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내용에 대해 조금 들여다보면, 전통적으로 부패란 공무원이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행위로 정의하지만 이런 정의는 너무 광범위하다. 그래서 저자는 부패를 다음과 같이 세분화했다. 정부의 혜택과 서비스를 받기 위한 대가성 뇌물과 어떤 교환도 없는 횡령 및 갈취(도둑질), 고위 공무원이 벌이는 거대한 부패와 하위 공무원이 벌이는 사소한 부패. 이를 기준으로 부패를 분류하면 4가지 유형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저자는 각각 ‘바늘도둑, 소도둑, 급행료, 인허가료’라고 부른다.
모든 유형의 부패는 부정적이지만 경제에 동일하게 악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저자는 약물에 비유한다. 공공 재산과 사유 재산을 소진하는 특징을 가진 바늘도둑과 소도둑은 건강을 갉아먹고 성장을 방해하는 유해 약물. 급행료는 일종의 진통제라고 할 수 있다. 적은 뇌물을 이용하면 행정상 문제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의 비즈니스에는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이러한 부패 역시 시민과 업계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성장에 해를 끼친다. 인허가료는 자본주의의 성장 촉진제, 스테로이드다. 바늘도둑, 소도둑, 급행료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지만 인허가료는 활발한 사업과 투자를 불러오기 때문에 경제 성장에도 일조한다. 하지만 스테로이드가 우리 몸에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인허가료는 불만과 불평등을 고조시키는 폐해가 있다.
모든 나라가 각 유형이 비중 차이가 있을 뿐 이 4가지 유형의 부패를 모두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그 나라에서 어느 부패 유형이 지배적인지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한 나라의 부패 구조를 이해하고 성장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다.
중국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패 유형은 인허가료이다. 한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도 중국처럼 인허가료 부패가 지배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고소득 국가라는 점이다. 반면 방글라데시와 가나에서는 급행료, 나이지리아에서는 소도둑, 태국에서는 바늘도둑이 지배적이다. 중국이 광범위한 부패 속에서도 빠르고 거대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부패 구조의 차이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중국식 이익 공유 모델로 이에 힘을 더하고 있다고. 이처럼 중국은 인허가료와 이익 공유제라는 스테로이드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 촉진제의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사회에 팽배해진 불만과 불평등은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고 있다. 마치 미국이 도금 시대를 넘어 진보 시대로 나아간 것처럼 말이다.
평소 잘 접하지 않았던 생소한 개념을 다룬 책이라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저자의 반복되는 설명과 재미있는 세분화에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어낼 수 있어서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돌아서면 다시 잊어버릴 것 같지만, 저자의 결론처럼 '부패를 새롭게 보아야 중국과 세계가 보인다'는 말이 조금은 이해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