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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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몽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현실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구할 수 없다.

목화는 목소리의 정체를 알았다. 꿈에서는 설명 없이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어떤 틈과 같은 것. 꿈과 현실의 균열. 어긋나는 지점. 또는 미세하게 맞닿은 선. 증명할 수 없으나 존재하는 세계.

가능성으로 남아 인식 너머에 존재하는 사건.

단 한 사람/ 최진영

금화를 잃고도 목화는 나이를 먹고 자랐다. 그러다가 열 여섯 살 되던 해에 꿈을 꾸었다. 아니 꿈이 아니었다. 꿈이라고도도 할 수 없는 그곳에서 목화는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자신의 눈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목화는 부디 사람들이 죽지 않게 해달라며 괴로워하며 기도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을 향해 빠르게 떨어졌다. 그때 의심하지 말고 구하면, 목화가 받으면 사람이 살 수 있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화는 달려가서 두 팔을 내밀었고 떨어지는 한 사람을 구해냈다.

한 사람.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었다. 자신의 속도와 두 팔로는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현실도 자각몽도 아닌 꿈속같은 장소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은 목화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딸에게만 내려오는 유전이었다. 목화의 어머니 장미수도 목화 나이 즈음에 그러한 숙명을 받았다. 미수의 어머니 임천자도 그러한 숙명을 받았다.

죽음을 향해 떨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임천자는 기적이라고 말했지만 장미수는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장미수는 자신의 아이들은 그런 운명을 타고 나지 않기를 바랐다. 장미수는 꿈속같은 장소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끔찍한 두통이 생겼다. 단 한 사람을 구하면 다른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장미수의 고통을 알아차린 신복일은 장미수의 건강을 걱정했고 마음을 주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해서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 일화, 월화, 금화, 목화와 목수

한겨레출판에서 가제본으로 받은 최진영의 <단 한 사람>을 읽었다.

얇은 흰 책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잃었는지도 모른 채 잃은 것을 찾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오랫동안 이야기의 맥락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최초의 씨앗에서 자란 나무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긴 세월을 지나면서 숲에서 가장 큰 나무가 되었고, 하나의 나무는 사람들에 의해 파괴된다. 그리고 다른 나무는 사람을 파괴한 적이 있다. 이야기의 처음에 나오는 숲과 나무가 뒤이어 나오는 일화, 월화, 금화, 목화, 목수 이 다섯 명의 아이들과 그들을 둘러싼 세계와 어떻게 연결이 될 것인지 궁금했다. 숲에서 사라진 금화는 살아있을까, 숲에 흡수된 것일까.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어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증명해가는 최진영 작가의 이야기는 늘 마지막이 궁금하다. 이미 《구의 증명》에서 나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지독하게 파고드는 작가의 증명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단 한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는 어떤 증명을 거쳐서 어떤 세계에 이를까.. 그리고 만약에 단 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를 것인가, 아니면 벌이라고 부를 것인가. 가제본만으로도 큰 세계가 펼쳐지는 기분이 드는 최진영의 <단 한 사람>의 마지막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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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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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길고 아득한 독서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과거의 맛집을 기록한 책은 여럿이지만 식민지 시대 소설을 통해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은 처음 접하는 것 같다. 작가의 이름만 아는 소설들이 많았지만 책에서 등장인물들이 경성 맛집을 찾아갔을 때 내용을 소개하고 줄거리와 결말까지 알려주고 있어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염상섭의 《삼대》는 교과서에도 자주 실려서 읽어본 독자가 많을 거라 생각된다. 이 책에서 《삼대》는 1장 '조선 최초의 서양 음식점' 청목당을 설명할 때 등장한다. 19030년대 초 경성을 배경으로 만석꾼 조 의관, 아들 조상훈, 손자 조덕기 등 삼대에 걸친 가족이 겪는 삶의 굴곡과 몰락 과정을 보여주는 《삼대》에서 청목당은 조상훈의 자식을 낳았지만 외면당해 술집에서 일하게 된 홍경애가 상훈에게 저녁을 사달라고 조르면서 데리고 간 장소이다. 그곳에서 홍경애는 청목당 3층에서 '큐라소'라는 라라하 오렌지를 원료로 만든 도수 높은 술을 마신다.

이 책에서는 당시 발표되었던 소설에 등장하는 맛집들을 통해 기록으로 정확하게 남아있지 않은 맛집들의 과거를 조명하고 있다. 곳곳에 실제 메뉴판과 사진, 신문에 실린 광고 등의 삽화를 보는 재미도 크다. 하나의 장이 끝날 때마다 <더 읽을거리>라는 코너를 두어 맛집을 알리기 위한 본문 내용에 더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경성의 맛집 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말을 서두에 꺼내고 있다. 그는 방치된 문화 유산 뿐 아닐 전반적으로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근대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음식을 공부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기억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하면서, 음식은 하나의 잣대만으로 모든 것이 가늠되기 이전의 기억이 남아있는 드문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식민지 시대의 경성 맛집을 다루는 것에 대해 오해의 여지가 남지 않도록 다음과 같이 "사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 이지러짐을 이야기"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각 장의 마지막에 실린 <더 읽을거리>와 맛집 소개의 곳곳에 들어간 작가의 역사 인식을 보면 그런 오해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책에서 다루는 맛집들이 등장하고 자리를 잡았던 때는 식민지 시대였다. 그런 까닭에 경성의 맛집을 다루는 이 책이 식민지 경험을 수긍하는 것으로 오해도리지로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일 뿐이다. 사실을 애써 외면하기보다는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 이지러짐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당한 태도가 아닐까? 이 책은 경성의 맛집에 드리웠던 식민지의 그늘에 주목하고 이를 밝혀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들어가며/ 경성 맛집 산책

이 책의 1부에서는 본정에 위치했던 식당 네 곳을 소개한다.

조선 최초의 서양요리점 청목당, 가족의 나들이 명소 미쓰코시백화점 식당, 경성 제일의 일본요리옥 화월, 모던보이와 모던걸을 유혹했던 이국적인 과일 디저트 카페 가네보 프루츠팔러. 본정은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금의 명동거리를 가리킨다. 식민지 시대에도 화려하게 피어났던 거리에 위치한 맛집들의 메뉴와 가격, 건물과 내부 묘사, 음식들의 맛 묘사와 소설에 등장하는 그곳의 장면들. 무엇보다 그런 맛집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상황까지. 지루할 틈 없이 맛집 산책이 이어진다. 런치가 가장 인기 있었던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등장하는 소설은 김말봉의 《찔레꽃》, 장혁주의 《삼곡선》 등이다. 작가는 화려한 미쓰코시 백화점 소개 뒤에 일본인들을 위한 출장소였다는 식민지 현실을 내비치며 역사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려준다.

2부에서는 종로에 위치한 세 곳의 식당을 소개한다. 경성 유일의 정갈한 조선음식점 화신백화점, 김두한이 단골로 다녔으며 지금도 정상 영업을 하고 있는 이문식당, 평양냉면에 필적하는 경성냉면 동양루.

당시 백화점들은 모두 서양 요리만 팔았는데 유일하게 조선인이 경영한 화신백화점에서는 조선음식을 팔았다.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도 등장하는 백화점은 온종일 줄을 서서 먹은 '조선 런치'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정상 영업 중인 이문식당이 나오는데, 나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내 비위에는 입구부터 맞지 않아서 설렁탕을 포장해왔지만 한 입도 먹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도 누린내가 강하게 풍겼다니 하는 기록을 보면 내 비위가 약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식민지 시대의 가난한 조선인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누린내조차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설렁탕에 이어 또 다른 소울푸드인 냉면은 배달음식으로 유명했다. 경성 곳곳에 식판을 메고 배달을 달리던 자전거들이 많았다고 한다.

3부에서는 장곡천정과 황금정에 위치한 세 곳의 식당을 소개한다. 장곡천정은 지금의 웨스턴조선호텔, 롯데백화점, 더 플라자가 위치해 있는 곳이다. 지금의 중구 소공로 부근을 가리키는 지명인 장곡천정은 조선 태종이 둘째 딸인 경정공주의 집이 있는 곳을 한자로 표기한 소공동에서 유래했는데,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이후 조선의 2대 총독을 역임했던 하세가와 요시미치라는 인명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조선호텔의 원래 이름은 '조선처도호텔'로 조선을 강점한 일본이 철도를 이용하는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건림한 철도호텔이었다.

조선의 식민지화를 발판으로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지은 조선호텔에 등장하는 소설은 심훈의 《불사조》이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칭송받는 계훈이 독일 유학 당시 '주리아'라는 독일 여성과 결혼을 한 다음 연주회를 하기 위해 조선에 왔는데, 문제는 계훈은 이미 조선에서 정희와 결혼해 아들까지 두고 있는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이다. 주리아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계훈은 연주회에서 전처 정희를 보고 주리아를 데리고 숙소인 조선호텔로 돌아간다. 한 달 동안이나 투숙하고 있는데, 호텔 하루 방값이 12원이라고 적혀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60만원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한 달 동안 투숙하고 양식밖에 못 먹는 주리아를 위해 하루 세 끼를 호텔에서 먹어야 했는데 그 가격도 하루에 14원이다. 그럼 하루 방값과 식사값을 합치면 150만원 정도 되는 것!

조선호텔이 철도호텔로 개장되었다는 사실은, 조선호텔 역시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철도를 건설했던 목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해준다. 일본이 철도를 건설했던, 특히 부산에서 출발해 경성을 거쳐 신의주에 이르는 노선의 철도를 사활을 걸고 개척했던 것은 조선의 식민지화를 발판으로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조선호텔의 구조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환구단'은 본래 대한제국 시절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으며, 그 북쪽에 위치한 '황궁우'는 신위판을 봉안하는 부속 건물이었다. 환구단의 자리에 조선호텔이 들어서자 황궁우는 조선호텔을 장식하는 건물로 전락하고 만다. 식민 지배를 위한 철도호텔이 중심에 있고 황궁우가 그것을 돋보이게 만드는 배경이 되는 것, 그것은 일본 제국과 식민지 조선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조선호텔의 빛과 어둠/ 경성 맛집 산책

장곡천정에서 낙랑파라를 빼놓을 수 없다. 낙랑파리는 '목일회'에 속한 구본웅, 길진섭, 긴용준, '구인회'구성원인 이태준, 박태원, 이상 등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중앙에 남국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큰 야자나무 형상과 파초가 있고 당시 유행이던 등나무 탁자와 의자 아이템에 놓여있는 내부를 찍은 사진에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낙랑파리는 응접실이나 거실을 뜻하는 '파라'의 일본식 표기에서 왔다고 한다. 이곳에 매일 왔던 이상은 사람들과 담소를 하다가 자신이 마신 찻값 10전만 내고 일어섰다는 일화가 있다. 지금으로 말하면 더치페이. 김소운은 이상의 당시의 관행이나 폐습을 탈피한 선각자였기 때문으로 보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궁핍에 시달렸던 이상이 예의를 갖추려고 했던 행위가 아닐까 싶다고 말하고 있다. 낙랑파라에 그린 이상의 낙서나 그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그린 삽화를 보면, 역시 이상은 범상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비참한 식민지 시대에도 번화했던 경성의 거리와 일본이 가져온 서양식 음식들. 가벼운 드라마에서는 모던걸 모던보이의 화려한 모습에 독립운동 한 스푼을 첨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소개된 맛집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해주고 있어서 오랫동안 흔적을 찾아서 기록한 저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지금의 맛집처럼 그때도 유명한 식당에 가기 위해서는 온종일 줄을 섰다고 한다. 그때의 맛집을 가볼 수 없으나, 이렇게 책으로 만나보는 시간여행을 해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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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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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하는 기록노동자 희정이 서로 다른 연령과 분야의 베테랑 13인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기록한 책이다. 그동안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다룬 르포집을 내고, 일하다 죽고 병드는 사회를 기록하고, 청수성심병원 이정미 노동열서 평전과 성소수자 노동을 다루었으며 싸우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사람들, 전자산업 내 2세 질환 직업병 문제 등 노동으로 인해 사회적 질병을 얻게 된 이야기를 썼던 작가가 이번에는 베테랑을 만났다. 저자는 '베테랑의 몸'이라는 키워드를 들고 그들을 찾아가서 "자신을 베테랑이라 생각하세요?" 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던졌다. 질문을 받은 이들의 대답은 각자 조금씩 달랐지만 그들은 '그냥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몸은 일의 기억을 새기는 성실한 기록자이다. 이른 아침 작업장, 주방, 목욕탕, 출산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의 성실은 성실하게 몸에 새겨진다.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성실이 자신과 가족을 먹이고 입히고 살린다고 믿지만, 몸에 성실히 새겨진 노동의 기록은 대가를 요구한다.

손가락에서 손목으로, 손목에서 어깨, 목, 허리, 골반으로. 그는 통증으로 인해 관절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알게 된다. 통증이 자세를 만들고, 자세는 체형을 만든다. 반복된 행동은 버릇과 습관으로 남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뱃심 든든한 몸통, 짙게 그을린 피부, 딴딴한 장딴지, 표정이 다채로운 얼굴, 짧게 다듬어진 손톱, 갈라진 발바닥, 우렁찬 목청, 청력 낮은 귀는 자신의 것이 된다. 젊은 시절, 아직 노동을 거치지 않았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몸을 안고 살아간다.

프롤로그/ 베테랑의 몸

각 분야의 베테랑을 인터뷰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노동인지 생각해본 다음 저자는 그들에게서 어떤 '가짐'들을 보았다고 한다. "자신만의 원칙이 무엇이건, 모두 견디고 버티고 인내하며 꼴을 갖춘 몸가짐과 마음가짐" 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베테랑의 손과 발을 보다가 그의 손에 쥐어진 것, 그의 발이 딛고 있는 자리가 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관계 맺어야 하는 대상과 어떻게 눈을 맞추는지도 보았다고.

그렇게 노동현장에서 성실하게 열심히 버티고 살아온 그들의 시간을, 저자는 알고 싶어서 인터뷰를 했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자 오랜 시간 집중해온 분야가 다른 만큼 노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몸과 기억의 기록이 다른 까닭이다. 1부 ‘균형 잡는 몸’에서는 세공사, 조리사, 로프공, 어부 등 혼자 하는 일에 집중을 하면서도 힘을 주고 풀어내며 일하는 베테랑의 몸에 집중하고 있고, 2부 ‘관계 맺는 몸’에서는 조산사, 안마사, 마필관리사, 세신사처럼 몸담고 있는 노동현장에서 마주하는 대상을 살피는 감각을 살핀다. 그리고 3부 ‘말하는 몸’에서는 수어통역사, 일러스트레이터. 전시기획자, 배우, 식자공처럼 표현하는 몸으로 수어·감정·연기·활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담담하면서도 날카로운 듯한 저자의 질문에 베테랑들은 자신의 몸에 새겨진 노동처럼 붙이거나 빼는 것 없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지금보다 힘들게 일했던 시절에 대한 회상과 그 시간을 버티고 난 지금에 대해서 별 거 아닌 것처럼 무심하게 털어놓고 있지만 노동으로 익숙해진 몸은 말이 들려주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고 지나온 그들도 시대가 변한 지금 옛날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시대는 변했고 노동환경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 중 자연주의출산센터의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는 조산사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산모는 환자가 아니라 출산의 주체라는 말. 병원에서 출산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산모라면 모두 공감할 내용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금식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하는데, 그건 선진국에서는 고위험군 산모에게만 쓰는 방식이라고 했다. 책에 나온 것이 전부가 아니라 여성의 몸을 존중하고 잘 읽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조산사 김수진 씨는 경험과 숙련이 쌓이는 만큼 과도한 노동을 하기에 체력이 아슬아슬해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균형은 베테랑 뿐 아니라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한 생이 세상으로 나오기까지 어떠한 시간과 감정, 그리고 노동이 들어가는지 조산사를 통해 엿보았다. 환대와 환희. 이 단어들을 앞세우기 위해 견뎌야 하는 통증과 외로움. 이를 견디게 하는 의존과 믿음. 내가 아무리 출산과 돌봄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고 해도, 이 탄생의 순간에 투여된 것보다 몇 배가 넘는 인내와 노동이 돌보고 기르고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 들어간다는 것은 안다.

참 쉽게 사라진다. 무수한 생이 단숨에 사라지는 일은 가슴을 부여잡고도 삶을 휘청이게 한다. 그리고 야금야금, 일 하다가 너무 많은 이들이 병들고 목숨을 잃는다. '한 해에 2000명이 일하다 죽는'이라는 문구는, 관용어도 아닌데, 10년이 넘도록 변하질 않는다. 단 한 사람만 죽일 수 없으니, 단 2000명이 사라진 것이 아니겠다.

태어나는 일도, 살아가는 일도, 사라지는 일도, 그리고 애도하는 일도 존중 속에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 처음 닿은 손길이 누군가의 진정한 노동이라면, 존중받았다.

'생명과 존중에 대하여' 인터뷰 후기/ 베테랑의 몸

마필관리사에 대한 인터뷰에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위계에 대한 저자의 인식이 들어있다. 말을 돌보며 관리하는 마필관리사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노동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말이 왜 인간을 위해 달려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까지는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말을 왜 달려야 하는지 질문할 수 밖에 없었다. 왜 말을 타고 달리는 경기를 열게 되었냐는 질문에 마필관리사는 말이 달리는 것을 보는 것이 재미있고 내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했다.

뒤이어 저자는 천선란의 《천개의 파랑》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여 마지막 질문을 한다.

"그럼 말은 왜 달려야 하나요?" 마필관리사의 대답은 어떠했을까. 책에 나오지 않지만 몹시 궁금해졌다.

영어를 배울 때 귀가 먼저 뚫려야 하는 것처럼 수어는 눈이 먼저 트여야 한다고 말하는 수어통역사 장진석 씨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대학교 1학년 때 '수화 동아리'에 들어간 장진석은 수어가 재미있어서 배웠지만 농인조차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실제 농인을 만났을 때 자신이 잘못 배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자신이 배웠던 것은 수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쓰는 청인들의 언어에 단어만 그대로 가져다 붙인 것이었다. 한마디로 수어의 '콩글리시'였다는. 본격적으로 수어를 배운 후부터 농인들이 실생활에서 쓰는 언어를 알게 되었고 수어의 매력이 더 커졌다는 정진석 씨는 농인들은 소리를 모두 눈으로 판별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손뿐 아니라 모든 신체, 특히 얼굴 표정이 중요한 언어가 되는 거라고. 또한 수어는 텍스트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맥락을 함께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강조하고 있다.

내가 종종 입밖에 내는 바람이 있다. "사람들이 자기만의 언어를 찾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사람들이 독창적이고 미학적인 글을 쓰거나 책을 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코다(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로서의 경험을 담은 저서를 쓴 이길보라 감독은 "언어를 찾는 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내 몸에 겹겹이 쌓여 있던 행동 양식과 가치 판단을 하나하나 풀어 나를 가두던 틀을 바라보는" 일. 자신만의 언어를 찾자는 말은 사회가 빚은 그릇을 벗어나보자는 의미였다.

'그 편리와 효율은 누가 정하는 걸까' 인터뷰 후기/ 베테랑의 몸

"사람들이 자신만의 언어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말에 어쩐지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사회적 비극이나 아픈 사건들 이후 다수가 우르르 몰려가서 어디선가 들은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착각하면서 일말의 가책도 없는 표정으로 큰 소리로 떠들어대고 그것이 오직 진리인 것처럼 외치는 광경에 저자의 이 문장을 풀어놓고 싶었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자신만의 언어로서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도록. 자유를 외치면서 정작 자유의 의미를 잃어버린 언어에 길들여진 혐오의 덩어리에.

우리는 각자의 노동을 하며 각자의 몸으로 굳어졌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노동의 분야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알 뿐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저자의 인터뷰로 인해 내가 잘못 이해하거나 오해했던 분야의 노동을 조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실제 인터뷰를 보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지는 책이라고 가독성이 좋았다. 그리고 저자의 생각이 좀더 깊이 담긴 인터뷰 후기는 생각할 여지를 두고 있어서 더 좋았다.

노동은 노동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그 노동이 연결되어 있는 지점과 만났을 때 그 지점이 보일 때는 의미의 경계가 넓어지는 것 같다. 오랜 노동으로 빚어낸 시간과 만날 수 있었던 책!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태어나는 일도, 살아가는 일도, 사라지는 일도, 그리고 애도하는 일도 존중 속에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 처음 닿은 손길이 누군가의 진정한 노동이라면, 존중받았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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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듀엣
김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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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옹호라는 시적 사명을 올곧이 수행하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밀어붙였다”(신동엽문학상) “풍부한 인간의 삶과 감정과 이야기가 있고 사회적인 자의식이 독특한 방식으로 표명돼 있다”(김준성문학상)고 평가받은 김현 시인의 첫 소설집이다.


시인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소수자의 서정을 애특하게 그려왔으며 인권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인을 기억하는 '304 낭독회' 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으며 이태원 참사 추모 문학제에서 사회를 맡기도 했다. 사회 문제에 순순히 눈감지 않고 잊지 않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동시에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참여하는 작가들이 나는 존경스럽다. 자신의 목소리를 작품 속에 제대로 담아내는 것도 어렵지만 직접 사회적 활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후에 나는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향해 거세게 달려드는 비난과 혐오를 보면서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세월호로부터 십 여년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고 더욱 커져버린 혐오의 덩어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그들은 왜, 어떤 이유로 그런 식으로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며칠 전 영상 하나를 보았다. 영상 속에서 혐오로 무장한 누군가가 이태원 희생자 유가족들 앞에서 '이태원 참사는 북한 소행'이라는 발언을 하고 있었다. 이에 유가족이 울면서 다가오자 그 누군가는 '북한 소행이 맞으니까 저러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방법을 알았다'며 유가족을 비웃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를 향한 비웃음소리가 악몽처럼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누군가에게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그들에게 애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죽음을 비웃는 소리라니...

시인 김현은 그런 현장을 오래도록 지켜왔을 것이다. 잊지 않고, 기억으로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다.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시 「블로우잡Blow Job」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준성문학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글로리홀』, 『입술을 열면』, 『호시절』 등, 산문집으로 『걱정 말고 다녀와』, 『아무튼 스웨터』, 『질문 있습니다』,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당신의 자리는 비워 둘게요』 등이 있고, 앤솔러지 소설집 『새벽의 방문자들』,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등에 참여했다. 2012년 짧은 영화 [영화적인 삶 1/2]를 연출했다. 2021년 『낮의 해변에서 혼자』 시집을 냈다.사

출처 : 예스24 작가파일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여러 죽음이 들려왔다. 수많은 희생자를 내는 죽음에는 비극적인 사건이 존재한다.

《고스트 듀엣》은 삶에 죽음이 들어와 있는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담겨 있다. 그의 소설에서 죽음의 삶의 반대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후에 남겨진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삶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먼저 떠난 사람을 기억한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기록한다. 그들에게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은 분리되어 있지 않기에 작가는 초자연적 현상과 SF적 소재를 매개로 산 자와 죽은 자를 만나게 하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려고 한다.

맑은 술이 담긴 잔이 돌고 돌고 노래할 사람은 노래하고 춤출 사람은 춤추고 갈 사람은 가지 않고 이승에 미련이 없는, 가야 할 귀신이 가고 싶지 않아 해서 산 사람들이 어르고 달래 저승문 앞까지 배웅했다.

수월水月/ 고스트 듀엣/ 김현

소설집의 가장 처음에 실린 <수월>은 평온한 죽음을 맞이했던 엄마가 찾아와서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딸과 딸의 친구와 그 옆의 친구와 함께 놀다 가는 이야기로 소설의 마지막 구절은 작가가 시인이라는 사실이 실감나는 장면이 있다. 표제작이기도 한 <고스트 듀엣>에 나오는 "마음을 다해 잊고자 하는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기억하고자 하는 그 얼굴을."이라는 구절에서 작품을 쓰는 작가의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말하며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꽉 막힌 사람처럼 상대를 평가하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농담일 수 있지만 상대에게는 상처일 수 있는 말이기 때문. <유미의 기분>에 내가 품고 있었던 마음을 대변해주는 문장이 나온다. "아, 그건, 다 같이 웃자고 한 얘기지." "저는 안 웃었는데요." 모두가 불편하지 않도록 웃어주면, 그 다음에도 변하지 않을 테니까 유미는 끝까지 자신의 기분을 지킨다. 그로 인해 고립되어 가는 상황에 처해지더라도. "저는 기분이 나빴어요." 라는 말을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유미들이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내가 사라지더라도 간직해줘. 이건 오랫동안 변하지 않으니까. 누구나 간직하진 않지만, 누군가 간직하게 되면 오래 사랑받으니까.

천사는 좋은 날씨와 함께 온다/ 고스트 듀엣/ 김현

사람하는 사람을 잃고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죽음이 삶으로 들어온 시대에 함께 머물러주고 싶은 위로와 다정을 담은 소설집.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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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레시피 - 논리와 감성을 버무린 칼럼 쓰기의 모든 것
최진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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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 하니포터 6기 서평단 활동을 마치고 무거운 여름을 보낸 뒤 다시 하니포터 7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겨레출판에 읽고 싶은 새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서 내 욕심대로 신청을 했다가 나중에는 마감 아님 마감에 쫓겼던 적도 있었다. 즐거움으로 시작된 독서가 의무감으로 치닫게 될 위기에 처했던 날들을 무사히 이겨내고 하니포터6기 활동을 잘 마치고, 우수서평자로 뽑혀서 상품권 선물까지 받게 되었을 때 어찌나 뿌듯하던지..!

이제 다시 하니포터7기로 서평단 활동 시작한다. 성긴 독서의 끈을 조이면서 좀더 숨차게 달려가보려 한다.

첫번째로 받은 책은 《칼럼 레시피》

처음에는 여느 글쓰기 책처럼 보편적으로 알려진 내용을 버무린 것이겠지 하면서 무심히 읽기 시작했는데, 읽을수록 저자의 칼럼 쓰는 기법 뿐 아니라 책의 구조를 짜내는 기술에도 빠져들었다. 물론 출판사 편집을 통해서 정리가 되었겠지만 칼럼을 요리 레시피에 빗대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면서 폭넓은 사례까지 깊은 통찰을 통해 보여주는 글은 진정성있게 다가왔다.

내가 존경하는 정희진 작가님의 추천사가 있다는 점도 독서의 몰입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었다, 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요리는 재료의 변환과 통섭, 도약의 과정이다. 훌륭한 요리사는 예술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글쓰기 레시피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필자의 유려하고 쉬운 문체와 좋은 사례, 관점이 매력적으로 발효되었기 때문이다. 진부한 주장들 그리고 사유 부재의 '사연 팔이'가 솔직한 글쓰기의 특징으로 오해되는 당대 한국 사회에서, 모처럼 담백하고 정직한 책을 만나 기쁘다.

정희진/ 칼럼레시피 추천사

저자는 오랫동안 칼럼의 매력에 빠져 지내는 글쓰기 전문 강사로 강의 현장에서 경험하고 정립한 글쓰기의 기본기와 고급 기술의 정수를 이 책에 담았다고 한다. 그런만큼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고와 사유의 깊이를 돋아볼 수 있는 내용으로 알찬 책이다. 요리에 빗대자면 유튜브 숏츠로 간략하게 보이는 레시피가 아니라 재료 선정과 손질 방식, 조리 과정을 지나 플레이팅에 이르기는 모든 것을 차근차근 보여주는 내공 깊은 셰프의 레시피라고 할까.

칼럼이라는 글의 장르는 어쩐지 진입 장벽이 높게 여겨져서 나는 그동안 한번도 도전해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장르를 쉽게 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게 모든 글쓰기는 왜 이토록 어렵고 막다른 골목에서 헤매고 있다는 기분만 느끼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서평을 쓸 때도 한번도 입구를 찾지 못하고 엄청나게 헤맨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안의 돌기를 짚어 내고 나름의 의견을 제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칼럼을 잘 쓸 수 있어요." 라고.

인터넷과 SNS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이슈가 터지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쉽기기 어려움 돌기들이 솟아있는데 그런 돌기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쓰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방법를 익혀서 누구나 칼럼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경험만으로 요리를 하지 않습니다. 조리를 해보지 않았기에 라면을 끓이고 배달 음식을 시키는 게 더 마음이 편할 뿐이에요. 칼럼 역시 경험으로만 쓰지 않습니다. 사안의 돌기를 발견하고 불편람을 넘어 분노가 끓어도 막상 글로 표현하려니 두려워 뒷걸음질할 뿐이죠. 레시피가 주어지면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듯이 방법을 알면 누구나 칼럼을 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쓰고자 하는 마음이니까요.

칼럼 레시피

초보자들도 큰 부담없이 쓸 수 있는 1단계 레시피는 '이야기서술+의미부여'로 시작한다. 2단계는 '개인 경험을 사회 문제로 확장하기', 3단계는 "주제를 정해 주장하기'이다. 레시피를 따라하듯 직접 쓰면서 "체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모두 11장으로 구성된 레시피에는 좋은 글감을 찾는 법, 칼럼 여정 그리기, 흡입력 있은 첫 문단 쓰는 법, 전개 방식, 글의 격을 높이는 고급 기법들, 글력 향상을 위한 필수 루틴 등등으로 초보자가 백지에 첫글자를 쓸 수 있도록 세심하게 손을 잡아준다.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이 지면에 소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으니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자주 꺼내 읽으면서 글감을 찾고 문장을 쓰고 구조를 다듬고 마무리를 하는 것까지 꾸준한 매일의 훈련이 필요할 것 같기 때문이다. 곁에 두고 반복해서 따라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체화된 칼럼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오랫동안 글쓰기를 놓아버렸던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내 앞에 놓인 백지가 체화된 글로 채워지기를 바라면서 첫 문장의 획을 그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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