 바닥(?)에서 클리셰로 별 신선 할 것 없지만 그 중에 '레이먼드 카버' 라는

이름은 기억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유일하게 그의 단편 소설집 [대성당]을 읽었는데 지금 체홉의 작품을 읽었을 때와 느낌이 그 때와 비슷했다. 특히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마음이 뭉클해 지면서 인생의 처연함마저 느끼게 해줌과 동시에 당장 영화로도 각색 될 수 있을 만큼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가진 작품으로 기억 된다. 다른분들 한테도 꼭 읽어 보라고 자신있게 권하고 싶은 몇 안되는 단편중 하나이다.

 

P.S: 그리고 또 하나 [대성당]의 번역자는 소설가 김연수다. 그러면 무조건 읽는 거다. 물론 [위대한 개츠비]의 번역자

김영하 (물로 우리가 아는 바로 그 김영하다)도 빼 놓을 수 없다. 근데 웃긴 게 난 이 둘이 최근까지 같은 사람인 줄 알았다.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이다. 가끔, 아니 자주 이러는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람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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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홉 (정확한 러시아 발음은 '안똔 빠블로비치 체호프' 인가 본데 표기도 발음도 어렵다)의 단편 소설과는 첫 만남이다.

남들은 중고등학교때 뗀다는(?) 고전을 40줄에 들어서야 푹 빠져서 이 작가, 저 작가 기웃거리다 드디어 안톤 체홉을 만났다.

 

어떤 단편은 너무 짧아서, 또 어떤 단편은 결말이 갑작스러워서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아들을 잃은 마부의 하루를 다룬 '애수'

파국적인 결말의 보모 이야기 '자고 싶다'에서 슬슬 안톤 체홉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고 촘촘한 편집은 독서에 상당한 방해가 되었다. 열린책들이 다른 출판사와 차별적인 디자인의 양장본으로 충분한

소장 가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문구판 같은 책과 활자 크기는 못내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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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푼짜리 오페라 - 베르톨트 브레히트 희곡선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200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은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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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를 읽었다.

 

브레히트는 대학시절 연극학 개론 수업 시간에 그리고 각종 미디어에서 그의 명성만을 들었을 뿐 실제 작품을 읽어본 것은 이 번이 처음이다. 느낌은 뭐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번역자인 이은희 선생님의 역자 해설은 매우 훌륭하다. 하지만 그 녀의 해석은 브레히트 연극에 대한 지침서 같은 느낌이고 작품 해설에서는 좀 과도하게 브레히트 이론이나 주제를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를 들어 [억척 어멈과 자식들]은 '전쟁의 비극을 통해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는 억척 어멈을 통해 관객에세 전쟁의 본질과 어리석은 소시민에 대한 통찰을 촉구한다'라는 분석은 실제로 브레히트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여도 이를 받쳐주는 사건이나 인물이 좀 약하지 않나 싶다. 물론 실제 무대에 올려 질 경우 느낌이 틀려 질 수도 있겠지만 희곡 만으로는 플랫이나 인물이 좀 밋밋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서사극이 가지는 특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역자가 지적 하고 있듯이 서사극은 '배우가 자기 자신을 역할에 완전히 몰입시키고, 관객 역시 사건이나 인물의 감정 이입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는 전통적 연극의 기본원리를 거부하는 대안적 연극 형식이다. 현실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기 위해서는 관객들의 과잉된 감정과 동시에 대리만족에서 오는 정화를 방해하는 '낯설게 하기' 서사구조가 필요하며 이을 통해 관객에세 객관적으로 사건과 인물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이론적으로는 충분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나 관객의 감정을 배제한 채 이성에만 의존하는 예술 방식이 서삭극의 이론적 의도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소통은 대부분 감정에 의존하며 이성은 부차적인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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