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도가 낮은 전구 아래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는 고요한 밤의 온기와 작게 웃고 함께 음식을 나눠먹고 별일 없는 안부를 묻고 작은 짐을 나눠서 들어주는 낮의 소란이 떠오르는 소설. 맑고 투명해서 서럽고 슬프다가 슬핏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그런.
거대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자극적인 묘사나 가슴을 간지럽히는 장면이 없는 이 소설집에는 (좋은 의미의) 별일은 없지만 (나쁜 의미의) 별일 때문에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에게 불행은 너무 오래되어 낡은 것이지만, 도무지 적응은 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짊어진 불행을 향해 격한 감정을 토해내거나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묵묵히 견디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순간이 되어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면 대도시의 생활을 멈춘 다음 소도시나 시골의 작은 방이나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한다. 자고 쉬고 먹고 걱정을 내려놓는 일.
빨리 읽어내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가볍게 펼친 책에서 나는 5평짜리 원룸에서 숨죽여 울고 있는 밤의 풍경을 보고 말았다.
그때부터 책을 빨리 읽어낼 수 없었고 책을 넘기는 순간들은 가벼울 수 없었다. 연작처럼 느껴지는 여덟 편의 단편을 읽을 때마다 오래전 내가 부서진 마음들이 오랫동안 억눌렀던 기억을 비집고 올라와 내 곁에 가만히 앉았다. 나는 그 기억과 함께 책을 읽었다. 부서진 마음에서 떨어진 먼지들에 목이 메였다. 나는 부서진 마음을 다시 붙이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오랫동안 슬펐다고 생각했다.
한번 부서진 마음은 원래의 형태로 돌아갈 수 없다. 작가는 부서진 마음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으로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한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고요한 눈빛으로 응원을 보낸다. 부서진 마음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었다. 따지지 않고 묻지 않고 온기를 나눠주는 사람들로 인해 이야기는 다음을 향해 갔고, 부서진 마음의 뾰족한 모서리는 아주 조금씩 둥글게 닳아져갔다.
표제작 <별일은 없고요?>에서 수연은 오랫동안 버텨왔던 도시의 삶을 멈추고 엄마 혼자 살고 있는 시골의 원룸으로 내려간다. 밀렸던 잠을 자고 더이상 잠이 오지 않는 밤. 사방이 조용하고 밤은 더 조용한데, 엄마의 코 고는 소리와 나의 울음 소리도 작은 그런 밤. 공간이 작으면 슬픔을 감출 수 없다. 하나밖에 없는 방에서 슬픔은 공공연한 비밀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그 마음을 나도 받고 싶었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며 나눠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