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 이후로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필수노동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회구성원들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노동들. 하지만 그 노동이 정말 우리 사회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그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는 것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물류 창고에서 장시간 동선이나 화장실 시간을 체크당하며 일하던 노동자의 사망, 휴대폰 앱이 등장하면서 실시간으로 노동을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불이익에 받을 환경에 처한 배달 노동자들의 반복되는 사고, 코로나가 대유행할 때도 제대로 된 방역조치 없이 기계 앞에서 반복적인 일을 해야 했던 정육공장에서 질병에 노출된 노동자들...을 비롯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수없는 형태로 필수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는 시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자신이 선택한 일인데 왜 불만인가, 능력이 없어서 그런 일 밖에 못 하는 것이다... 그런 반응에 정부의 규정과 규제를 탓하는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는다. 그런 소리를 내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많다. 노동자가 강자이고 장애인이 강자라는 말이 떠올라서 씁쓸하다.

예전에 학교에 다녔을 때 선생님들이 자주 하시던 말씀.. 지금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가지면 미래의 배우자 얼굴이 바뀐다.. 공부 못하면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한다.,,그런 분위기에서 좋지 못하다고 인식되는 직업은 천대당하고 그들이 받는 열악한 대우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성공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달려 있다고 전제하는 능력주의 사회는 선망받는 엘리트 교육기관에 입학하는 기준으로 사람을 각각의 소득계층과 각각의 직업 경로로 밀어 넣는다. 센델이 지적한 대로 이 시스템은 일류대학 학위가 없고 근 몇십 년간 소득이 줄거나 정체되고만 있는 노동자계급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깎아내려왔다. 그와 동시에 초고학력으로 성공한 사회의 '승자들'에게는 빛나는 도덕적 자격을 쥐여주며 "성공을 오로지 저 자신이 노력한 결과요, 제 미덕의 척도로 여기라고, 그리고 불우한 사람을 깔보라고" 부추겨왔다.

더티 워크

이 책에서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 앞에 놓인 좁은 선택지가 보인다. 개인의 재능과 능력만으로는 성공한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걸 환경이 말해준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고. 그런 말까지 들으면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마이클 센델이 말하고 있는 "능력주의의 오만"의 정점에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어릴 때부터 시작되는 과도한 입시경쟁은 능력주의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좋은 직업을 얻는 것이 코스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도덕적으로 더렵다고 여겨 스스로 절대 하려고 하지 않는 이른바 '더티 워크'를 하는 사람마저 능력주의를 우러러본다. 노동의 환경은 나아지지 않고 능력주의에 대한 선망만 가득해진다.

일반 시민들에게 비가시적인 형태로 존재했던 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하찮거나 더러운 일, 다른 일을 할 능력이 되지 않아서 하는 일, 자신이 선택했으니 당연한 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의 작가가 말하는 '더티 워크'는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필수노동 가운데는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여겨져 더욱 은밀한 곳으로 숨어든 노동" 이다. 자신의 손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더러운 일을 누군가가 떠맡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을 감고 있는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의 '무의식적 위임'을 받고 있는 노동.

이 책에서 다루는 더티 워크는 아래와 같다.

- 구치소나 교도소 내 정신병동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 미국의 끝나지 않는 전쟁에서 드론으로 표적살인을 수행하는 일

- 공장식 대량도축을 하는 도살장에서 벌어지는 노동

- 시추선 생존 노동자들이 처한 현장과 그들을 둘러싼 모순된 시선들

- 실리콘밸리이 자랑하는 최첨담의 빛나는 발전 뒤에 숨은 어두운 이면

더티워크는 여러 속성을 가지고 있다. 타인이나 자연 세계에 실질적인 피해를 입힌다는 것과 그 일을 하는 사람 자신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

구치소나 교도소 내 정신병동에서 교도관들이 수감자들을 대하는 방식은 숨겨진 고문이다. 교도관들은 가해자이자 그 노동을 담당하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피해자이다. 심리상담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해고를 당하기 때문에 진실을 밝힐 수도 없었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었고 이를 밝혔을 때 자신이 교도소에서 처하게 되는 위험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더티 워크는 정해진 숙명이 아니다. 정부의 규정과 규제가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왔는데 그것은 더티워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이 벌어지고 있는 환경이 자신들의 일상과 멀리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무관심해질 수 있는 시민들의 묵인에서 비롯되었다. 말이나 글로 전해듣는 것은 실제 현장을 목격하고 경험하는 것의 충격에 비할 바가 못 될 것이다.

책에 나오는 내용은 모두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중에서 정육공장에서 일했던 여자 노동자의 인터뷰는 시작부터 슬프고 처참했다. 멕시코의 빈곤 가정이자 알콜 중독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틈만 나면 죽이려고 했던 가정에서 자란 열두살 플로르는 친모와 연락이 되어 백인이 주인인 목장 한켠에 마련된 숙소에서 살게 된다. 하지만 계부는 플로르가 공짜로 살면 안 된다며 섹스를 요구했다. 플로르가 저항하며 친모에게 사실을 말하자 친모는 오히려 플로의 뺨을 때리며 화를 낸다. 그리고 계부는 플로르를 쫓아낸다. 이후 여러 험난한 여정을 거쳐 정육공장에서 일하게 된 플로르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닭을 죽이는 기계 앞에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컨베이어 벨트는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그에 따라 사람들도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현대적 기계화는 그 현장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혜택을 가져왔지만 노동자의 삶은 피폐하게 만들었다. 생닭 걸이 라인에서 한 사람이 1분에 걸어야 하는 생닭은 65마리였다.

1906년 업턴 싱클레어의 정글 발표 이후 육류검사법이 도입되었고 비위생적인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육산업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농무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간 산업 현장에 감찰관 파견하여 도축된 고기 조사. 문제 있는 고기를 라인에서 제거했다.

그러다가 1980년 레이건 행정부가 기존 시스템을 '현대적이고 과학적으로' 간소화하면서 위생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이윤의 극대화만 힘썼다. 공장 가동 속도 높이고 현지 파견 인력을 줄이고. 폐기처분되어야 할 닭들이 소비자에게 팔렸다.

클린턴 행정부에 와서는 '해썹' 도입으로 실제로는 품질 인증 권한을 회사 측에 넘기고 연방 감찰관 역할을 무작위 추출 검사로 축소했을 뿐이다. 감시가 줄어들면 편법을 쓰면 된다. 정육회사들은 고기에 과초산이나 염소 뿌리기 시작했다. 불결한 환경을 개선하는 대신 뿌린 화학 약품 스프레이. 병든 동물도 불결한 환경도 개선할 수 없지만 유일한 장점 저렴함 방법으로 생산 속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것. 과초산 노출로 인한 공장의 공기 오염과 노동자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지 않았다.

필수노동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더러운 존재처럼 취급받는다. 윤리의 소비적 양면성을 엿볼 수 있다. 환경을 위해 텀블러를 이용하고 일회용품을 줄이는 것만으로 안 된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에 속한다. 양심의 가책을 덜어줄 회비를 내고 고기를 줄이고. 그러면서도 정육공장의 환경을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았다. 내 자신이 불쾌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나는 아니니 상관 없으며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에 있으니 괜찮다는 위선적인 자기위안이었을 것이다.

정육공장의 필수노동자들이 더러운 존재가 된 느낌을 강요받는 동안, 금융이나 컴퓨터공학 분야의 필수적이지 않은 노동자, 이른바 "노트북을 가진 사람들"은 정육공장의 현실로부터 그 어느 때보다 멀리 떨어진 거리에 안전하게 머물렀다. 프레시다이렉트, 인스타카트 같은 배달회사 덕분에 이제는 고기를 먹기 위해 굳이 정육점 주인이나 슈퍼마켓 점원과 접촉하지 않아도 된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단 몇 번의 클릭이나 터치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원하는 만큼 집으로 배달시킬 수 있다. 그 고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더티 워크

우리가 날마다 수많은 시간 동안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과 컴퓨터에서도 우리는 어떤 징후도 발견하지 못한다.

글로벌 테크 공급 사슬은 깨끗하지 않다. 노트북과 휴대전화에 쓰이는 충전용 이온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인 코발트는 세계 생산량 절반 이상이 콩고민주공화국의 콜웨지 광산에서 생산된다. 하루 열두 시간에서 열네 시간씩 일하면서 극악한 환경에서 폐질환을 일으키는 유해 화학물질을 마시면서 일하는 노동자 중에는 아동도 많다. 극도로 가난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없는 작업장에서 붕괴되어 죽는 일이 다반사다. 영세 광부가 긁어낸 광물은 회사 사들이고 그중 일부는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애플 기업의 제품이 들어간다.

우리 모두를 대신해 더티 워크를 수행 중인 대리인들인 더티 워커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더티 워크의 핵심 특징 가운데 '선량한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에 기초한 노동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개인의 노력의 무력하지만 집단의 힘은 그렇지 않다. 암묵적 동의는 숙명처럼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미국 교도소를 붐비게 만든 징벌적 양형 정책이 인기를 잃어갔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태도도 도축 노동자가 처한 비참한 환경을 문제 삼기보다 유기농 고기를 집착하는 소비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기는 했어도 바뀌기 시작했다. 화석연료에 대해서도 문제를 인식하고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것이 필요하다.

더티 워크는 법과 정책의 산물이요, 예산 편성의 산물이며, 그 밖에 우리의 가치와 우선순위에 따라 우리가 집단적으로 내리는 여러 결정의 산물이다. 그런 결정 중 하나는, 더티 워크가 무고한 사람들과 환경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막대한 위해를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다.

더티 워크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특권층과 비특권층이 살아가는 세계는 점점 분리되어 갈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누가 더럽다고 인식되어 누구나 피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노동을 하게 될 지는 명백히 눈에 보인다. 경제적 특권에 따라 결정되는 직업. 더티 워크는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고립된 장소로 이동하여 대다수 구성원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춰질 것이다. 교도소나 정육공장이나 드론 표적살인 같은 문제들이 주목 받을 때는 규정과 규제를 담당하는 윗사람들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현장에서 일하는 더티 워커들이 비난 받는다. 그리고 우리처럼 일반 시민들은 마치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그들을 비난하는데 합류한다.

방송이나 언론에서 더티 워크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할 때 스캔들처럼 취급하여 흥미 위주로 취재하지 않고 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리면서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에러렛 휴스는 '수동적 민주주의자'라는 말을 썼는데, 겉보기에는 계몽된 태도를 가졌지만 즐겁고 무심한 대화를 나누는 것 외에는 절대 아무것도 할 의도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변에서 비도덕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고 휴스는 지적했다. 깨어있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하거나 행동하기 꺼리는 수많은 수동적 민주주의자들 (나를 포함해서)이 알아야 할 사실은 더티 워크에 몰려 있는 모든 문제는 살아있는 인간들이 다시 논의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공론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