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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짐승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9
모니카 마론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지난 번 양귀자 작가의 [원미동 사람들]에서 리뷰에서 밝혔듯이 소설의 좋음과 나쁨을 평가하는 나의 기준은 스토리 텔링이다. 우선은 소설의 이야기 자체가 소위 말해 '깜냥이 되야지' 진부하거나 아니면 그것도 부족해 억지스러운 설정에 인간의 감정과 의식만을 과잉되게 표현하는 것은 기교의 잉여이며 활자의 낭비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린(?) 시절에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자의식을 현미경으로 들어 보듯이 끝임없이 관찰, 탐구하여 기어이 인간 내면의 밑 바닥이 보이도록 철저하게 파헤치는 소설들에 푹 빠지곤 했지만 지금은 과잉된 의식의 흐름을 쫓아 가기에는 숨이 차는 나의 노쇠한 심장과 밑도 끝도 없이 넘쳐나는 활자들의 홍수에 진물이 나는, 나의 노안이 먼저 걱정될 뿐이다.
나 역시 사랑이라는 단어에 설레이고, 분노하고, 후회하던 시절이 왜 없지 않았겠느냐? 그때는 소설 [슬픈 짐승]처럼 "그대를 차지하거나 아니면 죽는것' 이 인생의 전부이자 진리라고 떠들고 마셔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답은 자명하다. 지금의 나에게 [슬픈 짐승]은 주인공과 프란츠의 진부한 사랑 - 솔직히 사랑인지, 집착인지, 아니면 질병인지 헷갈리지만 - 타령일 뿐이다. 물론 사랑은 집착이며 질병임에 틀럼 없다. 하지만 우리가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끼기에는 이 소설의 스토리 텔링은 점수를 후하게 준다해도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15세 이상 시청 가능 수준이다. 활자의 낭비이며 감정의 과잉이다. 다시 말하지만 단단한 스토리 텔링의 토대 없이 상처 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드는 여자의 내면 세계의 집요한 탐색은 지루하다 못해 떄로는 한심 스럽기까지 하다. 초반부에 전후 독일 사회를 한마디로 악의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죄의식 없는 아버지- 바로 남근/남성 - 세대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작가의 시원한 도발에 살짝 기대감과 흥분된 기분을 가졌지만 곧 끝없이 반복되는 사랑 타령에 모든 기대와 흥분은 기억의 저편으로 증발되 버렸다.
소설에서 군데군데 번득이는 불꽃같은, 때로는 숨을 참고, 때로는 깊은 탄식과 한숨을 짓게하는 문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굳이 다른 이들과 같이 하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문장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사랑의 열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나의 '늙음'이 아쉽고 슬프지만 세월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니 자책할 일은 아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