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연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중 하나이고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는 소설가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역시 그의 문장력은 꿈에서도 진저리 치던 꼰대(?)가 되가고 있는데도, 나만 모르고 있는 민폐 캐릭터 40대 중반 아저씨한테도 가슴 뭉클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뭐랄까... 너무 말랑 거린다. 작가의 말처럼 세상은 심연으로 가득하지만 가끔은 날개를 달고 심연을 넘어 서로 연결되는 신비로운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개가 작가는 소설이라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소설속의 '윤경'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으로 모든 세상이 연결되고 소통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외로움을 숨기고자 하는 헛된 몸짓일 뿐이다. 나도 혼자 있을 때 쓸때 없이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습관화 되고 있다. 오죽하면 엘리베이터 타는 10초를 참지 못해서 스마트 폰을 보고 있으니...   

 

고독과 외로움이 없으니,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으니 세상은 한없이 가벼워져만 간다. 오해는 하지 말자.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내가 고독과 외로움을 깊이 사유해 봐야 가능한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끄적거리다 댓글 읽고 공감 백번 누르고, 페이스북에 좋아요 누르는 것은 나의 외로움과 고독을 달래고 있을 뿐이다. 타인과 나 사이에  심연을 건너 서로 만나는 신비한 순간을... 작가는 우리시대에게 기대한다. 소설을 통해서, 아니면 시 - 책에 나오는 에밀리 디킨스의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 를 통해서..

 

이런 생각까지 다다라 보니 그의 말랑거리는 문장이 이해 안되는 바도 아니지만 나는 소설의 '윤경'처럼 '마흔 살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호르몬'이 흐르는 40대 중반을 넘어섰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혹한 마음에 신비로움에 빠져 있기에는 좀 낯 간지러운 나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작가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허상에 빠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느리지만 깊은 여운을 가진 '생각' '고독' '외로움' 이라는 자극제를 주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김연수 답지만, 어느 순간 도가 지나쳐 김연수답지 않은 너무 말랑거리고 감수성 과잉의 문장들과 상투적인 인물과 플롯 - 최성식 선생과 그의 아내 신혜숙 교장, 김미옥과 정지은의 관계, - 은 요즘 한창 스마트폰에 빠져 허우적 되는 10-20대를 위해 의도적으로 시도한 설정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만의 생각일 뿐이지만...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내 취향도 아니고 내 기준으로는 김연수의 작품 중에서 수작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라는 문장으로만 기억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마지막 '2012년의 카밀라, 혹은 1984년의 정지은'의 신비로운 심연이 연결되는 만남의 체험을 위해 책을 끝까지 읽어 보기를 권한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영화화 되면 좋을듯 싶고 작가가 충분히 이를 의식하고 소설을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뜬금 없지만 이 글을 쓰는 순간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이 흘러 나온다. 이 소설과는 아무 연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말랑거리기 그지 없는 가사와 멜로디의 값싼 감상일 지 언정 이 역시 신비로운 순간이다. 내 마흔 살의 완전히 다른 호르몬이 잠시 회춘하고 성장 - 아니 노화라고 해야 겠지요 - 울 멈추는 순간도 있나 보다.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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