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 앞에 놓인 좁은 선택지가 보인다. 개인의 재능과 능력만으로는 성공한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걸 환경이 말해준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고. 그런 말까지 들으면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마이클 센델이 말하고 있는 "능력주의의 오만"의 정점에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어릴 때부터 시작되는 과도한 입시경쟁은 능력주의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좋은 직업을 얻는 것이 코스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도덕적으로 더렵다고 여겨 스스로 절대 하려고 하지 않는 이른바 '더티 워크'를 하는 사람마저 능력주의를 우러러본다. 노동의 환경은 나아지지 않고 능력주의에 대한 선망만 가득해진다.
일반 시민들에게 비가시적인 형태로 존재했던 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하찮거나 더러운 일, 다른 일을 할 능력이 되지 않아서 하는 일, 자신이 선택했으니 당연한 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의 작가가 말하는 '더티 워크'는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필수노동 가운데는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여겨져 더욱 은밀한 곳으로 숨어든 노동" 이다. 자신의 손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더러운 일을 누군가가 떠맡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을 감고 있는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의 '무의식적 위임'을 받고 있는 노동.
이 책에서 다루는 더티 워크는 아래와 같다.
- 구치소나 교도소 내 정신병동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 미국의 끝나지 않는 전쟁에서 드론으로 표적살인을 수행하는 일
- 공장식 대량도축을 하는 도살장에서 벌어지는 노동
- 시추선 생존 노동자들이 처한 현장과 그들을 둘러싼 모순된 시선들
- 실리콘밸리이 자랑하는 최첨담의 빛나는 발전 뒤에 숨은 어두운 이면
더티워크는 여러 속성을 가지고 있다. 타인이나 자연 세계에 실질적인 피해를 입힌다는 것과 그 일을 하는 사람 자신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
구치소나 교도소 내 정신병동에서 교도관들이 수감자들을 대하는 방식은 숨겨진 고문이다. 교도관들은 가해자이자 그 노동을 담당하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피해자이다. 심리상담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해고를 당하기 때문에 진실을 밝힐 수도 없었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었고 이를 밝혔을 때 자신이 교도소에서 처하게 되는 위험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더티 워크는 정해진 숙명이 아니다. 정부의 규정과 규제가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왔는데 그것은 더티워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이 벌어지고 있는 환경이 자신들의 일상과 멀리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무관심해질 수 있는 시민들의 묵인에서 비롯되었다. 말이나 글로 전해듣는 것은 실제 현장을 목격하고 경험하는 것의 충격에 비할 바가 못 될 것이다.
책에 나오는 내용은 모두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중에서 정육공장에서 일했던 여자 노동자의 인터뷰는 시작부터 슬프고 처참했다. 멕시코의 빈곤 가정이자 알콜 중독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틈만 나면 죽이려고 했던 가정에서 자란 열두살 플로르는 친모와 연락이 되어 백인이 주인인 목장 한켠에 마련된 숙소에서 살게 된다. 하지만 계부는 플로르가 공짜로 살면 안 된다며 섹스를 요구했다. 플로르가 저항하며 친모에게 사실을 말하자 친모는 오히려 플로의 뺨을 때리며 화를 낸다. 그리고 계부는 플로르를 쫓아낸다. 이후 여러 험난한 여정을 거쳐 정육공장에서 일하게 된 플로르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닭을 죽이는 기계 앞에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컨베이어 벨트는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그에 따라 사람들도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현대적 기계화는 그 현장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혜택을 가져왔지만 노동자의 삶은 피폐하게 만들었다. 생닭 걸이 라인에서 한 사람이 1분에 걸어야 하는 생닭은 65마리였다.
1906년 업턴 싱클레어의 정글 발표 이후 육류검사법이 도입되었고 비위생적인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육산업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농무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간 산업 현장에 감찰관 파견하여 도축된 고기 조사. 문제 있는 고기를 라인에서 제거했다.
그러다가 1980년 레이건 행정부가 기존 시스템을 '현대적이고 과학적으로' 간소화하면서 위생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이윤의 극대화만 힘썼다. 공장 가동 속도 높이고 현지 파견 인력을 줄이고. 폐기처분되어야 할 닭들이 소비자에게 팔렸다.
클린턴 행정부에 와서는 '해썹' 도입으로 실제로는 품질 인증 권한을 회사 측에 넘기고 연방 감찰관 역할을 무작위 추출 검사로 축소했을 뿐이다. 감시가 줄어들면 편법을 쓰면 된다. 정육회사들은 고기에 과초산이나 염소 뿌리기 시작했다. 불결한 환경을 개선하는 대신 뿌린 화학 약품 스프레이. 병든 동물도 불결한 환경도 개선할 수 없지만 유일한 장점 저렴함 방법으로 생산 속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것. 과초산 노출로 인한 공장의 공기 오염과 노동자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지 않았다.
필수노동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더러운 존재처럼 취급받는다. 윤리의 소비적 양면성을 엿볼 수 있다. 환경을 위해 텀블러를 이용하고 일회용품을 줄이는 것만으로 안 된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에 속한다. 양심의 가책을 덜어줄 회비를 내고 고기를 줄이고. 그러면서도 정육공장의 환경을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았다. 내 자신이 불쾌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나는 아니니 상관 없으며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에 있으니 괜찮다는 위선적인 자기위안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