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이데올로기 - 수저 계급 사회에 던지는 20가지 질문
조돈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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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고소득자가 다수의 저소득자를 지배하는 불평등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불평등 체제는 자본계급을 중심으로 한 지배 세력의 이데올로기인 '불평등 이데올리기'와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피지배 세력의 이데올로기인 '평등 이데올로기'의 투쟁의 결과에 따라 더 불평등하거나 더 평등해질 수 있다는 보수 경제학 출신의 피케티가 역설하는 '이데올로기 투쟁의 역사'관점을 기반으로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파악한다.

불평등 체제는 절대다수를 구성하는 피지배자들이 불평등 체제에서 피해를 받으면서도 불평등 체제를 정당한 것으로 수용하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피지배자들이 불만을 가지고 평등을 요구하면 불평등 체제는 불안정해진다. 시장경제 모델로 불평등 체제를 분석했을 때 미국은 지배계급의 불평등 이데올로기가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스웨덴은 노동계급의 평등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이 강하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독일이나 스페인처럼 미국와 스웨덴 사이에 있다. 불평등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피지배계급의 평등 이데올로기를 압도하는 수준은 아니라서, 한국은 불평등 체제는 불안정하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서 등장한 금수저, 흙수저와 같은 수저 계급 명칭은 노력의 중요성보다 출신 배경의 중요성이 상승하는 추세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출신 배경의 상대적 우위가 더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세습 자본주의의 특성, 즉 소득과 자산, 교육을 매개로 불평등이 대물림되는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 사회가 왜 불평등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벗어날 여지는 없는지를 이데올로기 중심으로 분석하는 이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실태와 불평등이 어떻게 심화되는지 설명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에서 소득과 자산 불평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데, 이러한 불평등 배분 구조의 형성과 유지는 계급 역학관계와 이데올로기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2부는 불평등 이데올로기가 한국 사회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지배하는지를 검증한다. 여기에서는 지배계급의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다음과 같은 세 개의 기본 명제가 나온다. '불평등은 없다.', '불평등이 있다 하더라도, 불평등은 정당하다.',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없다 하더라도 대안적 평등 사회는 실현 불가능하다.'

3부는 한국 사회의 공정성 담론을 불평등 사회의 공정성 원칙과 함께 분석한다. 여기에서는 공정성 문제를 연구행 온 상대적 기준의 공리주의 공정성 원칙과 과정 중시 절대적 기준의 존 롤스 공정성 원칙을 검토한다.

4부는 한국 사회에서 전개디고 있는 불펻응과 불공정 관련 담론의 쟁점을 분석한다. 여기에서는 인국공 ㅅ타ㅐ를 중점으로 국가의 공동선 실현 과제와 반대 담론을 분석하며 공정성 가치를 동원한 반대 담론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해부하고, 재벌을 보호하며 공정성 원칙에 역행하는 현상을 분석하여 재벌의 상호적 공정성 원칙 위반 현상을 설명한다.

5부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체제가 구조적으로 불안정함을 촛불 항쟁 사례로 설명하고 향후 변화 가능성을 논의한다. 여기에서는 촛불 항쟁과 이후의 시기를 분석하며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 건설을 위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던 촛불 민중이 개혁을 포기한 정부에 실망하며 지지를 철회하는 현상, 평등 사회 대안 관련한 시민들의 모순적 태도를 분석하고 평등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방안으로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을 제시한다.


불평등한 현실에 불만을 지닌 시민들이 평등한 복지국가를 희망하면서도 그 전형적 모델인 북유럽보다 불평등하고 복지제도가 덜 발달한 미국을 선호한다.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시민들이 북유럽보다 미국을 더 선호하는 현상은 미국의 실체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강대국에 대한 막연한 선망, 그리고 북유럽에 대한 지식·정보 부족 탓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지배계급 이데올로기의 영향력도 상당 정도 반영하는 것으로 의심된다. 이는 불평등 체제를 둘러싼 이데올로기 투쟁의 수혜자-피해자 대립 구도에서 불평등을 정족당화하는 지배계급이 승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318,319쪽_불평등 이데올로기

한국 불평등 체제의 수혜자인 고자산·고소득층과 지배계급은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모델의 주창자다. 그것은 미국식 모델이 유럽형 조정 시장경제 모델에 비해 사회적 규제를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성과 자본의 지배력을 최대한 보장하기 때문이다.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모델의 정책·제도들은 1997~98 외환 위기와 뒤이은 경제 위기 속에서 IMF 구제 금융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도입·실행되기 시작했다. IMF에 의해 강제된 정책 패키지는 금육 시장 개방, 노동 시장 유연화, 공기업 민영화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들이었는데, 현재 한국 시장 질서의 모델이 이미 상당 정도 제도화되어 있다는 사실은 시민들도 자유시장경제 모델에 친화적인 시장·자본의 논리를 내면화하며 적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지배계급은 좀 더 극단적인 자유시장경제 모델을 원하고 있다.

319쪽, 320쪽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하는 가장 큰 숙제는 불평등이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 체제는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10명 가운데 아홉 명은 불평등 수준이 심각하다고 보고 불평등에 대한 불만도 높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소득이나 비정규직을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전체 사회가 책임져야 할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불평등과 불공정 수준이 높고 시민들의 불만도 강하고, 노동의 저항고 강력하고, 시민들의 상대적 공정성 원칙에 대한 헌신도가 높고 공정성 원칙 위반에 대한 응징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불안정한 불평등 체제로 언제든이 다시 촛불 항쟁처럼 불평등한 상황을 뒤집으려는 저항을 준비하고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책의 부제처럼 '수제 계급 사회에 던지는 20가지 질문'으로 구성된 책에서 각 질문을 만날 때마다 가까운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평등한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사회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저소득을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평등 이데올로기를 실현하고 싶은 않은 의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부의 대물림이 심화되는 세습 자본주의의 고리가 느슨해져서 소수에게 한정되었던 기회가 다수에게 열리기 위해서는 노동자 중심 주체 형성과 소득 재분배가 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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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복지 - 공장식 축산을 넘어, 한국식 동물복지 농장의 모든 것
윤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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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축산농장에서 동물복지를 실현하려면 이처럼 동물복지 수준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산자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인증제도라는 것도 다른 측면에서 보면 결국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일종의 규제인데, 스스로 규제를 받아들이며 인증에 참여하려는 생산자는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규제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뤄진다면 참여울이 어느 정도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에 따른 비용은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우선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끝으로 동물복지 인증제도와 관련해 인증 절차, 평가 방식, 동물복지 축산물 구입처 등 모든 정보는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최근 축산물에 대한 정보 습득이 쉬워지면서 동물복지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는 그들의 사육 환경에도 상당히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관심이 동물복지 제품에 대한 불신으로 바뀌지 않고 실질적인 구매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동물복지 사육 환경과 인증제도를 이해시키는 것에 보다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318쪽_돼지 복지



이 책은 동물자원과 전공 3학년 때 해야하는 목장 실습에서 양돈장을 선택해서 간 다음, 그곳의 처참한 환경을 목격한 뒤 동물복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핀란드에게 산업동물의 동물복지를 연구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한 윤진현 교수가 우리나라의 동물복지가 어떤 시설과 사육 방식으로 실현 가능한지 실제 사례를 통해 자세히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양돈장의 현실을 파악하고 핀란드의 동물복지를 제시한다.

그리고 "돼지의 복지를 위한다면서 돼지를 애지중지 키워 잡아먹는 건 괜찮고?" 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축 전염성 질병의 확산, 축산물 유해 물질 잔류, 축산농가에서 발생한 항생제 내성균 등의 문제에 대해 현대식 집약적 축산에서 농장도물들은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품종만 선택되고 개량되면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같은 병원체에 저항할 수 있는 강건성이 떨어지고, 규모화된 사육 환경으로 전염성 질병이 확산되기 쉬우며 동물의 습성을 억압한 생산 시스템은 동물의 면역 체계를 손상해 질병으로부터 취약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생산자는 값싸고 효육적인 방법으로 항성물질이 포함된 동물약품이나 합성 첨가제에 의존하는데, 이러한 과정은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작가는 현실적으로 동물복지를 실행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축산물 종사자, 동물복지 인증제도 활성화를 위한 방향과 평가 지표를 고민하는 담당 관계자, 동물복지 축산물을 유통하고 싶지만 인증받은 농장이 턱없이 부족해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하기 어려운 기업체, 지속 가능한 축산 시스템을 공부하는 동물자원 전공 학생들이 동물복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다시 보니 이곳은 창문이 없었다. 천장에 형광등이 있었지만 먼지가 수북이 쌓이고 파리똥에 뒤덮여 이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환풍기 사이로 들어오는 빛줄기 덕분에 내부를 겨우 살펴보았다. 콘크리트로 된 바닥은 절반이 막혀 있고, 절반은 줄무늬 형태로 틈이 있었다. 이처럼 바닥에 틈을 내어 분뇨가 밑으로 떨어지도록 설계한 구조를 '슬랫 바닥 구조'라고 한다. 그러나 막힌 쪽 바닥이 분뇨로 뒤덮여 있는 펜이 많이 보였다. 제한된 공간에 너무 많은 돼지를 키우다 보니 쉬는 공간과 배설하는 공간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돼지는 원래 잠자리와 배설 공간을 구분하는 영특한 본능르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소용이 없어 보였다.

보통 100kg의 비육돈 한 마리가 하루에 먹는 사료량은 약 2.7kg인데, 배설하는 분의 양은 약2kg, 오줌은 약 3kg 정도 된다. 이렇게 배설된 분뇨가 밑으로 빠지지 않고 바닥에 남아 있다 보니 돼지들의 몸은 온통 분뇨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코와 눈을 마비시키는 지독한 악취의 발원지가 바로 그곳이다. 과연 이런 환경에서 돼지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돼지들의 기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목에서 나온느 얕은 기침이 아니라 호흡기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기침 같았다.

36쪽_돼지 복지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 속의 돼지, 축산농가의 돼지, 마트에 포장육으로 진열된 돼지를 모두 같은 돼지로 인식할 수 있을까. 모두 돼지라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마트에 진열된 포장육을 보고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축산농가 돼지를 떠오르기는 쉽지 않다. 포장육은 돼지의 사육 환경과 사육 방식이 생략된 채 깨끗한 결과물로만 소비자에게 보여지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번에 읽었던 《더티 워크》가 '더럽거나 오염된 것들을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뒤편으로 치워버린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그것들은 보이지 않을 뿐이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비인간적 산업 시스템, 지역 사회와 정부의 겉핥기식 대응, 자본주의 및 소비자 사회의 과도한 이윤 추구, 대중의 무관심이 합쳐지면서 이러한 더티 워크는 지속되고 심화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돼지 복지》도 《더티 워크》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2021년 134개소의 양돈 농가를 조사했을 때, 약 60%의 농가가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려는 의향이 있다고 답한 데 반해, 실제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받은 양돈장은 0.3%에 그쳤다.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세상 거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동물복지 실현으로 나아가는 길에도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실제로 동물복지형 농장이 자리 잡은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은 동물복지 축산물이 활발히 거래되는 시장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지속가능한 축산을 위해서는 보이지 않도록 우리 눈에서 치우는 방식이 아닌 투명하게 과정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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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한 미식가 - 나를 돌보고 남을 살리는 초식마녀 식탁 에세이
초식마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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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주목이나 관심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즐기긴커녕 경계심이 강해서 불특정 다수에게 일방적으로 얼굴을 노출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동물들의 비참한 처지를 인정하고 나니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시작했습니다. 현장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안전하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인데 이것마저 누군가 해주길 바라면서 미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만든 영상이 누군가에게 비건이 되는 출발점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온라인에 영구히 흑역사를 남기게 되더라도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백문불여일식 百聞不如一食.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먹어보는 게 낫습니다. 백 마디 옳은 말보다 맛있는 밥 한 그릇이 훨씬 설득력 있고, 비건이 옳다고 설득하기 위해 진을 빼느니 맛있는 비건식 한 끼 대접하는 게 낫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하지만 일일이 먹여줄 수 없으니 대신 레시피를 알려드리기로 했습니다. 자,여기 맛 좋은 레시피입니다. 이제 남은 미션은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을 어떻게 불어일으키느냐입니다.

비건한 미식가_ 7 ~ 8쪽

"지구에 덜 빚지는 식사를 차리고 모두와 연결되는 삶을 살고 싶은 초식마녀"

무기력한 순간이 찾아오면 요리를 하면서 스스로를 대접하는 초식마녀의 비건 식탁 에세이에는 비건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진 작가의 일상이 담겨있다. 귀여운 일상 툰과 31가지의 채식 레시피에 깃든 이야기에서 작가는 '죽음 없는 재료'를 사용해서 비건을 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책에 나오는 작가의 소소한 생활과 레시피와 그림은 따뜻하지만, 동물이 아니라 고기로 태어나서 비참한 환경에서 살다가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의 처지와 육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 오염과 무수히 늘어나는 쓰레기, 다양성의 감소 등에 대한 작가의 말은 단호하다.

작가가 비건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건 요리를 만드는 영상을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을 때 영상을 보고 비건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사람들, 비건 생활이 외롭지 않게 되었다는 사람들, 다양한 비건 요리를 해먹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람들이 응원을 주기도 했지만 끝업이 찾아와서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건 할 거면 혼자 하라는 사람들, 강요하지 말라는 사람들, 식물은 안 불쌍하냐는 사람들. 작가가 올리는 영상은 비건 레시피인데, 굳이 와서. 게다가 작가는 강요하지 않았다. 비건을 해야 하는 이유를 레시피와 함께 보여줬을 뿐.

이 에세이를 읽다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소설이 생각났다. 어느 날, 채식을 선언하고 실천하는 주인공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가족들이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고 했던 장면. 고기를 먹지 않으면 비정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은 강제로 채식주의자에게 고기를 강요했다. 채식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큰 잘못인 것처럼.

아마존의 산림 파괴와 고기와 유제품 생산을 위해 사용되는 농지 오염 등을 언급하며 비건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책은 주변과 연결되는 따뜻한 이야기를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재료가 많이 들지 않고 과정이 단순한 채식 레시피는 누구라도 쉽게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예를 들어, 토마토 비빔밥의 레시파는 다음과 같다.

  1. 깨끗하게 씻은 토마토를 취향껏 잘게 잘라줍니다.

  2. 미지근한 밥 위에 토마토를 올려주세요.

  3. 고추장과 참기름을 한 숟갈씩 넣고

  4. 쫑쫑 썬 청양고추를 올려 골고루 비벼줍니다.


이렇게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레시피는 집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쉽게 만들 수 있다. 부담이 없어서 당장이라도 해볼 수 있는 채식 레시피를 부엌에 두고 자주 이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부터 나는 고기 냄새를 맡으면 속이 좋지 않아서 되도록 고기 굽는 자리를 피한다. 마트에 가도 정육 코너나 생선 코너를 피해서 간다. 고기를 먹으면 속도 안 좋을 뿐 아니라 일단 맛이 없어서 먹기 싫었다. 소고기, 돼지고기는 물론 닭고기도 먹고 싶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주말에 치맥을 자주 즐겼는데, 언젠가부터 치킨을 씹는 느낌이나 맛이 싫어졌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고기를 거의 먹지 않고 있다. 그래서 쉽고 간단하고 맛있는 채식 레시피 에세이가 반갑다.

비빔밥, 비빔국수, 시금치 김밥, 김치 칼제비, 토마토 알리오 올리오, 비건 마라탕, 애호박 파스타 등등. 먹어보고 싶은 음식들이 많다. 비건에 대한 지식이나 명확한 의지는 아직 없지만, 고기가 싫어서 채식을 하는 과정도 육식보다 지구에 더 도움이 되는 행동이 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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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국가의 배신 - 김학의 사건이 예고한 파국, 검찰정권은 공정과 상식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이춘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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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2013년 10월12일 서울고검 국정감사장에서 당시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은 윤석열 검사가 했던 이 말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그가 이런 대답을 하기 직전, 어떤 질문이 있었는지 장면을 좀 더 뒤로 돌려보자.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에서 배제된 윤석열 여주지청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직원의 체포와 공소장 변경 신청 등에 대해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에 보고했다고 증언하며, 국정원 수사에 외압이 심각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수사 외압의 실체를 물으며 황교안 법무부 장관도 포함되지 않느냐는 의원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에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막말을 쏟아내며, "증인은 조직을 사랑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조직을 사랑한다는 말에 이어 나왔던 말이 바로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였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검사가 공정과 상식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근거 없이 그가 깨끗할 거라고 생각했다. 정치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니까 깨끗하겠지...대선 당시, 막연한 희망에 사로잡혀 이런 식의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하지만 공정과 상식을 필두로 정권을 잡은 검찰정권 하에서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일들이, 자주 발생했다. 대통령과 가까운 검사 출신 인물들이 행정부를 장악하고, 거부권을 반복해서 행사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요구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희석되어갔다.

이 책은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을 눈에 보일 듯이 생생하게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며 그려내면서, 이 사건에 들어있던 검찰정치의 작동 원리를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검찰의 자기반성 없는 역사와 기만적인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검찰정권의 신호탄이 되었던 김학의 사건의 주인공 김학의는 2019년 6월 기소된 뒤 총 다섯 번의 재판을 받았는데, 그 결과 뇌물수수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고 성 접대 혐의는 공소시효 만료로 면소 판결을 받았다. 이후 2심 재판부터 뇌물수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지만 다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고, 이후 무죄를 선고하며 파기환송심을 확정했다. 그리고 출국금지를 막아섰던 사람들은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사건의 본질은 김학의의 뇌물수수 혐의와 성 접대 혐의인데, 출국금지를 둘러썬 여러 정황이 도마에 오르면서, 본질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김학의 사건'은 검찰권이 정치적 이해관계가 결합하면 사법 정의가 어떻게 국민들의 상식에서 멀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다.

30년 간 법조 분야에서 이력을 쌓은 저널리스트의 글은 파편으로 흩어져있던 사건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로 모으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김학의 사건을 중심으로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수많은 부조리한 흐름을 수사 과정과 공판 기록, 인터뷰와 언론 보도를 포함하여 방대한 자료와 꼼꼼한 분석 등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검찰이 가진 권한은 오로지 국민을 위해 '공정'하고 '상식'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검찰이 지켜야 할 핵심 가치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의 핵심 가치를 내세워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과 '고발 사주' 사건 등에서 보듯 윤석열 사단이라 불리는 소수의 특수부 출신 검사들이 장악한 정권은 지금 국민의 기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배반하고 있다.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짓을 버젓이 저지른다.

민심을 배반하는 검찰정권은 2024년 4.10 총선에서 혹독한 중간평가를 받았다. 민주화 이후 집권 여당이 개헌저지선을 조금 넘는 의석으로 참패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윤석열 정권의 '검찰통치'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특히 '검찰개혁'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조국혁신당이 창당 한 달여 만에 제3당이 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4.10 총선은 민심이 대통령과 여당뿐만 아니라 검찰까지 심판한 선거였다. 검찰정권의 출범으로 물 건너간 듯했던 검찰개혁의 시간이 다시 온 것이다. 검찰정권에서 검찰을 개혁하는 것은 문재인 정권 때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철옹성 같던 군사독재정권도 시민의 거듭된 저항 끝에 결국 무너졌다. 민주주의를 향한 꺾이지 않는 마음이 그 출발점이었다. 검찰정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검찰국가의 배신_에필로그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것들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사건을 이해할 때 정말 알아야 하는 본질 대신 사건으로 인해 발생했던 그 순간의 감정이나 사건의 간략한 기술로 사건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권의 책으로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으며, 그것만으로 전부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를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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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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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노엘과 점심을 먹었다. 노엘은 오늘도 사슴을 보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들판을 걸었고, 나는 새벽 5시까지 잠이 오지 않아 들판을 걸었다. 해가 뜨지 않았지만 들판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고 옅은 안개가 지표면을 덮고 있었다. 한번은 걷다가 하울의 성처럼 생긴 구조물을 목격했다. 구조물은 강 건너편에 있었고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킨 것 같았다. 노엘은 그 건물이 낡은 극장이랬다. 허허발판에 다 쓰러져가는, 천장이 날아간 극장. 들판에 엎드려 숨 쉬는 커다란 짐승 같기도 하고 상상의 동물 같기도 해서 한참 쳐다보았다. 노엘은 그 극장에서 <올드 타운>이라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으니 보러 가라고 했다. 한 가족의 일대기를 다룬 연극인데, 극장에 천장이 없으니 밤이 오면 무대에 어둠이 깔린다고 했다.

들판은 광활하다. 그래서 끝까지 가보고 싶지 않다. 끝까지 가지만 않으면, 끝을 보지만 않으면 끝이 없을 것 같다.

- 삶의 반대편데 들판이 있다면 205, 206쪽


아이오와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그곳에는 너른 들판과 윤슬이 빛나는 강이 있다. 낮에는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걷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에는 들판으로 걸어갈 수 있다. 시인은 말한다. '들판을 끝까지 가지만 않으면 끝을 보지만 않으면 끝이 없을 것' 이라고.

앞에서 인용한 구절에 나오는 노엘은 매일 들판으로 새벽 산책을 나갔다. 시인은 노엘의 새벽 산책을 의식처럼 여기며, 길이 아닌 길을 따라 걷는 것은 진짜 길을 걷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들판의 뜻은 사람이 걷게 만든 길은 아니지만 걸어도 괜찮은 길이라고 정의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의 들판의 반대방향으로 난 길로 가기에 삶의 반의어는 들판이라는 마음 속의 말을 따라, 시인은 들판을 걷기로 한다.

걷기로 했으면서도 들판을 끝까지 가지 않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지켜보며, 오래도록 그런 길에서 비켜갔던 수많은 마음들을 응시했다. 꿈이 흘러가도록 길을 내어주는 시간을 불안하게 여기며 외면해던 그런.

"아이오와는 뭔가를 잊을 수 있도록 돕고, 그것을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라던 동료 작가의 말을" "들판의 말"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시인에게 아이오와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한국에 있을 때 시인은 강해져야 한다는 다짐 속에 살았지만, 아이오와에서 만난 따뜻한 시간들은 그렇지 않다고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시인은 변하지 않고 본래 모습으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한다.

이 책은 시인 문보영이 지난해 3개월 동안 아이오와 문학 레지던시 프로그램(IWP)에 참여하며 만났던 다양한 엑소포닉(exophoix, 이중 언어자) 작가들과 지내면서 경험했던 다양한 에피소드와 그 속에서 생각하고 깨달았던 순간들을 기록한 일기장이다. 그곳에서 문보영은 '달(Moon)'로 불렸다. 아이오와 하우스 호텔에서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언덕에는 '달'의 이름을 딴 '달의 영역'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시인 문보영은 아이오와 하우스 호텔에서 자신처럼 IWP 참가 자격으로 온 여러 작가들을 만난다. 코토미, 에바, 오릿, 야스히로, 메리 할머니, 츠베타, 라울 등. 일상의 언어를 뒤집어서 자신의 언어로 바꾸면서 기존의 세계를 부수고, 그렇게 깨진 세계의 조각들을 모아서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는 작가들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오래 붙박였던 무거운 현실을 벗어나서 조금 가벼워진 것일까. 이곳에 모인 작가들의 생각은 유연하고 행동은 유쾌하다.

처음 방을 배정받았을 때 창 밖의 전망이 좋지 못한 작가들을 중심으로 '전망 없는 작가'들과 '전망 있는 작가'들로 작가가 구분된다. 전망 없는 작가들의 방에서는 온통 벽으로 둘러싸인 전망이 보이고, 전망 있는 작가들의 방에서는 들판과 강이 보인다. '전망'이라는 단어는 작가들의 사고에 의해 여러 의미를 지니게 된다. 또한, 전망에 있는 종이컵이나 망가진 인형은 그들의 소재가 된다.

아이오와에서 지냈던 시간은 3개월이지만, 이중 언어자로 살아가는 작가들과, 이민자들의 삶을 목격하면서 시인의 마음에는 새로운 정체성과 모험의 씨앗이 움텼다. 만약 무거운 현실에서 계속 지냈다면, 아이오와로 가지 않았다면, 삶의 반의어를 들판으로 정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인은 "들판은 이들에게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도망치는 작은 자유를 누리는 것을 가능케 했다."고 말했지만, 아이오와에 모인 작가들의 마음에 언어를 움트게 하는 씨앗이 없었다면, 들판은 그저 들판의 언어로만 작용했을 것이다.

들판으로 걸어가면 삶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들판의 끝을 보지 않으면서 들판을 걷는 마음, 삶의 반의어가 들판이니 걸어야겠다는 마음을 보며

삶을 너무 딱딱한 형태로 그리지 않아야겠다는 말을 뱉는다.

그리고 삶의 빛이 너무 적다고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 책을 나는 그렇게 읽었다.


어느 새벽 클럽의 어렴풋한 불빛. 최소한의 불빛과 노래방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빛만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 살면서 많은 빛이 필요한 건 아니리. 어쩌면 빛 없이도 살 수 있으리. 다른 존재와 부딪히면 즉사하는 작은 개구리. 나의 개구리는 아주 소심하게 길을 건넜지. 극단적으로 소심해지는 것도 길을 건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 삶의 반대편데 들판이 있다면 201쪽



이 글은 한겨레출판사 서평단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아이오와에서 돌아온 지 어느새 한 계절이 흘렀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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