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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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몽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현실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구할 수 없다.

목화는 목소리의 정체를 알았다. 꿈에서는 설명 없이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어떤 틈과 같은 것. 꿈과 현실의 균열. 어긋나는 지점. 또는 미세하게 맞닿은 선. 증명할 수 없으나 존재하는 세계.

가능성으로 남아 인식 너머에 존재하는 사건.

단 한 사람/ 최진영

금화를 잃고도 목화는 나이를 먹고 자랐다. 그러다가 열 여섯 살 되던 해에 꿈을 꾸었다. 아니 꿈이 아니었다. 꿈이라고도도 할 수 없는 그곳에서 목화는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자신의 눈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목화는 부디 사람들이 죽지 않게 해달라며 괴로워하며 기도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을 향해 빠르게 떨어졌다. 그때 의심하지 말고 구하면, 목화가 받으면 사람이 살 수 있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화는 달려가서 두 팔을 내밀었고 떨어지는 한 사람을 구해냈다.

한 사람.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었다. 자신의 속도와 두 팔로는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현실도 자각몽도 아닌 꿈속같은 장소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은 목화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딸에게만 내려오는 유전이었다. 목화의 어머니 장미수도 목화 나이 즈음에 그러한 숙명을 받았다. 미수의 어머니 임천자도 그러한 숙명을 받았다.

죽음을 향해 떨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임천자는 기적이라고 말했지만 장미수는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장미수는 자신의 아이들은 그런 운명을 타고 나지 않기를 바랐다. 장미수는 꿈속같은 장소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끔찍한 두통이 생겼다. 단 한 사람을 구하면 다른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장미수의 고통을 알아차린 신복일은 장미수의 건강을 걱정했고 마음을 주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해서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 일화, 월화, 금화, 목화와 목수

한겨레출판에서 가제본으로 받은 최진영의 <단 한 사람>을 읽었다.

얇은 흰 책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잃었는지도 모른 채 잃은 것을 찾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오랫동안 이야기의 맥락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최초의 씨앗에서 자란 나무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긴 세월을 지나면서 숲에서 가장 큰 나무가 되었고, 하나의 나무는 사람들에 의해 파괴된다. 그리고 다른 나무는 사람을 파괴한 적이 있다. 이야기의 처음에 나오는 숲과 나무가 뒤이어 나오는 일화, 월화, 금화, 목화, 목수 이 다섯 명의 아이들과 그들을 둘러싼 세계와 어떻게 연결이 될 것인지 궁금했다. 숲에서 사라진 금화는 살아있을까, 숲에 흡수된 것일까.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어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증명해가는 최진영 작가의 이야기는 늘 마지막이 궁금하다. 이미 《구의 증명》에서 나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지독하게 파고드는 작가의 증명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단 한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는 어떤 증명을 거쳐서 어떤 세계에 이를까.. 그리고 만약에 단 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를 것인가, 아니면 벌이라고 부를 것인가. 가제본만으로도 큰 세계가 펼쳐지는 기분이 드는 최진영의 <단 한 사람>의 마지막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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