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은 운7 기3‘이란 말이 있다.
내가 가진 기운보다 소위 적절한 타이밍과 운빨이란 것이 우리 삶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
인류문화사를 다룬 최고 명저 중 한권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책을 읽고나면 그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노력과 열정, 선한 마음으로 살면 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믿으며 살아온 사람들을 힘 빠지게 만드는
말이지만 이 책은 700페이지 가까운 분량 속에서 아주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다.
잘난 척 하지 말라고, 너희가 잘 사는 건 잘나서가 아니라 요행히 다른 사람들보다 운이 아주 좋았던 거라고.
반대로 빈국의 국민들에겐 힘 빠지는 말이지만 어차피 그 나라에서 태어난 이상 당신들의 가난과 불평등은
이미 결정되어 있던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
어찌 보면 열받는 주장이지만 엄청난 분량의 통계와 자료들을 통해 그의 논리는 객관적으로 제시되어 있고, 읽는동안 어쩔 수 없이 수긍과 인정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20여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이 아직까지도 인류문화사적으로 최고의 책 중 한권으로 인정받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저자가 세계의 국가간 발전 불균형의 원인을 생물학적 민족 차이가 아닌 대륙간의 조건에 따른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무렵까지만 해도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유전학이나 생물학적인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학설을 보란듯 뒤집으며 특히 백인우월주의까지 만들어낸 대륙간 발전 불균형의
원인이 다름 아닌 지리적 위치와 그로 인한 여러 현상들에서 기인한 것일 뿐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결론을 내린 것.
한마디로 ‘너희 백인들 잘난척 하지마! 그 땅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니들은 그저 찌질이였을거야‘라는 빅엿을 먹인 셈이니 당시 이 책이 서방 국가들에 준 충격은 익히 짐작 되고도 남는다.
그러니 책이 출간된 후 적지않은 반발과 수많은 반론들이 제기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터.
하지만 많은 반론들은 이 책의 일부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준에 그쳤고, 수많은 통계와 자료, 여러 장르에 걸친 저자의 해박한 지식으로 중무장한 이 책의 주장은 점차 문화인류학적으로 중요한 학설임을 인정받게 된다.

명저로서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읽혔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게 될 이 책의 시작은 아주 단순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어느날 저자의 뉴기니 원주민 친구가 물은 ‘왜 우리(아프리카인들)는 너희(백인들)처럼 발전하지 못한걸까?‘라는 궁금증.
그 질문을 두고 두고 떠올리던 저자는 결국 그 답을 직접 찾기로 했고, 그렇게 시작된 책은 이제 전세계인들이 읽는 중요한 문화인류학 도서가 된 것이니 학자로서 사소한 질문도 놓치지 않는 예리함과 답을 찾기위한 엄청난 노력과 집요한 열정은 정말 놀랍고 존경스럽다.
엄청난 양의 통계와 수치들, 각 분야의 해박한 지식을
근거로 한 여러 논리와 주장들이 펼쳐지지만 결국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하고있는 이야기는 단순명료하다.
‘위도가 같아 기후와 토양이 비슷하며 동서로 연결된 지형에 장애물도 없는 유럽대륙이, 남북으로 연결되어 서로 다른 기후와 풍토를 지닌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보다 문화나 식량의 전파와 확산이 더 빠르고 농경의 발달을 시작으로 더 부유한 국가를 이룩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

물론, 이러한 지리적인 특성만으로 발전의 차이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일찌기 서양보다 훨씬 빠른 발전으로 풍요로운 제국을 이루었던 중국의 경우, 오히려 통일로 한명의 지도자가 오랜 세월 통치했던 것이 그들에겐 유럽에 뒤쳐지는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국가로 분열되어 경쟁하던 유럽은 바로 그 경쟁이 서로를 더욱 발전시켜 부강한 대륙이 될 수 있었지만, 한명의 지도자가 모든 권력을 쥐고있었던 중국은(모든 지도자가 옳은 결정만을 하는 것은 아닌만큼) 견제나 경쟁을 통한 상호발전을 할 수가 없어 필연적으로 뒤쳐지고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대륙간 발전 불균형에 대한 이런 기본 전제를 바탕으로, 저자는 인류역사의 흐름 속에서 총과 균, 쇠로 대변되는 무기와 병균, 문명의 발달이 그 불균형을 어떻게 심화시켜 왔는지를 수많은 통계와 자료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그의 이론을 수긍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솔직히 너무 많은 통계와 자료들은 독서를 버겁게 만들 지경이라 굳이 이렇게.. 라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탄탄한 근거를 모으고 제시하는 그의 집요함과 수많은 학문적 지식으로 무장한 그의 해박함과 치밀함은 감탄을 넘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고작 160여명의 스페인 군대가 숫적으로 우세한 잉카인들을 물리치고 병균을 퍼뜨려 잉카제국을 결국 멸망 시킨것과,
자급자족 하며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살아온
모리오리족이 마오리족에게 몰살 당해 멸종 됐지만 그 두 종족의 조상은 같은 폴리네시안으로 다른 지역에
정착해 사는동안 각기 다른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종족으로 변화 되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결국 저자의 주장대로 강대국과 약소국의 불균형은
생물학적 원인이 아닌 지리적 요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책은 지리적으로 불리한 땅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적지않은 실망감과 박탈감을 느끼게 만들고, 출생 시점부터 결정되어 평생동안 지워질 운명의 굴레에 대한 억울함도 느끼게 만들지만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채 강대국의 알력싸움이라는 태생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가진 우리나라도 어쩔수 없는 불리함을 극복하고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갖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며 함께 노력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

초반에는 엄청난 지리적 설명과 통계, 수치들의 압박감에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힘들었지만
전반적으로 어려운 문장이 없는데다 이해를 돕는 역사적 사례들은 재미있고 흥미로워 쉽게 읽힌다.
구매후 쉽게 읽히지 않는 초반부를 극복하지 못해 다시 책장에 넣어두길 두차례, 세번만에 결국 완독을 하고 보니 역시 오랜 시간동안 명저로 인정 받으며
수많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고있는 책에는 그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게다가 서문에서부터 드러나는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한국에 대한 호감과 관심, 한글의 우수성과 우리나라의 지리적 중요성을 높이 인정하는 그의 친한 성향은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책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를 갖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출간 된 지 20년도 넘은 이 책이 끊임없이 읽히고 회자
되며 인문학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 해준다.
인류학적으로 중요한 명저 또 한권을 독파 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두꺼운 책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며
독서력도 성장하는 기분.
이 책의 두께와 초반의 어려움으로 포기할까 고민중인 독자분들이 있다면 조금만 참고 끝까지 완독 하시기를 진심으로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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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 이슬아 서평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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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란 신선한 깨달음과 함께 그간의 독서감상에 대한 부끄러움이 몰아치게 만든 책.
쉽게 잘 읽히고 어렵지 않으며 옆에 앉아 눈을 마주치고선 다정하게 조곤조곤 이야기 하는듯한 문장으로 그녀가 좋아하는 책들을 들려준다.
책을 읽은 저자의 느낌에 맞춘 것인지, 책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방식을 고민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각 서평들을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들려주고 있다.
어떤 것은 내밀한 속내를 끄적인 일기같고, 어떤 건 친밀한 편지같고, 또 다른 것들은 담담한 산문같고,
수필같고, 책소개 기사같기도 한 다양한 얼굴로 책
이야기들이 펼쳐져있다.
아쉬울 정도로 얇은 책 속의 모든 글들은 묘하게 따뜻하며,
볕이 잘 드는 어느 봄날 오후의 한옥 대청마루처럼 어딘지 나른하고 포근하면서도 마음 한켠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따스하고 깊은 친절함이
묻어있다.
그래서였을까?
그저 저자가 좋아하는 책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순간 순간에 나도 모르게 왈칵하며 눈물이 맺혔고 불쑥 가슴이 저리고 아팠으며, 마음이 찡해지는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전태일의 희생은 ‘그들의 전체이자 일부‘인 나를 태워 또다른 나를 지키기 위한 사랑의 이야기가 되어 나를
울렸고, 별것 없는 젊은 미경에게 쓴 편지는 희생을
사랑이라 여기며 온 생을 다 주고 가신 내 엄마의 이야기가 되어 나를 아프게 했으며, 다른 모든 이야기들은 나를 깨우고, 사랑을 되새기게 해주고, 어떤 이야기로 글을 만들어야하는지를 다시 고민하게 만들었다.
내가 이미 읽은 책도 있었고 관심을 가지고 읽을까 말까를 저울질 하던 책도 있었는데, 마지막 장을 넘긴 순간 읽었던 책은 당장 다시 읽고싶어졌고 저울질 하던 책은 사야 할 도서 목록에 바로 올라갔다.
잔잔하게 던지는 이야기에 온 마음으로 깊은 파장이 번져가는 느낌..
책의 페이지 수나 두께가 절대 그 책의 깊이와 감상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
겸손한 태도만큼 낮은 자세로 따뜻하게 풀어놓은 쉬운 글은 큰 감동과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또한번 깨닫게 해준 좋은 책을 만나서 정말 기뻤다.
세상엔 좋은 책만큼이나 이렇게 훌륭한 서평책들이 많아서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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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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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완독.
요즘 읽었던 책들에 비해 번역 스타일도 쉽지않고, 저자의 문장 자체도 장문(어떤 문장은 아홉줄이나 되며, 중간에 괄호 안의 문장도 너무 많고 길다)과 이중부정, 긍정등이 너무 많다.
한 문장이 끝난 후 의미를 되새기며 이해해야하는 경우가 많아 가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격이 급해 책 한권을 여러날 읽지 못하는 나조차 하루만에 읽기 버거워 며칠간 틈틈이 읽어야했다.
하지만, 다 읽고나니 이책이 왜 오랜 시간동안 명저로
손꼽히며 수많은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정말 좋은 책이다.
히틀러의 나치가 독일과 유럽지역에서 위세를 떨치던 시기에 유대인들의 이동과 학살을 주도적으로 행했던
나치 친위대원 중 한명인 아이히만.
그는 전후 15년동안 신분을 바꾸고 숨어 살다가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어 예루살렘으로 납치 되었고,
그곳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된다.
미국 일간지의 의뢰로 그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기고했던 저자 한나 아렌트의 기록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저자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이지만, 자신의 민족을 학살한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기록하는 동안 놀라울 정도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철학자로서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냉정하게 아이히만과 그가 저지른 행위, 재판을 받는 그의 태도와 재판에 관계된 인물들을
총체적으로 관찰하고 면밀히 파악한다.
그리고 그 관찰을 토대로 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자들과 언론인들, 저자들에게 회자되는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예리한 표현으로 피고인 아이히만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아이히만은 희대의 악인이 아니고 사악한 악마도 아니며, 그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인간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않는 무사유의 죄를 저지른 자이며, 그를 통해 평범한 인간들이 얼마나 쉽게 희대의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야말로 무서운 ‘악의 평범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내린 결론이었던 것이다.
그에 덧붙여 그녀는 예루살렘에서 행해진 아이히만 재판에 대한 세가지 측면의 비판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그 논리들을 열거하고, 아이히만 재판이 그러한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몇가지 측면과 위험성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지적했다.
전후 독일 법정에 세워졌던 다른 전범들의 경우, 아이히만보다 높은 계급자로서 더 악랄하게 수많은 유대인 학살을 주도적으로 행했음에도 너무 가벼운 징역형을 받았던 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예루살렘이라는 유대인들의 법정에 세워진 아이히만은 그들보다 훨씬 낮은 계급이었고, 심지어 그의 주장처럼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정해진 수순처럼 이어진 재판을 통해 당연한듯 사형을 선고 받았고, 너무나 빨리 형이 집행 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공소시효를 무시하고 아이히만을 체포해 납치한 소환절차 문제부터,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변호로 아이히만을 돕기는 커녕 사형이 구형되는 데 일조한 듯한 아이히만 변호사의 무능함과, 피고 아이히만에게 유리한 증언이나 자료들은 무시하고 사실 확인도 없이 불리한 증언이나 자료만을 취사 선택한 예루살렘 법정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피해자들의 법정에서 벌어진 아이히만 재판은 바로 그 특성 때문에 유대인들의 복수를 위한 재판으로 인식됨으로써, 인류 전체의 비극을 다루는 재판으로 인식되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한나 아렌트의 통찰은
정말 놀랍다.
더구나 유대인인 그녀가 재판을 지켜보는 내내 민족적 분노나 동족의 비극에 대한 공감은 배제한 채 객관적이고 학자적인 시선을 끝까지 유지한 것,
피고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며 예루살렘 법정에서
이루어진 그 재판에 얼마나 많은 오해와 비난의 소지가 있는지까지도 냉철하게 지적한 것은
정말이지 놀라움을 넘어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그녀의 이런 태도는 (특히 그녀가 유대인이기에) 유대인들에게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그때문에 이 책이 가장 늦게 출간된 곳이 이스라엘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그녀의 태도는 사회 풍조나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손바닥을 뒤집듯 수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수많은 학자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 책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놀라운 통찰 외에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그래서 읽는동안 충격과 분노의 순간도 많았다.
나치만이 아니라 수많은 독일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종족이 독일인이라는 히틀러의 주장에 고무되어 그를 추종하고 유대인 학살에 동조 했다는 것, 독일뿐 아니라 수많은 유럽 국가들이 자국의 유대인들을 학살하는데 자발적으로 동참하고(심지어 폴란드는 히틀러가 학살을 시작하기도 전에 열심히 살인을 저지르고)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 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큰 분노를 느끼게 한 부분은 유대인 지도층들이 자신들의 목숨과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자발적인 협조로 유대인들의 명단을 만들어 기꺼이 독일에 건넸고, 학살될 자들과 생존할 자들을 선택하기까지 했다는 것.
그랬던 그들이 전후 이스라엘의 지도층이 되어 아이히만과 같은 전범을(동족들에게 저지른 자신들의 죄보다는 훨씬 가벼울지도 모르는) 재판하고 처벌 하다니 너무나 파렴치하고 뻔뻔하지 않은가!
어느 나라나 고통의 시기에는 변절자나 배신행위들은 있다지만 지도층이라는 자들의 부패와 타락은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한다.

나치가 선동에 능하다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무서울 정도로 뛰어난 책략을 펼쳤는지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학살이란 표현 대신 ‘최종해결책‘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학살을 저지르는 자들조차 스스로를 어쩔수 없는 해결책의 수행자일 뿐이라고 인식하게 만든 점이나, 살상된 유대인의 사체를 봐야만 하는 낮은 계급의 병사들에게 ‘내가 이렇게 잔인한 짓을 저질러야 하다니‘가 아니라 ‘내가 이런 끔찍한 것까지 보며 일해야하다니‘라는 관점으로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고 스스로를 안타깝게 여기도록 사고의 전환을 하게 했다는 부분에선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한나 아렌트의 지적처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노력 없이 어떤 사고도 하지않는 무사유의 태도는 인간에게 얼마나 큰 죄인가.
그럼에도 나치스에 가입해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느니 차라리 이렇게 죽는것이 훨씬 행복하다며 징집을 거부하고 기꺼이 총살 당했다는 독일 시골의 이름도 모르는 어린 농부 형제 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였고,
독일의 학살을 반대하며 전시의 부족한 상황에도 십시일반 가진 돈을 모아 돈없는 하층민 유대인들의 탈출자금을 마련해주었다는 네덜란드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는 뜨거운 감동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렇게 좋은 책을 난해한 직역의 아쉬운 번역 때문에 안읽을뻔 했다니.. ㅜㅜ
나처럼 쉬운 인문학 도서를 찾는 많은 독자들을 위해 좀 더 매끄럽고 쉽게 이해되는 좋은 번역서로 재출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진심으로, 간절하게 가져본다.
그래서 이 좋은 책을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읽게 되기를..
오랜만에 정말 많은 것을 깨닫고 생각하게 해준,
감사한 독서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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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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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일찍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제법 능력있는 사육사가 된 진이와
반대로 부모와 형제에게까지 무시 당하는 청년백수
민주.
영장류센터 근처에서 노숙을 하려던 민주는 보노보를 포획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사고가 난 영장류센터 직원들의 차를 발견한다.
침팬지 출몰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진이는 보노보를 발견해 포획에 성공해서 센터로 돌아가던 길에 사고를 당했고, 잠시 후 자신의 영혼과 보노보인 지니의 영혼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마주친 민주.
그런데 이상하게 그는 자신이 보노보가 아니라는 걸 눈치채고 있는 것 같다.
진이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민주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결국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데 성공한다.
민주의 도움으로 자신의 육체는 중상을 입고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며,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진이.
그사이 보노보의 몸에 갇혀있지만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의지하는 진이에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된 민주는 진이가 보노보의 몸속에 있더라도 사는 것을 선택하길 바라지만 진이는 혼란스런 감정으로 고민하게 된다.
보노보의 육체를 빌어 삶을 이어갈 것인가,
인간으로서 죽음을 선택 할 것인가.

솔직히 고백 하자면 정유정의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 전개나 주제등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어쩌다 보니 악의 3부작이라는 그녀의 전작들도 다 읽었지만 암울한 사람들의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은 읽는 것만으로도 힘겨웠고, 공감의 재미보다는 꺼림칙한 여운을 훨씬 더 많이 남겨주었으니까.
그녀의 소설에 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있는 독자들 중 꽤 많은 분들이 이 책은 다르다고 하는 것을 보았고, 일단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지 않으며 전작들과 달리 정유정 작가의 의도가 쉽게 이해되고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책이란 평들에 고무되어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녀의 전작들은 암울한 분위기와 등장인물들의 고통이 느껴져 읽으면서도 힘겨웠다면
이 책 ‘진이, 지니‘는 읽는 내내 그다지 공감이 되지도
감정의 휩쓸림으로 힘겹지도 않았다.
보노보 지니와 영혼이 바뀐채 자신을 포악한 유인원으로만 대하며 공격하는 사람들에 맞서 자신을 찾기위해 노력하는 진이의 심리가 그다지 깊게 와닿지 않았고,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는 민주와의 관계도 기대치만큼의 깊은 교류가 느껴지지 않아 아쉽기만 했다.
민주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부분에서도 역시 민주가 조금의 의심도 없이 진이를 믿고 위험을 자처하면서까지 그녀를 돕는 그 마음의 흐름이 저절로 이해되고 공감하게 되진 않았다.
그런 까닭에 마지막에 그녀가 내린 결정 역시 고귀한 선택이라기보다는 어쩔수 없는 것으로 느껴졌고,
마치 유인원인 지니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한 것처럼
묘사되는 것에 약간의 반발심마저 들었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흘러온 스토리가 없다해도
보통의 인간들이라면 그 상황에선 누구나 진이와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싶었던 이야기가 진이의 마지막 선택에 있다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진이는 쉽지 않은 결정을 했고 그 선택이 지니를 위한 포기라는 것도 맞긴 하지만, 지니의 몸을 선택해 수명을 유지하는 것이 인간인 진이에게 더 나은 선택은 결코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니까.
사고후 보노보의 몸에 들어간 후부터 마지막 선택에 이르기까지 진이가 느껴야했던 감정의 변화 과정,
진이를 돕는 민주와의 유대관계 등 여러 면에서 좀 더 깊이 공감 할 수 있는 의식의 흐름이 어딘지 부족하게 느껴져 아쉬웠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정유정 작가의 책 중 가장 아쉬운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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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7-19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 놓고 앞부분 읽다가...일년 째 잠재우고 있어요. 작가 다른 책 다 읽었는데 이 책 쯤 오니 단점들이 너무 극명하게 보여서,,,,

바다그리기 2020-07-19 11:56   좋아요 1 | URL
다른 분들의 평이 좋아서 가끔 별로라는 개인적 감상조차 조심스러운 책이 있는데 이 책과 작가도 저에겐 그랬어요. 저와 비슷하게 느끼신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기운 나는 느낌이네요. 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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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라는 존재는 일상적이지 않음에도 신기하게 소설이나 영화에선 식상하다 싶을 정도로 익숙하다.
어릴 때 버려져 도서관에서 살아가는 너구리영감에게 양아들처럼 키워진 주인공 래생은 꽤 솜씨가 좋은 킬러다.
표면적으로는 도서관을 운영하는 너구리 영감은 설계자들이라 불리는 집단에게서 전달된 살인 청부를 킬러들에게 나누어주고 돈을 버는 중개인.
킬러에 적합한 과묵함과 냉정함을 갖춘 래생은 너구리영감의 도서관에서 아무도 읽지않는 책을 읽으며 글씨를 익혔고,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으며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있다.
그런데 어느날 살인 목표인 어느 노인을 바로 죽이지 않고 망설이다 그 노인에게 발각돼 그의 집에서 저녁을 얻어먹고 잠까지 자고 오게되는 예외의 상황을 만든 래생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멘토같던 훈련관 아저씨와 젠틀한 동료 암살자 추, 그리고 살벌한 바닥에서 그나마 속을 터놓을 수 있었던 친구 정안까지 설계자들에 의해 버려져 이발사라는 잔인한 킬러에게 살해되자 래생은 가만 있을수 없게된다.
게다가 자신의 집 화장실에 수제폭탄을 설치한 미토라는 여자를 찾아내고 그녀가 살인계획을 창조하는 설계자들 중 한명이라는 것을 알게된 래생은 그녀를 도와 설계자들에게 복수를 하게 되는데..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이 언젠간 버려지고 죽음을 당하게 될 운명인 킬러들의 세상에서 죽은 친구들과
가족의 원수를 갚으려는 설계자 미토를 위해 목숨을 건 공격을 감행하려는 래생의 계획은 성공 할 수 있을까?

세계 각지에 번역되어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는 책 소개를 보고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이었을까?
얼핏 레옹이 연상되는 주인공 래생부터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들에선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익숙함과 식상함이 느껴지고, 스토리 전개 역시 새롭거나 신선하다는 느낌보다는 늘 보아온 킬러영화의 전개와 유사하게 느껴져 아쉽다.
무엇보다 킬러의 집에 폭탄을 설치해 자신을 찾아내게 할 정도로 당돌하고 복수 의지에 불타있던 미토라는
흥미로운 인물이 후반부로 갈수록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캐릭터로 변질되는 것과, 스토리 전개가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는 와중에도 주인공 래생의 감정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것은 정말 아쉬웠다.
특히 모두의 목숨을 걸고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마지막 엔딩은 정말 허무하다
싶을 정도.
그래도 우리가 흔히 살인청부업자라고 부르는 자들의 뒤에 건축 도면을 그리듯 모든 살인의 계획을 섬세하게 직조하는 설계자들이 있고, 또 그들의 뒤에는 막대한 권력의 힘을 가진 이들이 숨어있다는, 거대한 먹이사슬 식 설정은 인상적이었다.
한사람의 생명을 뺏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암살자, 그들도 결국 잔인한 먹이사슬의 아래에 위치한 불행한 존재들일 뿐이라는 설정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의
냉정한 본질을 의미하는 듯해 씁쓸함까지 느껴졌다.
결국 래생은 설계자들의 카르텔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지만, 엔딩 이후에 벌어질 일들은 그와 미토가 바라던대로 복수를 완성시킨 것이었을까?
어쩐지 설계자들 뒤에 숨은 최고 권력자들에 의해
래생과 한의 죽음 역시 전혀 다른 내용으로 포장되어 잊혀져버리고 미토와 래생이 무너뜨리려던 그들의 권력은 무너지긴 커녕 더욱 더 견고하게 지켜진 게 아닐까 하는 씁쓸한 짐작.
그러니 나같은 회의주의적 독자를 위해 조금 유치하더라도 확실한 엔딩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영화로 제작 된다니 시나리오에선 통쾌하고 확실한 결말을 기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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