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스트 듀엣
김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소수자 옹호라는 시적 사명을 올곧이 수행하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밀어붙였다”(신동엽문학상) “풍부한 인간의 삶과 감정과 이야기가 있고 사회적인 자의식이 독특한 방식으로 표명돼 있다”(김준성문학상)고 평가받은 김현 시인의 첫 소설집이다.
시인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소수자의 서정을 애특하게 그려왔으며 인권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인을 기억하는 '304 낭독회' 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으며 이태원 참사 추모 문학제에서 사회를 맡기도 했다. 사회 문제에 순순히 눈감지 않고 잊지 않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동시에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참여하는 작가들이 나는 존경스럽다. 자신의 목소리를 작품 속에 제대로 담아내는 것도 어렵지만 직접 사회적 활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후에 나는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향해 거세게 달려드는 비난과 혐오를 보면서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세월호로부터 십 여년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고 더욱 커져버린 혐오의 덩어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그들은 왜, 어떤 이유로 그런 식으로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며칠 전 영상 하나를 보았다. 영상 속에서 혐오로 무장한 누군가가 이태원 희생자 유가족들 앞에서 '이태원 참사는 북한 소행'이라는 발언을 하고 있었다. 이에 유가족이 울면서 다가오자 그 누군가는 '북한 소행이 맞으니까 저러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방법을 알았다'며 유가족을 비웃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를 향한 비웃음소리가 악몽처럼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누군가에게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그들에게 애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죽음을 비웃는 소리라니...
시인 김현은 그런 현장을 오래도록 지켜왔을 것이다. 잊지 않고, 기억으로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다.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시 「블로우잡Blow Job」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준성문학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글로리홀』, 『입술을 열면』, 『호시절』 등, 산문집으로 『걱정 말고 다녀와』, 『아무튼 스웨터』, 『질문 있습니다』,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당신의 자리는 비워 둘게요』 등이 있고, 앤솔러지 소설집 『새벽의 방문자들』,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등에 참여했다. 2012년 짧은 영화 [영화적인 삶 1/2]를 연출했다. 2021년 『낮의 해변에서 혼자』 시집을 냈다.사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여러 죽음이 들려왔다. 수많은 희생자를 내는 죽음에는 비극적인 사건이 존재한다.
《고스트 듀엣》은 삶에 죽음이 들어와 있는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담겨 있다. 그의 소설에서 죽음의 삶의 반대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후에 남겨진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삶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먼저 떠난 사람을 기억한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기록한다. 그들에게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은 분리되어 있지 않기에 작가는 초자연적 현상과 SF적 소재를 매개로 산 자와 죽은 자를 만나게 하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려고 한다.
맑은 술이 담긴 잔이 돌고 돌고 노래할 사람은 노래하고 춤출 사람은 춤추고 갈 사람은 가지 않고 이승에 미련이 없는, 가야 할 귀신이 가고 싶지 않아 해서 산 사람들이 어르고 달래 저승문 앞까지 배웅했다.
소설집의 가장 처음에 실린 <수월>은 평온한 죽음을 맞이했던 엄마가 찾아와서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딸과 딸의 친구와 그 옆의 친구와 함께 놀다 가는 이야기로 소설의 마지막 구절은 작가가 시인이라는 사실이 실감나는 장면이 있다. 표제작이기도 한 <고스트 듀엣>에 나오는 "마음을 다해 잊고자 하는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기억하고자 하는 그 얼굴을."이라는 구절에서 작품을 쓰는 작가의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말하며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꽉 막힌 사람처럼 상대를 평가하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농담일 수 있지만 상대에게는 상처일 수 있는 말이기 때문. <유미의 기분>에 내가 품고 있었던 마음을 대변해주는 문장이 나온다. "아, 그건, 다 같이 웃자고 한 얘기지." "저는 안 웃었는데요." 모두가 불편하지 않도록 웃어주면, 그 다음에도 변하지 않을 테니까 유미는 끝까지 자신의 기분을 지킨다. 그로 인해 고립되어 가는 상황에 처해지더라도. "저는 기분이 나빴어요." 라는 말을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유미들이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내가 사라지더라도 간직해줘. 이건 오랫동안 변하지 않으니까. 누구나 간직하진 않지만, 누군가 간직하게 되면 오래 사랑받으니까.
천사는 좋은 날씨와 함께 온다/ 고스트 듀엣/ 김현
사람하는 사람을 잃고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죽음이 삶으로 들어온 시대에 함께 머물러주고 싶은 위로와 다정을 담은 소설집.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