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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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여섯 편의 소설에 사계절을 담았습니다. 각각의 계절에 필요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그 계절에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계절은 아름답고, 계절 안에 삶이 있듯이 이야기도 그 안에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소설과 함께 계절을 배우고 느끼고 지냅니다. 한 권의 책이 나온 것만으로 특별해서 이 봄에 새로운 이름을 지어줘야겠습니다.

가벼운 점심_작가의 말_315쪽

표제작 <가벼운 점심>과 202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을 포함해 모두 여섯 편의 작품이 실린 소설집이다. 작가의 말처럼 여기에 실린 소설에는 사계절인 담겼다.

가족을 두고 집을 떠난 지 10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와 패스트푸드점에서 함께 하는 점심 속에서 그동안 상상으로만 그렸던 아버지의 '무거운' 삶을 무겁지 않은 분위기에서 듣는 <가벼운 점심>에는 봄꽃이 피는 계절이, 서울살이 5년 차 원룸 생활자이며 유통기한이 임박한 통조림 같은 처지의 남자가 어느 날 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업라이트 피아노를 집에 들이면서 "인생은 피아노의 하얀 건반이 아니라 검은 건반 같은 거라고" 말하는 <피아노, 피아노>에서는 봄비 내리는 계절이, 세 번의 유산 후 느려지고 게을러지는 아내와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로서 품위를 포기할 수 없는 남자의 지독한 애증을 담은 <하품>에서는 끈적하고 지리한 계절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네 계절밖에 없지만, 네 개로 구분된 계절 안에는 또 다른 계절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한 계절은 뒤이어 오는 계절과 대체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나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순간은 물이 섞이는 것처럼 자연스레 흘러가서 뚜렷한 경계를 지을 수 없다. 이 소설에 담긴 사람들의 삶도 그렇다. 어떤 삶이라고 규정하기보다, 누구나 한번쯤 지나칠 수 있는 그런 삶의 순간들을 조금씩 모으고 한데 묶고, 어떤 형태를 이룰 정도의 묶음이 되어가면, 그걸 삶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책에 수록된 소설들을 읽을 때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문장과 스토리 흐름 때문에 아주 오래전 단막극을 보는 것 같았다. 낡았다는 느낌은 아니고, 조금 흐릿하고 여운이 남는 느낌에 가깝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평소 내가 즐기는 스타일의 소설이 아니라서, 가벼운 듯 싶었는데, 어쩐지 읽는데 힘이 들었고,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소설 속 계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계절에 새로운 이름을 지어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고 고독하게 삶을 지켜내는 사람들이 삶을 지켜내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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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 세월호참사 10년, 약속의 자리를 지킨 피해자와 연대자 이야기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기획, 박내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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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배는 출발지를 떠나 목적지로 간다. 바다 위를 항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해진 항로를 따라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배는 아직 부두를 떠나지도 못했다. 출발지에 멈춰 있는 것이다. 과연 이 배는 항해를 잘 마칠 수 있을까?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61쪽


그 배는 점점 기울고 있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던 4월의 어느 아침, 나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라는 이름의 여객선. 그 배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고 했다. 선체가 많이 기운 것 같지만 그래도 구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으로 계속 지켜보았지만, 어쩐 일인지 화면이 정지한 것처럼 텔레비전 속에서는 바다로 점점 기울어 빠지고 있는 세월호만 보였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기색은 없었고, 텔레비전에서는 계속 이 배의 출발지와 도착지, 출발 시간과 기울게 된 시간, 수학여행을 떠나던 학생들을 타고 있었다는 내용과 배가 얼마나 기울었는지에 대해서만 반복해서 알려주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10년이 지났어도 알 수 없다. 당시 내가 알 수 있었던 사실은 나라에서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여전히 진상규명은 요원하고, 가해자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나 더, 희생자 유가족들을 향해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혐오의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있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해준 이야기. 친구들과 지하철역 근처를 걸어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아이를 불러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가방에 그건 왜 달고 다녀?"라는 질문을 했다고 하다. 아이는 언제나 세월로 리본을 가방에 달고 다닌다. 오래 전부터 달고 다닌 리본이었기에 아이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질문을 받아서 당황했던 아이는 "잊지 않기 위해서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벌써 10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그걸 달고 다니냐고 했고, 아이는 10년이 지났다고 해서 슬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답했다. 그 뒤로 그 사람은 자신이 내는 세금이 아깝다고 했고, 돈도 많이 받았으면서 아직도 세월호 말하냐는 식으로 혼잣말을 하다가 가버렸다.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아직 진상규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세월호에 대해, 남은 유가족들에게 대해,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아이를 불러 세워서 자신이 낸 세금이 아깝다고 말할 정도로,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어딘지 어긋나버린 생각은 한 방향에서 흘러오는 소리만 담는 것인지, 진실을 말하는 목소리에는 귀를 닫아버리는 것 같다. 그러니, 단식을 하던 유가족들 옆에서 먹방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

세월호는 정치 영역이 아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이다.

책을 읽으면서 "모든 배는 출발지를 떠나 목적지로 간다. 바다 위를 항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해진 항로를 따라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배는 아직 부두를 떠나지도 못했다. 출발지에 멈춰 있는 것이다. 과연 이 배는 항해를 잘 마칠 수 있을까?"는 글이 오래도록 남았다. 출발지에 멈춰 있는 이 배가 항해를 잘 마치기 위해서는 '이유', 이 사고가 발생하게 된 이유, 진상규명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 다음에 가해자를 찾아 처벌하고, 그 다음에, 또 그 다음에....그런 수순을 밟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첫 번째 단계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는 세월호참사 10년의 시간을 통과해 온 기억공간들을 중심으로 세월호 생존자, 유가족, 활동가들을 인터뷰하고, 안전사회를 위한 다음 걸음을 고민하는 책이다. 이 책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대, 4·16재단이 주축이 되어 발족한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의 기획으로 송경동 시인이 직접 각 분야에서 구술, 인터뷰 활동을 해온 10인의 작가를 모았다. 그리고 10년 전의 약속을 되새기고 앞으로의 10년을 그리겠다는 다짐을 응원하기 위해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가 서문을, 김훈 소설가가 추천의 글을 썼다.

1부 ‘10년의 기억을 담은 공간들’에서는 수많은 방해와 반대에도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목포 신항만, 두 번의 임시 이전 끝에 자리를 잡은 단원고 4·16기억교실, 설립 반대 압력에도 착공을 앞둔 4·16생명안전공원 등의 기억 공간을 보여 준다. 이 기억공간을 지켜온 활동가들의 구술과 이곳의 사진들을 따라 읽다 보면, 함께 노란 리본을 만들고, 명절을 지내고, 수다를 떨고, 맘 편히 웃고 우는 세월호 생존자, 유가족, 활동가의 얼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2부 ‘10년의 기억을 품은 사람들’은 참사의 피해당사자인 생존자,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참사 이후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안전사회의 기틀을 마련하는 동안 “시체팔이” 등의 혐오 표현을 견디고, “빨대 꽂는 인간들”에게 뒤통수를 맞고, “자식 잃었는데 웃어?”라는 시선에 상처받았다. 2부는 이들의 진솔한 고백을 옮겨 적으며 그동안 세월호 피해자들을 가리고 있던 오해를 걷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세월호 생존자, 유가족, 활동가들은 “10주기에는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그들은 그런 질문에 앞서 10주기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귀 기울여 듣진 못하더라도 이제라도 자신이 품고 있는 기억을 각자의 자리에서 나누고, 기억공간을 찾고, 다시 연대의 힘을 보태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왜 그랬을까?

세월호 참사처럼 이태원 참사 때도 정부는 '돈'이야기부터 했다. 책임을 지지 않고 도망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부터 해놓고 슬며시 몸을 숨긴다.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결국 희생자의 유가족과 생존자 뿐이다. 내가 그런 참사와 관련된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나라로부터 철저하게 버려진,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함. 책을 읽으면서 4얼 16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10년 동안 서서히 잊고 있었으니까. 큰 힘을 보태지 못한다 하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기억을 나누는 것은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오래 살면 여러 사건을 겪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참사가 되풀이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정말 비슷하게, 똑같은 희생이 되풀이되는 거거든요. 그런 참사가 자신의 일이 되기 전에 시민 의식과 연대 의식을 바짝 날 세우고 챙겨야 해요. 사회적 재난은 대비하고 막을 수 있어요. 관심을 가지고 나와 가족, 이웃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깨어 있는 정신으로 저희와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안전문제는 생명과 연관되는 거니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참사가 중요한 문제라고 여기고 진상규명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3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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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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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그 질문은 원도가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거나 스쳐지나간 타인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고, 원도가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고, 현재의 원도가 과거의 원도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질문은 원도의 세계에서 맴돌지 않고 갑작스레 방향을 바꾸어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지금까지 원도를 지켜보며 원도에 대해 여러 평가를 내리며, 왜 그가 죽지 않았는지 지켜보고 있는 바로 그 독자들에게. 그런 다음, 그런 질문 따위는 한 적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 떼는 듯한 얼굴을 한 채로 "나 혼자요."라고 여관 주인에게 대답하는, 다음의 원도를 보여준다.

내가 볼 때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검은 봉지에 담겨 으슥한 곳에 버려진 불법 쓰레기같은 원도"가 여관을 찾았을 때 원도는 "혼자요?"라고 묻는 여관 주인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원도를 불안하게 보던 주인은 '이상한 짓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에서 다시 여관을 찾은 원도는 어쩐지 첫 장면에 등장한 원도와 달라진 원도처럼 보인다. 물론 여전히 '더럽고 병든' 모습의 원도이다. 어쩌면 첫 장면에서보다 더 비참한 몰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도는 "거기, 혼자요?"라고 묻는 여관 주인의 질문에 "나 혼자요."라고 대답한다.

여전히 희망 한 자락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원도가 드디어 '혼자'라는 대답을 자신의 입으로 시인했다는 것이다. 그게 어때서 중요한가 다시 묻는다면, 나는 소설에서 "걷기 위해선 먼저 멈춰야 한다. 함께하길 원한다면 우선 혼자여야 한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억하고 선택해야 한다." 라는 구절을 들려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첫 장면의 원도는 여관에 숨어 웅크린 채 그저 정처없는 과거의 혼란스러운 기억 속에서 자신의 현재에 대한 이유와 왜 죽지 않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마지막에서 다시 여관을 찾아온 원도는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상태로 보이며, 아마도 자신의 과거를 충분히 돌아보고 기억하고 선택했을 것이다. 죽음이 아닌 삶을. 그렇게 완전하게 혼자가 되었고 죽지 않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고 삶을 선택한 원도가 갑자기 독자를 향해 얼굴을 내밀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것을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일어나려면 일단 앉아야 한다. 걷기 위해선 먼저 멈춰야 한다. 함께하길 원한다면 우선 혼자여야 한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억하고 선택해야 한다. 미룰 수 없다. 거부할 수 없다. 주저앉았던 원도가 일어난다. 걷는다. 아직 어둡다. 눈이 내린다. 해가 뜨더라도 충분히 밝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추울테고, 몹시 배고플 것이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 원도가 걷는다. 망설이며 걷는다. 걸으며 묻는다.

왜 사는가.

이것은 원도의 질문이 아니다.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 역시 아니다.

그것을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

이것이다.

- 원도 240쪽


이 장면에서 글을 정확하게 재단하는 듯한 작가의 재단사적인 능력을 엿볼 수 있는데, 소설의 처음과 끝이 너무 아름답게 맞물린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너무 적절하게 소설 입구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를 문처럼 세워놓았다는 점이 더욱 그러했다.


난 혼자요 하고 말하자

여인숙 주인이 숙박부에 그렇게 적었다.

이 추운 겨울밤.

_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8)


이 하이쿠를 읽고 다음 책장을 넘기는 순간이 마치 소설이라는 커다란 세계의 문을 여는 것처럼 느껴져서 어쩐지 소설 내내 원도가 하는 질문들이 더욱 절실한 외침으로, 깊은 탄식으로 들려왔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원도에 대해 생각했다. 원도라는 이 남자는 왜 이런 생각을 하며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자신의 잘못을 어째서 과거의 어떤 인물이나 사건으로부터 찾으려고 하는지, 그리고 이렇게 인생이 '끝장'났는데도 왜 아직 살아있는지, 아니 왜 죽지 않았는지...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왜 죽지 않았는지, 왜 아직 죽지 않고 살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에게 원도 방식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과거를 배회하며 기억을 모으기 시작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것은 어쩌면 조금이라도 삶에 가까운 답이 되는 방향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최진영 작가의 소설은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내기에 읽을 때마다 두렵고 버겁다. 이 소설도 몇 번이나 쉬어가며 읽었다. 죽은 아버지와 산 아버지, 공허한 눈빛을 가진 어머니로부터 자유를 억압당한 원도. 잘못된 선택을 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가속도를 더해 내달리는 원도. 그런 원도를 지켜보는 것도 힘겨웠지만, 원도의 여정 끝에 작가가 방향을 바꿔 나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할 것을 예감했기에 더욱 힘겨웠던 것 같다.

원도는 소설 속 한 남자가 아니라, 질문 그 자체이다. 생의 깊고 커다란 구멍을 향해 끝없이 쏟아내는 처절하고 근원적인 질문. 왜 죽지 않았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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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블루칼라 여자 - 힘 좀 쓰는 언니들의 남초 직군 생존기
박정연 지음, 황지현 사진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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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고군분투했던 이유는 일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속 일하기 위해서였다. 생존이 곧 투쟁이었던 셈이다. 자신의 노동에 관해 이야기하던 그들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햇볕에 얼굴이 다 타고 땀에 절었어도, 주름이 깊게 패이고 먼지로 뒤덮여도 자신의 노동에 관심을 갖고 그 이야기를 들으러 온 여자 기자에게 그들은 너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따. 돈이 필요해서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고, 항상 주눅들어 살다가 일하면서 새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하는 그들의 눈에서 빛이 났다.

나, 블루칼라여자/ 프롤로그

남성이 대다수인 일명 '남초 직군'에서 일하는 여성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이 책은 출발했다. '백래시'가 심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마초적인 문화가 심한 직군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안부가 궁금했던 것. 박정연 기자는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지난 봄부터 겨울까지 남성의 일터로 여겨졌던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산 신항에서 화물차 운전을 하고, 철동차량정비원으로 철도를 수리하고, 주택 수리 기사로서 주택 전반을 수선하고, 빌더 목수로 목조 주택을 짓는 등의 일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과 만났다.

거친 현장이며 고강도의 육체적 노동이 뒤따른다는 것은 남녀 모두에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 더, 블루칼라 여성 노동자들은 편견과 차별에도 맞서야 했다. 남자 동료들의 눈에 블루칼라 여성 노동자들은 동료가 아닌 그저 여자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화물노동자 김지나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처음에 일하러 다닐 때 남자 동료들이 자신을 가볍게 대하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는데, 그러던 중 어느 남자 동료가 자신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원래 잘 웃는 편이어서 모든 동료에게 똑같이 인사를 하고 지냈는데, 그 동료는 김지나씨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그저 누구에게나 같은 인사를 했을 뿐인데, 남자 동료는 김지나시를 동료가 아닌 여자로 여겼던 것이다.

플랜트 용접 노동자 김신혜씨는 무더운 여름 셧다운 현장에서 일하던 중 동료에게 '우유가 없으니 우유 좀 짜줘' 라는 말을 들었다. 더우니까 회사에서 팥빙수와 우유가 간식으로 나왔는데, 남자 동료가 우유가 떨어졌다면 팥빙수만 받아와서 김신혜씨에게 '우유 좀 짜줘'라는 말을 한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있으니, 옆 사람이 '니 젖 짜 달라잖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상은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는데,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이다지도 느린 속도..아니 속도가 나지 않거나, 가끔 어떤 측면에 있어서는 후진을 하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출간된지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의 방과 500파운드는 왜 이리도 요원하고, 차별과 편견의 벽은 왜 이리도 견고한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이 블루칼라 여성 노동자들의 레퍼런스가 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삶에서 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기운을 북돋아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프롤로그에서 이어지는 블루칼라여자들의 이야기에는 그 현장에서 일하는 직업인들만이 가지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만큼 단단하고 굳건했다. 거친 현장, 고된 육체 노동에 더해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는 동안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서 분투하는 모든 이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남녀노소 따지지 않고 기원한다. 그러니 편견과 차별은 집어 던져버리고, 모두의 안녕을 함께 기원하기를.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서 안녕을 기원하기를. 같은 사람으로서 안녕을 기원하기를. 그렇게 반드시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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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오래 산다 - 30년 문학전문기자 생애 첫 비평에세이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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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문학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아 보인다. 종이신문 역시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다. 같은 활자 매체로 문학과 신문은 어쩌면 같은 운명을 지녔는지도 모르겠다. 30년 동안 종이신문에서 문학을 담당해온 나로서는 더 늦기 전에 정년을 맞게 된 것이 일면 다행스럽다 싶기도 하다. 종이신문 문학 담당 기자의 정년퇴직이란 어쩐지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주지 않겠나. 아까운 지면에 이렇듯 소소하고 심란한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어 독자들께 미안한 마음이다. 정년을 앞둔 퇴물의 넋두리라고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다.

이야기는 오래 산다/ 들어가는 글

1988년 한겨레 신문사에 입사해 1992년부터 2022년까지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한 지난 30년을 저자는 "분에 넘치는 영광과 보람의 세월"로 기억한다. 일간 신문에 문학작품을 읽고 나름의 의견을 기사 형태로 제출하는 작업은 독서와 기사 작성을 동시에 해야 했으므로 시간과의 싸움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학 기사를 위해 문인드을 인터뷰하거나 만나는 즐거움은 그에게 "그 무엇과도 바꾸기 싫을 정도"였으며, 자신이 스스로 '보물 1호'라고 일컫는 것은 "지난 30년 동안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문인들로부터 받은 편지와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 스크랩"이라고 말한다. 이토록 깊은 애정과 진심이 있었기에,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문학작품을 읽고 신문에 실을 기사를 작성하고 문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기획기사를 위해 매주 출장을 떠나는 숨가쁜 일정을 해나갔던 것이 아닐까.

이 책에 수록된 직업인으로서의 최재봉의 글은 작가와 작품, 문학계 쟁점과 인물, 칼럼, 서평 등으로 이어진다. 3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그가 읽고 쓰고 만나고 인터뷰한 결과물, 그 속에는 시대와 사람이 담겨있다. 사랑하는 문학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책,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이의 자신이 담겨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이야기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저자가 쌓아올린 오랜 이야기들은 사람과 문학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빛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 빛들에는 어쩔 수 없이 틈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작은 틈새를 메우는 것은 바로 저자 자신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무언가를 완성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가 세운 오랜 이야기에 담긴 것들이 부럽다.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듣는 이름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다. 조세희, 박완서, 김소진,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작품에 대한 글을 만나던 중 신경숙 표절과 부딪히게 되었을 때는 그시절의 기억이 새록 솟아났다. 일정 기간 동안 이슈가 되었다가 잊힌 이름과 작품들이 오랜 이야기 상자 속에서 새롭게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글을 한 편 한편 천천히 읽어갈 때마다 시간을 꺼내먹는 것 같아서 기분이 간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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