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대학자인 퇴계 이황은 율곡 이이와 함께 우리 나라 유학계의 큰 기둥을 이루었던 분이다.  

성리학이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게 일어날 때, 체께를 세우고 새로운 학설을 덧붙여 완성시켰다. 교육에도 뜻을 두었던 이황은 도산 서원을 세워 훌륭한 인재를 길러 내는 데 전념하기도 하고, 최고 유학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능력 있는 관리 교육에 힘썼다.  

또 두 차례나 지방의 수령으로 나가서 백성의 고통과 농촌의 현실을 직접 보고 겪기도 했다. 이황의 사상과 학문은 후세에도 계승이 되어 우리 나라 유학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뿐만 아니라 일본 명치 시대의 교육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황은 벼슬보다는 학문을 더 좋아하여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35년 동안 관직 생활을 하면 서 수무 번 이상 벼슬을 사양하고 그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 학문에만 전념하려 했다. 명종 임금과 여러 신하들은 이황이 시골에 묻혀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많은 신하들이 임금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이렇게 하여 이황은 마지못해 벼슬을 하였지만, 기회만 있으면 벼슬을 내놓고 시골로 내려가 책을 보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명종 임금이 돌아가시고 선조가 왕위에 오르자, 이황은 예조 판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황은 이번에도 병을 핑계로 벼슬을 사양하고 말았다.  

나는 이책을 읽고 임금의 말에도 자신이 벼슬을 포기하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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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에 엄마와 같이 저녁에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짧고 좋으니까 읽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어느 한 3형제가 있었다. 그 사 형제는 먹을 것이 없어서 망고나무에게 얻어 먹기로 결심을 했다. 우선 먼저 첫째가 망고 나무에게 가서 어이 망고 좀 주라하고 건방진 태도로 말을 걸었다.그러자 망고나무는 첫째에게 좋아 망고를 주지 입을 벌려봐하고 망고나무는 말했다. 그리고선 첫째에 입에 썩은 망고를 넣어 주었다.  

동생들이 입에 썩은 망고를 넣어 가지고 온 첫째에게 망고나무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래서 형 어이 망고 좀 주라하고 말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둘째가 나서서 갔다. 둘째가 망고나무에게 형님, 망고 좀 주세요라고 말을 걸었다. 그래서 망고나무는 기분이 좋아서 망고가 가득이 있는 가지를 둘째에게 주었다.   

그리고 둘째가 망고나무에게 한 이야기를 들은 셋째가 나섰다. 그래서 셋째는 망고나무에게 가서 삼촌 망고 좀 나누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망고나무는 아 어린 조카가 삼촌, 삼촌 부르며 매달리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지. 

 아무렴, 드리고 말고! 네겐 제일 맛난 망고를 주마! 하며 망고나무는 열매 가운데 가장 알이 굵은 망고를 골라 자루 가득 담아 주었다. 끙끙대며 자루를 어깨에 메고 온 셋째에게 막내가 형은 뭐라고 했어? 이것 봐, 망고가 자루에 가득하네!" 응 삼촌이라고 불렀더니 망고나무가 그렇게 좋아하더라 라고 말했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막내가 망고나무에게 부탁을 하러 갔다. 그러자 막내는 망고나무에게 친구야! 친구야! 하면서 망고나무를 불렀다. 하지만 망고나무는 자신을 부르는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냥 잤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막내가 친구야! 친구야! 부르자 망고나무는 깼다, 그러자 망고나무는 감동해서 막내에게 자신의 모든 열매를 나누어 주었다.   

나는 망고나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망고나무는 친구가 없고 모든 사람은 그냥 자신의 열매만 따 가서 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이 막내가 식물에게도 말을 걸어주고 친구하자고 하는 마음에 나는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는 식물도 잘 대해주고 식물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 여러분도 식물을 사랑합시다. 이 책의 교훈은 식물을 사랑하자 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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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년, 영국의 왕 헨리2세가 명령을 내렸다. 왕의 명령에 따라 신하들은 글래스턴베리 수도원에 있던 아서 왕의 무덤을 열었다.  

그러자 500년이 다 되어 가는 무덤에서 뼈와 칼이 나왔다. 그리고 십자가도 하나 나왔는데, 거기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아서 왕은 5세기에서 6세기에 살았던 유명한 영국 왕이었다. 마지막 싸움에서 큰 상처를 입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실제로는 죽은 게 아니라 상처를 치료하려고 요정 나라로 옮겨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느 이야기가 진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요정 나라로 갔다는 것은 사람들이 꾸며 낸 전설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전설이 붙었다는 것은 아서왕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려준다. 

아서 왕이 얼마나 대단한 왕이었는지 지금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아서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꼭 곁들이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서 왕을 따르는 원탁의 기사들에 얽힌 이야기들이립니다.  

옛날 영국의 왕들은 왕의 명령을 받아 싸우는 기사들을 거느렸다. 아서 왕도 마찬가지 였다. 아서 왕은 그 기사들과 함께 모험에 나섰다. 때로는 왕의 명령을 받아 기사들끼리 위험하고 고된 모험을 하기도 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들의 모험은 끝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진진한 것들만 이 책에 모았다. 옛날 영국 브리튼족의 왕 중에 우서 왕이 있었다. 이 우서 왕이 죽자, 아들인 아서가 왕의 자리를 이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일부 신하들이 반대했다. 그들은 어린 왕자를 제치고 자신들이 나라를 다스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신하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서를 왕으로 받들려는 신하들도 많았습니다. 신하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 으르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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