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 - 99가지 강박으로 보는 인간 내면의 풍경
케이트 서머스케일 지음, 김민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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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증과 광기는 우리 내면의 풍경을 드러낸다. 우리를 움찔 뒤로 물러서게 만드는 것, 혹은 열광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우리 머릿속에서 몰아낼 수 없는 것들을 드러낸다. 공포증과 광기를 한곳에 모아놓으면 우리 시대의 가장 흔한 불안장애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미국 저널리즘을 공부했으며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한 적이 있으며 역사 속에서 찾은 사건과 인물들로 생생한 이야기를 직조하며 쓴 책이 드라마로 제작, 방영되거나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이력이 있는 케이트 서미스케일이 쓴 이 책은 제목을 비롯해서 목차와 덧붙이는 말까지 모두 흥미롭다.

역사 속에서 찾은 사건으로 이미 수상경력이 있는 작가는 공포증과 광기가 진화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책 곳곳에 등장시키고 있다.

두려워하고 열망하는 대상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에 처음 '공포증'과 '광기'라는 이름을 처음 붙여준 사람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러시. 이전까지 '공포증'은 육체의 병과 관련된 각종 증상을, '광기'는 사회적 풍조를 설명할 때만 쓰던 단어였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는 두 단어를 심리적 현상으로 새롭게 정의하면서 28가지 공포증과 26가지 광기를 열거했다.

이후 18세기 정신과 의사들은 좀더 복합적으로 공포증과 광기를 이해하면서 인류 진화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가 남긴 흔적에서 그것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19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새로운 공포증과 광기가 쏟아져 나왔다. 새로운 문물과 문화가 발생하면서 그에 따른 불안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모든 공포증과 광기는 문화의 창작물이다. 각각의 공포증과 광기가 확인-혹은 창조-된 순간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했다.

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

공포증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중에서도 진화심리학자들은 많은 공포증이 적응의 소산이라고 주장한다는 내용은 설득력이 있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뱀에 물리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겼다는 것.

"특정 대상을 피하려고 하는 강박이 공포증이라면, 광기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 강박"이라는 문장은 두 가지 단어를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99가지의 공포증과 광기를 소개하고 있다. 1부에서 8부까지 같은 종류에 속하는 공포증과 광기를 각 부에 묶어서 설명한다. 예를 들어 1부는 개, 거미, 고양이, 뱀 등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공포증이고, 3부는 단추, 달걀, 인형 등 '물건에 대한' 공포증이다.

고독공포증, 광장공포증, 비웃음공포증, 휴대전화부재공포증을 다루고 있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타인'을 다룬 4부와 결정장애, 과대망상, 도벽, 음주광 등 광기를 다룬 7부는 변화의 속도에 따라 불안의 속도 역시 가속화되는 요즘 주목해볼 만하다. 특히 4부 '휴대전화부재공포증'은 누구나 경험을 해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웃음이나 고독이라는 주제는 가볍게 지나갈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고...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의 공포증과 강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어릴 때 개에 물렸지만 개 공포증은 없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경험과 함께 3층이었던 피아노학원에서 내려다보던 골목에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유독 고소공포증이 심하다. 놀이공원에 가면 회전목마를 가장 좋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ㅎㅎ 발표공포증이나 적면공포증도 어느 정도는 있다. 막상 발표를 하면 하기 전보다 마음이 가라앉기는 하지만 그래도 불안감을 주는 것.

어느 특정 시대에 발생하는 집단 유행적인 공포증도 흥미롭다. 비틀즈광이나 광대공포증 같은.

인형공포증에 대한 내용을 읽을 때는 우리집 거실에 놓여있는 구체관절인형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1970년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인형공포증에 관한 가설 하나를 수립했다. 더 진짜 같은 인형일수록 인간의 관심을 더 끌지만, 살아 있다는 의심이 들 정도로 너무 진짜 같아지면 오히려 극식한 불안감을 준다는 가설이었다. 모리는 인간과 비인간 사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순간이 언제인지, 인간과 비슷한 존재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돌연 역겨움으로 바뀌는 시점이 언제인지 그래프를 그려 보여주었다. 그 시점이 되면 그래프가 한순간 뚝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는데, 모리는 그래프 모양에 빗대 이 현상을 '불쾌한 골짜기'라고 불렀다.

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

7부 '멈출 수 없는 강박적 광기'에서 '방랑벽'에 대한 내용은 가부장에서 억압된 여성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돌아다니고 싶은 충동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집안 살림과 가정생활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라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때 여자들이 공장에 불려 나가 일하고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싸우는 동안에는 방령벽 진단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샬럿 브론테가 <제인 에어>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천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질병이 아니라 제도 속에서 억압받은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99가지 강박으로 보는 인간 내면의 풍경"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을 함께 읽어보며 우리 각자가 가진 공포증과 광기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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