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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앨리스 먼로의 단편이 모두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가의 단편집에서 특정한 시대나 장소 - 2차 세계대전 이후 캐나다에서만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인생에 휩쓸려 헤어나지 못하는 개인이 존재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 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정서적 울림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한편 이상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시 말해 앨리스 먼로의 단편들은 문학적 편차 - 물론 어디까지난 내 개인적인 기호 기준에서 - 가 존재하지만 뛰어난 한두 작품의 가치는 다는 단편들의 단점을 보충하고도 모자람이 없다.
이 번 [행복한 그림자의 춤]에서는 '휘황찬란한 집' 과 '위트레흐트 조약' 을 뽑고 싶다.
'휘황찬란한 집'은 작금의 대한민국 신도시의 젊은 부부들의 '우리' 와 '그들' 을 구분짓는 서글픈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우연히 신도시 아파트 단지의 높은 담벼락과 출입문 통제가 주위의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출입을 막기위한 것이라는 뉴스에 뭐라 할말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소위 대한민국 중산층이라는 환각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오로지 관심거리는 집값이 오르냐 내리냐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동물중에 가장 고상한 척 하는 인간들이 고작 집 한채에 모든 인생이 걸린 양 목매고 있다는 한국 중산층의 옹색한 인생관이 한심하고 화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고달픈 인생이 안스럽기도 하다. 물론 나는 중산층 근처도 못가는 월세살이 인생이라 그런지 자기 자식 공부한다는 깜냥으로 남의 자식 귀한 줄 모르고 설치는 무리들은 천박한 자본주의의 잉여물로 취급하는 편이다. 우리 모두 매일 거울을 보고 우리가 어느 순간 괴물로 보이지는 않나 항상 경계해햐 할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승자이고 선량한 사람들이다. 자식들을 위해 집을 마련하고, 어려울 때면 서로 돕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꾀한다. 마치 그 지역 사회안에서 아주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는 현대식 마술을 찾았으니 한 치의 실수도 없을 것처럼 운운하면서.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정나미 떨어진 마음을 억누르는 수밖에."
[휘황찬란한 집] p108
'위트레흐트 조약' 은 가족이라는 무조건적인 관계에서 개인의 희생은 당연한 것인가? 라는 진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파킨스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의 병간호에 두 자매 중 동생 헬렌은 고향을 떠나면서 "은밀하고 죄스럽게 격리"되는 삶을 선택 한 반면, 언니 매디는 고향에 남아 가족의 무거운 짐을 오롯이 짊어 져 나간다. 하지만 친척 할머니들이 마지막 순간 매니와 헬렌의 어머니에 대한 죽음을 방임했다는 의심과 힐난이 사실인 들 우리가 매니를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매디가 느닷없이 뱉어 낸 통속적이지만 그래서 더 직설적으로 와닿는 대사는 이 단편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계속 할 수가 없었어. 나도 내 삶을 실고 싶었어" - P375
하지만 매디에게 자신의 잃어버린 인생을 다시 찾는 것이 너무 늦지는 않았을까? 우리 대부분의 인생은 결코 동화처럼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단지 매디가 인생의 노곤함과 피곤함에서 조금 해방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나는 왜 안 되지, 헬렌? 난 왜 못할까?" - P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