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두꺼울줄은 몰랐다. ㅠㅠ
사전인줄 알았다. ㅎㅎ
포스에 기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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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158
하인리히 뵐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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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역사는 문외한이지만 이 소설이 출간 된 1953년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의 후유증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 남편 프레드와 아내 캐테는 가족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전쟁의 상처와 가난과의 고단하고 지루한 싸움을 계속해 나가지만 그들 가족에게 돌아오는 보답은 체념, 절망, 권태와 좌절 뿐이다.

 

"나는 몇 해 전부터 이 단칸방의 더러움에 맞서 싸우고 있다" (케테의 관점) p59

 

"눈에 보이지도 않고 정의 내일수도 없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가난이라는 먼지는 나의 폐와 심장과 뇌에 쌓여, 내몸의 순환을 지배하며 이제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있다" (프레드이 관점) p62 

 

그러므로 빈자(貧者)를 도와주고 구원해 줄 의무(?)가 있는 부자 (프랑케 부인)들과 종교 (카톨릭 신부) 에 대한 반감과 증오는 어찌보면 당연한 감정적 반응이다.

 

"대부분의 신부들은 고행자처럼 보이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고, 거의가 너무 뚱둥하고 너무 건강해 보였다"  p72

 

아내 캐테는 남편 프레드를 사랑하지만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남편과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소설에는 간접적으로만 묘사되어 있지만 프레드는 2차 세계대전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정상적인 가정이나 사회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참전용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애들이 즐겁게 떠들면 화가 나서 애들을 때렸다. 체벌하는 광경을 결코 참지 못하던 내가, 저녁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편히 쉬겠다고, 그 애들의 얼굴이며 엉덩이를 때렸던 것이다" p77

 

하지만 그들에게 희망이 말라 버린 것은 아니다. 소설에서 부부의 닳아 헤졌지만 희미하나마 여전히 묶여있는 희망의 끈은 우연히 만난 간이식당의 소녀와 바보 동생이다. 부부는 각자 시차를 두고 갔었던 간이식당에서 마지막 아침 식사를 하고나서 헤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헤어 지지 않을 것이다. 간이식당의 소녀와 바보 동생은 "그래도 삶은 지속된다" "The show must go on" 라는 상투적이지만 진실된 메시지가 실현되는 그들의 미래의 모습이다. 소설속에서 거울이라는 상징적 매개가 반복되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달고 맛있는 해피 엔딩의 과일을 독자의 입안에 그냥 넣어 주지 않는다. 정답은 우리 현실에 있다.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삶은 동화 같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를 더욱 서글프게 하는 것은 자본주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반대급부로 정답을 알게 되는 나이가 점점 어려 진다는 것이다.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전후의 독일이나 현재 한국 사회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동일하다.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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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희곡 전집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김규종 옮김 / 시공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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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너무 재미있게 읽은 탓일까? 

시공사의 [체호프의 희곡 선집]을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중간고사를 보고 나서 기대치에 못미치는 성적표를

받은 기분이었다. 시험을 막 보고 나서는 A헉점을 기대했는데 정작 B학점을 받았을 때의 기분이른 것이.....

모두 공감하리라 믿는다.  

왜 실망스러웠는지 이런 저런 이유를 곰곰이 따져 보고 나서 내린 결론은 희곡이 소설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일단 나는 '공간 지각력'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개념인지는 모르겠지만 희곡의 무대배경, 지문같은 것을 공간적으로

지각하는 데 무척 서툴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희곡을 문학 텍스트로 읽는 것이 어색하고 어렵기만 하다.

다시 말해서 체호프의 희곡에 감동을 받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라는 말이다.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를 읽을 때도 뭔가 내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걷는 것 같은 불편함을 숨길 수

없었으니... 뭐 할말 다 한거다.

 

그냥 체호프의 [갈매기]나 [벚나무 동산]를 실제로 연극 무대에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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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그늘 2025-11-08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곡이라 상상도 많이 해야하고, 입으로 소리내서 읽어보기도 하는 등 여러번 읽을수록 맛이 더 나더라구요.
 

설날연휴에 책좀 읽어 볼려고 했건만 잠만 원없이 자고 있다. 하지만 안톤 체호프 완독에 도전한다.

책표지 썩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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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관계 대산세계문학총서 68
쇼데를로 드 라클로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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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비롯해서 여러 나라에서 영화화 된 원작 소설 [위험한 관계]를 꼭 읽어 보고 싶었던

참에 우연히 알라딘 중고 서점에 들렸다가 문학 전집 코너에 다소곳이(?) 꽂혀 있는 이 놈(?)을 보고서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의 욕망과 위선의 추악한 민낯이 가감없이 드러나는 남녀간의 사랑과 배신, 질투와 복수로 점철된175편의 편지를 쉼없이 읽는 것은 대단히 피곤하고 지루한 과정이었다. 타인의 비밀을 공유하고 욕망을 훔쳐보는 일이 처음에는 가슴 설레이고 짜릿한 긴장감을 주지만 반복되는 경험과 누적된 피로감은 어느 순간부터는 반전의 기대가 부재한 무덤덤한 결말의 기다림만 남는 꼴이었다.

 

[위험한 관계]의 여러 인물 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꼽자면 주저없이 메르테유 후작 부인을 뽑고 싶다. 메르테유 부인이 현실세계의 실제 인물이라면 사회뉴스란에 나오는 순진한(?) 남자들의 지갑을 노리는 꽃뱀(?)에 불과하겠지만 소설속 18세기 보수적인 프랑스 귀족사회에서의 메르테유 후작 부인은 여성이 남성의 단순한 성적 수단이나 불평등한 결혼제도의 종속적인 도구가 아닌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자아을 가진 독립된 인격으로의 나(我)라는 새로운 여성성의 상징이다. 물론 소설 말미에 메르테유 부인은 재판에서 패소한데다 천연두에 걸려 얼굴이 상하고 한 쪽 눈까지 실명하는 인과응보의 상투적인 결말의 희생자로 묘사되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마르테유 부인의 성적 매력과 탁월한 심리전에 맥없이 무너지는 귀족 남성들의 찌질한 모습에서 근대적인 여성성의 탄생을 보았다면 나만의 잘못된 해석일까?

 

"자작님, 내가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 압니까? 괜찮은 혼처를 찾지 못해서 그런게 아니랍니다. 어느 누구든 내 행동에 대해 말할 권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내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할까봐 두려운 게 아닙니다. 설사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난 분명 내 뜻대로 했을테니까요. 다만 누군가가 내 행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을 듣는게 성가시기 떄문입니다. 내가 사람들을 속이는 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게 즐겁기 때문이랍니다"

                                                                                                                 [위험한 관계] p495

 

발몽 자작은 뭐 그저 그런 찌질한 바람둥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투르벨 법원장 부인을 사랑했지만 메르테유 부인과의 욕망의 거래 - 조건은 19금이다 - 를 성사시키고 사교계에서 자신의 평판과 명성을 높이기 위해 투르벨 부인을 버리는 비정한 남성이면서 동시에 메르테유 부인과의 게임에서 패배하자 그녀의 치부를 폭로하는 치졸한 남성에 불과하다.  

 

투르벨 법원장 부인, 볼랑주 세실, 당스니 기사는 메르테유 부인과 발몽 자작의 욕망을 채워주는 먹잇감과 놀이감에 불과한 인물들이다. 특히 볼랑주 세실 같은 아가씨는 한마디로 순진을 가장한 무지(無知)발랄 민폐형 캐릭터다.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당스니도 더 나아보이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투르벨 법원장 부인은 봉건적인 여성상의 부정적인 전형으로 뭐랄까..... 만나면 만날수록 남자의 발목을 잡는 겁나는 미저리형 캐릭터로 볼 수 있다. 

 

소설의 인과응보적 결말은 작가의 자체 검열 이었을 것이다. 10 페이지 분량에 불과한 교훈적인 결말이라도 보여주지 않았다면 전체 오백 페이지가 넘는 귀족사회의 욕망과 위선에 대한 적나라한 폭로와 메르테유 부인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근대적 여성성의 발아(發芽)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위험한 관계]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산을 오를 때 정상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은 메르테유 후작 부인이다. 자신있게 말하지만 메르테유 부인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절대 영화화 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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