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소설은 벽 앞에 선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빛의 방향과 거리에 따라 실제와는 다른 크기와 모습을 연출해낸다.
그림자는 `자신`에게 속해있으면서도 낯선 `자신`을 확인하게 하는 존재이다.
간혹 그림자는 `자신`이 떠나버렸음에도 벽 앞에 설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김영하의 소설은 아무 그림도 없는 하얀 벽 앞에 서서 독자 혹은 관객을 의식하며 포즈를 취한다.
다만 그 포즈에 담긴 것은 제스처일 뿐. 진실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진실은 실체 속에 담겨 있고, 그림자는 뒤늦게 깨닫는다.
실체가 떠나버린 후에.
그제야 독자 혹은 관객도 깨닫는다.
그의 소설은 벽 앞에서 춤추던 그림자가 `모든 것`이 아니었음을.
그래서 김영하의 소설을 읽고 나면 늘 갈증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